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길 만드는 나라가 세계 지배한다

인프라 넘어 국가 전략이다

지난 27일 브라질을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은 화상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며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유가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며 석유 최고가격제와 유류세 인하 정책을 당분간 유지하고, 물가 안정을 위한 선제 대응을 주문했다. 국제 물류 불안에 대응하는 민생 전략을 제시한 것이다.

정부는 중동 홍해를 둘러싼 긴장이 계속되고 국제유가가 한 달 사이 40% 가까이 급등하자, “25일 오전 12시부터 4주간 적용될 8차 석유 최고가격을 기존 7차 최고가격으로 동결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국내 정유사들도 수에즈 운하와 이집트의 송유관을 연계한 새로운 원유 운송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일부 원유는 당초 한 달이면 도착할 물량이 두 달 가까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실제로 국제 물류길에 대한 불안은 유가에서 끝나지 않는다. 원유와 원자재 운송 차질 우려가 커질 때마다 국제 증시는 해운·에너지 관련 종목을 중심으로 출렁이고, 제조업과 소비시장도 원가 부담을 즉각 반영한다. 운송비 상승은 기업의 생산비와 물류비를 끌어올리고, 결국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국민의 장바구니까지 흔든다.

지금은 길 하나가 막히거나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만으로도 유가와 증시, 물가가 출렁이고 산업과 국민 생활까지 함께 흔들리는 시대다. 필자는 이 상황을 보며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진짜 힘은 결국 ‘물류의 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지구본을 천천히 돌리며 세계의 물류길을 따라가 봤다. 그 결과 가장 유리한 물류 환경을 갖춘 대륙은 단연 유럽이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다.

최근 유럽에서는 독일과 덴마크를 연결하는 페마른벨트 해저터널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예정대로 2029년 완공되면 세계 최장급 침매식 해저터널이 탄생한다. 그동안 배를 이용하거나 크게 우회해야 했던 길이 터널 하나로 연결되면서 이동 시간과 물류비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교통망을 갖춘 유럽이 지금도 새로운 길을 만드는 이유는 분명하다. 짧은 길을 만드는 것이 곧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투자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문명의 발전은 언제나 길의 발전과 함께했다. 산을 만나면 돌아가지 않고 터널을 뚫었고, 강을 만나면 다리를 놨다. 바다를 만나면 운하를 건설했고, 하늘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항로를 개척했다. 이동거리가 짧아질수록 시간이 줄고 비용이 낮아지며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문명을 발전시킨 것은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길이었다.

지금도 세계는 더 짧은 길을 만들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태국의 크라 운하는 말라카 해협을 우회하는 새로운 해상 물류축으로 꾸준히 논의되고 있고, 니카라과 운하 역시 파나마 운하를 보완할 대안으로 여러 차례 추진되고 있다.

경제성과 환경, 국제정치라는 현실적인 과제 때문에 아직 완성되지는 못했지만 세계가 새로운 물류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앞으로 세계 교역량이 계속 늘어난다면 이들 프로젝트는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인 운하는 길을 줄이는 것이 얼마나 큰 경제적 가치를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수에즈 운하는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선박이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가지 않도록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했다. 중국 상하이에서 튀르키예로 향하는 일부 항로의 경우 희망봉을 이용할 때보다 운항거리를 약 45% 줄이고 운항일수도 약 18일 단축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파나마 운하 역시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해 선박이 남아메리카 최남단을 돌아가는 수천㎞의 항해를 줄여주고 있다. 운하 하나가 항해시간과 연료비, 선박 운용비를 동시에 줄이면서 세계의 생산지와 소비시장을 더욱 가깝게 만든 것이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해협도 세계 물류의 거대한 지름길 역할을 한다. 말라카 해협은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연결해 동아시아와 유럽·중동을 오가는 선박들이 인도네시아 군도를 크게 우회하지 않도록 하고, 호르무즈 해협은 걸프 지역의 원유가 세계시장으로 나가는 핵심 통로가 되고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은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고,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홍해와 인도양 사이를 이어 수에즈 운하의 효율을 높이고 있다.

세계 여러 대륙 가운데 이 같은 연결의 철학을 가장 먼저 체계적으로 실천한 곳이 바로 유럽이다. 유럽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대륙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유럽은 크고 작은 반도와 섬, 만과 해협이 이어지고 북해와 발트해, 지중해와 흑해, 대서양이 하나의 생활권처럼 연결돼있다.

대부분의 나라가 바다와 가까워 천연항을 만들기 쉽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해상교역이 발달할 수 있었다. 자연이 이미 물류 경쟁력을 선물한 셈이다.

