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검찰공화국 끝과 경찰공화국 시작?

민주주의는 권력 이동 아닌 권력 분산으로 완성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우리 현대사에서 군이 정치에 개입해 헌정 질서를 무너뜨렸던 역사를 언급하며 다시는 군사 쿠데타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와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겪었고, 2024년 12·3 비상계엄 사태를 통해 군이 정치에 동원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다시 경험했다.

과거를 돌아보는 이유는 역사적 책임을 묻는 데만 있지 않다. 같은 잘못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필자가 지금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과거에는 군이 총과 병력으로 권력을 장악했고, 이후에는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바탕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검찰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제 검찰개혁으로 그 권력이 크게 축소되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검찰에서 빠져나온 거대한 수사권은 어디로 가고 있으며, 그 권력을 견제할 장치는 충분히 준비돼있는가.

견제 장치
충분한가

검찰개혁 다음에는 무엇이 오는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이어 검사의 직접수사권과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까지 추진되면서 대한민국 형사사법 체계는 근본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하면 수사와 기소의 분리는 더욱 분명해지고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동시에 장악했던 기존 구조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오랫동안 논란이 됐던 검찰 권력의 집중을 해소한다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 있는 변화다.

대한민국 검찰은 오랫동안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행사하며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강력한 권한을 누려왔다. 범죄 수사부터 기소와 공소 유지까지 형사사법 절차 전반을 사실상 주도했고, 그 과정에서 정치와 경제, 사회 전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검찰 권한을 분산하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던 것도 바로 이 같은 구조적 문제 때문이었다.

그러나 검찰의 권한을 줄였다는 사실만으로 개혁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수사권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관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갖고 있던 권한이 경찰이나 다른 수사기관으로 넘어갔는데 그 기관에 대한 견제 장치가 충분하지 않다면 권력기관의 이름만 바뀔 뿐이다. 그래서 검찰개혁의 마지막 질문은 반드시 ‘그다음 권력은 누가 견제할 것인가’가 돼야 한다.

검찰공화국 끝에 경찰공화국이 서 있는가= 국민이 가장 많이 접하는 수사기관은 앞으로도 경찰이다. 중대범죄수사청이 주요 중대범죄를 담당하더라도 국민이 일상에서 접하는 절도와 폭력, 사기, 성범죄, 교통범죄를 비롯한 대부분의 일반 형사사건은 경찰이 맡게 된다. 결국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국가의 수사권과 강제력도 경찰을 통해 행사될 가능성이 높다.

경찰은 이미 대한민국에서 가장 거대한 현장 조직 가운데 하나다. 전국의 경찰서와 지구대, 파출소를 통해 국민과 직접 접촉하며 생활 안전과 교통, 집회와 시위 관리, 경비, 정보, 수사 업무까지 폭넓게 담당하고 있다. 여기에 일반 형사사건에 대한 수사 주도권까지 더욱 강화된다면 경찰은 조직과 정보, 수사권과 물리적 강제력을 동시에 가진 매우 강력한 국가기관이 된다.

권력 이동 아닌
권력 분산으로

그래서 필자는 검찰공화국의 끝이 경찰공화국의 시작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싶다.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경찰을 키웠는데 몇 년 뒤 국민이 다시 경찰개혁을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개혁의 성공이 아니라 권력 이동의 반복일 뿐이다.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기관이 강해지느냐가 아니라 어떤 기관도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경찰 권력은 검찰 권력보다 국민에게 더 가깝다= 검찰과 경찰의 권력에는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다. 대부분의 국민은 평생 검찰청에 한 번도 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만 경찰은 다르다. 교통사고나 범죄 피해, 고소·고발이나 신고 때 가장 먼저 만나는 국가기관이 경찰이다. 집회와 시위, 교통단속과 생활 안전 등 국민의 일상 곳곳에서도 경찰의 권한은 직접 작동한다. 검찰 권력은 사건을 통해 만나지만 경찰 권력은 일상을 통해 만나는 권력인 셈이다.

