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는 ‘놀부’ 이야기

  • 조유담 기자 ydcho@ilyosisa.co.kr
  • 등록 2026.08.20 11:26:08
  • 호수 15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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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몰락한 5평 창업 신화

[일요시사 취재1팀] 조유담 기자 = 1987년 5평 매장에서 출발해 국내 최대 수준의 한식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던 ‘놀부’가 누적 결손금 959억원, 자본 잠식률 82%를 기록하며 결국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사모펀드 인수 이후 주인이 두 차례 바뀌며 단기 외형 성장을 위해 브랜드를 최대 35개까지 무리하게 늘렸으나, 대다수 안착에 실패하고 본업의 경쟁력까지 상실한 결과다. 이달 말 결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회생절차 개시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회생법원은 놀부에 대한 첫 번째 심문기일에 대표자 심문을 통한 구체적 채무 규모 등을 확인했다. 김용위 대표는 심문을 마친 후 “외식시장이 다 어려운 상황”이라며 “경기는 안 좋은데 인건비와 식자재비가 오르면서 가맹점 폐점률이 높아졌다”고 회생 신청의 배경을 설명했다.

‘골목집’
보쌈 식당

놀부는 지난 4일 포괄적 금지명령이 내려진 상태다. 포괄적 금지명령은 회생절차 개시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회사가 법원 허가 없이 재산 처분 또는 채무 변제를 금지하는 조치다. 채권자의 가압류 및 가처분, 강제집행도 제한된다.

김 대표는 조만간 2차 대표자 심문이 열릴 예정이라고 전했으며, 재판부는 심문 내용을 바탕으로 이달 말 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놀부가 회생절차의 갈림길에 선 데에는 지속적인 매출 감소와 부채가 있었다. 지난 2025년 매출액은 639억원으로 761억원이었던 지난 2024년에 비해 약 16% 감소했다. 영업손실은 6억원에서 87억원으로 불어나며 당기순손실도 직전 해의 8.9배인 139억2866만원에 달했다.

지난 2025년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5억5479만원에 불과했으나 누적 결손금은 959억원, 자본 잠식률은 82%에 달했다.

반면 단기차입금 70억1300만원과 유동성장기부채 71억1667만원 등이 포함된 유동부채는 208억6197만원에 달했다. 지난 2025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1년 안에 만기가 도래하는 금융 부채는 약 206억원이다. 회생 신청 5개월 전인 지난 2월에도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에서 25억원을 추가 차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놀부는 1987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골목집’이라는 이름의 5평짜리 작은 보쌈 식당에서 출발해 ‘창업 신화’로 불려왔다.

아내 김순진 대표의 뚝심 있는 현장 경영, 남편 오진권 대표의 탁월한 기획력이 시너지를 낸 것으로 전해지며 표준화가 어렵다고 여겨졌던 한식을 프랜차이즈화한 부부 창업 신화로 각광받았다. ‘보쌈 전문점’으로 시작해 1989년 첫 보쌈 가맹점을 출점한 후 ‘놀부 부대찌개’를 론칭해 프랜차이즈 메뉴로 대중화했다.

2000년대 초반 이혼 후에는 아내였던 김순진 대표가 경영권을 단독으로 쥐게 됐다. 남편이었던 오진권 대표가 순대·보쌈 프랜차이즈를 새로 시작하자, 아내 측과 본사는 이혼 당시 맺었던 ‘동종 아이템 사업 불가 조항’을 근거로 영업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오 대표 패소로 가맹점에 약 50억원의 손해배상을 하게 됐으며, 이후 ‘오셰프’ ‘이야기 있는 외식공간’ 등을 설립하며 독자적인 외식 사업가로 나섰다.

