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워야 사는 장동혁 무리수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6.08.24 11:22:19
  • 호수 15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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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도 져도 붙고 보자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당 대표 선거 출마 전부터 지금까지 싸움을 언급한 주요 발언 사례는 최소 136차례다. 급기야 싸움은 공천 및 조직 인선 기준으로까지 확대됐다. 장 대표는 왜 지극한 ‘싸움 사랑’을 드러내는 것일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12일 <매일신문> 유튜브 채널 ‘이동재의 뉴스캐비닛’에 출연해 다시 싸움을 강조했다. 장 대표는 이날 “국민의힘 지지자·당원이 원하는 것은 국민의힘이 제대로 싸우라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제대로 싸우지 않았던 당협위원장은 이제는 교체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싸움닭’
당협위원장

이어 당협위원장을 평가·선출하는 조직강화특별위원회를 다시 가동하는 것에 대해서도 “지금부터 인재를 발굴하고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분들을 당협위원장으로 임명해서 조직을 정비하게 하고 하나로 뭉쳐서 싸울 수 있는 힘을 만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당협위원장들의 임기는 이달 종료된다. 장 대표의 발언은 “사고 당협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당협위원장을 재선출했던 관행을 깨고, ‘잘 싸우는’ 사람들을 당협위원장으로 임명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이어 싸움을 총선 공천·당 개혁으로까지 연결할 구상을 밝혔다.

그는 “잘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을 충원하고 발굴하고 교육하고 양성해서 결국 다음 총선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겠다”며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도 항상 당 노선과 함께 가며 하나로 뭉쳐서 싸울 수 있는 사람들로 채우는 정당으로 만들어가는 게 개혁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7월 당 대표 선거 출마 당시부터 지난 19일까지는 싸우다·싸움·투쟁·전쟁·전투·전사·전선·전장·반격·전투력·출정 등 표현을 수시로 활용했다. 약 13개월 동안 유사 표현을 사용한 사례가 최소 136차례 확인된다. 시작은 당 대표 출마 고민 단계였다.

장 대표는 지난해 7월10일 채널A와 인터뷰하면서 “국민의힘 의원 107명을 제대로 잘 싸울 수 있는 전사로 만드는 게 쇄신”이라며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싸울 마음이 없는 의원은 당을 떠나야 한다”는 취지를 밝혔다.

이후 장 대표의 주장 속 싸움은 더 많은 의미를 담아갔다. 첫 단계는 당 혁신론이었다. 대표 당선 직후인 지난해 8월에는 “잘 싸우는 사람만 공천하겠다”는 등 ‘싸움 실력’은 공천 원칙으로 확대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지방선거는 체제 전쟁이고, 전사를 출마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갔다. 싸움은 당의 정체성을 넘어 선거 전략을 설명하는 언어로까지 확대됐다.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당에 문제가 생긴 것은 당이 제대로 싸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당의 난맥상을 ‘싸움 실력 부족’으로 정리했다.

싸움 실력이 친한(친 한동훈)계 등 당내 반대파 평가 기준으로 노골화된 것은 지난 6월이었다. 이때 장 대표는 “민주당과 얼마나 싸웠는지 따져보자”고 말했다. 이어 지난달과 이달에는 ‘잘 싸우는 정당’을 평가 원칙으로 구체화하고, 제대로 싸우지 않은 당협위원장은 교체하겠다는 방침까지 밝혔다.

져도 안 바뀌는 승리 공식
공천·인사까지 번진 싸움

이는 싸움 실력을 조직·인사 평가 시스템으로 확대할 방안을 밝힌 것이었다. 장 대표가 꿈꾸는 국민의힘의 미래상은 ‘20%만 싸우는 현재의 국민의힘을 80%가 싸우는 정당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일련의 흐름은 장 대표가 강조하는 싸움이 일회성 발언이 아니라 점차 체계화돼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그는 지난달 13일 “정치인은 싸우는 것”이라면서도 “다만 어떻게 잘 싸우는지, 국민들이 보기에 납득할 만한 싸움을 하는지가 중요하지, 싸우지 않겠다면 정치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고 어떤 혁신 방향을 가져야 하는지가 최근 지도부와 함께 고민하는 핵심 주제”라고 밝혔다.

