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AI 잡은 신의 한 수 신진서

세계 1위의 값진 인간 승리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바둑 세계랭킹 1위 신진서 9단이 현존 최고 수준의 바둑 인공지능(AI) 카타고를 꺾었다. 첫 대국에서 완패한 뒤 내리 두 판을 따내며 최종 전적 2승1패로 역전승을 거뒀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10년 만에 성사된 인간 최강자와 AI의 승부에서 나온 결과다.

프로 바둑기사 신진서는 지난 21일 서울 중구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쎈수학·한경 기신전’ 최종 3국에서 카타고를 상대로 221수 만에 흑 11집 반승을 거뒀다. 지난 17일 1국에서 245수 만에 불계패했지만, 19일 2국에서 290수 만에 4집 반승을 거둔 데 이어 최종국까지 잡아냈다.

대칭 대신
소목 선택

이번 승부는 신진서가 흑돌 두 점을 미리 놓고 시작하는 2점 접바둑으로 진행됐다. 인간과 AI가 동등한 조건에서 맞붙은 것은 아니다. 신진서는 두 점을 먼저 놓아 약 18집 반 앞선 상태로 대국을 시작했다.

다만 카타고가 프로기사들과의 접바둑에서도 압도적인 성적을 보여온 만큼 대회 전에는 신진서가 한 판만 이겨도 성공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신진서 역시 승리 가능성을 10%가량으로 내다봤다.

예상대로 첫 판은 카타고의 완승이었다. 신진서는 초반 예상하지 못한 수에 대응하지 못한 채 무너졌다. 그는 1국이 끝난 뒤 연습 때 보여준 실력의 절반도 발휘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2국부터 전투를 최대한 줄이고 집을 지키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고, 후반 승부처에서 우위를 지켜 첫 승리를 거뒀다.

최종 3국에서는 카타고의 수법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자신의 방식으로 판을 짰다. 카타고가 앞선 두 대국과 달리 첫 수로 좌상귀 소목을 택하자 신진서는 2분가량 고민한 끝에 우하귀 소목에 돌을 놨다. 카타고의 착점과 정확히 대칭되는 지점을 피한 선택이었다.

신진서는 대국 후 “반대편 화점에 두면 카타고가 비슷하게 대응할 것으로 생각했다”며 “똑같은 방식으로 이기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먼저 비틀었다. 나도 모르는 길로 갔다”고 말했다. 대국은 신진서의 구상대로 큰 전투 없이 집을 차지하는 흐름으로 진행됐다.

신진서는 우상귀의 실리를 일부 내주는 대신 상변과 우변에 세력을 구축했고, 80수째 백돌을 공격하면서 상변에서 중앙까지 큰 흑진을 만들었다. 유리한 형세를 잡은 뒤에도 여러 차례 계가하며 우세를 확인했고, 대국 시작 당시의 예상 승률 99%를 끝까지 지켰다.

신진서는 승리의 배경으로 AI 모방이 아닌 자신의 바둑을 꼽았다. 그는 “연습 초기에는 AI의 수를 따라 하다 보니 초반부터 전투가 벌어졌고 쉽게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AI의 기법을 모방하는 것보다 내 스타일대로 편하게 바둑을 펼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AI의 완벽함이 오히려 약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내놨다. AI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승률을 떨어뜨리는 승부수를 좀처럼 던지지 않지만, 인간은 상대를 흔들기 위해 예상 밖의 수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진서는 “인간 바둑은 상황에 따라 승부수와 묘수를 던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며 “인간이 AI를 상대로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신진서는 이번 승리를 이세돌의 알파고전 1승과 동일하게 평가하는 데에는 선을 그었다. 당시 이세돌은 별도의 핸디캡 없이 알파고와 맞붙었지만, 신진서는 두 점을 먼저 놓고 출발했기 때문이다. 두 점 접바둑이라는 조건은 신진서의 승리를 가능하게 한 배경인 동시에 지난 10년간 인간과 AI의 격차가 얼마나 벌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카타고’ 따라가다 무너진 첫 판
“나도 모르는 길” 택해 역전승

그럼에도 이번 대국은 AI의 수를 누구보다 많이 연구해 온 인간 최고수가 AI를 상대로 자신의 방식을 지켜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신공지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AI와 유사한 수를 구사해온 신진서는 정작 AI를 이긴 뒤 “AI를 흉내 내는 것보다 내 바둑을 두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2000년 부산에서 태어난 신진서는 네댓살 무렵 부모가 운영하던 바둑학원에서 처음 돌을 잡았다. 아버지는 아마 고단자이자 바둑학원 원장이었고, 어머니 역시 바둑을 둘 줄 알았다. 처음부터 프로기사를 목표로 바둑을 배운 것은 아니었다.

