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멋진 이성이 SNS에서 당신에게 메시지를 보낼 확률은?” “외국인 여자친구의 달콤한 코인 투자 권유 ☞ 100% 사기입니다!” 한때 밈으로 떠돌던, 실제 금융감독원이 배포했던 보도자료 제목이다. 썸을 타기 전부터 SNS에서 이름을 검색하는 등 이성을 ‘뒷조사’하는 게 당연하다는 요즘. 마음 쓰기 전에 머리부터 써야 안심이라는 부담감이 평범한 연애를 위축시키고 있다.
#1. 지난달 24일, 대구지검 안동지청은 29세 유모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유씨는 2024년 6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1년4개월간 카카오톡으로 피해자에게 “사랑한다” “보고 싶다” 등 메시지를 보내며 실제 연인처럼 연락했다.
‘박가인’
가짜였다
그사이 759차례에 걸쳐 피해자에게서 뜯어낸 돈은 1억6000만원. 유씨와 피해자는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카카오톡으로만 대화했을 뿐, 단 한 번도 직접 만나지 않았다.
유씨는 자신이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 금융기관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그러고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세금 문제가 생겼다”며 몇십만원 단위 소액을 빌려달라며 반복해 부탁했다. 일부는 갚기도 하면서 신뢰를 쌓았다. 유씨는 이렇게 뜯어낸 돈을 대부분 도박 자금으로 쓴 것으로 파악됐다.
#2. 지난 1월,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한국인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 조직 총책 부부가 강제 송환돼 울산경찰청에 구속 송치됐다. 이 조직은 2024년 1월부터 2025년 2월까지 가상의 여성 ‘박가인’을 만들어 남성들에게 접근했다.
조직은 타인의 SNS 사진을 도용해 딥페이크 기술로 얼굴을 합성한 유튜브 영상을 만들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실제 화상채팅까지 진행하며 피해자의 의심을 지웠다. 매일 대화하며 호감을 쌓은 뒤 가짜 주식과 가상자산에 투자하도록 유도했다.
피해자 한명 한명을 상대하기 위해 10일 분량의 대화 시나리오도 미리 짜뒀다. 언제쯤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어느 시점에 투자 이야기를 꺼낼지까지 미리 정해두고 움직였다. 실존하는 해외 금융회사 이름을 도용한 가짜 투자 사이트와 앱까지 만들었다. 피해자가 실제로 수익이 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확인된 피해자만 104명, 피해 금액은 약 120억원에 달했다. 조직은 캄보디아 현지 건물을 통째로 매입해 대포폰과 컴퓨터를 갖춘 사무실을 차렸다. 실행팀과 자금 세탁팀, 콜센터 등으로 역할을 나눈 채, 실제 ‘기업’처럼 운영했다. 총책 부부는 수사망을 피하고자 눈·코 성형수술까지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위 두 사건은 사기 기술로만 보자면 언뜻 다른 층위에 있는 듯하다. 한쪽은 정교한 기술 없이도 개인이 카카오톡 메시지만으로 1년 넘게 관계를 유지했다. 다른 한쪽은 수사기관조차 초기 대응에 애를 먹을 만큼 까다로운, AI 기술까지 동원한 기업형 범죄였다. 반면, 두 사건 결과는 유사했다. 피해자들은 일면식도 없는 상대가 진짜라고 믿으며 사랑을 키우고 돈을 잃었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 웹이나 앱을 통해 상대방 이름부터 검색하는 일이 더 이상 유난스럽게 여겨지지 않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상생활에서 이성을 만날 기회가 부쩍 적어졌다는 이유로, 데이팅 앱이 한창 성행하기 시작했다.
1932년 미국 사회학자 제임스 보사드는 필라델피아 혼인신고서 5000건을 분석했다. 그는 커플의 3분의 1이 결혼 전에 서로 5블록 이내에 거주했으며, 거리가 멀어질수록 결혼 확률이 급격히 감소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외국인 여친의 치명적 달콤함
코인 투자 권유는 100% 사기
그는 거리가 가까울수록 결혼할 확률이 높다는, 이른바 ‘근접성 효과(propinquity effect)’를 처음 통계로 보여줬다. 빈번한 만남은 익숙한 유대를 형성하기에 유리하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검증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데이팅 앱에서는 이런 이론이 먹혀들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 연애를 시작하는 이들은 ‘온라인 블록’에 이성을 집어넣는 방식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X(엑스)는 이제 오히려 ‘전통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큼 일상화됐다. 열거한 채널에서 누군가의 이름 혹은 연락처를 검색하는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다. 이제는 블라인드나 링크드인 등 직장인 앱으로까지 ‘온라인 블록’이 확장하고 있다.