물론 큰 대륙에도 중요한 내륙 물류통로 역할을 하는 강이 있다. 넓은 유역과 충분한 강수량을 갖춘 대륙에는 자연스럽게 거대한 강이 형성된다. 북아메리카에는 미시시피강이 있고 중국에는 장강이 있으며 유럽에는 라인강과 도나우강이 있다.

미국은 미시시피강을 통해 내륙까지 대량 화물을 저렴하게 운송했고, 중국 역시 장강과 대운하를 연결해 세계 최대 제조업 국가로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강의 크기가 아니라 그 강을 얼마나 효율적인 물류망으로 발전시키느냐다.

유럽은 자연이 준 조건에 만족하지 않았다. 부족한 곳은 직접 연결해 운하를 만들었다. 라인-마인-도나우 운하는 북해와 흑해를 하나의 내륙수로로 연결했고, 킬 운하는 북해와 발트해를 이어 선박들이 덴마크를 크게 우회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었다. 코린트 운하는 그리스 반도를 돌아가던 항로를 단축했고, 네덜란드는 전국을 운하망으로 연결해 물류와 치수, 도시발전을 동시에 이뤄냈다.

즉 유럽은 강과 바다를 하나의 거대한 물류망으로 연결한 대륙이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이명박(MB)정부가 추진했던 한반도 대운하 구상과 4대강 사업을 떠올린다. 당시 환경성과 경제성을 둘러싼 논란은 컸지만, 우리나라의 강을 국가 인프라와 연결의 관점에서 바라본 문제의식만큼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한강과 낙동강을 중심으로 내륙 수운의 가능성을 모색했던 발상은 국가의 새로운 길을 고민한 시도였으며, 당시 필자 역시 그 큰 방향에는 찬성했다. 정책의 성과와 부작용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길을 상상했던 도전정신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유럽은 육로에서도 연결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알프스산맥을 돌아가는 대신 몽블랑 터널을 뚫어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연결했고, 세계 최장의 철도 터널인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은 알프스를 관통하며 유럽 남북 물류를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한 채널 터널은 바다마저 육지처럼 만들었다.

지금 건설 중인 페마른벨트 해저터널도 같은 철학에서 출발했다. 산은 터널로, 바다는 해저터널로 연결하는 것이 유럽의 경쟁력이다.

유럽의 강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늘길 역시 국가 간 협력을 통해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여러 나라의 영공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항공 네트워크는 항공 물류와 여객 운송의 경쟁력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육로와 해로, 항로가 하나의 시스템처럼 움직이면서 유럽은 세계 최고의 물류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결국 유럽은 운하와 터널, 자유로운 하늘길을 통해 ‘연결의 문명’을 완성한 대륙이다.

대한민국도 결코 불리한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이며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이점은 수출 중심 국가인 대한민국의 가장 큰 경쟁력 가운데 하나다. 부산항은 세계 최고 수준의 환적항이고, 광양항과 인천항, 평택·당진항은 동북아 물류의 핵심 거점으로 성장하고 있다.

세계 주요 시장으로 비교적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은 우리에게 큰 자산이다. 바다를 활용할 수 있는 잠재력만큼은 유럽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연결의 가치를 실천해 왔다. 백두대간을 넘기 위해 수많은 고속도로와 철도 터널을 뚫었고, 서해대교와 인천대교, 거가대교 같은 대형 교량을 건설해 바다를 육지처럼 연결했다. 최근에는 가덕도신공항과 철도망 확충, 해저터널 구상 등 국가 물류 인프라도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지하차도를 포함한 도로 터널이 약 4000개, 철도 터널까지 합하면 약 5000개의 터널이 전국 곳곳을 연결하고 있다.

이제 연결의 발상을 더욱 확장해야 할 때다. 대한민국의 다음 물류전략은 단순한 도로 확장이 아니라 국토와 바다, 대륙을 새롭게 연결하는 장기 프로젝트여야 한다.

첫째, 부산·울산·포항·동해·속초를 하나의 산업축으로 연결하는 동해안 종단 물류벨트를 구축해야 한다. 북극항로 시대가 본격화되면 동해안은 유라시아와 가장 가까운 대한민국의 새로운 관문이 될 수 있다.

둘째, 평택항에서 충북을 거쳐 강릉과 동해를 잇는 서해~동해 횡단 화물철도(물류축)를 구축해야 한다. 수도권을 우회하는 새로운 동서 물류축이 만들어지면 국가 물류망은 훨씬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셋째, 미래세대를 위한 초장기 국가 프로젝트로 제주 해저터널도 연구할 가치가 있다. 관광은 물론 물류와 에너지, 국가기간망을 하나로 연결하는 새로운 국토 전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넷째, 장기적으로는 남북관계와 동북아 정세의 변화에 맞춰 압록강과 두만강을 국제 공동운하로 개발하는 구상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한과 중국이 공동 개발하고 장차 대한민국까지 연결된다면 동북아 경제협력의 새로운 상징이 될 수 있다.

