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언제나 작은 균열에서 무너진다. 거창한 비리나 노골적인 청탁 때문만은 아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안일함과 “별 문제가 없지 않느냐”는 자기합리화가 쌓일 때 국민의 신뢰는 가장 먼저 무너진다. 그리고 그 균열은 생각보다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문자메시지 한 통이 그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앞서 지난 30일, 한 언론매체는 윤용근 국민의힘 의원이 “회장님, 어제 정 선배님한테 연락받았습니다. 더 잘 배려해드려야 하는데 송구합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은 장면을 포착했다. 카메라에 잡힌 휴대폰에는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이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답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논란이 일자 국민의힘에선 31일 “개인적 친분으로 가볍게 의견을 전달한 것 같다”고 밝혔다. 당사자인 윤 의원은 가타부타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최근 대한축구협회 청문회 과정에서 공개된 윤 의원과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의 문자는 그래서 더욱 씁쓸하다. “더 잘 배려해드려야 하는데 송구합니다”라는 이 짧은 한 문장이 던지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물론 일각에서는 “질의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청탁은 없었다” “개인적 친분에서 비롯된 의례적인 표현이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다. 실제로 질문을 줄여주거나 특정 사안을 덮으려는 시도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민이 분노하는 지점은 그보다 훨씬 본질적인 곳에 있다.
도대체 국회의원이 왜 청문회 증인에게 송구해야 하는가?
국회의원의 송구함은 국민을 향해야 한다. 민생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을 때, 국민의 삶을 지키지 못했을 때, 권력을 감시하지 못했을 때 국민에게 사과해야 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책무다. 그러나 청문회 증인에게 “배려하지 못해 송구하다”고 말하는 순간, 국회의원이 누구를 위해 그 자리에 앉아 있는지 국민은 혼란스러워진다.
청문회는 증인을 배려하는 자리가 아닌 검증하는 자리다.
국정감사와 함께 국회가 가진 가장 강력한 권한 중 하나는 청문회다. 국민을 대신해 권력을 감시하고, 국민을 대신해 질문하며, 국민을 대신해 책임을 묻는 자리다. 따라서 청문회에는 무엇보다 공정성과 독립성이 요구된다. 실제로 공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국민이 보기에도 공정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결과만으로 평가되지 않으며 과정 역시 평가받는다. 판사가 “친하지만 판결은 공정했다”고 말한다고 해서 국민 모두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검사가 수사 대상자에게 “더 배려하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수사는 제대로 했다”고 해명한다면 국민은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
문제는 실제 모종의 거래나 배려가 있었느냐가 아니다. 문제는 국민이 의심하게 만들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이번 논란이 더욱 우려스러운 이유는 대한축구협회를 둘러싼 국민적 피로감 때문이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부터 축구협회의 운영 문제까지 국민들은 오랫동안 답답함을 느껴왔다. 그래서 국회가 나선 것이고, 청문회도 열린 것이다. 국민은 국회의원들이 자신을 대신해 날카롭게 질문하고 진실을 밝혀주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국민이 목격한 것은 증인에게 보내는 “송구하다”는 다소 황당한 문자였다.
일부 정치권의 해명은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가볍게 주고받은 문자였다” “중대한 사안이 아니”라는 해명은 사안의 본질을 외면함을 넘어 실소를 금할 수 없게 한다. 공직자에게 있어 친분은 변명이 아니라 오히려 더 엄격한 자기 절제를 요구하는 이유가 돼야 한다. 국민은 국회의원이 자신과 친한 사람에게조차 냉정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공인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종종 국민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국민은 법률 전문가가 아니지만, 무엇이 상식이고 어떤 것이 비상식인지는 누구보다 정확하게 판단한다. 청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되지 않는지는 차후의 문제다. 국민은 이미 “왜 국회의원이 증인을 배려하려고 했는가”라는 가장 단순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 정치가 보여주는 익숙한 모습이다. 논란이 발생하면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문제를 축소하려 한다. 국민이 분노하면 "오해가 있었다"고 말하고, 비판이 거세지면 "본질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치에서 본질은 언제나 국민이 결정한다. 국민이 공정성을 의심한다면 그것이 바로 본질이다.
국회의원은 청문회장에 친구를 만나러 가는 사람이 아니다. 국민의 질문을 대신 던지러 가는 사람이다. 그 순간만큼은 어떤 친분도, 어떤 관계도, 어떤 사적 감정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 국민은 국회의원이 누구와 친한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국민은 국회의원이 누구의 편에 서 있는지만 궁금해할 뿐이다.
이번 논란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송구하다”는 표현 그 자체다. 송구함이란 ‘미안함·책임감’을 담은 말인데, 청문회 증인에게 국회의원이 이 같은 감정을 표현했던 적이 있었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민생은 외면한 채 정쟁에 몰두하는 정치도 문제지만, 국민이 부여한 감시 권한을 사적 친분과 혼동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더욱 위태로워진다. 국민이 정치권에 요구하는 것은 거창한 개혁이 아니다. 너무나 기본적인 원칙, 국민의 편에 서라는 것이다.
국민은 국회의원이 누군가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다. 국민을 대신해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질문하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다.
윤 의원이 정말 송구해야 할 대상은 정몽규 전 회장이 아니다. 청문회를 지켜보며 또 한 번 정치의 민낯을 확인해야 했던 국민들이다. 그리고 정치권 역시 이번 논란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문자 한 통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민주주의는 그런 ‘별것 아닌 것’들을 지켜내는 과정 속에서 유지된다.
국민이 국회의원에게 맡긴 것은 배려의 권한이 아닌 감시의 권한이다. 그 권한은 오직 국민만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 그것이 무너지는 순간 청문회는 진실을 밝히는 자리가 아니라, 권력과 친분이 교차하는 무대가 되고 만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배려받아야 할 사람은 정몽규가 아닌 국민이다. 정치가 그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잊는 순간, 국민은 가장 먼저 정치에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kangjoomo@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