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은 화면 속에서 작동하지만 그 기반은 현실의 전기와 물이다. 챗봇의 답변과 대규모 학습은 데이터센터에서 처리되고, 데이터센터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냉각 설비가 있어야 돌아간다.
지난 1월22일 AI 기본법이 시행되면서 제도의 기반은 마련됐지만, 규제 적용에는 계도기간이 남아 있고 AI 산업의 성장은 법과 알고리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전력망과 용수시설이 제때 구축되지 않으면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의 투자 일정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핵심은 시설마다 걸리는 시간이 다르다는 점이다. 일부 반도체 공장은 착공 후 약 2년 안팎이면 장비 반입 단계까지 갈 수 있다. 반면 대규모 송전선로와 변전소, 용수관로는 입지 선정과 환경 검토, 주민 협의와 보상을 거쳐야 하므로 사업에 따라 7년에서 10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이를 “공장은 2년, 전선은 10년”이라고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다만 공장 건설보다 기반시설 준비가 늦어질 위험이 크다는 문제 제기는 타당하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수요로 거론되는 16기가와트도 정확히 읽어야 한다. 이는 장기적인 접속·계약 수요의 누계에 가깝고, 어느 한순간 실제로 쓰는 최대전력과 같은 숫자가 아니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신청량도 실제 가동 수요와 구분해야 한다.
중복 신청과 사업 철회 가능성을 걸러 내고 연도별 가동률과 동시부하율을 반영해야, 전력망을 지나치게 크게 짓거나 반대로 부족하게 준비하는 오류를 피할 수 있다.
전기만 준비해서도 안 된다. 반도체 제조에는 많은 양의 초순수, 즉 아주 깨끗한 물이 필요하고, 이를 공급할 취수·정수시설과 관로도 함께 지어야 한다. 전력과 용수 가운데 하나만 늦어도 전체 사업은 계획대로 돌아가기 어렵다. 따라서 산업단지 승인, 송전망 보강, 용수 공급을 따로따로 관리하지 말고 하나의 통합 일정으로 묶어야 한다.
관계기관이 같은 자료를 공동으로 검토하고, 기업이 비슷한 서류를 기관마다 되풀이해 내는 구조도 줄여야 한다.
지난해 9월 시행된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은 계획과 입지, 보상 절차를 정비했고 시행령과 시행규칙도 함께 갖췄다. 그러나 시행 열 달이 지난 지금, 실제 사업 기간이 얼마나 줄었는지 판단할 공개 통계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행정이 이미 빨라졌다”거나 “병목이 소송으로 옮겨 갔다”고 단정하기보다, 사법 절차가 새로운 병목이 되는지를 자료로 확인해 가야 한다.
정책 방향은 세 가지다. 첫째, 전력망 사건을 다루는 재판의 전문성을 높이고 소송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되, 주민의 재판받을 권리와 충분한 심리는 보장해야 한다. 둘째, 공간정보와 AI로 복잡한 권리관계, 겹치는 규제, 재해 위험을 사업 초기에 점검해야 한다. 이 제도는 갈등을 없애는 장치가 아니라 위험을 일찍 발견하는 도구로 설계해야 한다. 셋째, 지역별 공급 여건과 전력망 혼잡 비용을 도매시장 가격에 단계적으로 반영하고, 효과를 검증한 뒤에 소매요금 적용을 논의해야 한다.
정책 제안은 강한 표현이 아니라 정확한 구분에서 신뢰를 얻는다. 확인된 사실과 전망, 정책적 판단을 섞지 말아야 한다. 전력 수요는 신청량과 실수요를 나누고, 가격은 도매와 소매를 구분하며, 제도의 효과는 기대와 성과를 구별해야 한다. 필자 역시 법령과 통계, 기술 기준을 다시 대조해 확인되지 않은 수치는 빼고, 가정한 부분은 가정이라고 밝히고자 한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더 많은 시설을 발표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공장과 데이터센터, 전력망과 용수시설이 같은 시간표 위에서 완성되게 하는 것, 그것이 지속 가능한 AI 강국의 출발점이다.
[배성훈 박사는?]
LX공간정보연구원 AX국토융합그룹장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