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망작’이라는 혹평 속에 기억 저편으로 밀려났던 영화가 19년 만에 뜻밖의 역주행을 시작했다. 바로 심형래 감독의 SF 판타지 영화 <디 워>다. 2007년 개봉 당시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작품의 완성도를 두고 거센 비판을 받았던 이 영화가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다시 해외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디 워>는 지난 8일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순위 7위에 오른 데 이어 10일에는 6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11일에도 9위를 기록하며 글로벌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주요 국가에서는 영화 부문 2위까지 올랐고, 20개국의 톱10 차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조롱받던 망작
뜻밖의 대박
심형래 하면 영화감독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영구’로 사랑받았던 코미디언 시절이다. 심형래는 1958년 2월21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태어났다. 서울영등포국민학교와 영도중학교, 여의도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군 복무를 마쳤다. 본격적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것은 1982년이었다. 그해 열린 제1회 KBS 개그콘테스트에서 동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그의 인기는 독보적이었다. 어눌한 말투와 우스꽝스러운 표정, 과장된 몸짓을 앞세운 바보 연기는 심형래를 단숨에 스타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캐릭터는 단연 ‘영구’였다. KBS <유머 1번지>의 ‘영구야 영구야’에서 선보인 영구는 당시 어린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심형래라는 본명보다 영구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 정도였다.
1984년에는 <심형래 코믹 캐롤>을 내놓으며 음반까지 흥행시켰다. 익숙한 캐럴을 특유의 코믹한 방식으로 바꾼 앨범으로,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릴까 말까’ 같은 구절은 오랫동안 그의 대표적인 유행어가 됐다.
당시 심형래는 어린이들에게 특히 강한 인기를 누렸다. TV에 영구가 등장하면 아이들이 말투와 몸짓을 따라 했고, 그의 캐릭터를 앞세운 상품과 영화도 잇따라 등장했다.
방송에서 만든 캐릭터 하나가 극장과 음반시장까지 이어질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인기가 절정에 달하면서 심형래의 활동 범위도 자연스럽게 넓어졌다.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진 캐릭터와 몸개그를 영화에서도 활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어린이 영화 시장에서는 인기 코미디언의 출연 자체가 흥행을 좌우할 정도였고, 심형래 역시 일찌감치 스크린으로 무대를 넓혔다. 1986년에는 김청기 감독의 <우뢰매>에서 에스퍼맨 역을 맡았다. 이후 <영구와 땡칠이> <영구람보> 등 여러 어린이 영화에 잇따라 출연하며 영화배우로도 이름을 알렸다.
전성기 때 벌어들인 수입도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형래는 여러 방송에서 당시 연예인 소득 상위권에 올랐던 시절을 회상했고, 서울 강남의 빌딩과 수도권 부동산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심형래는 배우로 출연한 작품에서도 코미디 장면과 캐스팅 등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점차 작품을 만드는 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심형래의 관심을 크게 바꿔놓은 작품이 등장했다. 1993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이었다.
코미디 전성기 누린 뒤 할리우드에 승부수
300억 들인 <디워>…785만 흥행에도 혹평
컴퓨터그래픽과 특수효과를 통해 화면 속 공룡을 실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구현한 영화는 당시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심형래 역시 공룡을 소재로 한 <영구와 공룡 쭈쭈>를 선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크게 달랐다.
훗날 심형래는 극장에 자신의 영화 포스터를 붙여놓았는데 바로 옆에 <쥬라기 공원>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는 일화를 여러 방송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기술력의 차이는 분명했다. 심형래는 이후 인터뷰에서 당시 자신이 만든 공룡은 움직임에도 한계가 있었으며, <쥬라기 공원> 속 공룡들은 실제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이후 그의 관심은 특수효과와 컴퓨터그래픽(CG)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이듬해인 1994년에는 직접 연출한 <티라노의 발톱>을 내놨다. 원시시대를 배경으로 공룡과 인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국내의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 직접 공룡 모형과 특수효과를 구현하려는 시도가 담겼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지만 심형래에게는 기존의 코미디 영화에서 한발 더 나아가 본격적으로 SF와 특수효과 영화에 매달리는 계기가 됐다.