1200억 매출서 208억 마이너스
주인 바뀔 때마다 흔들린 40년

김순진 단독 대표 체제 이후 브랜드는 점포 수 2배, 매출 3배의 성장을 기록하며 외식업계 대표 여성 CEO로 떠올랐다. 2001년 230억원이던 매출이 2010년 1113억원으로 3배 이상 늘었고, 영업이익도 18억원에서 80억원으로 4배 성장했다. 그러나 장기적인 승계 구도 확립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외동딸을 부사장으로 앉히며 2세 경영 체제를 시도했으나, 취임 후 론칭한 신규 브랜드들이 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놀부는 약 40년에 걸쳐 회사의 주인이 두 차례 바뀌며 매출 하락의 길을 걸어왔다. 지난 2011년 김 대표의 지분 전량을 넘겼고, 사모펀드인 모건스탠리 프라이빗에쿼티(모건스탠리PE)가 회사를 인수했다. 모건스탠리PE가 인수할 당시 놀부는 6개 브랜드와 700여개 매장을 보유한 국내 최대 수준의 한식 프랜차이즈로, 인수 금액은 1114억원~12000억원 수준에 달했다. 2010년 매출은 1113억원, 영업이익은 80억원 수준이었다.

첫 인수자였던 모건스탠리PE는 회사 자산가치의 4~6배에 달하는 고가 인수를 진행했다. 본사의 직접 운영이 아닌 브랜드 사용료와 식자재 공급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남길 수 있는 놀부NBG의 사업 구조를 높게 산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본사에 1200억원 규모의 영업권과 인수 금융 대출 부담을 떠안기는 레버리지 인수 구조(LBO)로, 놀부의 현금 유동성을 고갈시키기 시작했다.

인수 직후 모건스탠리PE는 빠른 수익 회수를 위해 기존의 보쌈과 부대찌개 중심 사업에서 벗어나 다양한 브랜드를 추가하며 무리한 확장에 나섰다. 갈비·설렁탕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 놀부 김치찜, 삼겹 본능, 흥부 찜닭, 공수간 등으로 메뉴를 확대했다.

보쌈·부대찌개와 전혀 관련이 없는 커피 브랜드로까지 영역을 넓혔다. 한 매장에서 여러 브랜드를 운영하는 ‘숍인숍’ 모델과 공유 주방 형태의 ‘놀부 주방’도 선보였다.

브랜드 수는 지난 2020년까지 13개, 지난 2021년 말 기준 가맹점 및 직영점은 500여개로 확대됐다. 하지만 브랜드가 늘어난 만큼 성과가 따라오지는 못하며 지난 2017년부터 2022년까지 6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2018년 867억원이었던 매출은 3년 만에 403억원 수준까지 급감했다.

지난 2022년 모건스탠리PE는 자본 잠식률 88%, 운영 브랜드는 35개까지 늘어난 상태로 보유 지분의 57%를 투자목적특수회사 NB홀딩스 컨소시엄에 넘기고 2대 주주로 물러났다.

거래 규모는 모건스탠리PE 인수 당시와 비교하면 약 5분의 1 수준인 약 2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NB홀딩스 컨소시엄은 유상 증자를 통한 약 2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놀부는 당시 신메뉴 개발, 배달 전문 브랜드 강화, 가맹점과의 상생 등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팬데믹부터
내리막길

당시 놀부 담당자는 “최근 프랜차이즈 산업 환경이 빠르게 바뀌는 동시에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겹치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번 대규모 투자 유치를 통해 종합 외식 전문 기업의 위상을 되찾고, 고객 수요와 트렌드를 앞서갈 수 있는 메뉴·서비스 개발 및 가맹점과 상생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놀부는 지난 2023년 매출 674억원, 영업이익 11억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했다. 정보공개서에는 가맹사업뿐 아니라 유통사업도 병행하고 있었으며, 본사 매출에는 가맹점에 공급하는 식자재 매출과 유통사업 매출 등이 포함된다고 명시됐다. 쌀·소스 등의 유통을 통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겠다는 전략이었다.

