‘임플란트 11개 사망’ D치과 사건 그 후…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6.08.27 09:34:20
  • 호수 1598호
  • 댓글 0개

8개월 만에 또…이번엔 60대 남성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강남역 인근 대형 임플란트 전문 치과인 ‘D’ 임플란트 전문 치과에서 임플란트 수술을 받던 환자가 숨졌다. 지난해 12월, 75세 여성이 임플란트 시술 중 심정지 상태에 빠져 숨진 지 불과 8개월 만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D치과에서 숨진 환자는 충북 진천에 거주하던 60대 남성 A씨다. A씨는 저렴한 가격에 임플란트 시술을 받을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서울 강남까지 올라와 D치과를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6월29일 진행된 첫 수술에서는 하루에 치아 17개를 발치한 뒤 임플란트 8개를 식립했다.

섬뜩한 병원

두 번째 수술은 지난 3일 진행됐다. 의료진은 이날 A씨에게 임플란트 10개를 추가로 심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6번째 임플란트를 시술하던 중 A씨에게 심정지가 발생했고, 끝내 숨졌다. 같은 치과에서 8개월 사이 두 번째 임플란트 수술을 받던 중 환자가 사망한 것이다.

진료기록부에는 당시 A씨에게 마약류 진정제인 미다졸람 3cc와 케타민 1cc, 국소마취제 리도카인 7.5앰플이 투여된 것으로 기록됐다. 다만 현재까지 A씨의 정확한 사망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당시 진료 과정과 약물 투여, 환자 상태에 대한 모니터링, 심정지 발생 이후 의료진의 응급조치 등에 범죄 혐의점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따라서 현재 단계에서 약물 투여와 A씨의 사망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D치과에서 임플란트 수술을 받던 환자가 숨진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12월30일에도 75세 여성이 이 치과에서 임플란트 수술을 받다가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 당시 의료진은 한번에 임플란트 11개를 식립할 예정이었다.

여성은 수면마취를 위한 약물과 국소마취제를 투여받은 뒤 이상 반응을 보였고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첫 번째 사망사고의 경우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도 알려졌다. 치과계 전문 매체 등에 따르면 국과수는 여성의 사망 원인을 국소마취제 아티카인에 의한 독성 반응으로 추정했다. 당시 투여된 아티카인은 체중을 기준으로 계산한 최대 허용량의 약 2.9배 수준이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보도에 따르면 체중 54㎏인 해당 환자에게 투여된 아티카인은 총 16카트리지, 약 1088㎎에 달했다. 해당 체중을 기준으로 한 최대 허용량은 약 378㎎이라는 게 의료계 분석이다.

치아 17개 뽑고 임플란트 8개
한 달 뒤 추가 10개 식립 계획

사고 당시 CCTV에 담긴 장면도 논란을 키웠다. 유족이 확인한 CCTV에는 약물 투여 이후 여성이 갑자기 두 손을 들어 올리는 모습이 담겼고, 이후 의료진이 여성의 손목에 아대를 채워 치료 의자에 고정한 정황이 있었다고 보도됐다. 여성은 약물을 투여받기 시작한 지 약 16분 만에 이상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첫 번째 사망사고 이후 D치과가 어떤 원인 분석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했는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두 번째 사고까지의 간격은 불과 8개월이다. 첫 사고 이후 고령 환자의 전신 상태를 평가하는 기준이나 하루에 시행하는 발치·임플란트 식립 범위, 진정·마취제 투여량 관리, 환자 모니터링 및 응급 상황 대응 체계가 달라졌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물론 임플란트를 여러 개를 한꺼번에 심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의료과실이라고 볼 수는 없다.

치과계에서도 다수 임플란트 식립은 환자의 상태와 의료환경에 따라 충분히 시행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핵심은 숫자가 아니라 환자의 연령과 기저질환, 체중, 수술 시간, 마취·진정제의 종류와 누적 투여량, 환자 감시 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는지 여부다.

대한치과마취과학회 임원인 이용권 원장은 관련 보도에서 다수 임플란트 식립의 적정선을 일률적인 개수로 정할 수 없다면서 전신 상태와 총 시술 시간, 마취·진정 약물의 총량 등이 중요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유족들은 두 번째 사고가 발생하기 전 D치과에서 이미 환자가 수술 중 사망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A씨가 숨진 뒤에야 언론 보도를 통해 지난해 12월 사망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접했다는 것이다. 유족은 정확한 사고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치과 측에 당시 CCTV 기록 열람을 요청했지만, 치과 측은 개인정보보호법 등을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수술을 담당했던 의료진과 직접 만나 사고 당시 상황을 듣고 싶다는 요청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6번째 시술 중 심정지 발생
미다졸람·케타민 등 투여

치과 측의 사고 대응을 두고도 논란이 일었다. 보도에 따르면 치과 관계자는 취재진으로부터 지난해 사망사고가 있었는지 질문에 “그 병원 아니다. 그런 일 없었다”는 취지로 답했다. 그러나 해당 장소에서는 실제 지난해 12월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경찰 수사도 진행중이다.