다섯째, 오랫동안 논의돼 온 한일 해저터널도 장기적인 국가 비전 속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부산과 대마도를 거쳐 후쿠오카를 연결하는 이 구상은 정치적·경제적 과제가 적지 않지만, 언젠가 동북아 경제협력이 본격화된다면 대한민국을 일본과 유라시아를 잇는 동북아 물류 허브로 도약시키는 역사적인 연결축이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 물류정책을 통합적으로 설계하고 조정할 컨트롤타워를 구축하는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도로와 철도, 항만과 공항, 해운과 항공물류가 부처별로 나뉘어 추진되면서 국가 전체의 연결 전략을 종합적으로 설계하는 체계가 부족하다.

이제 국내 육로와 해로, 항로를 하나의 유기적인 국가 물류망으로 통합 관리하고, 미래 물류 인프라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설계하는 대통령 직속 ‘국가물류전략위원회(가칭)’ 설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이재명정부 출범 당시 이현우 전 CJ대한통운 사장이 제안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물류는 더 이상 개별 교통수단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인 만큼, 이를 총괄하는 국가 차원의 전략기구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

유럽은 바다와 강을 연결했고 산은 터널로 뚫었으며, 하늘까지 하나의 길로 만들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물류 경쟁력을 갖췄다. 그 결과 산업이 성장했고 무역이 확대됐으며 세계 경제를 이끄는 중심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 역시 반도라는 축복받은 지리적 조건을 가진 나라인 만큼 바다와 철도, 도로와 항공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대한민국 물류지도’를 새롭게 그려야 한다.

MB정부는 한반도 대운하 구상과 4대강 사업을 통해 국토와 강을 새로운 국가 인프라의 관점에서 바라보려 했다. 지금 정부도 공항과 철도, 항만망을 확충하고 있다. 정책의 이름과 방식은 정권마다 달라질 수 있지만 길을 만드는 국가 전략만큼은 정권을 넘어 이어져야 한다. 운하든 터널이든 철도든 항만이든, 대한민국의 미래는 얼마나 빠르고 안전하며 효율적으로 연결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문명의 영토를 넓힌 것은 전쟁이었지만, 문명을 번영시킨 것은 결국 길이었다. 다음 세기의 패권은 가장 넓은 영토가 아니라 가장 촘촘한 연결망과 가장 효율적인 길을 가진 나라가 차지할 것이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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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가득한 보완수사권 폐지 후폭풍