지난 2024년 대주주인 NB홀딩스 컨소시엄은 기존 박현우 대표이사 체제에서 김용위 대표이사 체제로 경영진을 교체하며 대대적인 인적 쇄신과 경영 정상화를 도모했다. 김 대표는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 과정에 참여해 전속 사진가 및 영상미디어 국장, 캠프 미디어 총괄팀장 등을 맡았던 이력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경영진 교체 이후 지난 2024년에는 매출액이 전년보다 12.8% 증가한 761억2759만원을 기록했다. 다만 영업이익은 5억8848만원의 적자를 기록해 외형 성장과 수익성 개선이 함께 이뤄지지는 못했다.

가맹점 수도 급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거래 정보공개서에 따르면 전체 가맹점 수가 2022년 717개에서 2024년 344개로 급감했다. 핵심 브랜드인 놀부 부대찌개와 놀부 보쌈족발 가맹점은 지난 2022년 각각 246개, 134개에서 지난 2024년까지 156개, 63개로 급감했다.

가맹점 수 감소와 기존 핵심 브랜드 약화의 상황에서 본업인 프랜차이즈 경쟁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역량을 유통과 신규 사업에 분산시킨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며 흑자 전환 1년 만에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세종사이버대학교 외식창업프랜차이즈학과 교수이자 한국외식산업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어윤선 교수는 국내 가맹시장 전체는 오히려 성장세라는 점에 주목했다. 지금의 놀부 사태를 “오랜 기간 누적된 구조적 문제가 한꺼번에 드러난 결과”로 보며 “업계 전반이 위축된 것이 아니라, 1세대 브랜드들이 새로운 경쟁 브랜드들에 밀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트렌드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 것을 하나의 원인으로 꼽았다. “보쌈과 부대찌개라는 메뉴 자체는 여전히 수요가 있지만, 1인 가구 증가와 배달·간편식 확산, MZ세대 취향 변화 같은 외식 소비 패턴 변화에 맞춰 브랜드를 새롭게 포지셔닝하는 작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6년 정점
이후 하락세

배달 플랫폼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타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특별한 메뉴를 개발해 선보이는 것과 대비된 모습이다. 어 교수는 “브랜드가 오래될수록 ‘리포지셔닝’이 필수적인데, 놀부는 이 부분에서 시대에 뒤처졌다”고 봤다. 결국 특색 없이 배달 경쟁 뛰어들어 소비자들에게 ‘놀부를 소비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지 못한 셈이다.

외식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원자잿값과 인건비, 소비 심리 위축 외에도 배달의 민족, 쿠팡이츠 등 배달 플랫폼에 지급하는 중개수수료 부담이 상당하다. 소비자가 결제한 금액에서 40%~45%에 달하는 수수료를 배달 플랫폼에 지급해야 한다.

경쟁이 치열한 플랫폼에서 소비자의 눈에 띄기 위해서는 상위노출 등의 광고 진행도 필수적이다. 기본적인 광고비가 7%대인 것으로 안내하는 것과 달리, 각종 프로모션 비용까지 더해지면 광고비로 45%가량이 빠져나간다. 배달 플랫폼을 통한 주문이 늘어날수록 매출이 그대로 수익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다.

결국 놀부가 배달이라는 새로운 소비 방식에 대응하기 위해 선택한 전략이 오히려 비용 부담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졌을 수 있다.

어 교수는 소비 트렌드 대응 외에도 ‘부실한 가맹점 내실 관리’ 문제가 오랜 기간 누적된 것으로 봤다. “본업인 보쌈·부대찌개의 경쟁력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신규 브랜드를 계속 늘렸는데, 이는 본업 강화나 가맹점 수익성 개선보다 외형 확장 자체를 우선시한 결과로 해석된다”며 “자본 잠식률이 82%에 이른 것은 이런 부실이 오랫동안 누적됐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기준 놀부의 공정거래위원회 등록 브랜드는 다수의 브랜드를 보유한 것으로 잘 알려진 백종원 대표의 더본코리아보다 10개 이상 많았다. 모건스탠리PE가 인수한 지 5년 차였던 지난 2016년 역대 최고 매출액인 1200억원을 기록한 놀부는 잠시 회복세를 보였던 지난 2023년을 제외하면 지속적인 감소세를 이어왔다.