어린이집에 가기를 싫어했던 신진서는 부모가 운영하던 바둑학원에서 하루를 보내곤 했다. 학원에서 달리 할 일이 없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바둑판 앞에 앉았다. 신진서는 당시를 두고 “바둑학원에 놀러 갔다가 재미있는 것 같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실력이 늘어나는 속도는 평범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초보자들을 가르치던 반에서 기초를 익힌 뒤 한 달여 만에 아버지가 지도하는 반으로 옮겼고, 1년이 지나자 학원에서 몇 년씩 바둑을 배운 형들을 이기기 시작했다.

신진서는 일곱살 무렵 자신의 재능을 어렴풋이 자각했다고 한다. 당시 기력이 아마 고단자 수준에 이르렀고, 부산 지역 어린이 대회에서도 잇달아 성적을 냈다. 또래뿐 아니라 자신보다 서너살 많은 아이들을 꺾으면서 ‘부산에 바둑 신동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신진서의 성장에는 인터넷 바둑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자신을 ‘마지막 인터넷 바둑 세대’라고 표현한다. 당시 인터넷 대국장에서는 프로기사들도 가명을 사용했고, 상대가 누구인지 모른 채 대국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도 지금보다 느슨했다. 신진서는 인터넷에서 자신보다 강한 상대들과 반복해서 바둑을 뒀다. 몇 판을 두다 보면 상대가 프로기사라는 사실을 눈치채기도 했지만, 이름이나 경력을 따지지 않고 승부를 이어갔다.

대면 지도를 받을 기회가 제한적이던 부산의 어린 기사에게 인터넷은 전국과 해외의 강자들을 만날 수 있는 훈련장이었다.

신진서가 인터넷에서 치른 대국은 프로 입단 이후까지 합하면 2만판을 훌쩍 넘는다. 단순히 많은 대국을 두는 데 그치지 않았다. 대국이 끝난 뒤에는 자신의 수를 다시 확인했고, 비슷한 상황이 나오면 앞선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했다. 수많은 실전과 복기를 통해 기량을 끌어올린 셈이다.

부산에서 신진서의 상대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자 부모는 아들의 교육 환경을 바꾸기로 했다. 신진서가 프로 입단을 준비하던 2012년, 가족은 20년 넘게 살아온 부산을 떠나 서울 은평구 충암동으로 이사했다. 국내 대표적인 바둑 도장 중 하나인 충암도장에서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열두 살
프로 데뷔

부모의 생활도 아들의 바둑을 중심으로 바뀌었다. 프로 입단 뒤에는 한국기원과 가까운 장한평역 부근으로 거처를 옮겼고, 이후 상왕십리역 인근으로 다시 이사했다. 신진서가 바둑 공부와 대국에 집중할 수 있도록 8년 사이 네 차례 집을 옮겼다.

식사와 체력 관리도 가족의 몫이었다. 장시간 이어지는 대국을 견디기 위해서는 집중력뿐 아니라 체력도 필요했다. 어머니는 신진서가 좋아하는 음식을 챙겼고, 대국이 있는 날이면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신진서는 정상에 오른 뒤에도 중요한 대국 전에는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는다고 밝혔다.

신진서 역시 가족의 지원을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프로기사가 된 뒤 받은 상금을 부모에게 맡기고 매달 용돈을 받아 생활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가족이 없었다면 지금의 신진서는 있을 수 없다”며 가족의 뒷바라지를 자신의 힘과 정신력의 원천으로 꼽았다.

서울로 올라온 뒤 입단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신진서는 충암도장에서 형들과 대국하며 기량을 끌어올렸고, 2012년 7월 제1회 영재입단대회를 통해 프로기사가 됐다. 당시 나이는 12세였다. 입단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앞서 출전한 입단대회에서 탈락했을 때는 충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당시 매일 먹던 통닭 한 마리를 절반만 먹었다고 회상했다. 입단에 실패한 자신이 한 마리를 다 먹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심정을 두고 “살 자격이 없는 것 아닌가 싶을 만큼 괴로웠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성향은 이후 신진서를 누구보다 오래 바둑판 앞에 머물게 한 원동력이 됐다.

