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돈으로…‘로맨스 스캠’ 피하는 법

영통까지 했는데 왜 속냐고?

[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멋진 이성이 SNS에서 당신에게 메시지를 보낼 확률은?” “외국인 여자친구의 달콤한 코인 투자 권유 ☞ 100% 사기입니다!” 한때 밈으로 떠돌던, 실제 금융감독원이 배포했던 보도자료 제목이다. 썸을 타기 전부터 SNS에서 이름을 검색하는 등 이성을 ‘뒷조사’하는 게 당연하다는 요즘. 마음 쓰기 전에 머리부터 써야 안심이라는 부담감이 평범한 연애를 위축시키고 있다.

#1. 지난달 24일, 대구지검 안동지청은 29세 유모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유씨는 2024년 6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1년4개월간 카카오톡으로 피해자에게 “사랑한다” “보고 싶다” 등 메시지를 보내며 실제 연인처럼 연락했다.

‘박가인’
가짜였다

그사이 759차례에 걸쳐 피해자에게서 뜯어낸 돈은 1억6000만원. 유씨와 피해자는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카카오톡으로만 대화했을 뿐, 단 한 번도 직접 만나지 않았다.

유씨는 자신이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 금융기관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그러고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세금 문제가 생겼다”며 몇십만원 단위 소액을 빌려달라며 반복해 부탁했다. 일부는 갚기도 하면서 신뢰를 쌓았다. 유씨는 이렇게 뜯어낸 돈을 대부분 도박 자금으로 쓴 것으로 파악됐다.

#2. 지난 1월,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한국인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 조직 총책 부부가 강제 송환돼 울산경찰청에 구속 송치됐다. 이 조직은 2024년 1월부터 2025년 2월까지 가상의 여성 ‘박가인’을 만들어 남성들에게 접근했다.

조직은 타인의 SNS 사진을 도용해 딥페이크 기술로 얼굴을 합성한 유튜브 영상을 만들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실제 화상채팅까지 진행하며 피해자의 의심을 지웠다. 매일 대화하며 호감을 쌓은 뒤 가짜 주식과 가상자산에 투자하도록 유도했다.

피해자 한명 한명을 상대하기 위해 10일 분량의 대화 시나리오도 미리 짜뒀다. 언제쯤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어느 시점에 투자 이야기를 꺼낼지까지 미리 정해두고 움직였다. 실존하는 해외 금융회사 이름을 도용한 가짜 투자 사이트와 앱까지 만들었다. 피해자가 실제로 수익이 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확인된 피해자만 104명, 피해 금액은 약 120억원에 달했다. 조직은 캄보디아 현지 건물을 통째로 매입해 대포폰과 컴퓨터를 갖춘 사무실을 차렸다. 실행팀과 자금 세탁팀, 콜센터 등으로 역할을 나눈 채, 실제 ‘기업’처럼 운영했다. 총책 부부는 수사망을 피하고자 눈·코 성형수술까지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위 두 사건은 사기 기술로만 보자면 언뜻 다른 층위에 있는 듯하다. 한쪽은 정교한 기술 없이도 개인이 카카오톡 메시지만으로 1년 넘게 관계를 유지했다. 다른 한쪽은 수사기관조차 초기 대응에 애를 먹을 만큼 까다로운, AI 기술까지 동원한 기업형 범죄였다. 반면, 두 사건 결과는 유사했다. 피해자들은 일면식도 없는 상대가 진짜라고 믿으며 사랑을 키우고 돈을 잃었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 웹이나 앱을 통해 상대방 이름부터 검색하는 일이 더 이상 유난스럽게 여겨지지 않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상생활에서 이성을 만날 기회가 부쩍 적어졌다는 이유로, 데이팅 앱이 한창 성행하기 시작했다.

1932년 미국 사회학자 제임스 보사드는 필라델피아 혼인신고서 5000건을 분석했다. 그는 커플의 3분의 1이 결혼 전에 서로 5블록 이내에 거주했으며, 거리가 멀어질수록 결혼 확률이 급격히 감소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외국인 여친의 치명적 달콤함
코인 투자 권유는 100% 사기

그는 거리가 가까울수록 결혼할 확률이 높다는, 이른바 ‘근접성 효과(propinquity effect)’를 처음 통계로 보여줬다. 빈번한 만남은 익숙한 유대를 형성하기에 유리하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검증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데이팅 앱에서는 이런 이론이 먹혀들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 연애를 시작하는 이들은 ‘온라인 블록’에 이성을 집어넣는 방식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X(엑스)는 이제 오히려 ‘전통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큼 일상화됐다. 열거한 채널에서 누군가의 이름 혹은 연락처를 검색하는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다. 이제는 블라인드나 링크드인 등 직장인 앱으로까지 ‘온라인 블록’이 확장하고 있다.

