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기준 없는 임신 중지 의약품 ‘미프진’ 딜레마

  • 조유담 기자 ydcho@ilyosisa.co.kr
  • 등록 2026.07.30 10:01:26
  • 호수 15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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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풀리는데 부작용은 알아서

[일요시사 취재1팀] 조유담 기자 =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미프진’에 대해 “법 개정 전이라도 허용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관련 논의는 물론, 입법 공백 해소에 대해서도 다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불법유통 방지와 여성 건강권 보장을 위한 양성화 촉구의 입장과 안전장치와 법적 기준 없는 강행 시 사법적 리스크가 크다는 입장으로 나뉜다. ‘의사 재량’으로 진행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찬반이 나뉘며 허가 여부와 함께 제도적 안전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4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미프진(미프지미소정) 허가에 대한 해법을 찾아볼 것을 제안하며 임신 중지 의약품인 미프진과 관련 입법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됐다. 이 대통령은 “지금 우리는 허용되지 않아 여성들이 해외 직구로 복용하는 모양”이라며 그 과정에서 사고까지 발생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책임은
누가?

이 대통령은 “(복용 가능한 임신 주수를) 몇 주로 할 것인지 정하다가 임기가 끝날 것 같다”며 “그 문제가 해결되기 전이라도 의사 재량으로 판단하게 허용한다든지, 그게 법률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닐 것 같다”고 말했다. 불법유통의 사각지대로 밀려난 임신 중지 의약품의 현실을 제도권 안에서 관리할 방법을 찾아보자는 제안이다.

다만 법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사 재량’이 거론되며 최종 판단과 책임의 주체에 대한 문제도 함께 쟁점으로 떠올랐다.

미프진은 임신 초기에 사용할 수 있는 경구용 의약품으로, 미페프리스톤 200㎎ 1정과 미소프로스톨 200㎍ 4정으로 구성된 콤비팩 제품이다. 첫 번째 약으로 미페프리스톤을 복용한 후, 24시간~48시간 이내에 미스프로스톨을 복용하는 방식이다. 임신 유지 호르몬을 차단해 자궁 내에 착상된 수정란을 자궁내막에서 분리시킨 후 자궁을 수축시켜 분리된 수정란을 자궁 밖으로 배출한다.

미소프로스톨은 식약처 품목 허가를 받아 공식 유통되고 있는 전문의약품으로, 본래 위궤양 치료 및 예방제로 허가받아 처방된다. 미페프리스톤은 국내에서 유통 중이지 않아 현대약품이 두 성분을 합친 복합제인 미프진의 품목 허가를 지속적으로 신청해 왔다. 그러나 모자보건법 및 관련 법적 근거 정비 문제와 안전성·유효성 검토 과정 등으로 인해 식약처 승인을 받지 못했다.

현대약품은 지난 2021년 영국 제약사 라인파마 인터내셔널과 국내 독점 판권 및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약품이 처음으로 품목 허가를 신청했던 것은 지난 2021년이다. 식약처는 신약 심사 기준에 따라 안전성·유효성과 품질 자료 등을 검토한 뒤 일부 자료의 보완을 요구했다.

제출 기한을 두 차례 연장했지만 일부 자료를 기한 내 제출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2022년 12월 신청을 자진 취하했다. 이후 지난 2023년 허가를 재신청했으나 추가 보완 문제 등으로 허가 절차가 마무리되지 못했다. 지난 2024년 세 번째 품목 허가를 신청해 국내 도입 절차가 다시 진행되는 중이다.

이번 대통령 발언 이후 허가에 대한 기대가 반영돼 주가가 사흘간 62% 이상 급등하기도 했다.

정식 허가 논의가 끝나지 않는 동안 텔레그램, 온라인 카페 등에서는 미프진을 포함한 임신 중지 의약품 관련 불법판매 게시물이 지난 5월까지 최근 5년여간 3189건 적발됐다. 그러나 2021년 이후 경찰 등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한 사례는 총 7건에 불과했다.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임신 중지 의약품 불법유통 적발 건수는 지난 2024년 116건에서 지난 2025년 313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신청 취하했던 고위험 의약품
산부인과 아니어도 처방 가능?

