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침체라더니…’ 치솟는 리셀가 현상

  • 조유담 기자 ydcho@ilyosisa.co.kr
  • 등록 2026.08.10 10:02:00
  • 호수 15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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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표상 외면에 사재기 기승

[일요시사 취재1팀] 조유담 기자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 흥행으로 아이맥스(IMAX) 특별관 예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에서도 정가의 수배에 달하는 영화 티켓 암표 거래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공연·스포츠와 달리 영화는 온라인 암표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고 “중고 거래 플랫폼에 요구 어렵다”는 이유로 관객들의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영화사상 최초로 전편을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가 지난 5일 국내 개봉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각색해 트로이 전쟁 이후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의 10년에 걸친 귀환 여정을 그린다. 놀란 감독의 영화 중 가장 큰 규모의 제작비인 2억5000만달러(약 3577억원)를 들인 <오디세이>는 70㎜ 아이맥스 필름으로 촬영됐다.

5배 이상
가격으로

일반 상영관보다 폭이 약 두 배 넓은 필름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더 많은 영상 정보를 담아 대형 화면에서도 뛰어난 화질과 선명도를 구현할 수 있다. 물리적 필름을 온전히 소화해 낼 수 있는 특별관은 미국 내 25개, 전 세계 41개소에 불과하다. 국내에는 해당 특별관이 없지만, 전국 총 27개의 아이맥스 디지털, 아이맥스 with Laser 등의 상영관을 통해 잘리지 않은 화면 그대로 관람할 수 있다.

<오디세이>는 개봉 3주 차 주말 동안 전 세계 누적 수익 9억1100만달러를 돌파, 10억달러 고지를 눈앞에 두게 됐다. 특히 아이맥스 흥행이 압도적이다. 3주 차 주말에 거둔 1억3620만달러의 수익 가운데 6800만달러가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발생했다. 아이맥스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주말 흥행 기록으로 중국, 일본, 한국을 제외한 수익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라움을 안겼다.

아이맥스로 영화를 관람하기 위한 관람객들의 예매 전쟁도 치열하다. 미국 개봉일이었던 지난 7월17일 전후로 중고 거래 사이트인 이베이에는 아이맥스 상영관의 티켓 두 장이 999달러(한화 148만원)에 판매됐다. 6장을 998달러, 3장을 899달러에 내놓은 판매자도 있었다.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에는 “남은 좌석은 장애인용뿐인데, 비장애인들이 해당 좌석들을 사들이고 있다”며 “비장애인이면 휠체어석과 동반석은 사재기하지 말라”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폭발적 예매율에 관객들은 “아침 7시 영화도 맨 앞줄만 남았다” “아이맥스로 보려면 인기가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특별관 좌석을 중심으로 정가의 수배에 달하는 웃돈을 얹어 파는 암표 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중고나라, 번개장터, 당근 등 주요 중고 거래 플랫폼에 <오디세이> 아이맥스 상영관 티켓과 <스파이더맨> 스크린 X 상영관 티켓을 판매한다는 게시물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공연·스포츠는 법 개정으로 막는데
‘신고 창구도 없는’ 영화 암표 거래

이른바 ‘용아맥’이라고 불리는 CGV 용산아이파크몰 아이맥스관의 ‘명당 자리’는 값이 더 붙어 한 장당 10만원에서 최대 11만5000원선에 거래됐다. 동일 상영관의 2D 아이맥스 티켓 가격이 1만7000원에서 2만1000원 선인 것과 비교하면 5배가 넘는다. 판매자들은 거래 후 구매자의 번호로 티켓을 전송하는 방식으로, 선물하기 기능을 악용해 카카오톡으로 티켓을 전송한다.

한 회차당 10장이 넘는 티켓을 내놓아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한 사재기도 빈번하다. 매크로는 계정 아이디와 비밀번호, 보안 문자 등을 반복적으로 자동 입력하는 프로그램이다.