경찰은 수사권뿐 아니라 현장에서 즉시 행사할 수 있는 물리적 강제력도 갖고 있다. 현행범을 체포하고 필요한 경우 수갑을 채우며, 법적 요건에 따라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도 집행한다.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는 국민의 이동과 행동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 이런 권한은 국민의 안전을 위해 필요하지만 잘못 행사될 경우 기본권을 가장 직접적으로 침해할 수 있는 권력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찰권 확대는 단순히 검찰과 경찰 사이의 수사권 조정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 경찰의 판단 하나가 국민의 자유와 재산, 명예와 일상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이 검찰 권력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강해진 경찰권을 어떻게 국민의 통제 아래 둘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권력이 국민의 일상에 가까울수록 민주적 통제도 더 촘촘해야 한다.

경찰은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경찰의 권한이 커지면 조직과 인력도 함께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담당했던 상당수 수사 기능이 다른 수사기관으로 넘어가고 일반 사건이 경찰에 더욱 집중되면 수사관은 물론 디지털 포렌식과 금융범죄, 마약범죄, 사이버범죄 전문 인력에 대한 수요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건이 늘어나는데 현재 인력만으로 감당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현실적인 대안은 아니다.

물리적
강제력

업무가 증가하면 예산도 증가한다. 인력이 늘어나면 교육기관과 장비, 청사와 시스템도 확대돼야 한다. 특히 AI와 디지털 기술이 범죄 수사에 본격적으로 활용되는 시대에는 데이터 분석과 디지털 증거, 금융거래 추적, 사이버 수사 등을 위한 대규모 투자도 필요하다. 결국 수사권 확대는 조직 확대를 부르고 조직 확대는 다시 예산과 영향력 확대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조직의 확대 자체가 아니다. 국가 기능이 늘어나면 필요한 조직과 인력을 늘리는 것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권한과 조직이 커지는 속도만큼 통제장치도 함께 강화되느냐는 점이다. 자동차의 엔진 출력을 두 배로 높였다면 브레이크의 성능도 그만큼 좋아져야 한다. 경찰개혁 역시 경찰이라는 엔진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강해진 엔진에 맞는 브레이크를 만드는 작업이어야 한다.

경찰 엘리트 카르텔도 경계해야 한다= 권한과 조직이 커지면 우수한 인재가 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과거 최고의 법률 인재들이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을 거쳐 검사가 되는 길을 선호했다면 앞으로는 경찰대학이나 경찰간부후보생 등을 통해 수사와 치안 분야의 핵심 간부가 되는 길이 더욱 주목받을 수 있다. 경찰의 전문성과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바람직한 변화다.

그러나 여기에도 경계해야 할 지점이 있다. 특정 교육기관이나 특정 선발 경로 출신이 주요 보직과 지휘 라인을 장기간 독점하면 조직 내부에 새로운 엘리트 카르텔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육사 출신 장교들이 군 지휘부를 장악했던 문제나 특정 대학과 사법연수원 기수를 중심으로 검찰 내부 인맥이 형성됐다는 비판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경찰이라고 해서 이 같은 조직의 속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따라서 경찰대학 출신과 경찰간부후보생, 일반 공채 출신이 공정하게 경쟁하고 능력과 성과에 따라 승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핵심 보직과 고위직의 출신별 편중도 지속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인사의 다양성은 단순한 형평성의 문제가 아니다. 특정 집단이 조직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권력 분산 장치이기도 하다.

경찰은 누가 견제할 것인가= 경찰개혁의 첫번째 과제는 경찰 수사권에 대한 외부 통제를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경찰 내부 감찰만으로 잘못된 수사를 바로잡겠다는 것은 과거 검찰을 자체 감찰에 맡겨뒀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권력기관의 자기 통제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는 내부 통제와 함께 반드시 외부 통제장치를 둔다.

내부 통제
외부 통제

국가경찰위원회의 권한을 실질화하고 중요 정책과 인사에 대한 민주적 통제도 강화해야 한다. 경찰이 사건을 자의적으로 불송치하거나 수사를 지나치게 지연했을 경우 피해자와 고소·고발인이 신속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다시 판단받을 수 있는 절차도 실효성 있게 마련해야 한다. 검사의 보완수사요구권 역시 경찰 수사의 오류와 미진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는 실질적인 견제장치로 작동해야 한다.

특히 수사 과정에서 누가 어떤 지시를 했는지 기록으로 남기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사건 배당부터 수사 지휘와 보완수사 요구, 불송치 결정과 재수사 과정까지 주요 의사결정의 책임자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권력기관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권한은 행사했는데 책임질 사람은 없는 구조다. 권한의 기록과 책임의 추적이 가능할 때 비로소 수사권도 민주적 권력이 될 수 있다.