어 교수는 “신규 브랜드 확장이나 외형에 집중하는 사이, 개별 가맹점의 수익성이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투자와 지원은 상대적으로 소홀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커피 브랜드까지 ‘문어발 확장’
700개서 63개로 줄어든 가맹점

이어 “가맹사업은 본부와 가맹점이 함께 성장해야 지속 가능한데, 본부 중심의 외형 성장 전략은 결국 가맹점 이탈과 브랜드 신뢰 하락으로 이어진다”라며 “이러한 문제는 1세대 프랜차이즈 기업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 전했다.

원할머니보쌈을 운영하는 원앤원 또한 MZ세대 유입을 통한 고객 저변 확대를 위해 ‘배달 전용 메뉴 강화’와 ‘1인 메뉴 품질 고도화’로 경영 키워드 변화를 꾀했다.

지난 2021년 배달 특화 매장 확대로 가맹점 수가 반등해 최근 10년 중 가장 많은 328개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 2022년부터 3년간 매출이 정체되고 영업이익률이 3%대에 머무는 저수익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25년 외식업체 경영실태조사’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업체의 연평균 매출액은 3억3000만원으로, 2억3000만원인 비프랜차이즈 보다 약 1.5배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 5년 동안 매출액 격차는 7000만원에서 1억원 이상으로 더 벌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원재료 공동구매와 브랜드 마케팅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압도적인 매출 격차는 자영업자들로 하여금 프랜차이즈 개업을 선택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미 구축된 브랜드와 물류·교육·마케팅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있다. 그러나 본사의 경영 주체나 방식이 바뀌면 가맹점은 그 변화를 피하기 어렵다.

지난 2018년 기업회생신청을 했던 카페베네 역시 무리한 문어발식 확장으로 본업인 커피 사업의 경쟁력이 흔들린 사례로 꼽힌다. 카페베네는 커피 전문점으로 급성장하며 매장을 빠르게 늘리는 동시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블랙스미스’, 베이커리 ‘마인츠돔’, 헬스·뷰티 스토어 ‘디셈버24’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그러나 신사업 부진과 해외 사업 손실 등이 겹치면서 실적과 재무구조가 악화됐고, 재무적 투자자가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경영 정상화에 어려움을 겪은 카페베네는 결국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지난 2016년 한국공정거래조정원 조사에서는 카페베네의 가맹점 폐점률이 14.6%로 비교 대상 커피 프랜차이즈 가운데 가장 높게 나타났다. 문제는 사업 확장의 결과를 본사가 아니라 가맹점이 함께 감당해야 한다는 데 있다. 본사의 외형 성장보다 개별 가맹점의 수익성과 브랜드의 지속 가능성을 우선하는 경영 구조가 필요한 이유다.

결국 놀부의 회생절차 신청은 한 기업의 경영 실패에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는 더 이상 익숙한 이름만으로 외식 브랜드를 선택하지 않는다. 1인 가구와 배달·간편식의 확산, 가성비와 취향을 중시하는 소비가 자리 잡으면서 오래된 브랜드에도 고유의 정체성과 함께 끊임없는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회생 절차
갈림길

특히 1세대 프랜차이즈는 과거의 인지도에 기대기보다 기존 브랜드의 강점을 현재의 소비 방식에 맞게 재해석하고 투자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프랜차이즈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브랜드와 매장을 거느렸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가맹점과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놀부의 위기는 40년 역사의 브랜드가 과거의 명성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본사의 경영 판단이 가맹점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프랜차이즈 산업의 숙제를 다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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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현실판 차무식’ 사기극 전말

