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판박이’ 험악한 부동산 민심

측근도 안 도와주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미 오답 노트가 있는데 왜 그러는 걸까?” 한 시민이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한탄하면서 한 표현이다. 그가 말한 ‘오답 노트’는 전 정부와 전전 정부에서 진행된 부동산 정책이다. 특히 정권까지 내줄 정도로 진영에 큰 타격을 입혔던 전전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는 현 정부의 행보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부동산 민심이 험악하다. 60%대의 고공행진을 벌이던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을 40%대까지 끌어 내렸다. 이제 임기 1년이 지나 2년 차에 접어든 정부에 벌써 ‘정권교체’를 말하는 목소리까지 들린다. 실제 문재인정부는 임기 말까지 40%대의 안정적인 지지율을 유지하고도 정권을 재창출하지 못했다. 당시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힌 게 바로 ‘부동산’이었다.

틀린 답을…

노무현-문재인정부를 거치면서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집값이 오른다’는 인식이 생겼다. 특히 문정부는 20번이 넘는 정책을 발표했지만 ‘부동산 불패’라는 공식을 깨지 못했다. 규제로는 집값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 문정부 5년 동안 확인된 것이다.

그 결과는 정권교체로 이어졌다. 이전까지 선출직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던 ‘0선’의 윤석열 전 대통령은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등 굵직한 정치 경력을 가진 이 대통령을 상대로 이겼다. 23만표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선 뼈아픈 패배였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대선 패배 이후 내놓은 녹서 <민주당 재집권전략 보고서>에서 부동산 정책 실패를 정권교체의 한 원인으로 꼽았다. 그동안 진보와 보수 진영이 각각 10년씩 정권을 차지한다는 일종의 ‘정치 공식’까지 부동산 민심이 깨버렸다.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우리나라의 현 주소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한차례 대선 패배를 겪은 이 대통령은 두 번째 도전에서 부동산을 시장에 맡기겠다는 내용의 공약을 내놨다. 그는 ▲부동산 세금 감면‧공급 확대 ▲재건축‧재개발 신속한 진행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 등을 약속했다. 문정부에서 진행한 부동산 정책과는 다른 길을 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됐다.

하지만 정부 출범 이후 정책 방향은 공약과는 180도 달라졌다. 집을 가진 자, 특히 많이 가진 자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발표했고 대출은 조였다. 이재명정부는 다주택자에게 주던 혜택을 거둬들이고 세 부담을 가중하면 그들이 매물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 매물 자체가 공급 물량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문제는 시장의 반응이 기대와 달랐다는 점이다. 다주택자들은 집을 파는 대신 ‘버티기’에 들어갔다. 추가로 부과되는 세금은 전세와 월세로 전가됐다. 매물이 잠기자 동시에 호가가 뛰기 시작했다. 공급은 줄어드는데 수요가 오르니 집값이 폭등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마련됐다. 이 대통령은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있다’ ‘부동산 문제는 계곡 정비보다 쉽다’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시장은 예상과는 다르게 반응했다.

지지율 40%대로 주저앉아
김상호 징계→면직 달래기?

여기까지는 문정부 때와 흘러가는 모양새가 ‘판박이’였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행보는 이미 악화한 부동산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비거주 1주택자를 문제 삼는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분당 집이 화두로 떠올랐다. 정부가 비거주 1주택자를 규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내놓으면서 이 대통령도 그 범위 안에 들어간 것이다.

문제는 이 대통령이 집을 파는 과정에서 근저당권 설정이라는 ‘꼼수’를 쓴 것이다. 해당 집에는 보증금 11억원의 전세 세입자가 살고 있는데 이 대통령은 17억7000만원의 근저당을 잡았다. 집은 29억원에 거래됐다. 재건축 조합원 지위를 양도할 수 있는 시기를 앞둔 점도 문제로 떠올랐다.

이 시기가 지나면 이 대통령의 집은 이른바 ‘물딱지’가 돼 집값이 내려간다. 다시 말해 이 대통령은 좋은 값을 받을 수 있는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 매수자에게 일종의 ‘사금융 대출’을 해준 셈이다.

집이 안 팔리면 시세를 낮춰서라도 처분하라는 정부 정책의 방향을 대통령이 정면으로 위배했다는 비판이 빗발쳤다. ‘내 집 마련’에 목말라 있는 20~30대가 반응했고 집을 가진 40~50대가 가세했다. 즉각 지지율이 움직였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로 떨어졌고 일부 조사에서는 30%대를 기록했다.