이 역시 싸움 자체를 폐기했다기보다 싸움의 목적과 방향을 다시 정립할 필요성을 인정한 발언으로 읽힌다. 간단히 정리하면, 장 대표는 싸움을 말하며 혁신·공천 기준 → 선거를 전쟁으로 재정의 → 정치적 실패를 ‘싸움 부족’으로 해석 → 평가·공천 원칙 → 조직 개편 원칙 등으로 꾸준히 그 위상을 높였다.

싸움은 지난 6월 지방선거 패배 이전부터 장 대표의 소신 겸 정치 노선이었다. 그는 대표가 되기 전부터 “제대로 싸우는 전사만이 공천을 받을 수 있는 잘 싸우는 정당”이라는 논리를 제시했고, 대표 당선 이후에는 이를 대여투쟁의 핵심 노선으로 확대했다.

장 대표는 지방선거 이전에는 선거를 체제 전쟁으로 규정하면서 “싸워 이길 전사가 출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지방선거는 장 대표의 세계관에서 통상의 정책·인물 경쟁을 넘어 체제의 존립을 건 전쟁으로 다시 정의된 것이다.

문제는 지방선거 패배였다. 국민의힘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구 16곳 중 4곳에서만 승리하는 참패의 쓴맛을 봤다. 장 대표의 싸움론에 특히 불리한 대조를 이룬 것은 장 대표의 선거 지원을 거부했던 오세훈 서울시장의 승리였다. 적어도 12 대 4라는 외부 결과는 장 대표의 싸움론이 선거 승리로 이어졌다고 보기 어렵게 만드는 지표였다.

하지만 장 대표는 지방선거 패배 이후 싸움론을 폐기하기보다 다시 조직 쇄신의 핵심에 올렸다. 그가 제시한 구체적 해법은 결국 “20%가 아닌 80%가 싸우는 정당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방선거 패배라는 불리한 외부 결과를 맞은 뒤에도 기존 싸움론의 강도를 더욱 높이는 특이한 패배 수습책이었다.

물론 지난달 13일에는 어떻게, 무엇을 위해 싸우느냐가 중요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그러나 장 대표가 중도층·수도권·청년층으로의 외연 확장을 ‘싸움론’과 어떻게 결합해 선거 승리로 연결할지에 대한 구체적 해법을 제시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불편한
12 대 4

그의 논리에는 “이기면 잘 싸워서 이긴 것이고, 지면 충분히 싸우지 않아서 진 것”이라는 증명하기 어려운 자기완결적 논리에 빠질 위험이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기존 전략을 수정하지 않으면 선거 패배는 학습 정보로 기능하지 못한다.

이를 상징하는 장면은 소장파인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과의 언쟁이었다. 장 대표는 지난 6월26일 <펜앤마이크>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지금 당에서 분열·갈등의 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지난 1년 동안, 그리고 지방선거 국면에서 민주당과 싸우기 위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목록을 작성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힘 김용태·김재섭·우재준 의원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기가 막히게 적과 싸워야 할 때는 뒤에 숨어 있다가 당내에서 지도부를 공격할 때는 맨 먼저 나와서 가장 목소리를 높인다”며 “당내 싸움에만 몰두하는 분들이 민주당과 싸우도록 만드는 것이 보수 재건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곧바로 김재섭 의원의 반박을 몰고 왔다. 김 의원은 민주당 정원오 전 서울시장 후보 검증을 선봉에 서서 주도한 이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모두가 패배를 말하던 전장에서 저는 선봉에 서서 싸웠다”며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서울시장 선거를 승리로 이끈 그 싸움이 장동혁 지도부를 흔드는 일이었다면 기꺼이 징계를 받겠다”고 반격했다.

이 장면은 오 시장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후 승리한 것과 맞물려 역설적으로 장 대표의 체면·위상을 깎아먹은 장면으로도 읽힌다.

하지만 장 대표의 당시 발언은 그가 강조하는 싸움론의 비대칭성을 드러낸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김 의원이 실제 선거 현장에서 민주당 후보 검증의 선봉에 섰는데도 장 대표가 “적과 싸워야 할 때는 뒤에 숨어 있었다”고 평가했다면, 결국 ‘언제, 누구와, 얼마나 싸워야 제대로 싸운 것인지’를 누가 판단하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이 사례만 놓고 보면 “전사가 돼 싸워야 하지만, 절대로 싸워서는 안 되는 대상이 하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가능하다. 그 대상은 장 대표 자신이다.

