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청운은 노송 옆에 서서 한손을 짚어 고단한 몸을 의지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난 사실 그녀가 성공하길 바라지 않아. 오히려 그녀가 더 추락하면 좋겠어. 미8군 무대에 서서 화려하게 각광을 받게 되면 축하보다는 되려 저주하고파. 왜냐하면 내게서 점점 더 멀리 떠나는 것 같으니까. 흐흐, 차라리 만신창이 신세가 되어 마음 하나만 지닌 채 내게 돌아온다면 폭 껴안아 주련만….’
지옥에 가까운
청운은 고개를 떨구며 고목 나무에 등을 기대었다. 야밤의 솔바람 소리에 산새들이 잠결에 내는 울음이 이따금 섞여 들곤 했다.
‘그녀는 지금 서울 하늘 아래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미8군 쑈 무대에서 선녀처럼 춤추며 노래하고 있다면 그나마 좋을 텐데. 이태원이나 삼각지 부근에서 내가 전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
청운은 문득 서울 땅이 그리워졌다. 천국보다는 지옥에 더 가까운 땅…여덟 살 어린 나이에 엄마에게 버림받고 홀로 거렁뱅이 꼴로 헤매 다니던 청량리, 동대문, 청계천, 종로, 서울역, 남산, 남대문, 명동…그녀가 살고 있기에 더 그리운지도 몰랐다.
청운은 어둠 속에 묻힌 채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다가 콧소리로 바꾸어 애조 띤 곡조를 흥얼거리더니 음미하듯 눈을 감았다. 노래 가사는 아마 그의 마음속으로 떠돌고 있는지도 몰랐다.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같은 이슬비
누가 울어 이 한밤
잊었던 추억인가
멀리 가 버린 내 사랑은
돌아올 길 없는데
피가 맺히게
그 누가 울어 울어
어둠을 적시나.
얼마 후 청운은 허적허적 산길을 걸어 내려갔다. 숙소 쪽으로 발길을 옮기려는데 어디선가 여자의 흐느낌 소리와 억누른 귀곡성 같은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외딴 산속의 건물에 많은 여자들이 갇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청운은 문득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귀신이니 유령이니 하는 것 때문은 아니었다.
아니, 그럴 수도 있었다. 몽키하우스에 수용된 여자들은 대부분 한창 젊은 나이인데도 의외로 무슨 동백꽃이 지듯 목숨을 떨구곤 했다.
우선 페니실린 쇼크로 인한 갑작스런 사망은 참 어이없고 억울한 참극이었다. 성병 고치러 왔다가 주사 한번 잘못 맞아 고통 속에 생목숨을 잃어 가던 여자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혹시 자신의 인생이 원숭이보다 더 못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을까?
성병 고치러 왔다가
주사 한번 잘못 맞아
고통 속 생목숨 잃어
그런데 문제는 그런 짐승 같은 죽음이 무척 자주 발생한다는 사실이었다. 여자들 각자의 체질을 고려치 않고 일률적으로 투여한 약은 독이 되어 불현듯 목숨을 앗아 가곤 했다.
또 다른 경우는 탈출하려고 야밤에 2층 건물 위에서 뛰어내리다가 뇌진탕으로 숨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런 여자들 중엔 성병에 감염되지도 않았는데 악의를 품은 미군의 컨택에 의해 억울하게 끌려 온 경우가 많았다.
여자들의 시체는 상패동 공동묘지에 매장되기도 했지만 아마포에 둘둘 말아 외진 산속에 대충 묻어 버릴 때도 있었다.
그렇게 졸지에 원한 맺힌 망자가 된 양색시들의 혼백이 귀신으로 변해 서럽게 운다고 해서 이상스런 일은 아니리라. 청운은 바짝 긴장해 귀곡성이 들려오는 곳으로 점점 다가갔다. 귀신에 대한 공포심은 곧 사람 걱정으로 바뀌었다.