실제 한 판매자는 예매가 시작된 직후 8월8일 자부터 8월16일 자까지 총 58석의 용산 아이맥스관 좌석을 예매한 후 당근에 판매 글을 게시했다. 그중 56석은 연석이었으며, “안전하게 모바일 티켓으로 보내드려요”라고 안내했다. 또 다른 판매자도 “CGV 선물하기로 보내드립니다”라며 거래 방법을 작성했다.

공연과 스포츠의 경우 암표 문제를 뿌리 뽑기 위해 공연법과 국민체육진흥법이 전격 개정돼 이달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프리미엄 가격을 붙여 티켓을 불법 거래하는 이른바 ‘플미’ 리셀러가 기승을 부려 콘서트를 개최하는 가수들은 이들을 직접 잡겠다며 나서기도 했다.

암표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콘서트 중 하나인 ‘싸이 흠뻑쇼’에 대해 가수 싸이는 “관련 법이 강화되기를 기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오는 15일 자 ‘싸이 흠뻑쇼’의 리셀 티켓은 70만원으로, 10만원대 후반인 기존 가격의 3배가 넘는다.

개정법은 매크로 프로그램 이용 여부를 입증해야 처벌이 가능해 실질적인 단속에 한계가 있었던 기존 제도의 한계를 보완한다. 매크로 이용과 관계없이 정당한 구매 절차를 우회하거나, 재판매 목적으로 부정 입수 및 부정 판매하는 행위 자체에 해당한다. 또 부정 판매액의 최대 50배에 달하는 과징금과 부당이득 몰수·추징 규정이 도입된다. 신고 기관 지정 및 신고 기관의 거래 관련 자료 제출 요구권과 신고 포상금 제도의 도입을 통해 불법 거래 현황 파악과 단속의 실효성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순식간에
58석 사재기

반면 공연이나 스포츠 분야와 달리 영화는 온라인 암표를 제재할 법적 근거가 부족한 상황이다. 경범죄처벌법상 오프라인 암표 거래만 최대 20만원의 벌금이나 구류 처분이 가능할 뿐, 정작 피해가 집중되는 온라인 암표 거래를 직접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

극장 측이 형법상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해야 하지만 그마저도 실효성이 떨어진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하는 암표 신고센터 또한 공연·스포츠에 한정돼 영화 티켓에 관련해서는 신고할 창구가 없다.

국회에는 2024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입장권 부정 판매 및 알선을 금지하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현재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계류돼있는 상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온라인 부정 판매 규제의 필요성에 동의한다는 검토 의견을 낸 바 있다.

전문가들은 ‘대작 개봉 시에 한정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며 법 개정의 필요성은 있지만 그 시급성은 비교적 떨어진다는 의견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화제작이 개봉할 경우 특별관 위주로 암표 및 리셀 거래가 나타나고 있어 스포츠나 공연에 비하면 그 규모는 작지만, 문제 인식은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개인적 거래의 경우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부재하며 고소 등 법적 제재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전했다.

“책임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는 영진위는 영화관을 주체로 암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 중이며 영화관 기업들과 긴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던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암표 거래의 사각지대인 “중고 거래 플랫폼 거래의 경우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각 플랫폼의 자체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중고 거래 플랫폼을 통한 암표 리셀을 원천 차단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며 “다만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직접적인 요구는 어렵다”고 전했다.

얼마나
벌길래

문제는 암표에만 그치지 않는다. 영화관들이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선착순으로 제공하는 각종 굿즈 역시 리셀 시장의 표적이 되고 있다. 메가박스의 ‘오리지널 티켓’, CGV의 ‘필름마크’, 롯데시네마의 ‘아트카드’ 등은 흥행작일수록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더 큰 웃돈이 붙어 거래된다. 영화 티켓과 마찬가지로 현행법상 개인 간 사적 거래로 분류돼 이를 직접적으로 제재할 법적 근거는 부족하다.