이 무렵부터 그가 바라보는 목표도 달라졌다. 한국의 기술로 만든 SF 영화를 해외시장에 내놓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특수효과와 CG 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려 했고, 영화 제작사와 기술 인력을 꾸리며 상당한 자금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영화 제작에 몰두하면서 개인 재산도 적지 않게 들어갔다. 심형래는 훗날 방송과 인터뷰 등을 통해 영화 제작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부동산 등을 처분했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한때 방송과 행사로 큰돈을 벌었던 코미디언이 자신의 자산을 다시 영화 제작에 쏟아붓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심형래는 그동안 축적한 특수효과 기술과 자금을 한 작품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괴수를 앞세워 할리우드 시장까지 겨냥한 <용가리>였다. 영화가 완성되기도 전부터 해외 수출 소식이 전해지면서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칸 영화제 마켓에서 해외 판매 계약을 맺었는데, 당시 알려진 계약 규모는 9개국 272만달러였다. 사람들은 심형래의 도전에 주목했다. 코미디언 출신으로 영화사를 세우고 직접 특수효과 기술을 개발해 한국형 괴수 영화를 만든다는 이야기는 당시로서는 이례적이었다.
자본과 기술에서 할리우드와 큰 격차가 있었던 상황에서 한국 영화가 해외 시장을 겨냥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바보 연기
희극 1인자
그러나 <용가리>가 실제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심형래가 강조했던 기술적인 도전과는 별개로 영화의 이야기와 연출, 완성도를 두고 좋지 않은 평가가 이어졌다. 해외시장 진출 역시 당초 대대적으로 알려졌던 기대와는 거리가 있었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 알려졌던 해외 수출 실적을 둘러싸고도 논란이 일었다. 당시 <씨네21>은 <용가리>가 1998년 칸 영화제 마켓에서 272만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을 맺었다고 알려진 것과 관련해 실제 계약 내용에 의문을 제기했다.
영화가 완성된 뒤 최종 계약으로 이어지는 확정적인 수출 실적이라기보다 구속력이 약한 단계의 합의가 포함돼있다는 취지였다. 보도 이후 심형래가 만든 제작사 영구아트무비 직원 50여명이 <한겨레> 신문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용가리>를 통해 할리우드 진출을 꿈꿨던 심형래는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에는 더 큰 규모로, 처음부터 미국 관객을 겨냥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번에는 한국 배우가 중심인 영화도 아니었다. 한국 설화 속 ‘이무기’를 가져와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복판에 풀어놓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디 워>다. <디 워>는 한국의 이무기 설화를 바탕으로 여의주를 차지하려는 악한 이무기와 이를 막으려는 세력의 대결을 그렸다. 주요 배경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였고 외국 배우들을 기용해 대부분의 대사를 영어로 촬영했다. 국내 관객만을 겨냥한 영화가 아니라 제작 단계부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둔 작품이었다.
제작 규모도 이전과 달랐다. <디 워>에는 약 300억원에 달하는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였다.
심형래가 이끌던 영구아트무비는 수년 동안 특수효과와 컴퓨터그래픽 기술 개발에 매달렸고, 거대한 이무기와 괴수들이 도심 한복판에서 맞붙는 장면을 구현하는 데 상당한 인력과 자금을 투입했다.
2007년 8월 국내에서 개봉한 <디 워>는 785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관객 수만 놓고 보면 대형 흥행작이었다. 하지만 관객 수와 작품에 대한 평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개봉 직후부터 빈약한 이야기와 개연성이 떨어지는 전개, 어색한 대사와 연출 등을 지적하는 혹평이 이어졌다. 심형래가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운 특수효과와 컴퓨터그래픽 역시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하면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피하지 못했다.
코미디언서
감독으로
해외 평가도 좋지 않았다. 미국 영화평가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디 워>는 평론가 평가 28%, 관객 평가 19%를 기록했다. 현지 평단에서도 이야기와 연출을 중심으로 비판이 이어졌다. 한국에서 대규모 괴수 영화를 자체적으로 제작했다는 시도 자체에는 의미를 두는 평가도 있었지만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냉정했다.
영화를 지지하는 관객과 비판하는 관객 사이의 갈등도 거셌다. <디 워>의 완성도를 따져야 한다는 쪽과 한국 영화가 막대한 자본을 들여 미국 시장에 도전했다는 점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쪽이 팽팽하게 맞섰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에 삽입된 ‘아리랑’은 논란을 더욱 키웠다. 심형래는 한국적인 정서를 해외 관객에게 알리기 위해 아리랑을 사용했지만, 일부는 이를 두고 작품의 완성도보다 애국심에 기대려 한다고 비판했다. 결국 <디 워>는 흥행과 혹평이라는 상반된 결과를 동시에 남겼다.