치과 측은 이후 이번 사망사고와 관련해 당시 의료진이 할 수 있는 초동 조치를 모두 취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확한 사망 원인과 의료진의 책임 여부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의 공식적인 판단을 지켜보겠다는 취지다.

D치과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 사망사고에서 그치지 않는다. D치과 원장은 직원들에게 이른바 ‘빽빽이’ 형식의 반성문을 작성하게 하거나 벽을 보고 서 있게 했다는 직장 내 괴롭힘 의혹, 퇴사한 직원에게 비용을 요구했다는 문제 등도 거론됐다. 관련 사안은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으로도 이어졌다.

환자 사후 관리와 관련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일부 환자들은 광고를 보고 지방에서 서울까지 찾아와 임플란트와 틀니 치료를 받았지만 이후 불편을 호소했고, 재치료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D치과는 현재도 홈페이지를 통해 강남 임플란트 전문 치과임을 홍보하면서 치료 기간과 통증·부담을 줄이는 이른바 ‘3최소 전체 임플란트’를 주요 진료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결국 경찰 수사의 핵심은 두 번째 사망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다. 동시에 첫 번째 사망사고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국과수가 첫 환자의 사망 원인으로 국소마취제 독성 반응 가능성을 제시한 뒤 병원이 어떤 안전 조치를 마련했는지, 해당 조치가 실제 진료 현장에 반영됐는지, 두 번째 환자의 수술에서는 마취와 진정제 투여량을 어떤 기준으로 결정했는지가 규명돼야 한다.

환자가 숨진 뒤 무엇이 바뀌었는지, 그리고 안전 대책이 있었다면 왜 불과 8개월 뒤 같은 치과에서 또다시 임플란트 수술을 받던 환자가 심정지 상태에 빠져 숨졌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한편, 사망사고의 유족들이 실제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도 관심사다. 현행법상 의료 행위 과정에서 환자가 숨졌다고 해서 의료기관의 손해배상책임이 자동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의료진의 주의 의무 위반과 환자의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적 분쟁

다만 의료사고가 사망으로 이어진 경우, 유족에게는 일반 의료 분쟁보다 강력한 피해 구제 절차가 적용된다. 유족은 이 과정에서 진료 기록과 약물 투여량, 환자의 기저질환과 수술 전 상태, 수술 중 모니터링, 심정지 발생 시점과 응급조치 등을 토대로 의료진의 과실 여부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감정을 받을 수 있다.

의료과실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될 경우, 손해배상의 범위는 장례비에 그치지 않는다. 다만 피해자의 연령과 직업, 실제 소득, 사고 경위와 환자의 기존 질환, 의료진의 과실 정도 등에 따라 최종 배상액은 크게 달라진다.