기업이 인수합병(M&A), 투자, 부동산 거래 등을 진행할 때 매수 상대방이나 투자 대상의 재무 상태, 법적 위험, 영업 활동 등을 사전에 철저하게 조사하고 검토하는 기업 실사를 ‘듀 딜리전스(Due Diligence)’라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연애에서도 상대를 만나기 전에 미리 온라인에서 검색부터 해보는 것을 ‘듀 딜리전스 데이팅(Due Deligence Dationg)’이라 부른다.

이렇듯 썸을 시작하기도 전에 ‘온라인 신원조회’부터 하며 몸을 사리는 이들이 많아졌지만, 로맨스 스캠은 해를 거듭할수록 보다 정교해지고 있다.

로맨스 스캠이 돈을 노리는 다른 사기와 구별되는 지점은 관계 형성에 특별한 공을 들인다는 데 있다. 한남대학교 경찰학과 박미랑 교수와 김소연 연구자가 판결문을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로맨스 스캠은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길들이는 이른바 ‘그루밍(grooming)’을 바탕으로 시작한다.

가해자는 외로움을 유독 많이 느끼는 사람을 범죄 대상으로 판단하고, 그 감정을 파고든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유씨 사례에서 보듯, 사기범은 매일 안부를 묻고 애정 표현을 반복하며 이런 심리적 길들이기 과정을 밟아 나간다.

소액을 반복해서 요청하는 방식도 계산된 전략에 가깝다. 한번에 큰돈을 요구하면 경계심이 발동하지만, 몇만원에서 몇십만원 단위로 여러번 나눠 요청하면 심리적 저항이 낮아진다.

게다가 유씨는 일부를 갚는 척하며 신뢰를 쌓았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믿을 만하다는 확신을 스스로 강화하게 된다. 국내 로맨스 스캠 상담 피해자 상당수가 처음에는 소액 요청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1년 넘게
본 적 없다

‘박가인’ 사건처럼 조직적인 스캠의 경우 이 심리적 설계가 훨씬 더 정밀하다. 이들은 치밀하게 미리 짜둔 대화 시나리오도 가지고 있었다. 피해자가 어느 시점에 무엇을 궁금해하고, 어떤 감정을 느낄지까지 예측해 대응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딥페이크로 만든 얼굴과 목소리까지 더해지면, 피해자가 상대를 의심할 근거는 거의 남지 않는다.

로맨스 스캠 피해가 유독 구제받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법 적용의 사각지대에 있다. 로맨스 스캠은 보이스피싱에 적용되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이 법은 재화나 용역의 공급을 가장한 행위를 전기통신금융사기로 보지 않기 때문에, 은행 계좌 지급정지 같은 즉각적인 구제 조치를 받기가 원칙적으로 어렵다.

이 공백은 실제 피해자들의 상황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울산지역 매체 보도에 따르면, 박가인 사건 관련 조직원들이 잇따라 검거·송환돼 처벌받고 있는 것과 별개로, 피해자들의 실질적 피해 회복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범죄자들의 은닉 재산을 추적해 피해금을 환수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뚜렷한 진척은 없는 상태다. 피해자들은 계좌 수사 진행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서에 직접 찾아가야 하는 처지다.

경찰은 로맨스 스캠 피해를 별도로 집계하고 있다. 집계를 시작한 2024년 2월 이후 1년8개월 동안 2830건이 신고됐고, 피해액은 1675억원에 달했다. 피해 규모는 계속 커지는데, 이를 뒷받침할 법적 구제 장치는 여전히 보이스피싱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 로맨스 스캠이 주로 데이팅 앱이나 SNS 메시지를 통해 이뤄졌다면, 최근에는 접근 경로 자체가 훨씬 다양해지고 일상적으로 바뀌었다.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댓글을 달거나, 블로그·브런치 같은 글쓰기 플랫폼 댓글 창에 “따로 연락하고 싶다”며 연락처를 남기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작가님, 저는 처음 뵙는데 따뜻한 글을 볼 수 있어 너무 기쁩니다.” 40대 여성 A씨는, 자신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에 달린 댓글이 처음에는 반가웠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A씨 글에 계속 댓글을 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구제받기
어려운 이유

“저는 대구 출신 김○○입니다. 현재 싱가포르에 거주하며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남자는(실제로는 성별조차 진실인지 알 수 없다), “카카오톡으로 더 자주 소통하면 어떨까요?”라고 적으며 아이디를 밝혀왔다. A씨는 단박에 그가 사기꾼임을 알아차렸다고 했다.

