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미군 클럽 업주들은 돈을 미끼와 고삐로 해 기지촌 위안부가 된 여성들을 자기네의 인육시장 말뚝에 꽉 매어 놓았다. 초짜 위안부들은 포주로부터 돈을 빌려 영업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화려한 옷과 화장품은 필수품이라며 강제적으로 들이밀고는 몇십 배 비싼 가격으로 부풀려 장부에 달아 놓았다.
몽롱한 현실
숙식비 또한 그러했고, 침대, 티브이, 전축 따위도 굳이 돈까지 빌려주며 구매토록 강요하고는 빚의 굴레를 씌워 조종했다.
미군 위안부는 일본군 위안부와 별 다름 없이 죽자사자 몸을 팔아야만 했다. 포주들은 ‘꽁알’이라고 불리는 환각제 세코날을 매일 나눠 주며 꼭 먹도록 했다.
그러고 나면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사라져 하루에 수십 명의 거대한 미군 몸뚱이를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꽁알은 중독성이 아주 강해 복용량을 계속 늘여야만 몽상도 지속되었다. 한두 알에서 시작한 것이 5알, 10알, 20알, 30알…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증폭돼 심신을 파먹었다.
그 꽁알 값 또한 업주들의 장부에 빚으로 기입됐다. 모든 빚엔 이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붙어 얼마 후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꼴이 났다.
부모 형제 또는 아이가 아파 급전이 필요할 경우엔 인당수에 제 몸을 던지는 심청이 신세였다. 대부분의 기지촌 위안부는 박정희 정부에서 마련한 사육장에 기르는 암컷 짐승일 뿐이었다.
그녀들의 몸엔 관리 번호가 낙인 찍혀 있었으며, 성병에 걸리거나 걸렸다고 미군이 찍으면 몽키하우스에 강제수용되는 것이었다.
여자들의 처녀답고 건강하던 몸과 마음은 어느 새 하이에나에게 물어뜯기고 피 빨려 해골만 남은 비참한 형상이 되곤 했다.
즉, 순박한 아가씨들을 이용해 미군은 쾌락을, 포주들은 돈을 벌었던 것이다. 아니, 하나가 더 있다. 어용 강사도 인정했듯, 미군 위안부들은 한국의 총수출액에 버금갈 정도로 엄청난 달러를 벌어들였다.
즉, 그녀들의 아랫도리는 달러박스였던 셈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포주들과 군사정부는 주한미군이 계속 이 땅에 남아 있길 바랐다.
그리하여 미국 정부의 입맛에 맞게 반공 방첩을 국시로 내세운 채 미군이 그어 놓은 삼팔선 이북의 동족을 악마 새끼로 지탄하면서 유사시엔 북풍 공작의 재료로 활용하곤 했다.
북괴군 또 남침, 한미혈맹, 부국강병이니 하는 단어는 무슨 신기로운 부적처럼 중요한 선거철이나 위기 국면마다 등장해 국민들을 재차 삼차 세뇌시켰다.
결국 스토리는 정부 여당에 유리하게 반전되어 추악스런 허위나 포악한 인권 유린을 일거에 무마시키곤 했다.(그 당시엔 그랬다 쳐도 오늘날까지 계속 뻔한 북풍 공작이 먹혀든다는 건 괴상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양갈보라고 괄시받는 미군 위안부들이 번 돈은 대부분 업자의 손아귀로 들어갔으며, 그것은 미국의 요청을 받아 군사정부가 베트남에 파병한 국군 장병들이 목숨을 걸고 번 달러와 함께 국민총생산액에 포함돼 ‘부국강병의 반인반신’ 박정희 우상화에 이용되었다.
하지만 설령 그가 영웅 인신이라 미색을 좀 꽤 밝히긴 했으되, 금전 관계엔 결백했다 하더라도 사이비 교주 최태민을 비롯해 측근들은 국정을 농락하고 수만금을 횡령해 호의호식하며 국고를 물 쓰듯 거덜냈으니 그 죄를 누가 어찌 판결하랴?