문제는 “잘 싸웠다”는 명제에 대한 평가 기준의 차이로부터 비롯된다. 장 대표가 말하는 싸움 실력은 대여 투쟁 참여도·당 노선 준수·발언과 행동 등 활동량을 중심으로 평가 기준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 성과는 선거 승리·득표율·정당 지지율·입법 성과 등 외부 지표로도 확인된다. 싸움의 활동량을 평가하는 기준과 정치적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은 같은 것이 아니다.

넘치는 의지
병법은 없다

따라서 장 대표는 “누가 적이고, 누가 제대로 싸웠는지 평가하는 권한도 당 대표에게 집중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생긴다. 장 대표가 싸움 실력을 공천·인사 기준으로 끌어올릴수록 싸움 실력은 정치적·도덕적 자격증처럼 기능할 수 있다.

특히 내부 비판보다 외부와의 싸움을 우선시하는 정치인일수록 높은 평가를 받는 구조로 굳어질 경우 ‘잘 싸우는 정당’은 충성도 평가 시스템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아울러 그가 개신교 신앙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 대표는 정치적 갈등을 설명할 때 개신교적 전쟁과 섭리의 언어를 반복해서 사용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3월 세이브코리아 집회 연단과 여의도 집회 연단에 각각 서서 탄핵 정국을 체제 전쟁·영적 전쟁에 빗대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거나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고쳐 주실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이어 지난해 9월엔 세계로교회에서 구약성서의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우는 장면을 끌어와 현재의 대한민국과 연결했다.

당시 장 대표는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건지라고 말씀하셨을 때, 기드온은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하리이까? 보소서, 내 집은 므낫세에서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답했다”며 “그때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 네가 미디안을 치는 것이 한 사람을 치는 것과 같을 것이라’”라고 언급했다.

이어 “기드온과 함께했던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오늘 손현보 목사님과 우리, 대한민국과 영원히 함께하시고 우리와 대한민국을 도와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에벤에셀’은 기드온 서사가 아니라 <사무엘상>에 나오는 별개의 승리 모티프다. 장 대표는 서로 다른 두 성경의 승리 서사를 한 문장 안에 결합한 셈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은 7년 동안 미디안 사람들에게 약탈·압제를 당했다. 하나님은 구원을 청한 이스라엘을 위해 평범한 사람인 기드온을 선택했다. 기드온에게 모인 병력은 3만2000명이었지만, 하나님은 “너무 많다”면서 병력을 줄였다. 이스라엘이 승리를 자신들의 힘으로 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현실 정치에 소환된 기드온
전사·영적 전쟁의 세계관

최종적으로 남은 인원은 300명이었다. 기드온은 이들을 거느리고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드러내면서 나팔을 불었다. 그 결과 미디안 진영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고, 결국 기드온과 전사 300명은 미디안을 격파했다.

장 대표가 현실 정치에서 반복해 사용하는 싸움·전사 등의 표현은 그가 스스로 정치 현장에 소환한 기드온 서사와 상당히 공명한다. 그의 발언을 통해 드러나는 국민의힘의 미래상은 “압도적으로 강한 적에게 맞서는 소수의 선택된 전사가 스스로 옳은 편에 서 있다는 것을 믿고 끝내 승리하는” 기드온의 전쟁과 닮아 보인다.

이 서사에서는 숫자의 열세가 곧 패배의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조건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기드온 이야기는 오히려 병력을 3만2000명에서 300명으로 줄인 서사인 만큼, 이를 장 대표의 ‘20%에서 80%로’라는 조직 동원론과 직접 연결하기는 어렵다.

기드온 서사는 장 대표가 정치적 갈등을 ‘압도적 적에 맞선 선택된 전사들의 싸움’으로 이해하는 상징적 단서에 가깝다. 정치적 갈등을 선악이 분명한 성전의 구도로 이해하면 내부 지적은 ‘같은 편의 싸움을 방해하는 행위’로 해석될 여지가 생긴다.

