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에 다시?’ 친일재산조사위 돌아온 진짜 이유

쫓다 말았는데 또 쫓는다고?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16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1기 조사위는 수천 필지의 친일 재산을 찾아 국가로 돌렸지만, 이미 팔리거나 상속된 재산까지 모두 환수하지는 못했다. 재산은 수십년 동안 팔리고, 상속되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끝내 남겨진 친일 재산을 다시 추적하기 위해 국가가 두 번째로 나선다.

오는 12월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가 출범한다. 지난 2010년 1기 조사위가 활동을 종료한 지 무려 16년 만이다. 정부가 다시 조사위를 띄우는 이유는 지난 1기 조사에서 친일 재산 환수 작업을 모두 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상당한 규모의 재산을 찾아 국가 귀속 결정을 내렸지만, 조사에 착수했을 때는 이미 광복 이후 수십 년이 흐른 상태였다.

흩어진 재산들
60년 늦은 추적

재산 상당 부분이 매각되거나 후손에게 상속됐고, 제3자에게 넘어간 경우도 많았다. 문제는 1기 조사위가 사라진 이후였다. 조사위 활동 종료를 전후로 친일 재산의 국가 귀속 실적은 급격하게 줄었다. 국회가 제시한 친일 귀속 재산 수탁 현황을 보면 2009년 719필지, 2010년 663필지였던 수탁 재산은 2011년 3필지로 급감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한 필지도 없었으며, 2024년에도 1필지에 그쳤다.

그사이 일부 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들이 관련 재산을 제3자에게 매각해 현금화하거나 소유권을 여러 명에게 분산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재산의 흐름을 추적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 재출범을 추진한 배경이다.

이 같은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국회는 지난 5월 친일 재산 환수를 위한 새로운 특별법을 통과시켰고, 법은 지난 6월2일 공포됐다. 정부도 법 제정과 함께 16년 만의 조사위 재설치를 공식화했다. 조사위는 2005년 12월 제정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한다.

법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에 협력하고 민족을 탄압한 반민족 행위자가 친일 행위로 축적한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고, 선의의 제3자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조사위는 대통령 소속의 독립적인 국가기구로 위원장과 상임위원 2명을 포함한 위원 9명으로 구성됐다. 실제 조사 업무를 위해 법무부와 경찰청, 재정경제부, 산림청, 국세청 등 관계기관에서 파견된 공무원과 별정·계약직 공무원까지 합쳐 모두 104명 규모의 조직이 꾸려졌다.

조사 대상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러일전쟁이 시작된 1904년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한 재산과 이를 상속받은 재산, 친일 재산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유증이나 증여받은 재산을 친일 재산으로 규정했다.

특히 이 기간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은 원칙적으로 친일 행위의 대가로 얻은 것으로 추정하도록 했다. 실제 조사에서는 현재의 등기부만 확인해서는 친일 재산 여부를 가려내기 어려웠다.

수십년에 걸친 소유권 변동을 역으로 추적해야 했기 때문이다. 친일 재산 문제가 국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진 것은 광복 이후 60년이 지나서였다.

이완용 1573만㎡ 필지 중 되찾은 토지는 1만928㎡
대대적 환수 작업에도 매각·상속·소송에 ‘미완’

광복 직후인 1948년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졌지만, 반민특위가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친일 인사에 대한 처벌과 재산 문제 역시 제대로 매듭짓지 못했다. 이후에는 친일 행위로 형성된 재산을 국가가 환수할 별도의 법적 근거도 마련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친일 인사들이 보유했던 재산은 자연스럽게 후손들에게 상속됐다. 문제는 1980년대 말부터 일부 후손들이 국가나 제3자 명의로 넘어간 토지를 돌려달라며 이른바 ‘조상 땅 찾기’ 소송에 나서면서 불거졌다.

당시에는 해당 토지가 친일 행위의 대가로 얻은 재산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국가가 소유권을 주장할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완용 후손의 토지 반환 소송이었다. 이완용의 증손자는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일대 토지 등을 놓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고, 1997년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당시에는 친일 행위로 얻은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킬 특별법이 마련되기 전이었고, 후손은 결국 토지를 되찾았다. 해당 토지는 약 2372㎡, 당시 시가 약 30억원 상당으로, 이후 매각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완용 후손의 승소 이후 소송이 잇따랐다.