침대, TV, 전축 강매
빚의 굴레 씌워 조종
청운은 몽키하우스가 어떤 곳인지 아직 잘 몰랐다. 또한 그곳에 수용된 ‘양공주’라는 이름의 여인들에 대해서도…이왕 여기까지 온 바에야 선입견 따윌 버리고 가능하면 진실상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떠도는 괴상스런 풍문을 벗어나 사실에 다가서기 위해선 우선 텅 빈 무심한 마음으로 부대껴 보아야 할 듯싶었다. 적어도 한국 사람들의 일반적인 편견과 색안경을 낀 고정관념은 넘어서고 싶었다.
인두겁을 썼지만 사람 같지 않고 십년 묵은 백여우 같은 년들. 양귀(양키)들에게 자궁을 열어 주고 그들의 커다란 말좆을 빨아 준 짐승보다 못한 년들.
동족을 그렇게 비하시키는 건 자신은 인간이라는 자부심이 강했기 때문일 텐데. 한국인들은 얼마 전 미국 대사가 “한국 사람들은 어딘지 들쥐 같은 데가 있다”고 말한 금언에 대해서는 히히 웃고 말았다. 혹시 스스로 속에 지닌 냄비 근성이 부끄러웠기 때문일까? 혹은 미친 친미 근성 때문일까? 도무지 알 길 없는 노릇이었다.
미군 위안부는 양갈보 혹은 똥치라고 경멸하면서 미국을 좋아하는 양가감정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동족을 전혀 사랑하지 못하게 된 이기심 때문일까?
처절한 전쟁의 약육강식과 생존경쟁을 거쳐 오는 동안 한국인의 마음속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냉소와 비웃음, 허위의식, 가부장적인 독재…공자의 유교를 잘못 비틀어 해석해 현실에 마구 적용한 여성 비하…몸과 정신이 같다는 동양 사상에 따르자면 육신이 더럽혀질 때 정신도 타락하는 게 된다.
만일 여자들의 몸이 사바세계의 구렁창 속에 빠져 있더라도 마음이 청정하다면 한 송이 연꽃을 피울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은 아예 무시되었다.
반면 남자들은 육체가 타락하면 가짜 마음(정신) 속에 숨고, 정신이 타락하면 몸을 번드레하게 살찌우고 닦아 위선적인 가면으로 껄껄댔다.
다만 정신이 훼손돼 미친 사람일 경우엔 그가 영육 사이에서 고뇌한 자취인 핏방울을 짓밟고 인격 전체를 말살해 버렸다.
그리하여 건강한 남자와 여자들의 마음은 가면 속에 숨은 채 저도 모르게 점점 짐승같이 변해 간 게 아닐까.
청량리나 종삼(또는 부산 완월동이나 대구 자갈마당) 등지의 국내파 창녀들에겐 좀 너그러운 척하면서 기지촌 양색시에게 가래침을 뱉는 건, 혹시 한국인들이 미국을 좋아하는 척하지만 잠재의식 속에선 왜놈에 이어 한반도를 침탈하고 여자들까지 유린하는 미군에 대한 극심한 증오가 시큼떱덜 발효해 양공주라는 이름 속에 투사된 건 아닐까?
또한 거기에 거대한 아메리카에 관한 왜소 콤플렉스까지 가미돼 질투 혹은 일종의 의처증 같은 질환을 속으로 끙끙 앓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기조차 했다.
육신은 곧 정신이라는 동양의 심오한 사상이 사이비 유교에 의해 변질된 나머지 수많은 비극이 벌어졌다.
처절한 하루
예로부터 나라를 빼앗기면 외국군에게 유린당한 여성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치욕스런 삶을 마감하곤 했다. 미국이나 프랑스 여자라고 해서 성폭행당한 후 번민을 못 이겨 자살하는 경우가 없진 않겠으나 이 땅의 여인들은 특히 심했다.
성을 터부시하면서도 자신들은 온갖 해괴스런 성유희를 즐긴 왕과 고관대작들 때문에 국력이 쇠락해 침탈당한 나라에서 여성들은 한갓 인형 노리개일 뿐이었다. 몽고군에 끌려갔다가 겨우 목숨만 붙어 돌아온 환향녀들은 이후 화냥년으로 평생토록 손가락질 받았다.
중국군과 일본군 위안부를 거쳐 또다시 미군 기지촌의 양갈보로 전락한 여인들은 과연 옛 그녀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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