기업이 인수합병(M&A), 투자, 부동산 거래 등을 진행할 때 매수 상대방이나 투자 대상의 재무 상태, 법적 위험, 영업 활동 등을 사전에 철저하게 조사하고 검토하는 기업 실사를 ‘듀 딜리전스(Due Diligence)’라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연애에서도 상대를 만나기 전에 미리 온라인에서 검색부터 해보는 것을 ‘듀 딜리전스 데이팅(Due Deligence Dationg)’이라 부른다.
이렇듯 썸을 시작하기도 전에 ‘온라인 신원조회’부터 하며 몸을 사리는 이들이 많아졌지만, 로맨스 스캠은 해를 거듭할수록 보다 정교해지고 있다.
로맨스 스캠이 돈을 노리는 다른 사기와 구별되는 지점은 관계 형성에 특별한 공을 들인다는 데 있다. 한남대학교 경찰학과 박미랑 교수와 김소연 연구자가 판결문을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로맨스 스캠은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길들이는 이른바 ‘그루밍(grooming)’을 바탕으로 시작한다.
가해자는 외로움을 유독 많이 느끼는 사람을 범죄 대상으로 판단하고, 그 감정을 파고든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유씨 사례에서 보듯, 사기범은 매일 안부를 묻고 애정 표현을 반복하며 이런 심리적 길들이기 과정을 밟아 나간다.
소액을 반복해서 요청하는 방식도 계산된 전략에 가깝다. 한번에 큰돈을 요구하면 경계심이 발동하지만, 몇만원에서 몇십만원 단위로 여러번 나눠 요청하면 심리적 저항이 낮아진다.
게다가 유씨는 일부를 갚는 척하며 신뢰를 쌓았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믿을 만하다는 확신을 스스로 강화하게 된다. 국내 로맨스 스캠 상담 피해자 상당수가 처음에는 소액 요청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1년 넘게
본 적 없다
‘박가인’ 사건처럼 조직적인 스캠의 경우 이 심리적 설계가 훨씬 더 정밀하다. 이들은 치밀하게 미리 짜둔 대화 시나리오도 가지고 있었다. 피해자가 어느 시점에 무엇을 궁금해하고, 어떤 감정을 느낄지까지 예측해 대응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딥페이크로 만든 얼굴과 목소리까지 더해지면, 피해자가 상대를 의심할 근거는 거의 남지 않는다.
로맨스 스캠 피해가 유독 구제받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법 적용의 사각지대에 있다. 로맨스 스캠은 보이스피싱에 적용되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이 법은 재화나 용역의 공급을 가장한 행위를 전기통신금융사기로 보지 않기 때문에, 은행 계좌 지급정지 같은 즉각적인 구제 조치를 받기가 원칙적으로 어렵다.
이 공백은 실제 피해자들의 상황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울산지역 매체 보도에 따르면, 박가인 사건 관련 조직원들이 잇따라 검거·송환돼 처벌받고 있는 것과 별개로, 피해자들의 실질적 피해 회복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범죄자들의 은닉 재산을 추적해 피해금을 환수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뚜렷한 진척은 없는 상태다. 피해자들은 계좌 수사 진행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서에 직접 찾아가야 하는 처지다.
경찰은 로맨스 스캠 피해를 별도로 집계하고 있다. 집계를 시작한 2024년 2월 이후 1년8개월 동안 2830건이 신고됐고, 피해액은 1675억원에 달했다. 피해 규모는 계속 커지는데, 이를 뒷받침할 법적 구제 장치는 여전히 보이스피싱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 로맨스 스캠이 주로 데이팅 앱이나 SNS 메시지를 통해 이뤄졌다면, 최근에는 접근 경로 자체가 훨씬 다양해지고 일상적으로 바뀌었다.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댓글을 달거나, 블로그·브런치 같은 글쓰기 플랫폼 댓글 창에 “따로 연락하고 싶다”며 연락처를 남기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작가님, 저는 처음 뵙는데 따뜻한 글을 볼 수 있어 너무 기쁩니다.” 40대 여성 A씨는, 자신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에 달린 댓글이 처음에는 반가웠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A씨 글에 계속 댓글을 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구제받기
어려운 이유
“저는 대구 출신 김○○입니다. 현재 싱가포르에 거주하며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남자는(실제로는 성별조차 진실인지 알 수 없다), “카카오톡으로 더 자주 소통하면 어떨까요?”라고 적으며 아이디를 밝혀왔다. A씨는 단박에 그가 사기꾼임을 알아차렸다고 했다.