이 대통령의 확고한 지지층으로 알려진 20~30대 여성에서 이탈 현상이 두드러졌고 중도층은 이미 많이 돌아섰다. 뒤늦게 이정부는 공급 정책을 내놓았지만 험악한 수준의 부동산 민심은 돌아올 가능성이 요원하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 정책을 믿기엔 대통령부터 측근까지 모두 ‘잇속’만 차리고 있다는 비판이 꺼지지 않고 있기 때문.

김상호 전 춘추관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 전 관장은 지난 4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지난 6월부터 사의를 표명해 오다 이 대통령이 미국과 남미 순방을 다녀온 직후에 사직서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이 대통령의 최측근 언론 참모로 꼽힌다.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이었던 시절인 2017년부터 공보 업무를 맡아 경기도청과 당 대표, 대선캠프를 거쳐 대통령실 초대 춘추관장으로 일했다.

김 전 관장의 사직 배경에는 ‘부동산’ 문제가 얽혀 있다. 한 언론은 김 전 관장이 2014년 매입한 서울 강남구 다세대주택에서 주차장 일부를 원룸으로 변경해 세입자를 받고 있다며 ‘무단 증축’ 의혹을 제기했다. 김 전 관장은 “매입 당시 주차장 일부가 원룸으로 바뀐 상태였으며 직접 증축하거나 증축을 지시한 사실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매입 당시 해당 부분이 미등록 건축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임차인을 구하는 과정에서 관련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전 관장의 해명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청와대는 지난 12일 김 전 관장을 징계한 뒤 면직 처리했다. 김 전 관장의 면직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무단 증축 논란이 불거지자 청와대는 그가 사실을 사후에 인지했으나 이를 바로잡지 않은 만큼 책임이 있다고 판단, 징계 후 면직 처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 측근의 부동산 논란은 이정부에서 처음 불거진 게 아니다. 문정부 때에도 부동산 문제로 논란이 된 대통령 측근이 존재했다. 문정부에서도 다주택자를 겨냥한 대책이 나왔고 이 과정에서 청와대 참모들의 주택 보유 현황이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김조원 민정수석이 주택을 처분하면서 시세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매물을 내놓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팔 생각이 있는 건 맞느냐’는 거센 비판에 휘말렸다. 이후 김 전 민정수석은 사의를 표명했다. 당시 ‘직보다 집을 선택했다’는 조롱이 잇따랐다.

또 선택?