송병준 후손의 재산 반환 소송은 규모부터 달랐다. 그의 증손자는 2002년 인천 부평구 산곡동 일대 부평 미군기지, 이른바 캠프마켓 부지 가운데 약 36만5000㎡를 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공시지가만 약 2500억원에 달하는 땅으로, 미군기지 전체 면적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후손 측은 국가가 소유권의 근거로 제시한 옛 토지대장과 임야대장이 위조됐거나 나중에 허위로 작성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3년여간의 심리 끝에 2005년 1심에서 후손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항소심에서도 패소했고, 대법원은 2011년 상고를 기각하면서 국가 소유가 최종적으로 유지됐다.

이 같은 이유로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화됐다. 핵심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얻은 재산을 특정해 국가로 돌려놓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정상적인 거래를 통해 재산을 취득한 제3자의 권리는 보호하도록 했다.

찾아놓고도
못 가져왔다

이 같은 논의를 거쳐 2005년 12월29일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법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친일 행위로 축재한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켜 정의를 구현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명시했다. 친일 재산을 국가가 되찾을 수 있는 법적 틀이 광복 60년 만에 마련된 셈이다.

법이 만들어지면서 실제 재산을 찾아낼 조직도 필요해졌다. 이에 특별법을 근거로 2006년 7월13일 1기 조사위가 공식 출범했다. 수십년 동안 후손에게 상속되고 여러 차례 거래되면서 흩어진 친일 재산을 국가가 직접 추적하는 작업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조사위가 4년 동안 들여다본 범위는 상당했다.

당시 조사 대상에 오른 친일반민족행위자는 462명, 이들의 후손은 3만884명에 달했다. 전국에 흩어진 토지와 과거 소유 기록을 확인한 끝에 이 가운데 168명이 보유하거나 후손에게 넘어간 친일 재산 2359필지, 1113만9645㎡를 국가에 귀속시키기로 결정했다.

당시 공시지가로 약 959억원, 시가로는 약 2106억원에 달하는 규모였다. 여기에 이미 제3자에게 넘어가 바로 국가에 귀속시킬 수는 없었지만 친일 재산으로 확인한 116필지, 192만9758㎡가 추가된다. 이를 합하면 조사위가 친일 재산으로 찾아낸 토지는 모두 2475필지, 1306만9403㎡에 이른다.

조사위가 친일 재산임을 확인하면 국가가 이후 부당이득 반환청구 등의 방식으로 재산이나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되찾는 절차를 밟았다. 조사위 활동 종료를 앞둔 2010년 7월까지 이 같은 소송을 통해 돌려받은 금액만 약 13억원이었다.

환수 규모를 당시 시가로 환산하면 국가 귀속 결정과 제3자 처분 재산 등을 포함해 약 2373억원에 달했다. 수십년 동안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던 친일 재산을 처음으로 국가가 대규모로 찾아내고 귀속 절차에 들어갔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성과였다.

하지만 조사 대상 462명 가운데 실제 재산 환수나 친일 재산 확인으로 이어진 사람은 168명에 그쳤다. 단순 계산하면 전체 조사 대상의 약 36% 수준이다. 광복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관련 자료가 사라지고 재산이 여러 차례 매매·상속된 점 등이 조사 과정의 한계로 지적됐다.

조상 땅 찾기
줄줄이 소송

일부 수십만㎡에 달하는 토지는 국가로 넘어간 반면, 일제강점기 막대한 토지를 보유했던 것으로 확인된 인물을 대상으로 조사위가 실제 찾아낸 재산은 극히 일부에 그쳤다.