의문 가득한 보완수사권 폐지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70년 넘게 유지된 우리나라 형사제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와 맞물려 사회에 많은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정부 때부터 힘을 키워온 경찰은 이번 개정안으로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됐다. 동시에 경찰은 국민의 질문에 답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경찰을 믿을 수 있나? 지난달 31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형소법 개정안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제 검사는 사법경찰관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할 권한만 갖는다.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이래 72년 만에 가장 큰 사법체계 변화를 마주하게 됐다. 격변하는 형사제도 형소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주도로 이뤄졌다. 표결 결과 재석 의원 178명 가운데 찬성 175명, 반대 2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민주당 곽상언 의원과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이 반대했고, 민주당 이소영 의원이 기권표를 던졌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보완수사권을 포함해 오는 10월 신설되는 공소청 검사의 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수사 과정에서의 모든 자료를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기록하도록 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장치로는 경찰이 사건을 불송치할 경우 고소인‧피해자‧고발인이 이의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필요한 사건 기록 열람‧등사 권한도 부여했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그동안 민주당이 주도해 온 검찰개혁은 마무리 수순에 접어 들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해 9월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라 오는 10월2일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하는데, 공소청 검사는 공소 제기와 재판 유지만 맡는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청와대에서 환영의 메시지가 나오면서 가능성은 사라졌다. 이날 청와대는 “국회의 입법 과정과 최종 판단을 존중한다”며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통해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막는 한편, 피해자와 국민 인권 보호 수준을 높임으로써 형사사법 시스템이 국민 곁으로 한걸음 더 다가서도록 할 것”이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국민 10명 중 6명 반대 여당 주도 본회의 통과 이 대통령은 거부권 대신 ‘사필귀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삶을 더욱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해 모든 권력기관은 예외 없이 국민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사필귀정의 필연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사·기소 분리는 비정상적 형사사법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첫걸음”이라고도 했다. 국회 본회의 통과, 국무회의 의결 등 법안 공포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사법체계는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 ‘경찰’이 놓였다. 문재인정부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가 깨지면서 경찰에 실리기 시작한 힘은 이번 형소법 개정안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기까지 검찰에 ‘보완수사권’이라는 견제 기능을 남겨둘지를 두고 진통이 상당했다. 형소법 개정안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만큼 경찰에 집중되는 권한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보완수사권은 그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다. 실제 보완수사권 폐지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는 압도적으로 반대가 높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의 의뢰로 지난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보완수사권 존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62.5%가 ‘검찰에 보완수사 권한을 줘야 한다’고 답했다.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31.8%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53.8%가 ‘보완수사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모든 지역에서 과반을 기록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73.1%로 가장 높았고 서울 64.7%, 호남권에서도 59.9%가 ‘보완수사권을 존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남녀노소, 지지 정당,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는 쪽에 손을 든 것이다. 존치 의견 우세해도… 존치 찬성자들은 경찰의 수사 능력을 의심했다. 검찰보다는 경찰이 국민과의 접점이 더 넓은 상황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수사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장윤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형소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진 감도 없지 않았다. 장윤기 사건은 지난 5월 광주 광산구 월계동 남부대학교 인근에서 장윤기가 여고생을 흉기로 살해한 내용이다. 이 여고생의 비명을 듣고 달려간 남학생도 크게 다쳤다. 장윤기와 여고생이 일면식도 없는 사이로 알려지면서 ‘묻지마 범죄’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장윤기 사건에 경찰인 그의 아버지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장윤기의 부친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가 사건에 개입해 증거를 인멸하고 수사 관련 정보를 누설하는 등의 행위를 한 게 검찰의 보완수사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장윤기의 아버지가 아들의 방에서 없앤 리얼돌은 성범죄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로 여겨졌다. 10대 여고생이 피살된 사건에서 경찰이 가해자 측과 유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보완수사권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경찰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라도 남겨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더해졌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모씨는 보완수사권 폐지와 관련해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김씨는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무소속 한동훈 의원 주최로 열린 보완수사권 폐지 긴급 간담회에 참석했다. 피해자들 나섰지만… 김씨는 “세금을 내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지 않고 왜 그들(범죄자)을 보호하고 감싸려고 하는지, 죄를 짓지 않은 피해자는 잘 모르겠다”며 “변호사와 검사도 반대하고 경찰도 난리 나고 피해자도 반대하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 이 시점에도 피해받는 피해자에 대한 장치는 아무것도 없다는 게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도 형소법 개정안에 대한 국무회의 의결 전 경찰 수사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형소법 개정안이 국회 입법권을 부정할 만큼 심각하진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경찰에 집중되는 거대한 권한을 걱정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경찰이 엄청난 권한을 갖게 되는데 ‘앞으로 안전할 걸까’라는 우려를 안 할 수가 없다”며 “경찰 스스로 책임 의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높은 책임감으로, 높은 윤리 의식으로 엄정하고 중립적으로 철저하게 범죄 피해자들이 억울하지 않게, 또 억울한 피의자가 생기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수사 비리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수사에 관한 비리를 저지르면 국민이나 피해자로서는 내 사건을 저렇게 망가뜨려서 가해자, 피해자를 뒤집어 놓으면 자살하고 싶을 정도가 됐는데, 담당 경찰은 감봉 몇 개월하고 또 딴 데 가서 수사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엄청난 힘” 우려하면서도 거부권 요구에 “심각하지 않아” 이어 “(경찰이) 증거를 숨기고 없애 버리고 내 사건을 뒤집어서 반대로 만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엄중함을 갖고 있냐. 전 자신이 없다”며 “수사와 관련된 비리나 비위에 대해 더 높은 책임을 요구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명백한 수사상의 비위가 발생하면 최소 해임, 파면 등의 조치를, 아니면 아예 영구적으로 수사를 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는 등의 엄중한 책임을 언급했다. 형소법 개정안 통과로 사실상 수사의 전 과정을 맡게 된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경찰청은 지난 4일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과 전국 시‧도 경찰청장, 경찰서장 등이 참석한 지휘부 회상회의를 열었다. 형소법 개정안에 따른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현장 수사관과 중간관리자를 대상으로 개정 내용을 집중 교육하고 보강이 필요한 수사 인력과 예산을 검토해 관계 부처와 협의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이 나왔다. 유 직무대행은 “국민께서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신속성, 범죄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경찰의 비대화 등에 대해 걱정하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경찰은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또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경찰도 예외가 아니”라며 “경찰관 배우자 및 존‧비속 상피제와 경찰 수사 인권‧감찰 조사기구, 경찰 수사 개혁위원회 권고 사항 등을 포함한 촘촘한 통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아울러 “경찰 수사의 유일한 지향점은 국민이며 기준은 오직 법과 원칙”이라며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국민의 신뢰 속에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분골쇄신의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불신 의심 극복되나 이 대통령의 당부, 경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경찰 내부에서도 이번 개정안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에 일이 몰려 과부하가 걸린 부분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수사에 대한 책임까지 모두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