영화 티켓과 마찬가지로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성사되는 거래는 개인 간 거래다 보니 조치하기 쉽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영화관 입장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단순한 개인 간 거래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한정 수량의 굿즈를 받기 위해 관객들이 새벽부터 영화관을 찾고, 특정 회차의 좌석을 확보하기 위해 예매 경쟁을 벌이는 것은 극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특히 <오디세이>의 흥행은 영화관 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OTT의 확산으로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감소하고 있지만, 모든 영화가 외면받는 것은 아니다. 대형 스크린과 압도적인 음향, 아이맥스와 같은 특별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작품에는 관객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수요를 영화관이 얼마나 제대로 소비로 연결시키고 있는지다. 정부는 침체된 극장가에 관객을 되돌려놓기 위해 관람료 6000원 할인권을 배포하고 있다. 관객에게 영화관에 다시 방문할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기 위한 정책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극장에 와달라”라며 할인권을 제공하는 동안, 정작 제값을 주고 영화를 보려는 관객의 선택지는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OTT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대형 화면과 고음질 음향 등으로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를 만들어냈지만, 정작 그 경험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일부 리셀러들이 선점하고 있는 셈이다.

“안전하게 모바일 티켓 보내드려요”
개인 간 온라인 판매 ‘개입 불가’

CGV 관계자에 따르면, “CGV는 일부 업체의 비정상적인 예매 행위와 티켓 부정 거래 가능성에 대해 상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으며 공정한 예매 환경을 저해하는 행위가 확인될 경우 이용약관에 따라 계정 이용 제한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내부 규정에는 로그인 제한 등 상응하는 조치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는 여전히 다수의 개인 간 리셀 게시물이 확인되고 있다. CGV는 국내 극장 시장에서 가장 많은 스크린을 보유한 1위 영화관이자 국내 주요 아이맥스 상영관을 확보한 기업이다. 공정한 예매 환경을 위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암표 거래에 활용되는 ‘선물하기’ 등 티켓 전달 방식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한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교수는 영화 암표에 대해 “온·오프라인 전반에 걸친 규제가 필요하다”면서도 “영화관을 포함한 영화 산업이 코로나 이후 힘든 상황이고, OTT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규제까지 더해진다면 더욱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거래의 경우 판매 규제는 중고 거래 플랫폼 사업자에 집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요 중고 거래 플랫폼은 온라인 영화 티켓 리셀을 명확한 판매 금지 대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번개장터는 암표 거래를 특정 상품 제외 운영 정책 완화로 판매 가능한 상품임을 안내하고 있으며, 거래 금지 품목에서 규정하는 암표는 경범죄처벌법상 오프라인 암표 거래를 의미한다.

당근마켓 역시 오프라인 암표와 철도 승차권, 매크로를 이용해 구매한 티켓의 재판매 등을 제한하고 있지만,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일반적인 영화 티켓 리셀은 별도의 금지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 교수는 암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규제뿐 아니라 영화관의 경쟁력 강화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그는 “영화관을 영화뿐만 아니라 리얼타임 콘서트, 월드컵 기간 진행됐던 실시간 중계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소비자가 정당한 가격에 영화를 관람할 권리도 중요하지만, 암표를 구매하지 않는 소비자들의 인식과 책임도 함께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제도 밖

공연과 스포츠 분야는 온라인 암표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반면 영화는 지난 2018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지난 2022년 <아바타: 물의 길> 등 대작이 개봉할 때마다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법과 플랫폼 운영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공정한 예매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피해는 다시 극장을 찾기 시작한 관객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ydch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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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현실판 차무식’ 사기극 전말