“처음에는 제 글이 좋아서 댓글을 쓰는 줄 알고 정말 기분이 좋았는데, 자꾸 카카오톡으로 얘기하자고 하니, ‘아, 이게 말로만 듣던 그 로맨스 스캠이구나’ 싶더라고요.” A씨는 브런치 앱에서 해당 댓글에 ‘신고’를 눌렀다.

이런 접근은 데이팅 앱보다 경계심을 낮춘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데이팅 앱 이용자는 애초에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을 전제하고 접속한다. 따라서 어느 정도 경계심을 가진 채 만남을 잇는다.

반면 자신이 온라인상에 게재한 일상적인 게시물에 댓글을 남기는 사람은, 마치 관심사나 취향이 통해 다가온 것처럼 느껴지기 쉽다.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계정은 상대방의 게시물에 진지한 반응을 남긴다. 공통 관심사가 있는 것처럼 신뢰를 먼저 쌓은 뒤에야 개인 연락처 혹은 카카오톡으로 유도하는 패턴을 보인다.

최근까지도 “사진이 의심스러우면 이미지 역검색을 해보라”거나 “영상통화로 실제 얼굴을 확인하라”는 조언이 통용됐다. 이미지 역검색은 사진을 업로드하거나 URL을 넣어, 원본 출처나 유사 이미지를 찾아주는 기능이다.

그러나 박가인 사건은, 이 같은 조언이 더 이상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증거로 작용한다. 도용한 SNS 사진에 딥페이크 기술로 얼굴을 합성해 유튜브 영상은 물론 실시간 화상채팅용 영상까지 만드는 수법이 확인되면서다.

요즘에는 사진뿐 아니라 영상통화도 조작할 수 있다. 실제 만남 없이 돈 이야기가 먼저 오간다면 영상통화 여부와 관계없이 의심할 것이 권고된다. 결국 “얼굴을 봤으니 안심”이라는 공식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시대가 된 셈이다.

로맨스 스캠 급증은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로맨스 스캠으로 인한 피해 신고는 5만5604건, 피해액은 11억6000만달러, 한화로 약 1조6000억원에 달했다. 신고자 1인당 중간값 피해액은 2218달러였다.

멋진 남성이 내게 SNS 메시지를?
전문직이 부를 과시하면 의심부터

해외에서도 AI와 딥페이크가 동일한 방식으로 문제를 키우고 있다. 사기범들이 AI로 생성한 얼굴 사진을 사용하면서, 예전에는 유효했던 이미지 역검색으로도 원본을 찾아낼 수 없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실시간 딥페이크 필터를 적용해 영상통화 화면 속 얼굴을 조작하는 사례까지 보고됐다.

맥아피(McAfee)가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호주·인도 등 7개국 성인 7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년 밸런타인데이 리서치에 따르면, 4명 중 1명(25%)이 가짜 프로필이나 AI 생성 봇을 마주친 적 있다고 답했다. 35%는 데이팅·소셜 앱에서 AI로 생성되거나 조작된 사진을 발견한 적 있다고 했다. 또 53%는 돈이나 금융 정보를 요구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QR코드·링크 통한 유도 포함).

이렇듯 검증 수단이 예전만큼 확실하지 않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화면 속 상대에게 AI 필터가 실시간으로 따라 하기 어려운 행동을 요청해 보는 것이다. 얼굴 옆에서 특정 손동작을 하거나, 고개를 천천히 옆으로 돌려보라고 요청하는 식이다.

둘째, 대화 초반부터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같은 메신저로 옮기자고 제안하는 상대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 보호 장치에서 벗어나려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실제 만남 없이 돈이나 투자 이야기가 먼저 오가는지를 살피는 기본적인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유씨 사례와 박가인 사건 둘 다, 결국 돈 이야기가 위험 신호였다.