한 언론매체에 따르면, 미프진을 판매 중인 한 웹사이트의 상담 대화방에 문의를 남기자 상담 직원은 “임신 7주 전 35만원, 임신 7주~12주 55만원”이라며 비용을 제시했다.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말에 본인이 약사라며 직접 복용 상담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온라인에는 이 같은 경로를 통해 미프진을 구입한 여성들의 후기와 홍보성 게시물이 다수 올라온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프진을 불법 구매하는 여성들은 실제 의료진인지 알 수 없는 사람에게 5배 이상 높은 금액을 지불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입법 공백 속에 임신 중지 허용 주수와 절차 등의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며 미프진 등을 전문의약품으로 허가하지 않았다. 불법 임신 중지 의약품의 국내 반입 건수와 수량은 관세청 소관으로, 식약처가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미허가 제품을 직접 구매하거나 수거해 성분과 함량, 위조 여부, 유해물질 등을 검사한 사례는 없었다.

불법 복용이 암암리에 이뤄지고, 이후 나타나는 부작용은 여성들이 떠안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 이유다.

식약처는 미프진 허가에 대해 “아직 관계 부처 간 논의 전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전했다. 약물에 의한 임신중절 허용 및 그 기간이 법률로 정해져야 심사와 허가가 가능한 기존의 일부 허가 요건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미페프리스톤·미소프로스톨 복합제(미프진) 허가 신청과 관련해서는 “현재 허가 신청 건에 대해 심사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검토 진행 상황은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신 중지 의약품의 불법유통이 지속되는 이유는 제도적 공백 상태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해 지난 2019년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20년 12월31일을 대체입법 개정 시한으로 정했지만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회는 임신 중지 허용 주수를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불법유통
3189건

지난 21대 국회에서 정부와 여야가 각각 발의한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낙태 허용 시기와 방법 등을 정한 후속 법안이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며, 현행 모자보건법은 인공임신중절을 수술로만 규정하고 있어 약물 사용의 근거가 없다. 국무회의에서 입법 공백의 대안으로 미프진 허용에 대한 내용이 나오자,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모자보건법 개정안 처리 여부에도 관심이 쏠렸다.

22대 국회에서 진보당 손솔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법률상 ‘인공임신중절’이란 용어를 ‘인공임신 중지’로 변경하고 수술뿐 아니라 약물에 의한 임신 중지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이수진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도 용어 변경의 내용과 수술뿐만 아니라 약물로도 인공임신 중지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이에 대한 보험급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5일 하반기 업무보고 사전 브리핑에서 “임신 중지 약물 관련 낙태에 관한 헌법불합치 판정이 있었고 개선 입법을 하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아직 입법이 미비한 부분에 대해 정부로서 책임감을 갖고 있다”며 “모자보건법 개정 등 필요한 부분을 국회와 논의하면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성평등가족부는 “법 개정 전이라도 허가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며 이 대통령의 제안에 힘을 실었다. 이어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관계 부처 논의가 본격화할 예정이며 성평등부도 협조할 것”이라며 “여성계와 소통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깊은 우려와 분노를 표명했다. 특히 고위험 전문의약품을 ‘의사 재량으로 판매를 허용하자’는 졸속 정책은 정부의 책임을 의료계에 고스란히 전가하겠다는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명확한 법률적 테두리가 없는 상태에서 의사의 자의적 판단만으로 처방하게 하는 것은, 의료 현장을 사법적 리스크와 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만일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무모한 정책을 강행할 경우, 전면적인 거부 운동을 포함한 강력한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졸속 정책
깊은 우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현재 임신 중단 수술도 10만원대부터 형성된 경우가 있고 수술에 비해 미프진 복용 후의 출혈량이 몇 배에 달할 수 있다”며 미프진 허가의 의미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급여로 진행될 경우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비급여로 수술을 진행하는 여성들이 있다”며 “보험급여가 적용될 경우 오히려 해외직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만약 허가 이후 해외직구가 금지된다면 여성의 선택지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의사 재량’의 부분에 대해 “‘산부인과 전문의로 한정한다’는 내용이 없었다”며, “산부인과 전문의 외의 의사가 진단할 경우, 자궁 외 임신인 환자를 구별하기 어려워 환자가 입을 피해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자궁 외 임신은 수정란이 정상적인 착상 장소인 자궁 내부가 아닌 다른 곳에 착상되는 임신이다.