청와대와 민주당은 부동산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하지만 당장 세제 개편안부터 장작이 된 상황이다. 여당인 민주당에서조차 비판이 쏟아졌다. 세금 문제는 늘 거센 논란에 휩싸였고 조세 저항은 언제나 강력했다. 당정이 ‘주택시장 안정화 TF’ 회의를 진행하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jsja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종합특검팀이 종료됐다. 12·3 내란과 관련된 수사는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마무리되지 않은 사건은 경찰 국수본으로 이첩됐다. 검찰 특수본과 특검팀의 수사에 협조한 이들이 없었다면 확인이 어려운 의혹이 산적했다. 이 중에는 정보사 공작 업무와 내란 당일 계엄군의 움직임을 알린 군인들이 있다. 대개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기관 간 판단이 다른 걸 두고 형평성에 어긋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2·3 내란에는 여러 수사기관이 뛰어들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국방부 내란 특수본,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 2차 종합특검팀(특별검사 권창영) 등이다. 복수의 군인들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일부는 혐의가 있었다. 수사기관마다 판단이 달랐다는 게 핵심이다. 국방부 검찰단의 경우가 그렇다. 누군가의 공작이나 의도, 내란 당일 같은 행위를 했음에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조차 받지 않는 사례가 존재했다. 협조했는데 다른 판단 내란 특검팀과 검찰 특수본에 협조한 데 이어 재판에서 핵심 증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중 1명은 김창학 전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장(대령)이다. 김 전 단장은 지난 2월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두 달 뒤인 4월에는 법령준수의무위반 및 성실의문위반으로 파면됐다. 김 전 단장은 수사기관에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의 지시로 국회로 갔던 계엄군의 움직임에 대해 진술했다. 종합특검팀이 내란의 리허설이라고 판단한 국군방첩사령부 자유의 방패(FS) 훈련과 이 전 사령관의 이례적인 지시가 담긴 녹취를 제출하기도 했다. 여기엔 내란 특검팀에 제출된 적 없는 자료도 포함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관련 녹취에는 방첩사의 전시 합동수사본부 훈련 과정에서 수방사 실무진들이 병력 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김 전 단장을 포함한 전·현직 수방사 관계자들은 “‘합수단 수사관들은 경호 대상이 아니다’ ‘합수단 경호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병력 지원 자체에 난색을 표했다”고 진술했다. 수방사 관계자들은 “전시 상황이라면 검토가 가능하지만 평시에 병력을 지원하려면 수방사 작전계획부터 변경해야 한다. 육군본부 군사경찰실과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이 전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이 전 사령관과 방첩사의 압력에 못 이긴 수방사는 당시 훈련에 군사경찰단 50명과 35특임대대 20~25명 등 70여 명 규모 병력을 지원했다. 이 같은 진술을 확보한 종합특검팀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2024년 3월 전시나 계엄 시 부대별 임무와 병력 운용 등을 규정한 군 내부 계획 문서인 ‘전시 비문’ 개정을 추진하며 기존과 다른 방식의 합수본 운영을 준비한 것으로 의심했다. 이 전 사령관은 이 과정에서 수방사 병력 지원을 추진하며 실무진의 반대에도 병력 파견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두 사령관을 지난달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모든 특검에 자료 넘겨 김 전 단장을 비롯한 복수의 군 관계자들은 현재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반대로 행위가 비슷했던 조성현 대령(전 수방사 제1경비단장)은 훈장을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지난달 말 조 대령을 조사한 후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조 대령은 합참 지휘통제2팀장 직을 수행하다 최근 인사 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 대령이 2024년 12월3일 오후 11시51분 이 전 사령관과 통화하며 “그렇게 지금 임무를 줬고” “충성, 계속 작전하겠습니다”고 라고 언급한 녹취와 다음 날인 12월 4일 오전 1시2분 김 전 단장이 “(이진우) 사령관이 울타리를 넘어서라도 국회에 들어가라고 하는데, 그게 안 되잖아”라고 말하자 조 대령이 “우리는 그렇게 들어왔습니다” “경찰과 협조해 한적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라고 답한 내용을 확인한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전달하고 국회 침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중간 실행자’ 역할을 했다고 결론 냈다. 김 전 단장이 기소된 점도 기소 근거로 꼽혔다.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은 조 대령은 예하 제2특임대대와 제35특임대대에 하달했다. 실제 35특임대대는 계엄 당시 국회 경내에 투입됐다. 종합특검팀의 판단은 내란 특검팀의 수사 결론과 배치된다. 내란 특검팀은 조 대령이 “상부의 위헌·위법적인 지시를 거부했다”며 그를 입건하지 않았다. 종합특검팀은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조 대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의심했다. 일부 군인들 특검에 핵심 진술·자료 제출하고 불기소 군검찰, 내란 중요임무 종사 재판 넘기고 대거 파면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같은 해 12월4일 새벽 1시4분 서강대교 북단에 도착한 제2특임대대 2지역대장 윤덕규 소령에게 총 세 가지를 지시했다고 봤다. ▲총기와 탄약을 차량에 두고 진압봉을 챙겨 서강대교를 넘어올 것 ▲진입 방법은 국회에 이미 들어가 있는 부대와 상의할 것 ▲임무는 국회 안에 있는 인원을 끌어내는 것 등이다. 조 대령은 “2지역대장에게 정확하게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말을 한 사실이 있나요”라는 종합특검팀의 질문에 “윤덕규에게 2024년 12월4일 1시20분경 다시 북으로 올라가라고 말한 것이고, 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고 진술했다. 조성현 대령 측은 문자 그대로 “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지시가 회군의 취지였다는 점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윤 소령은 “조 대령이 ‘너희가 (서강대교를) 넘어왔을 때 시민과 충돌하게 되면 크게 다친다. (서강대교 인근에) 대기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끝까지 반대 김 전 단장과 동시에 파면된 핵심 증인 중 1명은 정성우 전 방첩사 1처장이다. 