프로에 입단한 뒤 신진서의 생활은 더욱 단조로워졌다. 오전부터 한국기원에 나가 바둑을 공부했고, 집에 돌아온 뒤에도 인터넷 대국과 복기를 이어갔다. 또래 학생들이 학교생활과 여가를 즐기던 시기였지만, 그의 하루는 대부분 바둑으로 채워졌다. 중학생 시절 직접 작성한 생활계획표에도 이런 생활이 고스란히 담겼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대국과 연구, 복기가 반복됐다. 신진서는 “광기라고 할 정도로 승패에 집착했다”고 돌아봤다. 한번은 밤에 인터넷 바둑을 두다가 한 판만 이기고 잠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상대였던 중국의 탕웨이싱 9단에게 연달아 패하면서 대국을 멈추지 못했다. 결국 6연패를 당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신진서에게 탕웨이싱은 이미 세계 정상급 기사였지만, 신진서는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며 계속 재대국을 신청했다.

바둑 신동서
‘신공지능’으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형들에게 질 때마다 울었다. 그는 “지는 걸 정말 못 참는 성격이어서 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며 “지금도 지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다”고 말했다.

강한 승부욕은 빠른 성장의 밑바탕이 됐다. 대국에서 패하면 곧바로 다시 바둑판 앞에 앉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수를 되짚었다. 다만 이기려는 마음이 지나치게 앞서면서 무리한 수를 두거나, 참아야 할 순간에도 싸움을 벌이는 문제로 이어지기도 했다.

신진서의 초기 기풍은 빠른 수읽기를 바탕으로 한 전투적인 바둑이었다. 유리한 상황에서도 물러서기보다 상대의 돌을 공격했고, 안전하게 마무리하기보다 승부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이 좋아했던 이세돌 9단의 바둑을 닮고 싶어 한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신진서는 “어린 마음에 이세돌 사범님의 바둑이 멋있다고 생각해 닮으려고 많이 노력했다”며 “잘 닮았어야 했는데 안 좋은 방향으로 가면서 내 바둑이 지나치게 전투적으로 흐른 부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선배 기사들과의 직접적인 대국도 그의 바둑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2013년 경남 합천에서 열린 영재 정상 대결에서는 이창호 9단을 꺾었다. 프로에 입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신진서는 이창호가 어린 후배의 실력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다소 여유 있게 둔 것 같다고 평가하면서도, 당시 승리로 큰 자신감을 얻었다고 회상했다. 반면 이듬해 이세돌과의 대국에서는 정반대의 경험을 했다.

신진서는 당시 이세돌에게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를 느꼈고, 제대로 자신의 바둑을 펼쳐보지 못한 채 무너졌다”고 말했다. 그 대국은 상대의 명성과 분위기에 눌리지 않고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신의 바둑을 둬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프로 입단 이후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기사는 박정환 9단이었다. 신진서가 성장하던 당시 박정환은 한국 바둑의 확고한 1인자였다. 두 사람은 국내외 주요 대회에서 수십차례 맞붙었다. 초기에는 박정환이 상대 전적에서 크게 앞섰다. 신진서는 전투적인 바둑에는 강했지만, 안정적으로 판을 운영하고 끝내기에서 승부를 마무리하는 능력은 부족했다.

“인간계 바둑엔 묘수가 있다”
전혀 다른 판 짜며 11집 반승

그는 박정환과 반복해서 대국하면서 물 흐르듯 이어지는 운영과 끝내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평정심을 배웠다고 밝혔다. 특히 박정환이 상대의 돌발 행동에도 표정 변화 없이 대국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감정 관리 방식을 돌아봤다.

어린 시절 신진서는 불리한 형세가 되면 얼굴이 붉어지거나 돌을 강하게 놓을 정도로 감정이 드러나는 편이었다. 최정상급 기사들과의 승부를 거치면서 이런 모습은 점차 줄어들었다.

기풍도 변했다. 과거에는 반집 승리가 보장된 상황에서도 상대의 팻감을 받아주지 않고 더 큰 싸움을 벌이곤 했지만, 이후에는 확실한 승리의 길이 보이면 위험을 피하는 방향을 택했다. 다만 전투적인 성향 자체를 버리지는 않았다. 자신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승부를 관리하는 법을 익힌 것이다.

신진서는 존경하는 기사로 이창호를, 좋아하는 기풍의 기사로 이세돌을 꼽는다. 이창호의 진중함과 이세돌의 수읽기, 박정환의 평정심은 그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는 기준이 됐다. 어린 시절 상대를 이기는 데만 몰두했던 신진서는 선배들과의 승부를 거치며 어떤 방식으로 이겨야 하는지를 배우기 시작했다.