<smk1@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종합특검팀이 종료됐다. 12·3 내란과 관련된 수사는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마무리되지 않은 사건은 경찰 국수본으로 이첩됐다. 검찰 특수본과 특검팀의 수사에 협조한 이들이 없었다면 확인이 어려운 의혹이 산적했다. 이 중에는 정보사 공작 업무와 내란 당일 계엄군의 움직임을 알린 군인들이 있다. 대개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기관 간 판단이 다른 걸 두고 형평성에 어긋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2·3 내란에는 여러 수사기관이 뛰어들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국방부 내란 특수본,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 2차 종합특검팀(특별검사 권창영) 등이다. 복수의 군인들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일부는 혐의가 있었다. 수사기관마다 판단이 달랐다는 게 핵심이다. 국방부 검찰단의 경우가 그렇다. 누군가의 공작이나 의도, 내란 당일 같은 행위를 했음에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조차 받지 않는 사례가 존재했다. 협조했는데 다른 판단 내란 특검팀과 검찰 특수본에 협조한 데 이어 재판에서 핵심 증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중 1명은 김창학 전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장(대령)이다. 김 전 단장은 지난 2월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두 달 뒤인 4월에는 법령준수의무위반 및 성실의문위반으로 파면됐다. 김 전 단장은 수사기관에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의 지시로 국회로 갔던 계엄군의 움직임에 대해 진술했다. 종합특검팀이 내란의 리허설이라고 판단한 국군방첩사령부 자유의 방패(FS) 훈련과 이 전 사령관의 이례적인 지시가 담긴 녹취를 제출하기도 했다. 여기엔 내란 특검팀에 제출된 적 없는 자료도 포함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관련 녹취에는 방첩사의 전시 합동수사본부 훈련 과정에서 수방사 실무진들이 병력 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김 전 단장을 포함한 전·현직 수방사 관계자들은 “‘합수단 수사관들은 경호 대상이 아니다’ ‘합수단 경호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병력 지원 자체에 난색을 표했다”고 진술했다. 수방사 관계자들은 “전시 상황이라면 검토가 가능하지만 평시에 병력을 지원하려면 수방사 작전계획부터 변경해야 한다. 육군본부 군사경찰실과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이 전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이 전 사령관과 방첩사의 압력에 못 이긴 수방사는 당시 훈련에 군사경찰단 50명과 35특임대대 20~25명 등 70여 명 규모 병력을 지원했다. 이 같은 진술을 확보한 종합특검팀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2024년 3월 전시나 계엄 시 부대별 임무와 병력 운용 등을 규정한 군 내부 계획 문서인 ‘전시 비문’ 개정을 추진하며 기존과 다른 방식의 합수본 운영을 준비한 것으로 의심했다. 이 전 사령관은 이 과정에서 수방사 병력 지원을 추진하며 실무진의 반대에도 병력 파견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두 사령관을 지난달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모든 특검에 자료 넘겨 김 전 단장을 비롯한 복수의 군 관계자들은 현재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반대로 행위가 비슷했던 조성현 대령(전 수방사 제1경비단장)은 훈장을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지난달 말 조 대령을 조사한 후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조 대령은 합참 지휘통제2팀장 직을 수행하다 최근 인사 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 대령이 2024년 12월3일 오후 11시51분 이 전 사령관과 통화하며 “그렇게 지금 임무를 줬고” “충성, 계속 작전하겠습니다”고 라고 언급한 녹취와 다음 날인 12월 4일 오전 1시2분 김 전 단장이 “(이진우) 사령관이 울타리를 넘어서라도 국회에 들어가라고 하는데, 그게 안 되잖아”라고 말하자 조 대령이 “우리는 그렇게 들어왔습니다” “경찰과 협조해 한적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라고 답한 내용을 확인한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전달하고 국회 침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중간 실행자’ 역할을 했다고 결론 냈다. 김 전 단장이 기소된 점도 기소 근거로 꼽혔다.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은 조 대령은 예하 제2특임대대와 제35특임대대에 하달했다. 실제 35특임대대는 계엄 당시 국회 경내에 투입됐다. 종합특검팀의 판단은 내란 특검팀의 수사 결론과 배치된다. 내란 특검팀은 조 대령이 “상부의 위헌·위법적인 지시를 거부했다”며 그를 입건하지 않았다. 종합특검팀은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조 대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의심했다. 일부 군인들 특검에 핵심 진술·자료 제출하고 불기소 군검찰, 내란 중요임무 종사 재판 넘기고 대거 파면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같은 해 12월4일 새벽 1시4분 서강대교 북단에 도착한 제2특임대대 2지역대장 윤덕규 소령에게 총 세 가지를 지시했다고 봤다. ▲총기와 탄약을 차량에 두고 진압봉을 챙겨 서강대교를 넘어올 것 ▲진입 방법은 국회에 이미 들어가 있는 부대와 상의할 것 ▲임무는 국회 안에 있는 인원을 끌어내는 것 등이다. 조 대령은 “2지역대장에게 정확하게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말을 한 사실이 있나요”라는 종합특검팀의 질문에 “윤덕규에게 2024년 12월4일 1시20분경 다시 북으로 올라가라고 말한 것이고, 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고 진술했다. 조성현 대령 측은 문자 그대로 “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지시가 회군의 취지였다는 점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윤 소령은 “조 대령이 ‘너희가 (서강대교를) 넘어왔을 때 시민과 충돌하게 되면 크게 다친다. (서강대교 인근에) 대기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끝까지 반대 김 전 단장과 동시에 파면된 핵심 증인 중 1명은 정성우 전 방첩사 1처장이다. 