경찰 내부에서도 권력을 나눠야 한다= 외부 통제만큼 중요한 것이 경찰 내부의 권력 분산이다. 경찰청장 한 사람과 경찰청 본청에 인사권과 예산권, 지휘권이 지나치게 집중된다면 경찰 조직이 커질수록 중앙집권적 권력도 강해질 수밖에 없다. 검찰총장에게 권한이 집중됐던 구조를 비판하면서 경찰청장에게 또 다른 거대한 권한을 몰아주는 것은 개혁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

국가수사본부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더욱 높이고 치안 행정과 수사의 경계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수사는 정치적 이해나 행정적 편의가 아니라 법과 증거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국가수사본부가 경찰청 내부의 또 하나의 부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수사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으면서 그 결과에 대해 분명하게 책임지는 구조가 필요하다.

자치경찰제 역시 다시 점검해야 한다. 제도가 도입됐지만 국민이 체감할 만큼 경찰권이 분산됐는지는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중앙경찰과 자치경찰, 국가수사본부가 각각 어떤 권한을 가지고 어떻게 서로 견제할 것인지 보다 명확하게 설계해야 한다. 권력 분산은 조직의 간판을 여러 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 인사권과 예산권, 지휘권을 나누는 데서 시작된다.

수사권과 정보권의 결합을 막아야 한다= 경찰의 정보 기능도 이번 기회에 다시 점검해야 한다. 경찰은 범죄 수사뿐 아니라 집회와 시위, 사회적 갈등과 치안 동향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접한다. 이런 정보 자체는 국민 안전과 범죄 예방을 위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강력한 수사권을 가진 기관이 광범위한 정보까지 독점하면 정보와 수사가 결합해 또 다른 권력이 될 가능성이 있다.

대한민국 권력기관 구조
민주적으로 재설계 기회

과거 검찰 역시 수사 과정에서 축적한 정보를 통해 정치와 경제, 사회 전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경찰이 같은 길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범죄 예방과 국민 안전을 위한 정보 수집과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정보 활동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있어야 한다. 특히 정권이나 특정 정치 세력의 이해와 관련된 정보 활동은 더욱 엄격하게 통제돼야 한다.

AI 시대에는 이 문제가 더욱 중요해진다. 과거에는 사람이 일일이 분석해야 했던 방대한 정보도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하면 짧은 시간 안에 분석하고 연결할 수 있다. CCTV와 위치정보, 금융거래와 통신 자료 등 각종 데이터가 결합될수록 국가의 정보 능력은 강력해진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수사기관의 능력만 키울 것이 아니라 개인정보 보호와 사법적·민주적 통제장치도 함께 발전시켜야 한다.

군·검찰 다음이 경찰이어서는 안 된다= 경찰의 위상이 높아지고 우수한 인재가 더욱 몰린다면 앞으로 경찰 출신 국회의원과 장관은 물론 대통령이 나오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그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군인도, 검사도, 경찰도 공직에서 물러난 뒤 국민의 선택을 받아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민주주의는 직업을 이유로 정치 참여를 막는 제도가 아니다.

문제는 특정 권력기관 출신 인사들이 정치 권력을 장악한 뒤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과 인맥을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구조다. 대한민국은 이미 군 출신 정치 권력이 장기간 국가를 지배했던 시대를 경험했고, 검찰 출신 인사들이 정치권의 중심에 대거 등장하면서 ‘검찰공화국’이라는 비판도 경험했다. 같은 현상이 경찰에서도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부터 제도적 장치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권력기관 고위직 출신의 정치권 진출 문제는 특정 기관을 겨냥한 규제가 아니라 권력기관 전체에 적용되는 원칙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퇴직 후 일정 기간 이해충돌 가능성이 높은 직무에 대한 제한과 재직 당시 사건·정보의 정치적 이용 금지 등을 함께 검토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경찰 출신 정치인을 막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의 권력이 정치 권력의 사적 자산으로 전환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권력기관 공화국서 국민 주권 공화국으로= 군사 쿠데타의 역사를 돌아보는 이유도 결국 권력 집중의 위험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군이 병력과 무기, 정보와 지휘권을 독점하고 문민통제가 무너졌을 때 일부 정치 군인은 자신들이 국가를 구해야 한다는 잘못된 엘리트 의식에 빠졌다. 경찰이 당장 그런 길을 갈 것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비약이며 경찰 전체를 잠재적 위험 집단으로 보는 것도 옳지 않다. 다만 어떤 조직도 견제받지 않는 거대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교훈은 잊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개혁을 이미 시작했다. 그러나 그 자리를 경찰공화국이 대신하게 해서는 안 된다. 검찰개혁의 완성은 검찰을 무력화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경찰과 공소청, 중대범죄수사청 등 형사사법기관들이 서로 견제하면서 국민에게 책임지는 체계를 만드는 데 있다. 검찰 수사권 폐지가 개혁의 종착점이 아니라 권력기관 전체를 민주적으로 재설계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국민주권
공화국으로