이 같은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인물이 이완용과 송병준이다. 두 사람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친일 인사인 동시에 전국에 막대한 토지를 보유한 대지주였다. 그러나 조사위가 실제 국가 귀속 결정을 내린 재산은 과거 보유 규모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조사위가 2010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완용은 일제강점기 1309필지, 약 1573만㎡의 토지를 소유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조사위 내부 보고서에서는 멸실된 토지대장 대신 지적 원도와 각종 사료까지 추가로 대조한 결과 이완용의 실제 보유 부동산이 1801필지, 2233만4954㎡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여의도 면적의 7배가 넘는 규모다. 하지만 조사위가 이완용 재산으로 국가 귀속 결정을 내린 토지는 16필지, 1만928㎡에 불과했다. 공시지가 기준 약 7000만원 규모로, 내부 보고서에서 확인된 전체 부동산 면적을 기준으로 하면 약 0.05%에 그친다. 막대한 토지를 확인하고도 실제 국가가 되찾을 수 있었던 재산은 극히 일부였던 셈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이완용이 생전에 이미 상당수 토지를 팔아치웠기 때문이다. 조사위 자료를 토대로 한 분석에 따르면 이완용은 토지를 취득한 뒤 장기간 보유하기보다 수년 안에 되파는 방식으로 재산을 불렸다.

특히 전북지역 토지를 대거 확보한 뒤 일본인 지주들이 진출해 땅값이 오르면 다시 매각했고, 이런 식으로 보유 토지의 98~99%가 광복 이전에 처분된 것으로 조사됐다. 부동산을 팔아 확보한 돈의 흐름은 더욱 찾기 어려웠다.

조사위는 각종 사료를 토대로 1920년대 초 이완용이 보유했던 현금과 은행예금만 약 300만원에 달했던 것으로 파악했다. 토지는 등기나 토지대장에라도 남지만 현금은 수십년 동안 상속·소비되거나 다른 자산으로 바뀌면 원래 친일 재산과의 연결고리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광복 이후까지 이완용 일가 명의로 남아 있던 땅도 있었다. 서울 종로구와 경기 용인, 충남 아산, 전북 익산 등에서 광복 이후에도 이완용 일가가 보유했던 것으로 확인된 토지만 16만6182㎡에 달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상당수 역시 1950~1970년대를 거치며 제3자에게 넘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이미 팔린 친일 재산 ‘처분 대가’까지 추적
최소 325억 추가 환수 전망…최대 5년간 조사

송병준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사위가 2010년 공개한 자료에서는 그가 일제강점기 570필지, 약 857만㎡의 토지를 보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조사위 내부 자료를 추가로 분석한 결과에서는 실제 보유 부동산이 약 1004만㎡까지 확인됐다.

여기에 일본 홋카이도에서도 약 1850만㎡의 토지를 일제로부터 받았다는 기록이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송병준의 재산 가운데 국가 귀속 결정이 내려진 것은 9필지, 2911㎡에 그쳤다. 공시지가로 약 4700만원 수준이었다. 송병준 역시 1930년대까지 국내에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 상당수를 처분한 것으로 조사됐다.

광복 이후 송병준 일가 명의로 남아 있던 토지 6만7081㎡가 추가로 확인됐지만, 이 역시 1953년부터 1971년 사이 차례로 제3자에게 매각됐다.

이해승은 대한제국 황실 종친 출신으로, 한일병합 이후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은 인물이다. 조사위는 2007년 후손이 상속받은 경기도 포천 일대 토지 192필지, 당시 시가 300억원대 재산을 친일 재산으로 판단해 국가 귀속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후손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당시 특별법의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자’라는 문구가 쟁점이 됐고, 2010년 대법원은 후손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국회가 해당 요건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했지만, 이미 확정 판결이 난 재산까지 다시 환수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민영휘는 대한제국 고위 관료를 지낸 뒤 일제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은 대표적 친일 인사다. 조사위는 2007년 민영휘 소유 재산 31만여㎡, 당시 시가 약 57억원 상당을 국가 귀속 대상으로 결정했고 청주 상당산성 일대 토지도 실제 국가로 넘어갔다. 후손들은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조사위의 손을 들어줬다.

그럼에도 2024년 청주와 춘천에서 민영휘 후손 소유 토지 22필지, 21만여㎡가 다시 친일 재산으로 지목돼 국가 귀속 신청이 이뤄졌다. 조사위가 한 차례 대규모 환수에 나섰음에도 관련 재산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던 셈이다.

현재 친일 재산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보다 여러 차례 매매와 상속을 거치거나 현금으로 바뀐 경우가 늘어나면서 환수 작업의 난도 역시 1기 때보다 높아졌다. 2기 조사위는 위원장과 상임위원 2명을 포함해 모두 9명으로 구성되며, 기본 3년에 한 차례 2년을 연장해 최대 5년간 활동할 수 있다.