섭리적 사고란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만물·역사와 인간의 삶을 지혜와 사랑으로 보존하고 다스린다는 종교적 관점을 말한다.

장 대표는 “계엄도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발언에 대해서도 훗날 “하나님은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는 사건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신앙적 해석의 틀을 현실 정치에 적용하면 정치적 패배 역시 자신이 틀렸다는 증거라기보다 더 큰 목적을 위한 일시적 시련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생긴다.

대여 투쟁이 지도부에 대한 내부 비판을 비정상적인 싸움으로 밀어내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결과적으로 장 대표 자신을 비판에서 보호하는 성역화 효과를 낳을 가능성도 있다. 장 대표는 정치에서는 ‘싸우는 사람’을 공천·인사 기준으로 내세우고, 종교적 언어에서는 자신이 참여한 갈등을 기드온과 미디안 같은 성경의 전쟁 서사로 해석한다. 두 세계관은 ‘전사’라는 언어에서 겹친다.

하지만 싸울 의지만 가지고 병법을 모른 채 전장에 나서는 장수가 과연 승리를 이끌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전략 없이 희생과 돌진만 요구한다면 결국 ‘카미카제식 투쟁’이라는 비판까지 받을 수 있다.

현실판
클레멘타인

지나치게 괴작인 나머지 일부 누리꾼이 고의로 걸작인 양 치켜세우며 역설적으로 조롱했던, 2004년 개봉한 한국 영화 <클레멘타인>이 있다. <클레멘타인>의 포스터에는 “싸워야만 하는 남자의 슬픔”이라는 문구가 있었고, 이 문구 역시 조롱의 소재가 됐다. 당시 일부 누리꾼은 “싸워야만 하는 남자의 슬픔”에 주목해 포스터 속 다른 문구 “아빠, 일어나!”를 외쳤다.