그는 지난해 6월24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여 전 사령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 전 처장은 검찰 특수본에서 진술했던 것처럼 “여인형 전 사령관이 당시 선관위 전산실을 통제하고 이후 민간 수사기관에 넘기며, 여의치 않으면 서버를 복사하거나 ‘떼어오라’는 3단계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했다. 정 전 처장을 비롯해 방첩사 법무실 간부들은 여 전 사령관의 지시에 대해 기술적·법률적 검토 결과 현실적으로 이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여 전 사령관은 “제 기억으론 정성우 증인한테 서버를 복사해라, 떼오라고 이야기한 기억은 분명히 없다”며 “정성우에게 서버를 떼서 가져오는 방법이 있을까 정도를 문의했다면 모를까, 명시적으로 카피해라, 떼서 가져오라고 했을 것 같지 않다. 카피도 안 되는데 어떻게 떼서 가져오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정 전 처장은 내란 사태 당일부터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총 6차례 통화했다.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50분 정 전 처장은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 노 전 사령관의 전화번호를 넘겨받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 전 사령관은 정 전 처장에게 “(병력이) 출발을 했느냐”라고 물었고 정 전 처장은 “이제 영외 거주자를 소집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내란 특검팀에 협조했던 정 전 처장은 김 전 단장처럼 내란 중요임무 종사와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내란 특수본은 정 전 처장이 방첩사 인원 115명을 4개 팀으로 긴급 편성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과천·관악 청사, 선관위 수원 연수원, 여론조사 꽃 등 4곳에 출동하게 하는 등 군인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김 전 단장을 비롯해 복수의 군 간부들이 기소되자 내란 특검팀은 국방부 검찰단에 ‘‘사전 협의’가 있었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취지로 불만을 전했다고 한다. 군 일각에서는 정 전 처장은 아니더라도 김 전 단장과 소수의 영관급 장교들은 국방부 조사본부 차원에서 무혐의 종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내란 특검팀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김창학 대령 외에도 여러 사람이 협조했고 그들 덕분에 수사를 할 수 있었던 게 컸다”며 “군검찰의 기소에 감 놔라 배 놔라 해서는 안 되고 해당 기관의 판단이지만 복수의 군 관계자들을 기소했을 때 ‘왜 저 사람은 기소 안 하느냐’는 등의 뒷말이 상당했다. 특검팀도 관련 내용을 알았기에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라고 했다. 음모·모해 명확한데 혐의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가 아니지만 사실상 노 전 사령관과 여 전 사령관에게 피해를 본 사람도 있다. 박민우 전 정보사 A 여단장(예비역 준장)이다. 그는 2025년 초 국회 청문회에서 ‘노상원 수첩’에 관한 핵심 증언을 했던 인물로 주목받았다. 박 준장의 증언 후 실제 관심이 크지 않았던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의 신빙성과 중요도가 커졌다. 노 전 사령관은 정보사를 내란에 동원하려 사실상 박 준장을 축출했다. 여 전 사령관의 검찰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박 준장의 비위, 비밀은닉, 업체 로비 등 4~5건의 중요한 제보를 받았다. 노 전 사령관이 비위 제보를 하지 않았으면 연락을 하지 않았을 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는 군형법상 군사기밀누설 및 암호 부정사용,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사건에 대해 수사권을 갖는다. 당시 블랙 요원 명단 유출 사건도 방첩사가 초동수사해 사건을 군검찰로 넘겼다. 여 전 사령관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건 박 준장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간 갈등 전후다. 박 준장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시기와도 일치한다. 박 준장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갑자기 전화가 와서 ‘아직도 고집이 세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말한 게 전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날 내란에 동원하려 일종의 간보기 차원으로 질문했던 것 같다. 노상원에 의해 직무에서 배제됐다고 본다. 여단장이 공석이 되자 이 자리 진급을 미끼로 김봉규, 정성욱을 노상원이 조종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상원 수첩 '핵심 증언자' 박민우, 사실상 노·여 모해로 좌천 신원식 “노상원·여인형에 의해 피해 본 것 맞다” 특검에 진술 문 전 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이 2024년 8월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정보사 갈등’ 교통정리를 위한 후속 조치를 약속하고 경질될 예정이었다. 신 전 실장은 박 준장과 문 전 사령관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했지만 문 전 사령관이 거부했다. 문 전 사령관은 유임됐고 노 전 정보사령관과 대통령실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개입하면서 신 전 실장은 회의가 끝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옷을 벗었다.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은 이에 관해 검찰 특수본 조사에서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2024년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진술했다. 박 준장의 주장은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신 전 실장은 종합특검팀 조사에서 “박민우 장군은 여인형과 노상원에게 피해를 봤다. 문상호가 유임되지 않았으면 박 장군도 재판에 넘겨지거나 좌천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며 “큰일도 아니었고 그래서 둘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얘기를 했던 거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