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 인권 과잉시대에 드라마 <참교육> 속 교권보호국이 공감을 얻듯, 권리의 균형 상실은 시스템의 붕괴를 부른다. 환자와 의사 간 권리의 균형이 무너진 오늘날의 대한민국 의료 역시 전례 없는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최근 발생한 모 대학병원의 중동 의사 무면허 대리 수술 사태와 고질적인 ‘응급실 뺑뺑이’ 현상은 결코 별개의 사건이 아니다. 이는 필수 의료, 건강보험, 사법제도, 의료전달체계가 동시에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알리는 강력한 경고 신호다.
해당 병원 사태의 내막은 상급종합병원의 일그러진 생존 구조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대학병원이 무리하게 여러 수술방을 열고 국내 의사면허가 없는 외국인 의사에게 집도를 맡긴 근본 원인은 결국 ‘돈’과 ‘인력 부족’이다.
기형적인 수가 체계 속에서 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는 행할수록 적자가 난다. 병원은 이를 메꾸기 위해 고가의 비급여 로봇 수술을 적극 권유하며 수술방을 늘렸지만, 정작 방을 채울 대한민국 서전(Surgeon)의 씨가 이미 말라버렸다. 그 빈자리를 중동에서 온 연수 의사들이 채우는 황당한 주객전도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 젊은 의사들이 수술실에서 사라진 까닭은 필수 의료 현장을 사법적 단죄의 대상으로 삼는 사회적 분위기와 엄격해진 의료법 때문이다. 서전의 숙련 과정은 수많은 임상 경험이 필수적이며, 때로는 시행착오와 위험을 감내하는 사회적 용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불가항력적인 결과조차 의사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고 구속하는 일이 빈번하다.
게다가 병원의 매출 압박 속에 대학병원 교수들의 교육 기능마저 마비됐다. 배움의 기회를 잃고 법적 위험만 떠안은 젊은 전공의와 펠로우들은 미용 성형 등 보상이 확실한 영역으로 엑소더스를 감행하고 있다. 반면 자국에서 기본기를 갖춘 중동 의사들은 초기 교육 비용과 법적 리스크가 적어 수술 기회를 독식한다.
대학병원에 온 환자들은 교수에게만 수술받기를 원하고, 백내장 수술은 환자의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행해진다. 우리의 안과 전공의들은 술기를 익히러 인도로 가고, 안방 수술실은 외국인 의사의 훈련장으로 전락한 것이 참담한 현실이다.
이런 배후 진료 체계와 서전의 붕괴는 결국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실 뺑뺑이’로 이어진다. 대중은 환자가 피해를 입는 이유가 응급실 문이 닫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본질은 응급실 뒤에서 환자를 수용해 수술할 외과, 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 등의 필수 인프라가 붕괴한 데 있다.
찢어진 장기를 수술실에서 봉합해 줄 의사가 없다면 응급실 문을 열어둔들 환자를 수용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불을 질렀다. 역대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라는 명분으로 생명과 무관한 영역에 재정을 쏟아부었다. 필수 의료 수가는 묶어둔 채 재원을 분산시킨 결과, 중증 환자를 치료할수록 병원 적자가 커지는 모순이 수십년간 지속됐다.
선심성 정책에 재정을 탕진한 대가는 결국 국민의 생명 줄을 죄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시간이 없다. 무너진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즉각적인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
첫째, 건강보험 재정 우선순위를 전면 재조정해 필수 의료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수가를 파격적으로 현실화해야 한다.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과 병원이 손해를 보지 않는 정당한 보상 구조가 확립돼야 인력 이탈을 막을 수 있다.
둘째,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 처벌 면제와 국가 책임 분담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무과실 보상제도를 확대해 의사를 범죄자 취급하는 사법 만능주의를 멈추고 법적 안정성을 담보해야 한다.
셋째, 과거에 폐지된 ‘진료권 제도’를 조속히 부활시켜 의료전달체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경증 환자마저 대형병원으로 몰리는 기형적 구조를 타파하고, 지역 완결형 의료 체계를 복원해야 지역의 응급의료 역량이 유지된다.
넷째, 광역 응급의료 상황실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병원 간 전원 조정 기능을 높이고 비응급 환자 상담을 위한 4자리 전화번호를 부여해 대형병원 과밀화를 막아야 진짜 중증 환자가 적기에 치료받을 수 있다.
사회의 건강성은 권리와 책임, 자유와 질서가 팽팽한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유지된다. 어느 한쪽의 저울추가 무너지면 반작용은 결국 공동체 전체의 파국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의료는 환자의 권리만으로 혹은, 의사의 의무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특정 집단을 향한 마녀사냥이나 일방적인 희생 강요는 시스템의 파멸을 가속할 뿐이다. 대한민국 의료에 허용된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균형을 잡지 못한다면 그 비극적인 대가는 결국 우리 자신과 자녀들의 생명으로 치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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