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정부는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을 열고 6·25 전쟁에 참전한 유엔군의 희생과 헌신을 기렸다. 이날 행사에는 22개 유엔 참전국을 대표해 방한한 참전용사와 유가족, 6·25참전유공자와 주한 외교사절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정부는 참전용사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하며 자유와 평화를 위해 흘린 피를 결코 잊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성숙 국무총리도 기념사에서 “대한민국은 유엔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다”며 참전국과의 우정을 미래 세대까지 이어가겠다고 약속했다. 필자 역시 대한민국이 국군과 유엔군의 희생을 더욱 당당하게 기억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더 깊이 이해하고 미래의 외교와 안보 전략으로 연결하려면, 이제는 한국전쟁 전체의 희생을 함께 바라볼 필요도 있다.
전쟁은 협정문에 서명한다고 완전히 끝나지 않는다. 총성이 멈춘 뒤에도 전쟁터에 묻힌 사람과 돌아오지 못한 가족의 기억은 오래 살아 남는다. 국가는 전쟁의 승패를 기록하지만 국민은 희생자의 이름과 숫자로 전쟁을 기억한다. 그래서 어느 나라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나라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필자는 한국전쟁도 이제 희생자의 숫자를 외교의 언어로 다시 읽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한국전쟁을 대한민국이 입은 피해를 중심으로 기억해 왔다.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됐고 국군과 유엔군의 희생으로 나라를 지켜냈다는 것이 우리 기억의 중심이다. 이 역사적 사실과 북한의 남침 책임은 결코 흔들릴 수 없다.
그러나 전쟁의 책임을 밝히는 일과 전쟁에 참여한 각 집단의 희생을 분석하는 일은 서로 다른 문제다. 상대의 희생을 살펴본다고 대한민국의 정당성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전쟁 전체 사망자는 집계 기준에 따라 약 250만~30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전쟁 중 행정 체계가 붕괴되면서 사망자와 실종자, 민간인과 군인을 정확히 구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마다 숫자는 다르지만 한국전쟁이 20세기 최악의 인명피해를 남긴 전쟁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중요한 것은 숫자의 차이가 아니라 그 규모와 의미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 출발점이 바로 희생자의 분석이다.
사망자를 크게 나누면 군인은 약 60만~100만명, 남북한 민간인은 약 150만~20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결국 전체 희생자의 절반 이상은 군복을 입지 않은 민간인이었다. 전선은 한반도를 여러 차례 오가며 도시와 농촌을 모두 전쟁터로 만들었고 서울도 네 차례 점령과 탈환을 반복했다.
폭격과 포격, 학살과 기아, 질병이 이어지면서 평범한 주민들이 가장 큰 희생을 치렀다. 한국전쟁은 군인보다 민간인의 상처가 더 깊게 남은 전쟁이었다.
대한민국 국군 전사자는 약 13만8000명으로 집계된다. 여기에 실종자와 포로, 부상자까지 포함하면 피해 규모는 훨씬 커진다. 국군은 낙동강까지 밀렸다가 다시 반격해 끝내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이름도 남기지 못한 수많은 장병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 우리는 이들의 헌신을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한다.
미군은 약 3만6000명이 전사했고 부상자는 10만명을 넘었다. 영국과 튀르키예, 캐나다, 호주, 프랑스 등 다른 유엔 참전국에서도 약 4000명의 군인이 전사했다. 이들은 자신의 조국이 아닌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
대한민국이 이들의 희생을 기리고 한미동맹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전체를 이해하려면 다른 희생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북한군 사망자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약 30만~40만명으로 추정된다. 국군 전사자보다 두 배 이상 많았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북한군은 남침의 주체였으며 그 책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수십만명의 전사자가 북한 사회의 기억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북한 정권은 그 희생을 체제 유지와 대미 적대의 역사로 활용해 왔다.
중국 인민 지원군의 사망자는 집계에 따라 약 18만~40만명으로 추정된다. 어느 수치를 적용하더라도 미군 사망자보다 훨씬 많다. 중국은 건국 직후 인민 지원군을 대규모로 한반도에 투입하며 막대한 희생을 치렀다. 그래서 지금도 한국전쟁을 자국민 수십만명이 피를 흘린 전쟁으로 기억한다.
이 역사적 기억은 오늘날 중국의 한반도 인식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희생이 많았다고 참전의 정당성이 커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전쟁의 책임과 희생자의 숫자는 같은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 다만 중국이 한반도를 바라볼 때 한국전쟁의 희생을 완전히 떼어놓기는 어렵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우리 외교는 중국의 역사관에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그 기억이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은 냉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전쟁의 숫자를 외교의 언어로 읽는 첫 번째 이유다.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은 넓어질 필요가 있다. 북한 주민에게 한국전쟁은 체제가 말하는 ‘승리의 전쟁’만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가족이 군인으로 전사했고 마을과 도시가 파괴됐으며 민간인이 폭격과 굶주림으로 희생된 집단적 기억이 함께 남아 있다.
북한 정권은 이 기억을 대미 적대와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핵과 미사일뿐 아니라 전쟁의 기억이 어떻게 이용되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그렇다고 북한의 희생을 이야기하는 것이 북한의 남침 책임을 덮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전쟁을 일으킨 지도부와 전쟁으로 희생된 주민은 구분해서 바라봐야 한다. 김일성정권의 책임은 분명히 하되 북한 주민의 고통까지 부정할 이유는 없다.
이것은 역사 왜곡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바라보는 보편적 시각이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자신감이 있어야 가능한 접근이다.