권력은 누구에게 주어졌느냐보다 어떻게 나눠고 어떻게 통제되느냐가 더 중요하다. 어제는 군이었고 오늘은 검찰이었다고 해서 내일 경찰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으로 대한민국의 권력사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 군도 검찰도 경찰도 정보기관도 국민으로부터 잠시 권한을 위임받은 국가기관일 뿐이다. 검찰공화국의 끝에서 우리가 만들어야 할 나라는 경찰공화국이 아니다. 어느 권력기관도 국민 위에 설 수 없는 국민주권의 공화국이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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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청구서 받은 한국 제3의 선택

동맹 청구서 받은 한국 제3의 선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구했다. 결국 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원유 수입의 61%는 호르무즈와 연결돼있다. 하지만 미국의 대이란 전쟁에 사실상 편입되면 헌법·여론·대이란 관계까지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2020년 청해부대 독자 파병 모델이 다시 주목받는 가운데, 과연 한국은 한미동맹의 ‘청구서’와 국익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각)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에게 한미 연합 군사 훈련 규모의 대폭 축소를 지시했다. 그 근거는 “나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었다. 해협은 열고 전쟁 선 긋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이같이 주장하면서 “오래전부터 미국이 한국과의 연합 군사 훈련에 참여하기로 동의해 온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한미 연합 훈련은 비용이 많이 들고,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북한을 일컬어 “내가 취임한 이래로 미국에 위협적이지 않고, 미국을 존중해 온 국가”라고 하며 “전적으로 부적절하고 적대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칭한 한미 연합 훈련은 지난달 17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된 한미 연합 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폭 축소’를 지시한 이유는 “취소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훈련 대폭 축소의 근거로 자신과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들었지만, 국내에서는 다른 신호로 받아들였다. 국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호르무즈 파병을 위한 압박” 신호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14일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중국·프랑스·일본·한국·영국 등 5개국을 지명하면서 “미국이 홀로 해상을 보호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했다. 이어 5개국에 “즉각 군함을 파견해서 호르무즈 해협 통행로 확보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요구의 명분은 “이란이 해협을 봉쇄하면 이들 국가의 원유 공급에도 영향이 간다”는 것이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Hopefully’라는 표현을 활용했다. 명령보다는 조금 약한 표현이었지만, 전 세계는 ‘명령 아닌 명령’ 혹은 ‘요구 아닌 요구’로 해석했다. 5개국이 거론된 기준은 경제적 이익이었다. 이 때문에 동맹국이 아닌 중국도 파병 요구 대상으로 거론된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석유의 90%를 호르무즈 해협에서 조달하고 있다”는 명분을 제시했다. 물론 실제로는 경유분 40% 미만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오가고 있었다. 프랑스·영국은 미국과 나토 동맹을 맺고 있다. 한국·일본은 각각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미국의 전략적 경쟁국이다. 중국에 대한 파병 요구가 없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에 끊임없이 반복해 온 전형적인 부담 분담이 될 뻔했다. 중국이 파병 요구 대상에 포함된 순간 우리에 대한 파병 요구도 더욱 진지해진 것이다. 지난해 기준 우리 원유 수입의 약 61%와 나프타 수입의 약 54%가 호르무즈 해협과 연결돼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인 것이다. 중국도 참전? 트럼프식 부담 분담 새 기준 헌법 제5조 앞 고민 “무엇을 할 것인가?” 하지만 호르무즈 항행 보호와 미국의 대이란 전쟁 상황은 현실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는 군함 파견을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초의 압박을 가했던 지난 3월 독일·스페인·이탈리아는 “즉각적인 함정 파견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독일과 협의하지 않았고, 독일군 파견에 필요한 유엔·유럽연합·나토 차원의 근거도 없다”고 반발했다. 프랑스도 미국의 대이란 작전과 거리를 두면서 미국 주도가 아닌 별도의 호르무즈 통행 확보 구상을 추진했다. 전투 상황이 안정된 후 이란과의 긴장 완화까지 병행하면서 유조선을 호송한다는 취지의 구상이었다. 영국·프랑스는 “방어적이고 독립적인 다국적 임무”라는 명분으로 다국적 방어 임무에 한정해 작전에 참여했다. 영국은 지난 5월 ▲자율 기뢰 탐색 장비 ▲타이푼 전투기 ▲구축함 HMS 드래곤 ▲대드론 장비 등을 보냈다. 하지만 “미국과 함께 이란과 싸운다”는 인상을 지우는 방식의 파병이었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이 원했던 것은 미국 중심의 연합군이었다. 