피해를 입었다면 신속하게 신고하는 것도 중요하다. 경찰청 사이버범죄 신고센터나 금융감독원에 즉시 신고하고,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나 계좌이체 내역 등 증거를 최대한 확보해 두는 것이 이후 피해 구제 절차에 도움이 된다.

검색과 영상통화라는 기존의 확인 절차는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 다만 그 확인 절차만으로 안전을 완전히 보장받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검증 수단
세 가지는?

박가인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여성이 딥페이크로 만든 얼굴로 100명이 넘는 사람들과 화상채팅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아무런 기술 없이도 1년 넘게 카카오톡 메시지만으로 1억6000만원을 뜯어낸 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실. 이 두 가지는 기술 발전과는 별개로 사람 사이의 신뢰를 확인하는 일이 얼마나 근본적으로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이와는 별개로, 검색 결과 몇 줄과 SNS 사진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데서 오는 부정적 영향을 염려하는 이들 역시 늘었다. 직접 만나서 대화해 본 상대가 아닌데도, 몇 줄 글과 사진으로 편견과 선입견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younm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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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현실판 차무식’ 사기극 전말

[단독] ‘현실판 차무식’ 사기극 전말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필리핀 골프장 투자 사기에 연루된 정종수씨가 1심 재판에서 패소했다. 필리핀 법원은 정씨가 한국인 투자자들을 삭제하고 필리핀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제이비 크레스타(이하, JBC)의 일반정보보고서(GIS)를 무효로 판단했다. 정씨는 한화 약 150억원을 투자한 최대주주의 지분 탈취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인 사업가 정씨를 둘러싼 필리핀 골프장 투자 분쟁이 현지 법원의 주주 지위 회복 판결로 전환점을 맞았다. 한국인 투자자 6명은 2019년 JBC 등에 총 104억원을 투자하고 회사 지분 63.98%를 확보했다. 투자자 측은 “계약에 따라 2024년 8월29일 지분을 배정받고 투자금을 입금해 JBC의 법적·실질적 최대주주가 됐다”고 설명했다. 필리핀 카르텔 JBC는 필리핀 클락에 위치한 스카이블루 골프 앤 리조트(이하, 스카이블루)를 자회사로 두고 있었다. 현지인과 친인척 관계를 맺으며 필리핀에서 장기간 활동한 정씨는 ‘현지 국회의원 등 4명을 스카이블루 이사로 등재해 골프장 매각을 성사시키겠다’는 조건으로 JBC와 자회사인 스카이블루의 경영권을 요구했다. 투자자들은 정씨가 현지 인맥을 활용해 골프장 사업을 정상화하고 매각까지 성사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2024년 11월20일 정씨는 JBC의 주주와 이사진을 대거 교체하고 투자자들의 지분을 주주명부에서 삭제했다. 투자자 측은 이 과정에서 적법한 주주총회와 이사회 절차 없이 문서가 위조되고 경영권과 지분이 넘어갔다며 정씨 측의 행위를 사기·배임·문서위조 등으로 문제 삼고 있다. 이번 판결은 정씨의 사기나 문서위조 등 형사책임을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JBC의 주주 및 이사·임원 지위와 2024년 8월29일 이후 이뤄진 지배구조 변경의 적법성이 쟁점이다. 필리핀 앙헬레스시 지방법원 제60지원은 지난달 28일 함모씨 등 6명의 주주들을 대표하는 안창현씨와 부민호씨가 정씨와 현지인 등을 상대로 제기한 회사 임원 권원 및 회사 행위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JBC의 적법한 주주라고 선언했다. 함씨를 비롯해 2024년 8월29일 자 GIS에 기재된 이사·임원들을 새로운 경영진이 적법하게 선출될 때까지 원상 복구하고, 당시 GIS에 기재된 주주들의 지위도 함께 회복하라고 판결했다. 