[단독] ‘현실판 차무식’ 사기극 전말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필리핀 골프장 투자 사기에 연루된 정종수씨가 1심 재판에서 패소했다. 필리핀 법원은 정씨가 한국인 투자자들을 삭제하고 필리핀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제이비 크레스타(이하, JBC)의 일반정보보고서(GIS)를 무효로 판단했다. 정씨는 한화 약 150억원을 투자한 최대주주의 지분 탈취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인 사업가 정씨를 둘러싼 필리핀 골프장 투자 분쟁이 현지 법원의 주주 지위 회복 판결로 전환점을 맞았다. 한국인 투자자 6명은 2019년 JBC 등에 총 104억원을 투자하고 회사 지분 63.98%를 확보했다. 투자자 측은 “계약에 따라 2024년 8월29일 지분을 배정받고 투자금을 입금해 JBC의 법적·실질적 최대주주가 됐다”고 설명했다. 필리핀 카르텔 JBC는 필리핀 클락에 위치한 스카이블루 골프 앤 리조트(이하, 스카이블루)를 자회사로 두고 있었다. 현지인과 친인척 관계를 맺으며 필리핀에서 장기간 활동한 정씨는 ‘현지 국회의원 등 4명을 스카이블루 이사로 등재해 골프장 매각을 성사시키겠다’는 조건으로 JBC와 자회사인 스카이블루의 경영권을 요구했다. 투자자들은 정씨가 현지 인맥을 활용해 골프장 사업을 정상화하고 매각까지 성사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2024년 11월20일 정씨는 JBC의 주주와 이사진을 대거 교체하고 투자자들의 지분을 주주명부에서 삭제했다. 투자자 측은 이 과정에서 적법한 주주총회와 이사회 절차 없이 문서가 위조되고 경영권과 지분이 넘어갔다며 정씨 측의 행위를 사기·배임·문서위조 등으로 문제 삼고 있다. 이번 판결은 정씨의 사기나 문서위조 등 형사책임을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JBC의 주주 및 이사·임원 지위와 2024년 8월29일 이후 이뤄진 지배구조 변경의 적법성이 쟁점이다. 필리핀 앙헬레스시 지방법원 제60지원은 지난달 28일 함모씨 등 6명의 주주들을 대표하는 안창현씨와 부민호씨가 정씨와 현지인 등을 상대로 제기한 회사 임원 권원 및 회사 행위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JBC의 적법한 주주라고 선언했다. 함씨를 비롯해 2024년 8월29일 자 GIS에 기재된 이사·임원들을 새로운 경영진이 적법하게 선출될 때까지 원상 복구하고, 당시 GIS에 기재된 주주들의 지위도 함께 회복하라고 판결했다. 이어 법원은 정씨가 제출한 JBC의 GIS를 모두 무효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정씨의 측근 크리스티나 송미 리, 줄리 앤 벨트란, 세스난다 빌라파냐, 스테파니 러브 타데오, 리코 안젤로 정, 디오네 오호일란 안토니야 등 6명은 JBC의 적법한 주주 및 이사·임원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세스난다 빌라파냐는 정씨의 아내, 스테파니 러브 타데오는 며느리, 리코 안젤로 정은 손자로 알려졌다. 2024년 8월29일 후 JBC 일반정보보고서 모두 무효 자기주식 75% 흡수한 정종수 라인⋯통지도 안 했다 정씨는 이번 소송의 피고지만 판결 주문에서 적법하지 않은 주주·이사·임원으로 특정된 6명의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정씨가 불법 주주나 임원으로 판결받은 것은 아니다. 앞서 <일요시사>는 지난 1월 ‘카지노 차무식 현실판 사기극(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4030)’ 기사를 통해 한국인 투자자들의 JBC 지분과 자회사 스카이블루의 경영권 및 핵심 자산이 정씨 측에 넘어갔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한국인 투자자들은 2019년 JBC 등에 100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이어 스카이블루 증자 등을 명목으로 송금한 약 47억원까지 합하면 피해를 호소하는 투자금은 150억원대에 이른다. 