이 경우 미프진을 복용하게 되면 아무런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파열 및 대량 출혈로 이어질 수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안정성 문제에 대한 기준을 위해 약물 임신 중지에 대한 지침과 세부 사항을 마련 중이라고 전했다. 이어 “독일과 같은 숙려 기간 및 의무 상담의 경우 관리 시스템을 위한 국가적 비용 문제도 있어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표했다.

미프진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가진 국가 중 하나인 독일은 ‘의사 면허를 소지한 사람’이라면 전문 과목과 상관없이 미프진 처방이 가능하다. 다만 임신 중지 전 상담·숙려 기간 등 법적 절차를 거친 뒤 의사가 국가의 의료·법적 기준에 따라 시행하는 구조다.

일본의 경우 산부인과 의사 중 ‘모체보호법 지정의사’가 처방하며 지정 병원에서 복용 후 관찰까지 이어진다. 미프진은 WHO(세계보건기구)에 의해 지난 2005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된 바 있으며, 1988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현재 영국, 독일, 벨기에, 스위스, 일본, 미국 등 약 100개국에서 합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낙태죄 폐지 후 의료비용 증가에
“내가 약사다” 온라인 불법유통

대통령의 주장을 환영한다고 밝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는 논평을 통해 개발된 지 40년 가까이 된 임신 중지 약물의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충분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입법 공백은 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며, 현행법 안에서 행정절차를 진행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권리를 신속하게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건강보험 적용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경연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사무국장은 수술과 비교했을 때의 가격에 대해 “수술의 경우 주수에 따라 몇 배씩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사무국장은 “미프진은 가정에서 복용 가능하며 진료비를 제외하면 북유럽 기준 5만원~6만원, 미국 기준 12만원 정도에 가격이 형성돼 높은 접근성 측면에서 수술보다 여성의 선택지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처방 가능한 의사의 범위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장벽이 만들어지는 것은 옳지 않다”며 “추후 식약처 기준에 따라 정해지겠지만, 산부인과 전문의로 한정하게 되면 산부인과 전문의가 없는 시군구는 시급성 측면에서 문턱이 생기지 않을지 의문이 든다”고 언급했다.

미프진 허가에 대한 논쟁은 결국 여성의 건강권과 안전한 의료 접근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의 문제다. 제도 밖에서 이뤄지는 불법유통과 의료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 허가를 우선 추진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 이유다. 반면 충분한 기준과 안전장치 없이 허가가 이뤄질 경우 오히려 여성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여성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다는 이유로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면, 7년째 이어진 제도적 사각지대는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지난 2022년 발간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의료 비용이 오히려 증가했으며 필요한 정보와 의료서비스로의 접근은 더욱 어려워졌다는 보고가 실렸다.

제도적
사각지대

또 이는 궁극적으로 안전한 인공임신중절의 시기를 지연시킬 수 있고, 불법 약물 구매로 대체되는 요인이 되면서 여성의 건강은 위험에 직면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미프진 허가가 쏘아 올린 모자보건법 논의에 다시 이목이 집중된 만큼, 이번에는 허가 여부뿐 아니라 처방 기준과 의료적 안전장치, 책임 주체 등을 둘러싼 논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ydch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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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가득한 보완수사권 폐지 후폭풍