민간인 희생은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남한 민간인 사망자는 수십만명에서 약 100만명, 북한 민간인도 약 10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숫자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다만 북한 역시 대규모 폭격과 도시 파괴, 식량난으로 엄청난 민간인 피해를 입었다는 점은 많은 연구가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남한도 점령과 탈환, 학살과 보복, 피란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결국 한국전쟁은 남북 모두에게 민간인이 가장 큰 희생자였던 전쟁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국군과 남한 주민, 미군과 유엔군의 희생을 중심으로 한국전쟁을 기억해 왔다. 물론 그 기억은 앞으로도 더욱 분명하고 당당하게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북한군과 북한 주민, 중국군이 치른 희생까지 함께 연구하면 한국전쟁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상대를 두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어떤 역사적 기억 속에서 움직이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외교는 내가 기억하는 역사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기억하는 역사까지 읽는 능력이다.
이런 관점에서 중국을 바라볼 필요도 있다. 우리는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는 이유를 미국 견제와 완충지대 확보라는 지정학적 관점에서 주로 설명해 왔다. 물론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은 맞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전쟁에서 치른 막대한 희생도 중국의 대북 정책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충분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 기억 역시 국가 전략을 구성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을 단순한 동맹국으로만 보지 않을 수 있다. 인민 지원군 수십만명이 피를 흘린 역사적 공간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북한이 부담스러워도 쉽게 손을 놓지 못하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중국 정책을 모두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분석 변수 가운데 하나는 될 수 있다. 우리는 그 변수까지 함께 읽어야 중국의 대북 정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중국에 새로운 외교 논리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한국전쟁에서 흘린 피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북한이 다시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책임 있게 관리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다. 북한의 핵과 군사도발이 계속될수록 한·미·일 안보협력과 미국의 동북아 군사력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이 원하는 전략 환경과도 거리가 멀다. 중국의 역사적 기억을 인정하되 그것이 북한의 도발을 감싸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 같은 접근은 결코 중국에 약해지자는 전략이 아니다. 상대의 역사 인식을 이해하는 것과 상대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오히려 상대의 기억을 정확히 알아야 무엇을 양보할 수 없고 어디를 설득해야 하는지도 분명해진다. 상대를 모른 채 강경한 말만 반복하는 것은 전략이 아니라 감정일 수 있다.
희생의 역사를 읽는 외교는 굴복의 외교가 아니라 더 강한 현실주의 외교다.
대북 정책도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구분해야 한다. 북한 정권의 핵과 미사일에는 강력한 억제력으로 대응하되 전쟁으로 희생된 북한 주민의 고통까지 외면할 이유는 없다. 남북 민간인 희생자와 실종자, 이산가족의 기록을 함께 보존하는 작업은 언젠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의 죽음을 이념으로 나누지 않는 것이 성숙한 국가의 자세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품격이기도 하다.
전쟁의 희생이 국가의 외교와 안보를 바꾸는 사례는 한국전쟁만이 아니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이어진 이란·이라크전쟁에서는 약 50만~100만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란은 지금도 그 전쟁을 ‘강요된 전쟁’으로 기억하며 국가 안보의 중요한 역사로 교육하고 있다.
당시 형성된 집단적 기억은 오늘날 이란의 안보관과 대외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전쟁의 희생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국가의 선택을 바꾸는 힘이 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도 마찬가지다. 2022년 전면전 이후 양국 군인과 민간인의 희생은 이미 수십만명을 넘어섰고 피란민도 수백만명에 이른다. 전쟁이 끝난다 해도 양국 국민의 기억과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수십년 동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는 이 희생의 기억 위에서 다시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전쟁은 끝나도 희생은 외교 속에 오래 남는다.
이란과 이라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사례는 하나의 공통점을 보여준다. 지도자는 바뀌고 국경은 다시 그어질 수 있지만 희생자의 기억은 세대를 넘어 이어진다. 그래서 전쟁 이후의 외교는 영토와 군사력만이 아니라 국민이 무엇을 기억하는지도 함께 분석해야 한다. 희생자의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국가의 역사와 심리를 읽는 자료다. 외교는 바로 그 기억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물론 희생자가 많다고 반드시 더 큰 분노나 적대감이 생긴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국가의 외교 정책은 정치 체제와 경제, 국제정세, 지도자의 선택 등 여러 요소가 함께 작용해 결정된다. 그러나 막대한 희생이 국가의 역사 인식과 안보관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까지 부정하기는 어렵다.
희생자의 숫자는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도 없는 변수다. 외교는 그 변수를 읽는 능력에서 출발한다.
한국전쟁은 아직도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정전 상태의 전쟁이다. 남한은 국군과 국민의 희생을 기억하고 미국은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억하며 중국은 인민지원군의 희생을 기억한다. 북한 역시 북한군과 주민의 희생을 자신들만의 역사로 기억하고 있다. 같은 전쟁이지만 나라마다 기억하는 숫자와 의미는 서로 다르다.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미래 한반도 외교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지난 27일 정부는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며 자유와 연대의 가치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런 기억은 앞으로도 더욱 선명하게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사 인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우리를 지켜준 희생을 기억하는 동시에 상대가 기억하는 희생까지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한국전쟁을 외교의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필자는 이제 대한민국이 한국전쟁의 희생을 더 넓고 더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군과 유엔군의 희생은 더욱 당당하게 기억하면서도 북한군과 북한 주민, 중국군이 치른 희생도 객관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그것은 북한이나 중국에 약해지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적 심리를 정확히 읽고 더 효과적인 대북·대중 전략을 세우자는 제안이다.
우리의 희생은 기억하고, 상대의 기억은 이해하는 것. 그것이 성숙한 국가의 외교다. 한국전쟁의 숫자를 외교의 언어로 읽는 순간 대한민국의 외교는 더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하고 더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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