[단독] ‘현실판 차무식’ 사기극 전말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필리핀 골프장 투자 사기에 연루된 정종수씨가 1심 재판에서 패소했다. 필리핀 법원은 정씨가 한국인 투자자들을 삭제하고 필리핀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제이비 크레스타(이하, JBC)의 일반정보보고서(GIS)를 무효로 판단했다. 정씨는 한화 약 150억원을 투자한 최대주주의 지분 탈취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인 사업가 정씨를 둘러싼 필리핀 골프장 투자 분쟁이 현지 법원의 주주 지위 회복 판결로 전환점을 맞았다. 한국인 투자자 6명은 2019년 JBC 등에 총 104억원을 투자하고 회사 지분 63.98%를 확보했다. 투자자 측은 “계약에 따라 2024년 8월29일 지분을 배정받고 투자금을 입금해 JBC의 법적·실질적 최대주주가 됐다”고 설명했다. 필리핀 카르텔 JBC는 필리핀 클락에 위치한 스카이블루 골프 앤 리조트(이하, 스카이블루)를 자회사로 두고 있었다. 현지인과 친인척 관계를 맺으며 필리핀에서 장기간 활동한 정씨는 ‘현지 국회의원 등 4명을 스카이블루 이사로 등재해 골프장 매각을 성사시키겠다’는 조건으로 JBC와 자회사인 스카이블루의 경영권을 요구했다. 투자자들은 정씨가 현지 인맥을 활용해 골프장 사업을 정상화하고 매각까지 성사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2024년 11월20일 정씨는 JBC의 주주와 이사진을 대거 교체하고 투자자들의 지분을 주주명부에서 삭제했다. 투자자 측은 이 과정에서 적법한 주주총회와 이사회 절차 없이 문서가 위조되고 경영권과 지분이 넘어갔다며 정씨 측의 행위를 사기·배임·문서위조 등으로 문제 삼고 있다. 이번 판결은 정씨의 사기나 문서위조 등 형사책임을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JBC의 주주 및 이사·임원 지위와 2024년 8월29일 이후 이뤄진 지배구조 변경의 적법성이 쟁점이다. 필리핀 앙헬레스시 지방법원 제60지원은 지난달 28일 함모씨 등 6명의 주주들을 대표하는 안창현씨와 부민호씨가 정씨와 현지인 등을 상대로 제기한 회사 임원 권원 및 회사 행위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JBC의 적법한 주주라고 선언했다. 함씨를 비롯해 2024년 8월29일 자 GIS에 기재된 이사·임원들을 새로운 경영진이 적법하게 선출될 때까지 원상 복구하고, 당시 GIS에 기재된 주주들의 지위도 함께 회복하라고 판결했다. 이어 법원은 정씨가 제출한 JBC의 GIS를 모두 무효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정씨의 측근 크리스티나 송미 리, 줄리 앤 벨트란, 세스난다 빌라파냐, 스테파니 러브 타데오, 리코 안젤로 정, 디오네 오호일란 안토니야 등 6명은 JBC의 적법한 주주 및 이사·임원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세스난다 빌라파냐는 정씨의 아내, 스테파니 러브 타데오는 며느리, 리코 안젤로 정은 손자로 알려졌다. 2024년 8월29일 후 JBC 일반정보보고서 모두 무효 자기주식 75% 흡수한 정종수 라인⋯통지도 안 했다 정씨는 이번 소송의 피고지만 판결 주문에서 적법하지 않은 주주·이사·임원으로 특정된 6명의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정씨가 불법 주주나 임원으로 판결받은 것은 아니다. 앞서 <일요시사>는 지난 1월 ‘카지노 차무식 현실판 사기극(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4030)’ 기사를 통해 한국인 투자자들의 JBC 지분과 자회사 스카이블루의 경영권 및 핵심 자산이 정씨 측에 넘어갔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한국인 투자자들은 2019년 JBC 등에 100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이어 스카이블루 증자 등을 명목으로 송금한 약 47억원까지 합하면 피해를 호소하는 투자금은 150억원대에 이른다. 