신진서가 자신의 바둑을 완성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가장 큰 좌절은 2016년 LG배 4강전이었다. 중국의 당이페이 9단을 상대로 유리한 형세를 만들었지만, 결정적인 착각으로 승부를 내줬다. 그는 당시 “대국장 창문으로 달려가 뛰어내리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이후에도 세계대회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무너졌다. 2018년 천부배와 2019년 바이링배에서 준우승에 그치면서 국내에서는 강하지만 세계대회에는 약하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기회는 2020년 찾아왔다. 제24회 LG배 결승에서 당시 한국 바둑의 1인자였던 박정환 9단을 2 대 0으로 꺾고 생애 첫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같은 해 박정환과의 남해 7번기에서도 7 대 0으로 승리하면서 한국 바둑의 세대교체를 알렸다. 그러나 정상에 오른 뒤에도 좌절은 이어졌다.

2020년 삼성화재배 결승에서는 온라인 대국 중 마우스 오착이 나온 끝에 커제 9단에게 패했다. 대국 직후에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일정을 마친 뒤 창가에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포착됐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승부를 대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어린 시절에는 이기기 위해 끝까지 싸움을 벌였지만, 이후에는 유리할 때 물러설 줄도 알게 됐다. 실수를 하더라도 곧바로 잊고 다음 수에 집중하는 능력 역시 실력의 일부라고 여겼다.

“아름다운
패배가 낫다”

첫 메이저 우승 이후 신진서는 춘란배와 삼성화재배, 응씨배, LG배, 난가배, 난양배 등 주요 세계대회에서 잇달아 정상에 올랐다. 농심신라면배에서는 한국의 마지막 주자로 상대국 기사들을 연이어 꺾으며 ‘끝판 대장’으로 자리 잡았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은 그의 가장 중요한 훈련 도구였다. 신진서는 대국이 끝나면 AI를 이용해 자신의 실수를 확인했고, 승률이 떨어진 지점을 반복해서 연구했다. AI와 착수 일치율이 높아 ‘신공지능’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신진서는 승리보다 패배에서 자신의 문제를 더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승리는 자만심만 부를 수 있지만 패배는 무언가를 깨닫게 한다”며 “엉망진창인 승리보다 아름다운 패배가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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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가득한 보완수사권 폐지 후폭풍