785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면서 상업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지만, 작품성에서는 오랫동안 ‘망작’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됐다. 심형래가 바라던 미국 극장 개봉까지 이뤄졌지만 현지에서 기대했던 수준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심형래는 미국 시장을 향한 도전을 접지 않았다. <디 워> 이후 심형래가 선택한 작품은 <라스트 갓파더>였다. 거대한 괴수와 특수효과 대신 자신이 가장 익숙한 코미디로 돌아왔다.
다만 무대는 다시 미국이었다. 한국에서 사랑받았던 ‘영구’와 닮은 어수룩한 인물을 미국 마피아 세계에 집어넣는 방식으로 또 한 번 해외 시장을 노렸다.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개봉 직후 국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열흘가량 만에 17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최종 관객 수도 약 254만명에 달했다. 하지만 막대한 제작비를 회수하기에는 부족했다. 당시 알려진 손익분기점은 450만~500만명 수준으로, 국내 흥행만으로 제작비를 건지기는 어려웠다.
심형래가 더 기대했던 미국 시장에서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현지 극장에서 개봉했지만 관객을 끌어모으지 못했고, 흥행 수입 역시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디 워>에 이어 다시 미국 시장에 직접 도전했지만 이번에도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제작사 무너지고 170억원대 빚더미
사기 혐의 고소·채무에 파산까지
문제는 수년 동안 대규모 영화 제작을 이어오면서 영구아트무비의 재정 상황은 이미 악화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2011년 영구아트무비는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같은 해 여름 회사 운영이 사실상 중단됐고, 직원들의 임금과 퇴직금이 지급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한때 한국에서 자체적으로 특수효과 영화를 만들겠다며 수십명의 기술 인력을 모았던 회사가 직원들의 급여조차 지급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이다.
심형래는 같은 해 법정에서 직원들에게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하지 못한 사실을 인정하고 변제 의사를 밝혔다. 이듬해 초에는 체불된 금액 가운데 일부를 마련했다고 설명했지만 전체 금액을 해결하기에는 부족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 자산도 하나둘 정리되기 시작했다. 영구아트무비 사옥은 경매에 넘어갔고, 심형래 개인과 회사가 짊어진 채무를 둘러싼 소송도 이어졌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는 사기 혐의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심형래는 <디 워> 제작비 마련 과정에서 성신양회로부터 40억원을 조달한 뒤 일부를 갚지 못해 2009년 사기 혐의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다만 검찰은 처음부터 변제할 의사가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2012년에는 금융회사로부터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수십억원대 채무를 떠안게 됐다. 비슷한 시기 가정생활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1992년 결혼해 가정을 꾸렸던 심형래는 영구아트무비가 무너져가던 무렵 결혼 생활을 정리했다.
빚더미에 앉게 된 심형래는 2013년 개인파산 절차를 밟았고, 법원으로부터 약 170억원 규모의 금융권 채무를 면책받았다. 이후 심형래는 방송과 무대에 조금씩 복귀했다. 예능과 코미디 프로그램, 마당놀이 등에 출연했고 최근에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영구TV’를 통해 활동 중이다.
심형래를 빚더미에 앉게 했던 애증의 <디 워>가 19년 뒤 유럽을 중심으로 다시 순위에 오르자 심 감독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지난 14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나도 깜짝 놀랐다”며 “외국 관객들은 선입견 없이 SF 영화로서 재미있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디워2>
제작 끝”
뜻밖의 역주행은 자연스럽게 속편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심형래는 이미 오래전부터 <디 워2> 제작 의지를 밝혀왔는데, 최근에는 한발 더 나아가 제작이 사실상 마무리됐다고 주장했다. 지난 18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영구TV’에서 그는 “<디 워2>가 2년 후에 나온다. 제작은 다 끝났다”고 밝혔다.
이어 영화뿐 아니라 게임도 함께 선보일 예정이며, 국내 배급사가 아닌 세계적인 대형 회사가 배급을 맡아 전 세계에 동시 공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imsharp@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