2026년의 우리는 현실에서 “싸워야만 하는 남자의 정치”를 보고 있다. “정치를 하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싸우기 위해 정치하는 게 아니냐”는 인상을 주는 어느 남자는, 그 ‘아빠’처럼 과연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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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종합특검팀이 종료됐다. 12·3 내란과 관련된 수사는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마무리되지 않은 사건은 경찰 국수본으로 이첩됐다. 검찰 특수본과 특검팀의 수사에 협조한 이들이 없었다면 확인이 어려운 의혹이 산적했다. 이 중에는 정보사 공작 업무와 내란 당일 계엄군의 움직임을 알린 군인들이 있다. 대개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기관 간 판단이 다른 걸 두고 형평성에 어긋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2·3 내란에는 여러 수사기관이 뛰어들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국방부 내란 특수본,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 2차 종합특검팀(특별검사 권창영) 등이다. 복수의 군인들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일부는 혐의가 있었다. 수사기관마다 판단이 달랐다는 게 핵심이다. 국방부 검찰단의 경우가 그렇다. 누군가의 공작이나 의도, 내란 당일 같은 행위를 했음에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조차 받지 않는 사례가 존재했다. 협조했는데 다른 판단 내란 특검팀과 검찰 특수본에 협조한 데 이어 재판에서 핵심 증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중 1명은 김창학 전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장(대령)이다. 김 전 단장은 지난 2월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두 달 뒤인 4월에는 법령준수의무위반 및 성실의문위반으로 파면됐다. 김 전 단장은 수사기관에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의 지시로 국회로 갔던 계엄군의 움직임에 대해 진술했다. 종합특검팀이 내란의 리허설이라고 판단한 국군방첩사령부 자유의 방패(FS) 훈련과 이 전 사령관의 이례적인 지시가 담긴 녹취를 제출하기도 했다. 여기엔 내란 특검팀에 제출된 적 없는 자료도 포함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관련 녹취에는 방첩사의 전시 합동수사본부 훈련 과정에서 수방사 실무진들이 병력 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김 전 단장을 포함한 전·현직 수방사 관계자들은 “‘합수단 수사관들은 경호 대상이 아니다’ ‘합수단 경호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병력 지원 자체에 난색을 표했다”고 진술했다. 수방사 관계자들은 “전시 상황이라면 검토가 가능하지만 평시에 병력을 지원하려면 수방사 작전계획부터 변경해야 한다. 육군본부 군사경찰실과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이 전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이 전 사령관과 방첩사의 압력에 못 이긴 수방사는 당시 훈련에 군사경찰단 50명과 35특임대대 20~25명 등 70여 명 규모 병력을 지원했다. 이 같은 진술을 확보한 종합특검팀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2024년 3월 전시나 계엄 시 부대별 임무와 병력 운용 등을 규정한 군 내부 계획 문서인 ‘전시 비문’ 개정을 추진하며 기존과 다른 방식의 합수본 운영을 준비한 것으로 의심했다. 이 전 사령관은 이 과정에서 수방사 병력 지원을 추진하며 실무진의 반대에도 병력 파견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두 사령관을 지난달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모든 특검에 자료 넘겨 김 전 단장을 비롯한 복수의 군 관계자들은 현재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반대로 행위가 비슷했던 조성현 대령(전 수방사 제1경비단장)은 훈장을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지난달 말 조 대령을 조사한 후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조 대령은 합참 지휘통제2팀장 직을 수행하다 최근 인사 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 대령이 2024년 12월3일 오후 11시51분 이 전 사령관과 통화하며 “그렇게 지금 임무를 줬고” “충성, 계속 작전하겠습니다”고 라고 언급한 녹취와 다음 날인 12월 4일 오전 1시2분 김 전 단장이 “(이진우) 사령관이 울타리를 넘어서라도 국회에 들어가라고 하는데, 그게 안 되잖아”라고 말하자 조 대령이 “우리는 그렇게 들어왔습니다” “경찰과 협조해 한적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라고 답한 내용을 확인한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전달하고 국회 침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중간 실행자’ 역할을 했다고 결론 냈다. 김 전 단장이 기소된 점도 기소 근거로 꼽혔다.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은 조 대령은 예하 제2특임대대와 제35특임대대에 하달했다. 실제 35특임대대는 계엄 당시 국회 경내에 투입됐다. 종합특검팀의 판단은 내란 특검팀의 수사 결론과 배치된다. 내란 특검팀은 조 대령이 “상부의 위헌·위법적인 지시를 거부했다”며 그를 입건하지 않았다. 종합특검팀은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조 대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의심했다. 일부 군인들 특검에 핵심 진술·자료 제출하고 불기소 군검찰, 내란 중요임무 종사 재판 넘기고 대거 파면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같은 해 12월4일 새벽 1시4분 서강대교 북단에 도착한 제2특임대대 2지역대장 윤덕규 소령에게 총 세 가지를 지시했다고 봤다. ▲총기와 탄약을 차량에 두고 진압봉을 챙겨 서강대교를 넘어올 것 ▲진입 방법은 국회에 이미 들어가 있는 부대와 상의할 것 ▲임무는 국회 안에 있는 인원을 끌어내는 것 등이다. 조 대령은 “2지역대장에게 정확하게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말을 한 사실이 있나요”라는 종합특검팀의 질문에 “윤덕규에게 2024년 12월4일 1시20분경 다시 북으로 올라가라고 말한 것이고, 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고 진술했다. 조성현 대령 측은 문자 그대로 “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지시가 회군의 취지였다는 점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윤 소령은 “조 대령이 ‘너희가 (서강대교를) 넘어왔을 때 시민과 충돌하게 되면 크게 다친다. (서강대교 인근에) 대기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끝까지 반대 김 전 단장과 동시에 파면된 핵심 증인 중 1명은 정성우 전 방첩사 1처장이다. 