이어 법원은 정씨가 제출한 JBC의 GIS를 모두 무효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정씨의 측근 크리스티나 송미 리, 줄리 앤 벨트란, 세스난다 빌라파냐, 스테파니 러브 타데오, 리코 안젤로 정, 디오네 오호일란 안토니야 등 6명은 JBC의 적법한 주주 및 이사·임원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세스난다 빌라파냐는 정씨의 아내, 스테파니 러브 타데오는 며느리, 리코 안젤로 정은 손자로 알려졌다. 2024년 8월29일 후 JBC 일반정보보고서 모두 무효 자기주식 75% 흡수한 정종수 라인⋯통지도 안 했다 정씨는 이번 소송의 피고지만 판결 주문에서 적법하지 않은 주주·이사·임원으로 특정된 6명의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정씨가 불법 주주나 임원으로 판결받은 것은 아니다. 앞서 <일요시사>는 지난 1월 ‘카지노 차무식 현실판 사기극(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4030)’ 기사를 통해 한국인 투자자들의 JBC 지분과 자회사 스카이블루의 경영권 및 핵심 자산이 정씨 측에 넘어갔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한국인 투자자들은 2019년 JBC 등에 100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이어 스카이블루 증자 등을 명목으로 송금한 약 47억원까지 합하면 피해를 호소하는 투자금은 150억원대에 이른다. 투자자들은 JBC 지분 63.98%를 보유한 최대주주였지만 2024년 11월20일 자 GIS에서 자신들의 이름이 통째로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원고들은 2024년 8월29일부터 11월14일까지 GIS에 ‘JBC 주주’로 기재돼있었다. 여기에 함씨는 1500주, 백씨와 김씨는 각각 500주, 한강라이프는 499주, 유씨는 100주를 보유한 것으로 신고됐다. 원고 측 대표자 부민호씨도 최종적으로 100주를 보유한 주주로 기재돼있었다. 그러나 불과 엿새 뒤인 11월20일 제출된 GIS에서 이들의 이름은 정씨에 의해 모두 사라졌다. 원고들은 자신들이 주주 및 임원 지위에서 배제되는 과정과 관련된 회의에 관해 아무런 통지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 역시 피고 측이 기존 주주들에게 회의 개최 사실을 적법하게 통지했다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새 경영진의 선출 시점을 둘러싼 모순도 확인됐다. 정씨 측은 2024년 12월2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새 이사와 임원들이 적법하게 선출됐다고 주장했으나,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인 그해 11월20일 자 GIS에 이미 회사 임원으로 기재돼있었다. 고지도 절차도 스테파니 러브 타데오는 12월2일 재무 담당 임원으로 선출됐다고 주장했지만 그보다 앞서 기존 주주들의 지분과 회사 장부를 조사하는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타데오는 11월12일 카르멜로 라사틴 주니어로부터 주식 1주를 매입했다고 주장했다. 기존 한국인 주주들을 배제하기 위한 실사가 이뤄지기도 전이었다. 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직접 확인한 핵심은 기존 한국인 투자자들이 적법한 주주였으며, 이들의 지분을 연체 주식으로 처리해 다른 사람들에게 넘겼다는 피고 측 주장을 뒷받침할 적법한 절차와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2024년 11월20일 자 GIS에는 JBC가 자기 회사의 보통주 3751주를 보유한 것으로 기재됐다. 전체 발행주식의 약 75%에 해당하는 규모다. 회사가 자기주식을 취득하려면 법이 정한 사유와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해당 GIS에는 이 주식이 어떤 경위로 회사 명의가 됐는지 나타나지 않는다. 주식의 성격도 자기주식이 아닌 일반 보통주로 표시됐다. 이후 회사 측 설명은 달라졌다. 2024년 12월2일 회의록에는 당초 자기주식으로 분류됐던 3752주를 기존 주주들이 청약대금을 납입하지 않은 연체 주식으로 정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피고 측은 기존 주주들이 청약대금을 완납하지 않아 해당 주식이 연체 상태가 됐고 이후 신규 주주들에게 적법하게 매각됐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필리핀 개정회사법에 따라 연체 주식을 처분하려면 해당 주주에게 개별적으로 통지하고 일반 유통 신문에 2주 연속 매각 사실을 공고한 뒤 공개경매 절차도 거쳐야 한다. 연체 주식 지정을 위한 이사회 결의뿐 아니라 기존 주주에 대한 통지, 매각 공고와 신문 게재, 공개경매, 실제 매각을 입증할 자료가 확인되지 않았다. 