투자자들은 JBC 지분 63.98%를 보유한 최대주주였지만 2024년 11월20일 자 GIS에서 자신들의 이름이 통째로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원고들은 2024년 8월29일부터 11월14일까지 GIS에 ‘JBC 주주’로 기재돼있었다. 여기에 함씨는 1500주, 백씨와 김씨는 각각 500주, 한강라이프는 499주, 유씨는 100주를 보유한 것으로 신고됐다. 원고 측 대표자 부민호씨도 최종적으로 100주를 보유한 주주로 기재돼있었다. 그러나 불과 엿새 뒤인 11월20일 제출된 GIS에서 이들의 이름은 정씨에 의해 모두 사라졌다. 원고들은 자신들이 주주 및 임원 지위에서 배제되는 과정과 관련된 회의에 관해 아무런 통지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 역시 피고 측이 기존 주주들에게 회의 개최 사실을 적법하게 통지했다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새 경영진의 선출 시점을 둘러싼 모순도 확인됐다. 정씨 측은 2024년 12월2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새 이사와 임원들이 적법하게 선출됐다고 주장했으나,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인 그해 11월20일 자 GIS에 이미 회사 임원으로 기재돼있었다. 고지도 절차도 스테파니 러브 타데오는 12월2일 재무 담당 임원으로 선출됐다고 주장했지만 그보다 앞서 기존 주주들의 지분과 회사 장부를 조사하는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타데오는 11월12일 카르멜로 라사틴 주니어로부터 주식 1주를 매입했다고 주장했다. 기존 한국인 주주들을 배제하기 위한 실사가 이뤄지기도 전이었다. 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직접 확인한 핵심은 기존 한국인 투자자들이 적법한 주주였으며, 이들의 지분을 연체 주식으로 처리해 다른 사람들에게 넘겼다는 피고 측 주장을 뒷받침할 적법한 절차와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2024년 11월20일 자 GIS에는 JBC가 자기 회사의 보통주 3751주를 보유한 것으로 기재됐다. 전체 발행주식의 약 75%에 해당하는 규모다. 회사가 자기주식을 취득하려면 법이 정한 사유와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해당 GIS에는 이 주식이 어떤 경위로 회사 명의가 됐는지 나타나지 않는다. 주식의 성격도 자기주식이 아닌 일반 보통주로 표시됐다. 이후 회사 측 설명은 달라졌다. 2024년 12월2일 회의록에는 당초 자기주식으로 분류됐던 3752주를 기존 주주들이 청약대금을 납입하지 않은 연체 주식으로 정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피고 측은 기존 주주들이 청약대금을 완납하지 않아 해당 주식이 연체 상태가 됐고 이후 신규 주주들에게 적법하게 매각됐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필리핀 개정회사법에 따라 연체 주식을 처분하려면 해당 주주에게 개별적으로 통지하고 일반 유통 신문에 2주 연속 매각 사실을 공고한 뒤 공개경매 절차도 거쳐야 한다. 연체 주식 지정을 위한 이사회 결의뿐 아니라 기존 주주에 대한 통지, 매각 공고와 신문 게재, 공개경매, 실제 매각을 입증할 자료가 확인되지 않았다. 다른 회사 장부 제출 신규 주주들이 주식 대금을 실제 지급했다는 계약서와 영수증, 세금 납부 자료 역시 제출되지 않았다. 주식은 정씨 측근들에게 분산됐다. 2024년 12월21일 자 GIS에는 타데오가 1378주를 보유한 대주주로 등장했다. 카트리나 블랑카 데 레온과 아이리시 칼라구아스는 각각 550주, 이경희와 박재관은 각각 375주, 최민승은 375주를 보유한 것으로 기재됐다. 이성진과 손봉준에게도 각각 75주가 배정됐다. 재판부는 이들이 취득했다는 주식의 성격과 실제 취득 경위를 확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 과정에선 피고 측이 핵심 증거로 제출한 주주·주식양도 대장의 진위도 도마 위에 올랐다. 