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가끔 실패할 수 있고, 정책 역시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국가 정책이 같은 무게를 갖는 것은 아니다. 세금 제도는 일부 수정할 수 있고, 복지 정책은 보완할 수 있으며, 행정 절차 역시 현실에 맞게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자유, 그리고 적법 절차를 다루는 형사사법제도만큼은 그 무게가 다르다.
한번의 잘못된 제도 설계는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와 관련해 “부작용이 생기면 빨리 고쳐야 한다”는 취지로 언급한 것은 우리 정치가 얼마나 위험한 입법 문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정 장관은 지난 3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신임 검사 임관식 직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선의를 갖고 새로운 제도를 설계했지만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할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며 “형사사법제도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안전을 지키는 데 너무나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부작용으로 피해자들의 피해가 악화하거나 제대로 보호되지 않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에 현장의 실상과 맞지 않는다면 신속히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물론 법과 제도는 완벽할 수 없다. 어느 법이든 시행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으며, 그때는 보완하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과 ‘충분히 예견 가능한 문제를 알면서도 일단 시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점이다. 후자는 정책 실패가 아니라 입법 책임의 방기다.
국회는 법안심사소위원회 심사를 진행했고 일부 의원 주최 토론회도 열렸지만,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을 바꾸는 법안에 걸맞은 폭넓은 공청회와 사회적 숙의가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가 김용민·최민희·이성윤 의원 등과 함께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 토론회(지난달 16일), 같은 당 홍기원 의원 등이 ‘피해자가 바라보는 바람직한 형소법 개정 방향’ 토론회(지난달 24일)를 가졌을 뿐이다.
입법은 실험이 아니다. 국회가 법을 만드는 이유는 사회가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충분한 검토와 토론을 거쳐 가장 합리적인 규범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특히 형사사법제도는 국민의 기본권을 직접 제한하는 영역이다. 수사기관의 권한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누가 보완수사를 담당할 것인지, 어느 기관이 사건의 완결성을 책임질 것인지는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라 헌법상 적법 절차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이런 제도를 두고 “문제가 생기면 고치면 된다”는 접근은 순서가 뒤바뀌었다. 원래는 부작용을 최대한 예측하고 검증한 뒤 법을 시행해야 한다. 그런데 시행부터 해 보고 나중에 수정하겠다는 발상은 국민을 사실상 정책 실험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런 방식이 한국 정치에서 점점 하나의 문화처럼 굳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수년간 굵직한 법안들은 충분한 사회적 합의보다 ‘정치적 속도’가 우선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될 때마다 “시행해 보고 문제가 있으면 고치자”는 말이 반복됐다. 하지만 법은 스마트폰 운영체제가 아니다. 오류가 발견됐다고 하루아침에 업데이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형사사법제도는 더욱 그렇다. 보완수사권이 폐지된 이후 사건 처리 과정에서 혼선이 발생하거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억울하게 기소되거나 반대로 충분한 수사가 이뤄지지 못해 피해자가 구제를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사후 입법으로는 이미 발생한 피해를 되돌릴 수 없다.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잃어버린 시간과 명예는 온전히 회복되지 않는다.
입법자는 흔히 “완벽한 제도는 없다”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히 검토한 뒤에도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할 수 있는 말이지, 검토 자체를 생략해도 된다는 면죄부는 아니다. 특히 국가 형벌권을 다루는 법률에서는 더욱 그렇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가 법을 바라보는 태도다. 법은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규범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입법은 정책 효과보다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법률의 완성도보다 ‘누가 더 빨리 처리했는가’가 평가 기준이 되고, 충분한 공청회와 전문가 검토는 정치적 속도전에 밀려난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은 중요하다. 그러나 다수결은 토론을 대신하는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충분한 숙의 끝에 최종 결정을 내리기 위한 절차다. 입법의 정당성은 숫자가 아니라 과정에서 나온다. 국민이 국회에 입법권을 맡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형사사법제도는 어느 특정 정권의 것이 아니다. 검찰의 권한을 확대하든 축소하든, 경찰의 권한을 조정하든, 그 기준은 오직 국민의 권리 보호여야만 한다. 특정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나 개혁이라는 구호만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제도 개편의 명분이 아무리 선하더라도 절차와 검증이 부실하다면 결과 역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국민은 실험용 쥐가 아니다. 국가가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국민이 시행착오를 감수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형사사법제도에서 한번의 오류는 한 사람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고, 그 상처는 어떤 후속 입법으로도 완전히 치유되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입법은 빠른 입법이 아니라 신중한 입법이다. 정치는 속도를 자랑할 수 있지만, 법은 신뢰를 얻어야 한다. “부작용이 생기면 고치면 된다”는 말은 겸손한 태도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의 기본권을 다루는 법률 앞에서는 그 말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입법은 실패를 전제로 하는 도전이 아니라, 실패를 최대한 막기 위한 책임의 과정이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가 법치주의를 지켜야 하는 이유며, 국회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입법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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