친일 재산
숨바꼭질

특히 1기와 달리 친일 재산이 이미 매각된 경우에도 그 처분 대가까지 추적해 환수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혔다. 정부가 기대하는 추가 환수 규모도 상당하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2기 조사위가 가동되면 “최소 325억원 이상의 친일 재산을 추가로 환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환수된 재산은 순국선열·애국지사 사업 기금 등에 우선 활용될 예정이다. 16년 만에 다시 시작되는 조사에서 과거 미처 찾지 못했거나 이미 처분된 친일 재산의 흐름을 어디까지 되짚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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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현실판 차무식’ 사기극 전말

[단독] ‘현실판 차무식’ 사기극 전말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필리핀 골프장 투자 사기에 연루된 정종수씨가 1심 재판에서 패소했다. 필리핀 법원은 정씨가 한국인 투자자들을 삭제하고 필리핀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제이비 크레스타(이하, JBC)의 일반정보보고서(GIS)를 무효로 판단했다. 정씨는 한화 약 150억원을 투자한 최대주주의 지분 탈취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인 사업가 정씨를 둘러싼 필리핀 골프장 투자 분쟁이 현지 법원의 주주 지위 회복 판결로 전환점을 맞았다. 한국인 투자자 6명은 2019년 JBC 등에 총 104억원을 투자하고 회사 지분 63.98%를 확보했다. 투자자 측은 “계약에 따라 2024년 8월29일 지분을 배정받고 투자금을 입금해 JBC의 법적·실질적 최대주주가 됐다”고 설명했다. 필리핀 카르텔 JBC는 필리핀 클락에 위치한 스카이블루 골프 앤 리조트(이하, 스카이블루)를 자회사로 두고 있었다. 현지인과 친인척 관계를 맺으며 필리핀에서 장기간 활동한 정씨는 ‘현지 국회의원 등 4명을 스카이블루 이사로 등재해 골프장 매각을 성사시키겠다’는 조건으로 JBC와 자회사인 스카이블루의 경영권을 요구했다. 투자자들은 정씨가 현지 인맥을 활용해 골프장 사업을 정상화하고 매각까지 성사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2024년 11월20일 정씨는 JBC의 주주와 이사진을 대거 교체하고 투자자들의 지분을 주주명부에서 삭제했다. 투자자 측은 이 과정에서 적법한 주주총회와 이사회 절차 없이 문서가 위조되고 경영권과 지분이 넘어갔다며 정씨 측의 행위를 사기·배임·문서위조 등으로 문제 삼고 있다. 이번 판결은 정씨의 사기나 문서위조 등 형사책임을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JBC의 주주 및 이사·임원 지위와 2024년 8월29일 이후 이뤄진 지배구조 변경의 적법성이 쟁점이다. 필리핀 앙헬레스시 지방법원 제60지원은 지난달 28일 함모씨 등 6명의 주주들을 대표하는 안창현씨와 부민호씨가 정씨와 현지인 등을 상대로 제기한 회사 임원 권원 및 회사 행위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JBC의 적법한 주주라고 선언했다. 함씨를 비롯해 2024년 8월29일 자 GIS에 기재된 이사·임원들을 새로운 경영진이 적법하게 선출될 때까지 원상 복구하고, 당시 GIS에 기재된 주주들의 지위도 함께 회복하라고 판결했다. 이어 법원은 정씨가 제출한 JBC의 GIS를 모두 무효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정씨의 측근 크리스티나 송미 리, 줄리 앤 벨트란, 세스난다 빌라파냐, 스테파니 러브 타데오, 리코 안젤로 정, 디오네 오호일란 안토니야 등 6명은 JBC의 적법한 주주 및 이사·임원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세스난다 빌라파냐는 정씨의 아내, 스테파니 러브 타데오는 며느리, 리코 안젤로 정은 손자로 알려졌다. 2024년 8월29일 후 JBC 일반정보보고서 모두 무효 자기주식 75% 흡수한 정종수 라인⋯통지도 안 했다 정씨는 이번 소송의 피고지만 판결 주문에서 적법하지 않은 주주·이사·임원으로 특정된 6명의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정씨가 불법 주주나 임원으로 판결받은 것은 아니다. 