흐느낌 소리는 아까 슬쩍 피해 나왔던 2층 여숙사의 난초반 방 쪽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또 누가 죽었나?’
청운은 바짝 긴장해 발걸음을 빨리했다. 문을 두드려 안으로 들어선 그는 일순 쓴웃음을 지었다. 여자들은 어떤 비극이 아니라 감동적인 드라마 때문에 코를 훌쩍이며 흐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들은 이미 방을 싹 정리한 후 드러눕거나 둘러앉아 미애가 읽는 편지에 귀를 기울이는 중이었다. 편지지는 다섯 장은 넘어 보였다.
그 구구절절한 사연을 미애는 제 나름대로 감정을 잔뜩 넣어 마치 성우처럼 낭독해 나갔다.
“이곳 미국에 오고 나서야 내 조국 대한민국의 참모습이 보여. 아, 그리워 죽겠어. 내가 그토록 생지옥이라고 욕했던 그곳의 땅과 하늘이 늘 내 몸과 마음을 감싸 주었다는 걸 생각하면 안타깝고 미안스럽고 슬퍼져. 그곳에서 꿈꾸던 미국은 정작 여기 와서 보니 별로 아름다운 나라란 생각은 안 들어. 엄청 크고 넓은 땅에 거대한 빌딩도 많지만 난 왠지 고향의 박꽃 핀 초가집이 그립단다. 뭐 그렇다고 이곳이 꼭 실망스럽다는 얘긴 아냐. 인간적으로 너무나 자유스러워. 곰이 동굴 속에서 쑥인지 마늘인지 뭘 먹고 사람이 됐다는 소리 따윈 우스울 정도로…동두천을 떠나왔다는 것 자체가 인간 승리로 생각될 정도야. 아메리카 드림은 목숨을 걸고 한번 꿈꿀 만해. 어차피 그곳에서 가망 없이 살다 죽느니 헛꿈이라도 꾸며 온몸으로 부딪쳐 보고 나서 황천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어? 여기서 살다 보면 구차스런 과거보다는 이 현재에 쿨하게 살고 있는 내가 대견스럴 때도 있어. 그래도 왠지 미국 사람들은 이미 다 빨아먹고 버린 사탕을 주워 핥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더라. 난 그곳에 있을 당시, 사실 미국 사람들이 쓴 자기계발이니 성공학이니 하는 책을 구해 읽기도 하면서 내 감정을 억누르고 신세계를 향해 일로매진했었지.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다들 너무나 일상적으로 뻔뻔스럽게 그런 걸 하고 있어서 내심 좀 부끄러울 지경이었어.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것을 부자연스럽다며 비웃기도 했고, 나로선 성공 엔진을 달고 여기까지 왔기 땜에 일단은 직진해 나가야 할까 봐. 다행히 여긴 남녀 차별이 없어서…동두천에서처럼 하면 뭘 못할까 싶기도 해. 하긴 인종 차별의 벽이 너무 높은 듯하지만 말야. 나 스스로 차츰차츰 극복해 나가야겠지. 앞으로 좀 여유가 생기면 대학에 시간제 학생으로 등록해 전부터 꿈꾸던 관심 분야를 수강해 보려고 해. 보통 사람들은 운명이란 아주 얄궂은 것이라고 얘기하지. 운명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의 운명은 우리들 안에서 함께 숨쉬며 살아가고 있다잖아. 우리가 그걸 들여다보고 용기를 불러일으킨다면….”
상패동 매장
청운은 한구석에 선 채 듣고 있었다. 아마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간 전직 위안부 여자로부터 온 편지인 모양이었다. ‘헬조선’을 떠나 ‘아메리카 파라다이스’로 떠난 어떤 여인의 사연은 그냥 편지가 아니라 드라마틱한 인생극장의 장면으로 이 지옥 같은 기지촌 땅에 남은 여자들에겐 느껴졌을 터였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