“처음에는 제 글이 좋아서 댓글을 쓰는 줄 알고 정말 기분이 좋았는데, 자꾸 카카오톡으로 얘기하자고 하니, ‘아, 이게 말로만 듣던 그 로맨스 스캠이구나’ 싶더라고요.” A씨는 브런치 앱에서 해당 댓글에 ‘신고’를 눌렀다.
이런 접근은 데이팅 앱보다 경계심을 낮춘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데이팅 앱 이용자는 애초에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을 전제하고 접속한다. 따라서 어느 정도 경계심을 가진 채 만남을 잇는다.
반면 자신이 온라인상에 게재한 일상적인 게시물에 댓글을 남기는 사람은, 마치 관심사나 취향이 통해 다가온 것처럼 느껴지기 쉽다.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계정은 상대방의 게시물에 진지한 반응을 남긴다. 공통 관심사가 있는 것처럼 신뢰를 먼저 쌓은 뒤에야 개인 연락처 혹은 카카오톡으로 유도하는 패턴을 보인다.
최근까지도 “사진이 의심스러우면 이미지 역검색을 해보라”거나 “영상통화로 실제 얼굴을 확인하라”는 조언이 통용됐다. 이미지 역검색은 사진을 업로드하거나 URL을 넣어, 원본 출처나 유사 이미지를 찾아주는 기능이다.
그러나 박가인 사건은, 이 같은 조언이 더 이상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증거로 작용한다. 도용한 SNS 사진에 딥페이크 기술로 얼굴을 합성해 유튜브 영상은 물론 실시간 화상채팅용 영상까지 만드는 수법이 확인되면서다.
요즘에는 사진뿐 아니라 영상통화도 조작할 수 있다. 실제 만남 없이 돈 이야기가 먼저 오간다면 영상통화 여부와 관계없이 의심할 것이 권고된다. 결국 “얼굴을 봤으니 안심”이라는 공식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시대가 된 셈이다.
로맨스 스캠 급증은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로맨스 스캠으로 인한 피해 신고는 5만5604건, 피해액은 11억6000만달러, 한화로 약 1조6000억원에 달했다. 신고자 1인당 중간값 피해액은 2218달러였다.
멋진 남성이 내게 SNS 메시지를?
전문직이 부를 과시하면 의심부터
해외에서도 AI와 딥페이크가 동일한 방식으로 문제를 키우고 있다. 사기범들이 AI로 생성한 얼굴 사진을 사용하면서, 예전에는 유효했던 이미지 역검색으로도 원본을 찾아낼 수 없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실시간 딥페이크 필터를 적용해 영상통화 화면 속 얼굴을 조작하는 사례까지 보고됐다.
맥아피(McAfee)가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호주·인도 등 7개국 성인 7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년 밸런타인데이 리서치에 따르면, 4명 중 1명(25%)이 가짜 프로필이나 AI 생성 봇을 마주친 적 있다고 답했다. 35%는 데이팅·소셜 앱에서 AI로 생성되거나 조작된 사진을 발견한 적 있다고 했다. 또 53%는 돈이나 금융 정보를 요구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QR코드·링크 통한 유도 포함).
이렇듯 검증 수단이 예전만큼 확실하지 않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화면 속 상대에게 AI 필터가 실시간으로 따라 하기 어려운 행동을 요청해 보는 것이다. 얼굴 옆에서 특정 손동작을 하거나, 고개를 천천히 옆으로 돌려보라고 요청하는 식이다.
둘째, 대화 초반부터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같은 메신저로 옮기자고 제안하는 상대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 보호 장치에서 벗어나려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실제 만남 없이 돈이나 투자 이야기가 먼저 오가는지를 살피는 기본적인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유씨 사례와 박가인 사건 둘 다, 결국 돈 이야기가 위험 신호였다.
피해를 입었다면 신속하게 신고하는 것도 중요하다. 경찰청 사이버범죄 신고센터나 금융감독원에 즉시 신고하고,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나 계좌이체 내역 등 증거를 최대한 확보해 두는 것이 이후 피해 구제 절차에 도움이 된다.
검색과 영상통화라는 기존의 확인 절차는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 다만 그 확인 절차만으로 안전을 완전히 보장받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검증 수단
세 가지는?
박가인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여성이 딥페이크로 만든 얼굴로 100명이 넘는 사람들과 화상채팅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아무런 기술 없이도 1년 넘게 카카오톡 메시지만으로 1억6000만원을 뜯어낸 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실. 이 두 가지는 기술 발전과는 별개로 사람 사이의 신뢰를 확인하는 일이 얼마나 근본적으로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이와는 별개로, 검색 결과 몇 줄과 SNS 사진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데서 오는 부정적 영향을 염려하는 이들 역시 늘었다. 직접 만나서 대화해 본 상대가 아닌데도, 몇 줄 글과 사진으로 편견과 선입견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