피고 측은 기존 한국인 투자자들이 JBC의 주주가 아니라는 근거로 주주·주식양도 대장 일부를 제출했다. 해당 장부에 원고들의 이름이 없기 때문에 이들을 JBC 주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였다. 법원이 문서를 확인한 결과 증거로 제출한 자료는 JBC의 장부가 아닌 스카이블루의 회사명이 기재돼있었고 원본대조필 표시 역시 모회사 JBC가 아닌 스카이블루 명의로 돼있었다. 타데오도 반대신문 과정에서 해당 문서가 JBC가 아닌 스카이블루의 주주명부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투자자 함씨와 김씨는 2022년 정씨와 체결한 양해각서에 따라 스카이블루의 증자에 참여하기로 하고 약 47억원을 송금했다고 주장한다. 투자금 일부는 스카이블루 법인 계좌로 송금됐고 일부는 골프장 카트 구매비 명목으로 정씨가 지정한 한국 계좌에 입금됐다는 게 투자자 측 설명이다. 장부라며 낸 증거, 알고 보니 스카이블루 주주명부 코레이트자산운용 별도 재판⋯뒤집힌 지배구조 쟁점 함씨와 김씨는 2년이 넘도록 증자 절차가 등록되지 않았고 자신들의 지분도 필리핀 SEC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작성된 주주명부에도 함씨와 김씨의 이름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투자자 측은 투자금을 받고도 약속한 지분을 발행하지 않은 행위가 사기와 배임 등에 해당할 수 있다며 형사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허위 내용이 포함된 GIS를 고의로 인증하거나 제출한 사실이 입증될 경우 필리핀 개정회사법 제162조의 허위·부정확 보고서 인증 규정이 문제될 수 있다. 지분을 탈취했다는 의혹을 받는 정씨는 스카이블루 매각을 최대주주 동의 없이 진행하기도 했다. 투자자 측은 스카이블루 주요 자산을 처분하려면 회사 주주 3분의 2 이상의 특별결의와 스카이블루 지분 99.9%를 보유한 모회사 JBC의 적법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매각 상대방으로는 한국토지신탁 자회사인 코레이트자산운용 측이 거론됐다. 골프장 관련 공사에는 포스코더샵 아파트 건설에도 참여한 다원이 시공사로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판결이 스카이블루의 자산매각 자체를 무효로 판단한 것은 아니다. 해당 매각의 적법성은 별도로 제기된 탈락(Tarlac) 특별상업재판소 사건에서 심리되고 있다. 다만 이번 판결로 2024년 8월29일 이후 JBC의 GIS와 지배구조 변경이 무효로 판단된 만큼, 적법하지 않은 JBC 지배구조를 토대로 스카이블루의 매각 승인권이 행사됐는지가 별도 재판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특히, 스카이블루 골프장 부지는 필리핀 국유지와 관련돼있어 기지전환개발청(BCDA)의 승인이나 동의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별도 사건에서 다뤄질 쟁점이다. 2025년 10월 매각 절차가 BCDA의 승인 아래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승인 절차의 미비만으로 거래가 당연히 무효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현재 별도 가처분 사건에는 BCDA도 피고로 포함돼있다. 골프장 매각 따로 재판 이번 판결이 정씨에 대한 형사 유죄판결은 아니다. 그러나 법원이 한국인 투자자들을 JBC의 적법한 주주로 인정하고 2024년 8월29일 이후 제출된 GIS를 모두 무효화하면서, 기존 투자자들이 적법한 절차 없이 회사 지배구조에서 배제됐다는 주장은 상당 부분 힘을 얻게 됐다. 150억원대 투자금과 골프장 자산을 둘러싸고 시작된 이른바 ‘현실판 카지노 차무식’ 사건은 이제 JBC 지배구조 복원과 스카이블루 자산매각의 적법성, 관련자들의 형사책임을 가리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