투자자들은 JBC 지분 63.98%를 보유한 최대주주였지만 2024년 11월20일 자 GIS에서 자신들의 이름이 통째로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원고들은 2024년 8월29일부터 11월14일까지 GIS에 ‘JBC 주주’로 기재돼있었다. 여기에 함씨는 1500주, 백씨와 김씨는 각각 500주, 한강라이프는 499주, 유씨는 100주를 보유한 것으로 신고됐다. 원고 측 대표자 부민호씨도 최종적으로 100주를 보유한 주주로 기재돼있었다. 그러나 불과 엿새 뒤인 11월20일 제출된 GIS에서 이들의 이름은 정씨에 의해 모두 사라졌다. 원고들은 자신들이 주주 및 임원 지위에서 배제되는 과정과 관련된 회의에 관해 아무런 통지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 역시 피고 측이 기존 주주들에게 회의 개최 사실을 적법하게 통지했다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새 경영진의 선출 시점을 둘러싼 모순도 확인됐다. 정씨 측은 2024년 12월2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새 이사와 임원들이 적법하게 선출됐다고 주장했으나,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인 그해 11월20일 자 GIS에 이미 회사 임원으로 기재돼있었다. 고지도 절차도 스테파니 러브 타데오는 12월2일 재무 담당 임원으로 선출됐다고 주장했지만 그보다 앞서 기존 주주들의 지분과 회사 장부를 조사하는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타데오는 11월12일 카르멜로 라사틴 주니어로부터 주식 1주를 매입했다고 주장했다. 기존 한국인 주주들을 배제하기 위한 실사가 이뤄지기도 전이었다. 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직접 확인한 핵심은 기존 한국인 투자자들이 적법한 주주였으며, 이들의 지분을 연체 주식으로 처리해 다른 사람들에게 넘겼다는 피고 측 주장을 뒷받침할 적법한 절차와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2024년 11월20일 자 GIS에는 JBC가 자기 회사의 보통주 3751주를 보유한 것으로 기재됐다. 전체 발행주식의 약 75%에 해당하는 규모다. 회사가 자기주식을 취득하려면 법이 정한 사유와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해당 GIS에는 이 주식이 어떤 경위로 회사 명의가 됐는지 나타나지 않는다. 주식의 성격도 자기주식이 아닌 일반 보통주로 표시됐다. 이후 회사 측 설명은 달라졌다. 2024년 12월2일 회의록에는 당초 자기주식으로 분류됐던 3752주를 기존 주주들이 청약대금을 납입하지 않은 연체 주식으로 정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피고 측은 기존 주주들이 청약대금을 완납하지 않아 해당 주식이 연체 상태가 됐고 이후 신규 주주들에게 적법하게 매각됐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필리핀 개정회사법에 따라 연체 주식을 처분하려면 해당 주주에게 개별적으로 통지하고 일반 유통 신문에 2주 연속 매각 사실을 공고한 뒤 공개경매 절차도 거쳐야 한다. 연체 주식 지정을 위한 이사회 결의뿐 아니라 기존 주주에 대한 통지, 매각 공고와 신문 게재, 공개경매, 실제 매각을 입증할 자료가 확인되지 않았다. 다른 회사 장부 제출 신규 주주들이 주식 대금을 실제 지급했다는 계약서와 영수증, 세금 납부 자료 역시 제출되지 않았다. 주식은 정씨 측근들에게 분산됐다. 2024년 12월21일 자 GIS에는 타데오가 1378주를 보유한 대주주로 등장했다. 카트리나 블랑카 데 레온과 아이리시 칼라구아스는 각각 550주, 이경희와 박재관은 각각 375주, 최민승은 375주를 보유한 것으로 기재됐다. 이성진과 손봉준에게도 각각 75주가 배정됐다. 재판부는 이들이 취득했다는 주식의 성격과 실제 취득 경위를 확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 과정에선 피고 측이 핵심 증거로 제출한 주주·주식양도 대장의 진위도 도마 위에 올랐다. 