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구조 개편 관계에서 현직 대통령의 연임 개헌 문제 등은 주권자인 국민 여론과 국민 선택의 문제다.”
지난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야권에서 현직 대통령의 임기 연장 개헌을 반대한다’는 취지의 질문에 조정식 국회의장은 이같이 답했다.
논란이 일자 조 국회의장은 이튿날인 29일, 자신의 SNS에 “헌법 128조 2항은 ‘대통령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이 이뤄지더라도 당시 대통령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의 연임은 개헌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썼다.
그는 “본의와 다르게 오해와 논란을 불러일으켜 유감”이라면서도 “여아가 합의 가능하고 국민이 찬성하는 개헌 주제들을 중심으로 추진해 대한민국 미래를 여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국회의장의 발언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통령의 임기와 권력구조를 결정하는 헌법 문제라면 말 한마디조차 무게를 달리해야 한다.
언뜻 보면 민주주의의 원칙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대한민국의 헌법을 이야기할 때 이 말은 가장 위험한 말이 될 수도 있다. 특히 국회의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국회의장은 일반 정치인이 아니며, 원칙적으로 여야도 아닌 대한민국 입법부의 수장이다. 권력을 견제해야 할 사람이 권력의 확장을 연상시키는 발언을 한다면 국민들은 당연히 의구심을 품게 된다. 지금 국민들이 묻는 것은 하나다. 왜 하필 지금 대통령 연임 문제인가.
대한민국 헌법은 수많은 국민의 희생과 피, 그리고 눈물 위에 세워졌다. 우리는 이미 과거 역사를 통해 권력이 얼마나 쉽게 독점될 수 있는지를 경험했다. 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했던 시대가 있었고, 헌법이 권력의 도구로 전락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대통령의 권력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그것이 오늘날 대통령 5년 단임제가 만들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현행 헌법이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다. 권력구조 개편은 언제든 논의할 수 있다.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개헌도 가능하다. 하지만 개헌 논의의 출발점은 오직 국가의 미래여야 한다. 특정 정치 세력도, 특정 정치인도, 살아 있는 권력이어선 곤란하다.
대통령 연임이라는 단어는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결코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그 단어는 언제나 권력 연장의 그림자를 함께 가지고 있었기에 국민들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학술 토론회에서 던질 수 있는 정치학적 질문이 아닌, 헌정 질서를 바꿀 수 있는 가장 민감한 정치적 화두다.
국회의장이 정말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고 싶었다면 대통령 연임을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권력구조 개편과 지방분권, 국민 기본권 강화, 국회의 권한 조정 등 개헌 논의의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왜 가장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대통령 연임 문제가 먼저 등장했는가. 국민들이 의심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개헌 논의를 주도하는 사람이 바로 국회의장이라는 사실이다.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헌법개정자문위원회를 출범시키겠다는 사람이 대통령 연임 가능성을 국민의 선택 문제라고 이야기한다면 개헌 논의의 중립성을 어떻게 국민들에게 설명할 것인가.
헌법은 살아 있는 권력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를 위해 존재한다. 오늘의 권력을 위해 만든 헌법은 내일의 권력자에게 가장 위험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들은 권력자의 손이 헌법에 쉽게 닿지 못하도록 수많은 장치를 만들어놨다.
국민의 선택이라는 말 역시 무한정 확장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다수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헌법이라는 울타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유지되는 것이다. 만약 국민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도 무너질 수 있다.
독재는 언제나 국민의 이름을 빌려 시작됐다. “국민이 원한다” “국민이 선택했다” “국민을 위한 결정” 등의 말은 수많은 독재자들이 가장 즐겨 사용했던 표현이었다. 그래서 성숙한 민주주의는 오히려 국민의 선택조차 헌법으로 제한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미 여러 차례 헌법이 정치의 도구가 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헌론이 등장했고, 권력구조 개편론 역시 반복됐다. 그래서 국민들은 개헌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가장 먼저 “누구를 위한 개헌인가”를 묻는다. 그것은 정치 불신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당연한 질문이다.
국회의장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 상상력이 아니라 헌법적 책임감이다. 대통령의 권력을 이야기하기 전에 권력을 어떻게 제한할 것인지를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대통령 연임 가능성을 언급하기 전에 권력의 집중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그것이 입법부 수장의 책무다.
더욱이 국회의장은 누구보다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자리다.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이야기할 수 있으며, 여야 대표 역시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장은 다르다. 국회의장은 특정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헌법과 국회를 대표하는 자리다. 따라서 국회의장의 말은 언제나 ‘헌법의 언어’여야 한다.
이번 논란이 단순한 말실수였다고 하더라도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는 아니다. 헌법은 한번 흔들리기 시작하면 그 파장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더욱이 대통령 임기 문제는 국민적 합의 없이 단 한 걸음도 나아가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개헌은 가능하지만, 권력의 냄새가 나는 순간 국민의 신뢰는 무너진다.
권력은 본성은 언제나 더 오래 머물기를 원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권력을 믿지 않고 제도를 믿는다.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니라 헌법을 믿는다. 대통령이 누구인지에 따라 원칙이 달라진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내가 지지하는 대통령에게는 허용하고 반대하는 대통령에게는 허용하지 않는 것 역시 민주주의가 아니다. 원칙은 언제나 모든 권력자에게 동일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권력의 시간을 늘리는 개헌이 아닌, 민주주의의 시간을 늘리는 개헌이다.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개헌이며, 오늘의 권력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개헌이어야 한다. 국회의장이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것은 특정 정치인의 정치적 미래가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의 미래다. 권력은 유한해야 하고 헌법은 영속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오래된 약속이다.
조 국회의장은 국민의 선택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헌법의 원칙을 이야기했어야 했다. 국회의장은 권력의 문을 여는 사람이 아니라 권력이 넘지 못할 선을 그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헌법의 문지기가 권력의 유혹 앞에서 침묵하거나 흔들리는 순간, 민주주의는 가장 먼저 상처를 입는다. 국민은 권력의 연장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연장을 원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단 하나, 헌법은 결코 살아 있는 권력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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