앞서 <일요시사>는 지난 1월 ‘카지노 차무식 현실판 사기극(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4030)’ 기사를 통해 한국인 투자자들의 JBC 지분과 자회사 스카이블루의 경영권 및 핵심 자산이 정씨 측에 넘어갔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한국인 투자자들은 2019년 JBC 등에 100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이어 스카이블루 증자 등을 명목으로 송금한 약 47억원까지 합하면 피해를 호소하는 투자금은 150억원대에 이른다. 투자자들은 JBC 지분 63.98%를 보유한 최대주주였지만 2024년 11월20일 자 GIS에서 자신들의 이름이 통째로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원고들은 2024년 8월29일부터 11월14일까지 GIS에 ‘JBC 주주’로 기재돼있었다. 여기에 함씨는 1500주, 백씨와 김씨는 각각 500주, 한강라이프는 499주, 유씨는 100주를 보유한 것으로 신고됐다. 원고 측 대표자 부민호씨도 최종적으로 100주를 보유한 주주로 기재돼있었다. 그러나 불과 엿새 뒤인 11월20일 제출된 GIS에서 이들의 이름은 정씨에 의해 모두 사라졌다. 원고들은 자신들이 주주 및 임원 지위에서 배제되는 과정과 관련된 회의에 관해 아무런 통지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 역시 피고 측이 기존 주주들에게 회의 개최 사실을 적법하게 통지했다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새 경영진의 선출 시점을 둘러싼 모순도 확인됐다. 정씨 측은 2024년 12월2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새 이사와 임원들이 적법하게 선출됐다고 주장했으나,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인 그해 11월20일 자 GIS에 이미 회사 임원으로 기재돼있었다. 고지도 절차도 스테파니 러브 타데오는 12월2일 재무 담당 임원으로 선출됐다고 주장했지만 그보다 앞서 기존 주주들의 지분과 회사 장부를 조사하는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타데오는 11월12일 카르멜로 라사틴 주니어로부터 주식 1주를 매입했다고 주장했다. 기존 한국인 주주들을 배제하기 위한 실사가 이뤄지기도 전이었다. 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직접 확인한 핵심은 기존 한국인 투자자들이 적법한 주주였으며, 이들의 지분을 연체 주식으로 처리해 다른 사람들에게 넘겼다는 피고 측 주장을 뒷받침할 적법한 절차와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2024년 11월20일 자 GIS에는 JBC가 자기 회사의 보통주 3751주를 보유한 것으로 기재됐다. 전체 발행주식의 약 75%에 해당하는 규모다. 회사가 자기주식을 취득하려면 법이 정한 사유와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해당 GIS에는 이 주식이 어떤 경위로 회사 명의가 됐는지 나타나지 않는다. 주식의 성격도 자기주식이 아닌 일반 보통주로 표시됐다. 이후 회사 측 설명은 달라졌다. 2024년 12월2일 회의록에는 당초 자기주식으로 분류됐던 3752주를 기존 주주들이 청약대금을 납입하지 않은 연체 주식으로 정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피고 측은 기존 주주들이 청약대금을 완납하지 않아 해당 주식이 연체 상태가 됐고 이후 신규 주주들에게 적법하게 매각됐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필리핀 개정회사법에 따라 연체 주식을 처분하려면 해당 주주에게 개별적으로 통지하고 일반 유통 신문에 2주 연속 매각 사실을 공고한 뒤 공개경매 절차도 거쳐야 한다. 연체 주식 지정을 위한 이사회 결의뿐 아니라 기존 주주에 대한 통지, 매각 공고와 신문 게재, 공개경매, 실제 매각을 입증할 자료가 확인되지 않았다. 다른 회사 장부 제출 신규 주주들이 주식 대금을 실제 지급했다는 계약서와 영수증, 세금 납부 자료 역시 제출되지 않았다. 주식은 정씨 측근들에게 분산됐다. 2024년 12월21일 자 GIS에는 타데오가 1378주를 보유한 대주주로 등장했다. 