그는 지난해 6월24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여 전 사령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 전 처장은 검찰 특수본에서 진술했던 것처럼 “여인형 전 사령관이 당시 선관위 전산실을 통제하고 이후 민간 수사기관에 넘기며, 여의치 않으면 서버를 복사하거나 ‘떼어오라’는 3단계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했다. 정 전 처장을 비롯해 방첩사 법무실 간부들은 여 전 사령관의 지시에 대해 기술적·법률적 검토 결과 현실적으로 이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여 전 사령관은 “제 기억으론 정성우 증인한테 서버를 복사해라, 떼오라고 이야기한 기억은 분명히 없다”며 “정성우에게 서버를 떼서 가져오는 방법이 있을까 정도를 문의했다면 모를까, 명시적으로 카피해라, 떼서 가져오라고 했을 것 같지 않다. 카피도 안 되는데 어떻게 떼서 가져오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정 전 처장은 내란 사태 당일부터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총 6차례 통화했다.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50분 정 전 처장은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 노 전 사령관의 전화번호를 넘겨받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 전 사령관은 정 전 처장에게 “(병력이) 출발을 했느냐”라고 물었고 정 전 처장은 “이제 영외 거주자를 소집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내란 특검팀에 협조했던 정 전 처장은 김 전 단장처럼 내란 중요임무 종사와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내란 특수본은 정 전 처장이 방첩사 인원 115명을 4개 팀으로 긴급 편성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과천·관악 청사, 선관위 수원 연수원, 여론조사 꽃 등 4곳에 출동하게 하는 등 군인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김 전 단장을 비롯해 복수의 군 간부들이 기소되자 내란 특검팀은 국방부 검찰단에 ‘‘사전 협의’가 있었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취지로 불만을 전했다고 한다. 군 일각에서는 정 전 처장은 아니더라도 김 전 단장과 소수의 영관급 장교들은 국방부 조사본부 차원에서 무혐의 종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내란 특검팀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김창학 대령 외에도 여러 사람이 협조했고 그들 덕분에 수사를 할 수 있었던 게 컸다”며 “군검찰의 기소에 감 놔라 배 놔라 해서는 안 되고 해당 기관의 판단이지만 복수의 군 관계자들을 기소했을 때 ‘왜 저 사람은 기소 안 하느냐’는 등의 뒷말이 상당했다. 특검팀도 관련 내용을 알았기에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라고 했다. 음모·모해 명확한데 혐의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가 아니지만 사실상 노 전 사령관과 여 전 사령관에게 피해를 본 사람도 있다. 박민우 전 정보사 A 여단장(예비역 준장)이다. 그는 2025년 초 국회 청문회에서 ‘노상원 수첩’에 관한 핵심 증언을 했던 인물로 주목받았다. 박 준장의 증언 후 실제 관심이 크지 않았던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의 신빙성과 중요도가 커졌다. 노 전 사령관은 정보사를 내란에 동원하려 사실상 박 준장을 축출했다. 여 전 사령관의 검찰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박 준장의 비위, 비밀은닉, 업체 로비 등 4~5건의 중요한 제보를 받았다. 노 전 사령관이 비위 제보를 하지 않았으면 연락을 하지 않았을 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는 군형법상 군사기밀누설 및 암호 부정사용,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사건에 대해 수사권을 갖는다. 당시 블랙 요원 명단 유출 사건도 방첩사가 초동수사해 사건을 군검찰로 넘겼다. 여 전 사령관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건 박 준장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간 갈등 전후다. 박 준장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시기와도 일치한다. 박 준장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갑자기 전화가 와서 ‘아직도 고집이 세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말한 게 전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날 내란에 동원하려 일종의 간보기 차원으로 질문했던 것 같다. 노상원에 의해 직무에서 배제됐다고 본다. 여단장이 공석이 되자 이 자리 진급을 미끼로 김봉규, 정성욱을 노상원이 조종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상원 수첩 '핵심 증언자' 박민우, 사실상 노·여 모해로 좌천 신원식 “노상원·여인형에 의해 피해 본 것 맞다” 특검에 진술 문 전 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이 2024년 8월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정보사 갈등’ 교통정리를 위한 후속 조치를 약속하고 경질될 예정이었다. 신 전 실장은 박 준장과 문 전 사령관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했지만 문 전 사령관이 거부했다. 문 전 사령관은 유임됐고 노 전 정보사령관과 대통령실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개입하면서 신 전 실장은 회의가 끝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옷을 벗었다.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은 이에 관해 검찰 특수본 조사에서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2024년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진술했다. 박 준장의 주장은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신 전 실장은 종합특검팀 조사에서 “박민우 장군은 여인형과 노상원에게 피해를 봤다. 문상호가 유임되지 않았으면 박 장군도 재판에 넘겨지거나 좌천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며 “큰일도 아니었고 그래서 둘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얘기를 했던 거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