의문 가득한 보완수사권 폐지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70년 넘게 유지된 우리나라 형사제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와 맞물려 사회에 많은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정부 때부터 힘을 키워온 경찰은 이번 개정안으로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됐다. 동시에 경찰은 국민의 질문에 답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경찰을 믿을 수 있나? 지난달 31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형소법 개정안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제 검사는 사법경찰관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할 권한만 갖는다.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이래 72년 만에 가장 큰 사법체계 변화를 마주하게 됐다. 격변하는 형사제도 형소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주도로 이뤄졌다. 표결 결과 재석 의원 178명 가운데 찬성 175명, 반대 2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민주당 곽상언 의원과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이 반대했고, 민주당 이소영 의원이 기권표를 던졌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보완수사권을 포함해 오는 10월 신설되는 공소청 검사의 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수사 과정에서의 모든 자료를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기록하도록 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장치로는 경찰이 사건을 불송치할 경우 고소인‧피해자‧고발인이 이의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필요한 사건 기록 열람‧등사 권한도 부여했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그동안 민주당이 주도해 온 검찰개혁은 마무리 수순에 접어 들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해 9월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라 오는 10월2일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하는데, 공소청 검사는 공소 제기와 재판 유지만 맡는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청와대에서 환영의 메시지가 나오면서 가능성은 사라졌다. 이날 청와대는 “국회의 입법 과정과 최종 판단을 존중한다”며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통해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막는 한편, 피해자와 국민 인권 보호 수준을 높임으로써 형사사법 시스템이 국민 곁으로 한걸음 더 다가서도록 할 것”이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국민 10명 중 6명 반대 여당 주도 본회의 통과 이 대통령은 거부권 대신 ‘사필귀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삶을 더욱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해 모든 권력기관은 예외 없이 국민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사필귀정의 필연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사·기소 분리는 비정상적 형사사법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첫걸음”이라고도 했다. 국회 본회의 통과, 국무회의 의결 등 법안 공포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사법체계는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 ‘경찰’이 놓였다. 문재인정부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가 깨지면서 경찰에 실리기 시작한 힘은 이번 형소법 개정안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기까지 검찰에 ‘보완수사권’이라는 견제 기능을 남겨둘지를 두고 진통이 상당했다. 형소법 개정안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만큼 경찰에 집중되는 권한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보완수사권은 그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다. 실제 보완수사권 폐지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는 압도적으로 반대가 높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의 의뢰로 지난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보완수사권 존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62.5%가 ‘검찰에 보완수사 권한을 줘야 한다’고 답했다.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31.8%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53.8%가 ‘보완수사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모든 지역에서 과반을 기록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73.1%로 가장 높았고 서울 64.7%, 호남권에서도 59.9%가 ‘보완수사권을 존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남녀노소, 지지 정당,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는 쪽에 손을 든 것이다. 존치 의견 우세해도… 존치 찬성자들은 경찰의 수사 능력을 의심했다. 검찰보다는 경찰이 국민과의 접점이 더 넓은 상황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수사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장윤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형소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진 감도 없지 않았다. 장윤기 사건은 지난 5월 광주 광산구 월계동 남부대학교 인근에서 장윤기가 여고생을 흉기로 살해한 내용이다. 이 여고생의 비명을 듣고 달려간 남학생도 크게 다쳤다. 장윤기와 여고생이 일면식도 없는 사이로 알려지면서 ‘묻지마 범죄’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장윤기 사건에 경찰인 그의 아버지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장윤기의 부친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가 사건에 개입해 증거를 인멸하고 수사 관련 정보를 누설하는 등의 행위를 한 게 검찰의 보완수사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장윤기의 아버지가 아들의 방에서 없앤 리얼돌은 성범죄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로 여겨졌다. 10대 여고생이 피살된 사건에서 경찰이 가해자 측과 유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보완수사권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경찰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라도 남겨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더해졌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모씨는 보완수사권 폐지와 관련해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김씨는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무소속 한동훈 의원 주최로 열린 보완수사권 폐지 긴급 간담회에 참석했다. 피해자들 나섰지만… 김씨는 “세금을 내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지 않고 왜 그들(범죄자)을 보호하고 감싸려고 하는지, 죄를 짓지 않은 피해자는 잘 모르겠다”며 “변호사와 검사도 반대하고 경찰도 난리 나고 피해자도 반대하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 이 시점에도 피해받는 피해자에 대한 장치는 아무것도 없다는 게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도 형소법 개정안에 대한 국무회의 의결 전 경찰 수사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형소법 개정안이 국회 입법권을 부정할 만큼 심각하진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경찰에 집중되는 거대한 권한을 걱정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경찰이 엄청난 권한을 갖게 되는데 ‘앞으로 안전할 걸까’라는 우려를 안 할 수가 없다”며 “경찰 스스로 책임 의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높은 책임감으로, 높은 윤리 의식으로 엄정하고 중립적으로 철저하게 범죄 피해자들이 억울하지 않게, 또 억울한 피의자가 생기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수사 비리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수사에 관한 비리를 저지르면 국민이나 피해자로서는 내 사건을 저렇게 망가뜨려서 가해자, 피해자를 뒤집어 놓으면 자살하고 싶을 정도가 됐는데, 담당 경찰은 감봉 몇 개월하고 또 딴 데 가서 수사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엄청난 힘” 우려하면서도 거부권 요구에 “심각하지 않아” 이어 “(경찰이) 증거를 숨기고 없애 버리고 내 사건을 뒤집어서 반대로 만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엄중함을 갖고 있냐. 전 자신이 없다”며 “수사와 관련된 비리나 비위에 대해 더 높은 책임을 요구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명백한 수사상의 비위가 발생하면 최소 해임, 파면 등의 조치를, 아니면 아예 영구적으로 수사를 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는 등의 엄중한 책임을 언급했다. 형소법 개정안 통과로 사실상 수사의 전 과정을 맡게 된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경찰청은 지난 4일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과 전국 시‧도 경찰청장, 경찰서장 등이 참석한 지휘부 회상회의를 열었다. 형소법 개정안에 따른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현장 수사관과 중간관리자를 대상으로 개정 내용을 집중 교육하고 보강이 필요한 수사 인력과 예산을 검토해 관계 부처와 협의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이 나왔다. 유 직무대행은 “국민께서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신속성, 범죄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경찰의 비대화 등에 대해 걱정하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경찰은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또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경찰도 예외가 아니”라며 “경찰관 배우자 및 존‧비속 상피제와 경찰 수사 인권‧감찰 조사기구, 경찰 수사 개혁위원회 권고 사항 등을 포함한 촘촘한 통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아울러 “경찰 수사의 유일한 지향점은 국민이며 기준은 오직 법과 원칙”이라며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국민의 신뢰 속에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분골쇄신의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불신 의심 극복되나 이 대통령의 당부, 경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경찰 내부에서도 이번 개정안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에 일이 몰려 과부하가 걸린 부분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수사에 대한 책임까지 모두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