한국·일본·독일·호주 등은 영국·프랑스의 다국적 임무 공동성명을 지지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에도 한미 연합 훈련 대폭 축소라는 현실적인 체감이 닥쳐왔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해상 초계기·군수 지원함·기뢰 제거 전력 등 구체적인 군사 옵션을 공개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이 한국 안보를 위해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데, 한국은 미국이 필요로 할 때 왜 중동에서 역할을 하지 않느냐”는 트럼프식 계산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응수였다. 한국의 호르무즈 파병에는 여러 쟁점이 있다. 그런데 그중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헌법적 쟁점이다. 우리 헌법 제5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란 전쟁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이미 미국·이란 전쟁을 침략 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범여권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이기헌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파병 요구는 동맹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요구”라며 “국회는 국익과 헌법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무리한 파병 요청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엔 독자 지금은 실전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도 “호르무즈에 단 한 척의 군함도 보내서는 안 된다”며 “한·미 상호방위조약에도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어떠한 국제적 분쟁이나 국제적 평화와 안전과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해 해결한다”는 취지로 규정된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1조였다. 이 의원은 지난 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다시 파병 반대 주장을 펼쳤다. 그는 “국제 평화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 전쟁을 부인한다는 헌법적 가치가 중요한 판단 근거였다”며 “전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이후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에도,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유엔 헌장 제2조 제4항은 유엔 회원국 간 영토 보전·정치적 독립에 대한 무력 위협·무력 행사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한 예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을 받은 공격과 무력 공격에 대응하는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이다. 따라서 파병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위헌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결국 파병을 결정하더라도 파병 동의안의 문구와 파병 시 수행할 작전의 내용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파병 이전에 파병의 성격부터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특히 미국은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시작했다. 선전포고는 법적 판단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적·역사적 문제 제기는 충분히 가능하다. 정식 전쟁 선언과 명확한 전쟁 목표 없이 군사행동부터 선행됐다는 불안정성을 충분히 환기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 전쟁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헌법적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아울러 우리 군의 임무가 무엇으로 규정되느냐에 따라 헌법적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가령 한국군이 ▲상선 호위 ▲기뢰 제거 ▲수색 구조 ▲해상 초계 ▲군수 지원 등에 한정된 임무만 수행한다면 이는 국제 항행 보호 및 자국민·자국 선박 보호 목적의 방어적 해외 파병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란 함정 선제 타격 ▲이란 본토 공격 지원 ▲미군의 공격 작전에 정보·표적·화력 측면에서 직접 결합 ▲미국의 작전지휘체계에 편입 등의 상황이 파병의 성격으로 확정된다면 이는 전쟁의 일부로 평가될 수도 있다. 이미 이란은 지난 7일(현지시각) 에스마일 바가이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X에 한국어 성명을 발표했다. 이란은 이 성명을 통해 “현재 이란 국민은 미국의 침략적 행위에 맞서 자위하고 있으며, 여성·어린이를 상대로 한 미국의 전쟁범죄에 단호히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다른 국가가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으로 주둔하거나 작전에 참여하는 것은 침략 행위의 당사자를 직접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우리에 대해서는 “이란과 대한민국의 관계는 64년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양국 관계는 줄곧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 이란은 대한민국과의 우호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경고했다. 