카트리나 블랑카 데 레온과 아이리시 칼라구아스는 각각 550주, 이경희와 박재관은 각각 375주, 최민승은 375주를 보유한 것으로 기재됐다. 이성진과 손봉준에게도 각각 75주가 배정됐다. 재판부는 이들이 취득했다는 주식의 성격과 실제 취득 경위를 확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 과정에선 피고 측이 핵심 증거로 제출한 주주·주식양도 대장의 진위도 도마 위에 올랐다. 피고 측은 기존 한국인 투자자들이 JBC의 주주가 아니라는 근거로 주주·주식양도 대장 일부를 제출했다. 해당 장부에 원고들의 이름이 없기 때문에 이들을 JBC 주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였다. 법원이 문서를 확인한 결과 증거로 제출한 자료는 JBC의 장부가 아닌 스카이블루의 회사명이 기재돼있었고 원본대조필 표시 역시 모회사 JBC가 아닌 스카이블루 명의로 돼있었다. 타데오도 반대신문 과정에서 해당 문서가 JBC가 아닌 스카이블루의 주주명부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투자자 함씨와 김씨는 2022년 정씨와 체결한 양해각서에 따라 스카이블루의 증자에 참여하기로 하고 약 47억원을 송금했다고 주장한다. 투자금 일부는 스카이블루 법인 계좌로 송금됐고 일부는 골프장 카트 구매비 명목으로 정씨가 지정한 한국 계좌에 입금됐다는 게 투자자 측 설명이다. 장부라며 낸 증거, 알고 보니 스카이블루 주주명부 코레이트자산운용 별도 재판⋯뒤집힌 지배구조 쟁점 함씨와 김씨는 2년이 넘도록 증자 절차가 등록되지 않았고 자신들의 지분도 필리핀 SEC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작성된 주주명부에도 함씨와 김씨의 이름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투자자 측은 투자금을 받고도 약속한 지분을 발행하지 않은 행위가 사기와 배임 등에 해당할 수 있다며 형사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허위 내용이 포함된 GIS를 고의로 인증하거나 제출한 사실이 입증될 경우 필리핀 개정회사법 제162조의 허위·부정확 보고서 인증 규정이 문제될 수 있다. 지분을 탈취했다는 의혹을 받는 정씨는 스카이블루 매각을 최대주주 동의 없이 진행하기도 했다. 투자자 측은 스카이블루 주요 자산을 처분하려면 회사 주주 3분의 2 이상의 특별결의와 스카이블루 지분 99.9%를 보유한 모회사 JBC의 적법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매각 상대방으로는 한국토지신탁 자회사인 코레이트자산운용 측이 거론됐다. 골프장 관련 공사에는 포스코더샵 아파트 건설에도 참여한 다원이 시공사로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판결이 스카이블루의 자산매각 자체를 무효로 판단한 것은 아니다. 해당 매각의 적법성은 별도로 제기된 탈락(Tarlac) 특별상업재판소 사건에서 심리되고 있다. 다만 이번 판결로 2024년 8월29일 이후 JBC의 GIS와 지배구조 변경이 무효로 판단된 만큼, 적법하지 않은 JBC 지배구조를 토대로 스카이블루의 매각 승인권이 행사됐는지가 별도 재판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특히, 스카이블루 골프장 부지는 필리핀 국유지와 관련돼있어 기지전환개발청(BCDA)의 승인이나 동의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별도 사건에서 다뤄질 쟁점이다. 2025년 10월 매각 절차가 BCDA의 승인 아래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승인 절차의 미비만으로 거래가 당연히 무효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현재 별도 가처분 사건에는 BCDA도 피고로 포함돼있다. 골프장 매각 따로 재판 이번 판결이 정씨에 대한 형사 유죄판결은 아니다. 그러나 법원이 한국인 투자자들을 JBC의 적법한 주주로 인정하고 2024년 8월29일 이후 제출된 GIS를 모두 무효화하면서, 기존 투자자들이 적법한 절차 없이 회사 지배구조에서 배제됐다는 주장은 상당 부분 힘을 얻게 됐다. 150억원대 투자금과 골프장 자산을 둘러싸고 시작된 이른바 ‘현실판 카지노 차무식’ 사건은 이제 JBC 지배구조 복원과 스카이블루 자산매각의 적법성, 관련자들의 형사책임을 가리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