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9440억원 규모의 재산분할 판결에 재상고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9440억원을 지급하라는 재산분할 판결에 대해 지난 14일 재상고했다. 그 배경에는 1조원에 가까운 현금을 단기간에 마련해야 하는 현실적인 부담과 함께, 판결 확정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강제집행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은 파기환송심 직후부터 재상고를 하지 않고 판결을 수용해 9440억원을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재원 마련을 위해 SK㈜ 지분 일부를 매각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하지만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SK㈜ 대주주가 대규모 지분을 시장에 내놓을 경우 주가와 일반 주주, 그룹 경영권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아 실제 매각에는 상당한 부담이 따랐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설명이다.
최 회장 측 법률대리인단도 입장문에서 “최태원 회장은 여러 사정을 고려해 고심 끝에 상고장을 제출했다”면서 “주주들과 그룹 경영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자세로 향후 절차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 측은 노 관장 측에 현금과 주식을 섞어 재산분할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주식 지급 이후 주가가 하락하면 차액을 보전하고, 상승할 경우 그 이익은 노 관장 측에 귀속시키는 조건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산 가치를 보장하면서도 대규모 주식 매각에 따른 시장 충격을 줄이려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노 관장 측은 9440억원 전액을 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양측은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제집행 가능성도 최 회장이 재상고를 택하게 된 배경 중 하나로 거론된다. 재상고를 포기해 판결이 확정된 뒤에도 현금을 마련하려면 일정 시간이 필요한데, 이 기간 노 관장 측이 확정판결을 근거로 강제집행에 나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충분한 자금 조달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강제집행이 이뤄질 경우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등 주요 자산이 압류나 매각 등 집행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판결을 수용하더라도 1조원 가까운 현금을 마련할 시간이 필요한데, 지급 방식이나 시기에 대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고 강제집행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했다면 선택지가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재상고심에서는 파기환송심의 재산분할 비율과 기여도 산정이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를 충실히 반영했는지가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최 회장 측은 노 관장이 SK그룹의 기업가치 상승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볼 수 있는지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최 회장 측이 대표적으로 드는 사례는 SK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성장한 SK하이닉스다. 앞서 지난 2012년 하이닉스를 인수할 당시 업황 부진과 실적 악화로 회의론이 적지 않았지만, 최 회장은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보고 인수를 추진했다.
SK 측에 따르면 노 관장은 하이닉스 인수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그룹 내 공식 직책을 맡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룹 주요 최고경영진들에게 “인수하면 다 같이 죽는다”며 반대했다는 것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SK하이닉스의 폭발적인 기업가치 상승분까지 혼인기간 중 형성된 재산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일한 수준의 기여도를 적용할 수 있는지 다시 살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영 판단과 위험 부담이 상당했던 최 회장의 입장에 비해 당시 노 관장의 기여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다.
최 회장이 개인적으로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29.4% 역시 쟁점이 될 수 있다. 최 회장 측은 해당 지분이 두 사람의 관계가 사실상 파탄 난 이후 형성돼 노 관장의 실질적 기여가 없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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