청해부대 딜레마 여론 문제도 간단하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지난 3월 <에너지경제신문>의 의뢰로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상대로 무선(100%) RDD 자동응답조사(ARS) 방식으로 진행한 미국의 해군 파병 요청 관련 긴급 현안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60.9%는 파병에 반대했고, 37.2%는 “매우 반대”였다. 찬성 의견은 34.4%였고 “매우 찬성”을 선택한 사람의 비율은 17.9%였다. 당시에는 파병 반대 목소리가 더 컸다는 간접 근거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압박을 가한 현시점에서는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개혁신당 개혁연구원이 지난 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17명을 대상으로 무선 RDD 방식의 ARS 자동응답 방식을 적용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론은 첨예하게 엇갈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34.9%는 군 병력 파병을 지지했지만, “방어용 무기만 지원하자”는 의견도 31.8%였다. “군사 지원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도 27.6%였다. 이렇듯 여론도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위헌·여론 비판을 피할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개혁연구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3월 미국의 요청 이후 현재까지 호르무즈 해협 파병 여부를 최종 결정하지 않았다. 이 같은 정부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전체 응답자 중 50.9%는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을 선택했다. “잘하고 있다”는 응답을 선택한 비율은 42.2%였고, “잘 모르겠다”는 응답을 선택한 비율은 6.9%였다. 지난 3월부터 파병 결정 시 실제 파병할 수 있는 유력한 부대로는 청해부대가 거론된 바 있다. 정부는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당시인 2020년 국회 동의 없이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확대해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한 적이 있다. 미국과 이란은 당시에도 충돌했다. 당시 정부는 ‘국군부대의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 파견 연장 동의안’의 단서 조항을 근거로 국회의 별도 동의를 받지 않았다. 동의안에는 “유사시 우리 국민 보호 활동 시에는 지시되는 해역을 포함한다”는 문구가 포함돼있었다. 이를 토대로 문재인정부는 청해부대의 활동 영역을 한시적으로 확대했다. 병력? 무기? 불참? 세 갈래 갈린 민심 다만 당시 청해부대 파병은 미국의 연합군 참여 요청과 무관하게 독자 파병 형식을 취했다. 이 옵션이 다시 부활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상황은 2020년과 다르다. 미국이 다시 ‘미국이 요청한 다국적 호르무즈 군사작전 참여’를 요구하며 강하게 압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그해 5월에 이르기까지 청해부대가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에 투입된 적이 없었다. 아울러 당시와 달리 현재 임무·지휘 체계·교전규칙이 질적으로 달라진다면 기존 파병 동의안을 확대 해석해 처리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국회 동의를 받는 게 헌법 제60조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나폴레옹 놀이’를 시도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는 1806년 베를린 칙령을 통해 영국을 대상으로 한 대륙봉쇄령을 발동했다. 이는 유럽 전체와 영국 간 무역·교류를 모두 차단해 영국 경제를 질식시키려는 전략이었다. 그러던 중 러시아가 경제적 피해 때문에 대륙봉쇄령에서 이탈했고, 나폴레옹은 1812년 러시아 원정을 시도했다가 실패해 몰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도 나폴레옹 1세의 대륙봉쇄령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은 물론 전략적 적대국인 중국에까지 해협 확보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상황이다.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와 강한 경제 압박도 병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적국의 경제적 생명선 조이기 전략 ▲봉쇄의 성공이 제3국의 협조에 달려 있다는 점 ▲패권국의 강력한 협조 요구 ▲경제·안보 조치가 동맹국 통제 문제로 확대된다는 점 등의 공통점이 있다. 실제로 이란은 미국의 봉쇄 조치 이후 원유 수출이 크게 감소해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적 부담 분산과 이란 고립이라는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한다. 대륙봉쇄령은 비현실성에서 비롯된 유럽 각국의 비협조·밀무역을 시작으로 러시아의 이탈을 거쳐 러시아 원정의 대실패로 연결됐고, 결국 나폴레옹 1세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 균열과 국내 이익의 경계선을 교묘하게 오가면서 21세기판 대륙봉쇄령을 시도하려고 한다. 이란의 경고 우리의 응수 패권국이 자신의 전략적 목적을 위해 참여국이 감수할 수 있는 국익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강제로 만든 연합은 내부로부터 붕괴되기 시작한다. 이 같은 흐름이 보이는 현 상황에서 지지율 하락세에 시달리고 있는 이재명정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23년 전 이라크 파병 문제에 시달리다가 지지율 하락과 진보 진영의 비토에 직면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뇌가 이 대통령의 눈가에 아른거리고 있진 않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