피고 측은 기존 한국인 투자자들이 JBC의 주주가 아니라는 근거로 주주·주식양도 대장 일부를 제출했다. 해당 장부에 원고들의 이름이 없기 때문에 이들을 JBC 주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였다. 법원이 문서를 확인한 결과 증거로 제출한 자료는 JBC의 장부가 아닌 스카이블루의 회사명이 기재돼있었고 원본대조필 표시 역시 모회사 JBC가 아닌 스카이블루 명의로 돼있었다. 타데오도 반대신문 과정에서 해당 문서가 JBC가 아닌 스카이블루의 주주명부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투자자 함씨와 김씨는 2022년 정씨와 체결한 양해각서에 따라 스카이블루의 증자에 참여하기로 하고 약 47억원을 송금했다고 주장한다. 투자금 일부는 스카이블루 법인 계좌로 송금됐고 일부는 골프장 카트 구매비 명목으로 정씨가 지정한 한국 계좌에 입금됐다는 게 투자자 측 설명이다. 장부라며 낸 증거, 알고 보니 스카이블루 주주명부 코레이트자산운용 별도 재판⋯뒤집힌 지배구조 쟁점 함씨와 김씨는 2년이 넘도록 증자 절차가 등록되지 않았고 자신들의 지분도 필리핀 SEC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작성된 주주명부에도 함씨와 김씨의 이름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투자자 측은 투자금을 받고도 약속한 지분을 발행하지 않은 행위가 사기와 배임 등에 해당할 수 있다며 형사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허위 내용이 포함된 GIS를 고의로 인증하거나 제출한 사실이 입증될 경우 필리핀 개정회사법 제162조의 허위·부정확 보고서 인증 규정이 문제될 수 있다. 지분을 탈취했다는 의혹을 받는 정씨는 스카이블루 매각을 최대주주 동의 없이 진행하기도 했다. 투자자 측은 스카이블루 주요 자산을 처분하려면 회사 주주 3분의 2 이상의 특별결의와 스카이블루 지분 99.9%를 보유한 모회사 JBC의 적법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매각 상대방으로는 한국토지신탁 자회사인 코레이트자산운용 측이 거론됐다. 골프장 관련 공사에는 포스코더샵 아파트 건설에도 참여한 다원이 시공사로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판결이 스카이블루의 자산매각 자체를 무효로 판단한 것은 아니다. 해당 매각의 적법성은 별도로 제기된 탈락(Tarlac) 특별상업재판소 사건에서 심리되고 있다. 다만 이번 판결로 2024년 8월29일 이후 JBC의 GIS와 지배구조 변경이 무효로 판단된 만큼, 적법하지 않은 JBC 지배구조를 토대로 스카이블루의 매각 승인권이 행사됐는지가 별도 재판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특히, 스카이블루 골프장 부지는 필리핀 국유지와 관련돼있어 기지전환개발청(BCDA)의 승인이나 동의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별도 사건에서 다뤄질 쟁점이다. 2025년 10월 매각 절차가 BCDA의 승인 아래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승인 절차의 미비만으로 거래가 당연히 무효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현재 별도 가처분 사건에는 BCDA도 피고로 포함돼있다. 골프장 매각 따로 재판 이번 판결이 정씨에 대한 형사 유죄판결은 아니다. 그러나 법원이 한국인 투자자들을 JBC의 적법한 주주로 인정하고 2024년 8월29일 이후 제출된 GIS를 모두 무효화하면서, 기존 투자자들이 적법한 절차 없이 회사 지배구조에서 배제됐다는 주장은 상당 부분 힘을 얻게 됐다. 150억원대 투자금과 골프장 자산을 둘러싸고 시작된 이른바 ‘현실판 카지노 차무식’ 사건은 이제 JBC 지배구조 복원과 스카이블루 자산매각의 적법성, 관련자들의 형사책임을 가리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