그는 지난해 6월24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여 전 사령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 전 처장은 검찰 특수본에서 진술했던 것처럼 “여인형 전 사령관이 당시 선관위 전산실을 통제하고 이후 민간 수사기관에 넘기며, 여의치 않으면 서버를 복사하거나 ‘떼어오라’는 3단계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했다. 정 전 처장을 비롯해 방첩사 법무실 간부들은 여 전 사령관의 지시에 대해 기술적·법률적 검토 결과 현실적으로 이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여 전 사령관은 “제 기억으론 정성우 증인한테 서버를 복사해라, 떼오라고 이야기한 기억은 분명히 없다”며 “정성우에게 서버를 떼서 가져오는 방법이 있을까 정도를 문의했다면 모를까, 명시적으로 카피해라, 떼서 가져오라고 했을 것 같지 않다. 카피도 안 되는데 어떻게 떼서 가져오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정 전 처장은 내란 사태 당일부터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총 6차례 통화했다.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50분 정 전 처장은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 노 전 사령관의 전화번호를 넘겨받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 전 사령관은 정 전 처장에게 “(병력이) 출발을 했느냐”라고 물었고 정 전 처장은 “이제 영외 거주자를 소집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내란 특검팀에 협조했던 정 전 처장은 김 전 단장처럼 내란 중요임무 종사와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내란 특수본은 정 전 처장이 방첩사 인원 115명을 4개 팀으로 긴급 편성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과천·관악 청사, 선관위 수원 연수원, 여론조사 꽃 등 4곳에 출동하게 하는 등 군인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김 전 단장을 비롯해 복수의 군 간부들이 기소되자 내란 특검팀은 국방부 검찰단에 ‘‘사전 협의’가 있었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취지로 불만을 전했다고 한다. 군 일각에서는 정 전 처장은 아니더라도 김 전 단장과 소수의 영관급 장교들은 국방부 조사본부 차원에서 무혐의 종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내란 특검팀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김창학 대령 외에도 여러 사람이 협조했고 그들 덕분에 수사를 할 수 있었던 게 컸다”며 “군검찰의 기소에 감 놔라 배 놔라 해서는 안 되고 해당 기관의 판단이지만 복수의 군 관계자들을 기소했을 때 ‘왜 저 사람은 기소 안 하느냐’는 등의 뒷말이 상당했다. 특검팀도 관련 내용을 알았기에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라고 했다. 음모·모해 명확한데 혐의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가 아니지만 사실상 노 전 사령관과 여 전 사령관에게 피해를 본 사람도 있다. 박민우 전 정보사 A 여단장(예비역 준장)이다. 그는 2025년 초 국회 청문회에서 ‘노상원 수첩’에 관한 핵심 증언을 했던 인물로 주목받았다. 박 준장의 증언 후 실제 관심이 크지 않았던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의 신빙성과 중요도가 커졌다. 노 전 사령관은 정보사를 내란에 동원하려 사실상 박 준장을 축출했다. 여 전 사령관의 검찰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박 준장의 비위, 비밀은닉, 업체 로비 등 4~5건의 중요한 제보를 받았다. 노 전 사령관이 비위 제보를 하지 않았으면 연락을 하지 않았을 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는 군형법상 군사기밀누설 및 암호 부정사용,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사건에 대해 수사권을 갖는다. 당시 블랙 요원 명단 유출 사건도 방첩사가 초동수사해 사건을 군검찰로 넘겼다. 여 전 사령관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건 박 준장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간 갈등 전후다. 박 준장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시기와도 일치한다. 박 준장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갑자기 전화가 와서 ‘아직도 고집이 세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말한 게 전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날 내란에 동원하려 일종의 간보기 차원으로 질문했던 것 같다. 노상원에 의해 직무에서 배제됐다고 본다. 여단장이 공석이 되자 이 자리 진급을 미끼로 김봉규, 정성욱을 노상원이 조종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상원 수첩 '핵심 증언자' 박민우, 사실상 노·여 모해로 좌천 신원식 “노상원·여인형에 의해 피해 본 것 맞다” 특검에 진술 문 전 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이 2024년 8월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정보사 갈등’ 교통정리를 위한 후속 조치를 약속하고 경질될 예정이었다. 신 전 실장은 박 준장과 문 전 사령관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했지만 문 전 사령관이 거부했다. 문 전 사령관은 유임됐고 노 전 정보사령관과 대통령실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개입하면서 신 전 실장은 회의가 끝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옷을 벗었다.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은 이에 관해 검찰 특수본 조사에서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2024년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진술했다. 박 준장의 주장은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신 전 실장은 종합특검팀 조사에서 “박민우 장군은 여인형과 노상원에게 피해를 봤다. 문상호가 유임되지 않았으면 박 장군도 재판에 넘겨지거나 좌천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며 “큰일도 아니었고 그래서 둘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얘기를 했던 거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