다른 회사 장부 제출 신규 주주들이 주식 대금을 실제 지급했다는 계약서와 영수증, 세금 납부 자료 역시 제출되지 않았다. 주식은 정씨 측근들에게 분산됐다. 2024년 12월21일 자 GIS에는 타데오가 1378주를 보유한 대주주로 등장했다. 카트리나 블랑카 데 레온과 아이리시 칼라구아스는 각각 550주, 이경희와 박재관은 각각 375주, 최민승은 375주를 보유한 것으로 기재됐다. 이성진과 손봉준에게도 각각 75주가 배정됐다. 재판부는 이들이 취득했다는 주식의 성격과 실제 취득 경위를 확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 과정에선 피고 측이 핵심 증거로 제출한 주주·주식양도 대장의 진위도 도마 위에 올랐다. 피고 측은 기존 한국인 투자자들이 JBC의 주주가 아니라는 근거로 주주·주식양도 대장 일부를 제출했다. 해당 장부에 원고들의 이름이 없기 때문에 이들을 JBC 주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였다. 법원이 문서를 확인한 결과 증거로 제출한 자료는 JBC의 장부가 아닌 스카이블루의 회사명이 기재돼있었고 원본대조필 표시 역시 모회사 JBC가 아닌 스카이블루 명의로 돼있었다. 타데오도 반대신문 과정에서 해당 문서가 JBC가 아닌 스카이블루의 주주명부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투자자 함씨와 김씨는 2022년 정씨와 체결한 양해각서에 따라 스카이블루의 증자에 참여하기로 하고 약 47억원을 송금했다고 주장한다. 투자금 일부는 스카이블루 법인 계좌로 송금됐고 일부는 골프장 카트 구매비 명목으로 정씨가 지정한 한국 계좌에 입금됐다는 게 투자자 측 설명이다. 장부라며 낸 증거, 알고 보니 스카이블루 주주명부 코레이트자산운용 별도 재판⋯뒤집힌 지배구조 쟁점 함씨와 김씨는 2년이 넘도록 증자 절차가 등록되지 않았고 자신들의 지분도 필리핀 SEC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작성된 주주명부에도 함씨와 김씨의 이름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투자자 측은 투자금을 받고도 약속한 지분을 발행하지 않은 행위가 사기와 배임 등에 해당할 수 있다며 형사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허위 내용이 포함된 GIS를 고의로 인증하거나 제출한 사실이 입증될 경우 필리핀 개정회사법 제162조의 허위·부정확 보고서 인증 규정이 문제될 수 있다. 지분을 탈취했다는 의혹을 받는 정씨는 스카이블루 매각을 최대주주 동의 없이 진행하기도 했다. 투자자 측은 스카이블루 주요 자산을 처분하려면 회사 주주 3분의 2 이상의 특별결의와 스카이블루 지분 99.9%를 보유한 모회사 JBC의 적법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매각 상대방으로는 한국토지신탁 자회사인 코레이트자산운용 측이 거론됐다. 골프장 관련 공사에는 포스코더샵 아파트 건설에도 참여한 다원이 시공사로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판결이 스카이블루의 자산매각 자체를 무효로 판단한 것은 아니다. 해당 매각의 적법성은 별도로 제기된 탈락(Tarlac) 특별상업재판소 사건에서 심리되고 있다. 다만 이번 판결로 2024년 8월29일 이후 JBC의 GIS와 지배구조 변경이 무효로 판단된 만큼, 적법하지 않은 JBC 지배구조를 토대로 스카이블루의 매각 승인권이 행사됐는지가 별도 재판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특히, 스카이블루 골프장 부지는 필리핀 국유지와 관련돼있어 기지전환개발청(BCDA)의 승인이나 동의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별도 사건에서 다뤄질 쟁점이다. 2025년 10월 매각 절차가 BCDA의 승인 아래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승인 절차의 미비만으로 거래가 당연히 무효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현재 별도 가처분 사건에는 BCDA도 피고로 포함돼있다. 골프장 매각 따로 재판 이번 판결이 정씨에 대한 형사 유죄판결은 아니다. 그러나 법원이 한국인 투자자들을 JBC의 적법한 주주로 인정하고 2024년 8월29일 이후 제출된 GIS를 모두 무효화하면서, 기존 투자자들이 적법한 절차 없이 회사 지배구조에서 배제됐다는 주장은 상당 부분 힘을 얻게 됐다. 150억원대 투자금과 골프장 자산을 둘러싸고 시작된 이른바 ‘현실판 카지노 차무식’ 사건은 이제 JBC 지배구조 복원과 스카이블루 자산매각의 적법성, 관련자들의 형사책임을 가리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