의문 가득한 보완수사권 폐지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70년 넘게 유지된 우리나라 형사제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와 맞물려 사회에 많은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정부 때부터 힘을 키워온 경찰은 이번 개정안으로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됐다. 동시에 경찰은 국민의 질문에 답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경찰을 믿을 수 있나? 지난달 31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형소법 개정안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제 검사는 사법경찰관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할 권한만 갖는다.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이래 72년 만에 가장 큰 사법체계 변화를 마주하게 됐다. 격변하는 형사제도 형소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주도로 이뤄졌다. 표결 결과 재석 의원 178명 가운데 찬성 175명, 반대 2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민주당 곽상언 의원과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이 반대했고, 민주당 이소영 의원이 기권표를 던졌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보완수사권을 포함해 오는 10월 신설되는 공소청 검사의 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수사 과정에서의 모든 자료를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기록하도록 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장치로는 경찰이 사건을 불송치할 경우 고소인‧피해자‧고발인이 이의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필요한 사건 기록 열람‧등사 권한도 부여했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그동안 민주당이 주도해 온 검찰개혁은 마무리 수순에 접어 들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해 9월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라 오는 10월2일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하는데, 공소청 검사는 공소 제기와 재판 유지만 맡는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청와대에서 환영의 메시지가 나오면서 가능성은 사라졌다. 이날 청와대는 “국회의 입법 과정과 최종 판단을 존중한다”며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통해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막는 한편, 피해자와 국민 인권 보호 수준을 높임으로써 형사사법 시스템이 국민 곁으로 한걸음 더 다가서도록 할 것”이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국민 10명 중 6명 반대 여당 주도 본회의 통과 이 대통령은 거부권 대신 ‘사필귀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삶을 더욱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해 모든 권력기관은 예외 없이 국민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사필귀정의 필연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사·기소 분리는 비정상적 형사사법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첫걸음”이라고도 했다. 국회 본회의 통과, 국무회의 의결 등 법안 공포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사법체계는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 ‘경찰’이 놓였다. 문재인정부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가 깨지면서 경찰에 실리기 시작한 힘은 이번 형소법 개정안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기까지 검찰에 ‘보완수사권’이라는 견제 기능을 남겨둘지를 두고 진통이 상당했다. 형소법 개정안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만큼 경찰에 집중되는 권한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보완수사권은 그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다. 실제 보완수사권 폐지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는 압도적으로 반대가 높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의 의뢰로 지난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보완수사권 존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62.5%가 ‘검찰에 보완수사 권한을 줘야 한다’고 답했다.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31.8%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53.8%가 ‘보완수사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모든 지역에서 과반을 기록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73.1%로 가장 높았고 서울 64.7%, 호남권에서도 59.9%가 ‘보완수사권을 존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남녀노소, 지지 정당,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는 쪽에 손을 든 것이다. 존치 의견 우세해도… 존치 찬성자들은 경찰의 수사 능력을 의심했다. 검찰보다는 경찰이 국민과의 접점이 더 넓은 상황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수사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장윤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형소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진 감도 없지 않았다. 장윤기 사건은 지난 5월 광주 광산구 월계동 남부대학교 인근에서 장윤기가 여고생을 흉기로 살해한 내용이다. 이 여고생의 비명을 듣고 달려간 남학생도 크게 다쳤다. 장윤기와 여고생이 일면식도 없는 사이로 알려지면서 ‘묻지마 범죄’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장윤기 사건에 경찰인 그의 아버지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장윤기의 부친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가 사건에 개입해 증거를 인멸하고 수사 관련 정보를 누설하는 등의 행위를 한 게 검찰의 보완수사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장윤기의 아버지가 아들의 방에서 없앤 리얼돌은 성범죄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로 여겨졌다. 10대 여고생이 피살된 사건에서 경찰이 가해자 측과 유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보완수사권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경찰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라도 남겨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더해졌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모씨는 보완수사권 폐지와 관련해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김씨는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무소속 한동훈 의원 주최로 열린 보완수사권 폐지 긴급 간담회에 참석했다. 피해자들 나섰지만… 김씨는 “세금을 내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지 않고 왜 그들(범죄자)을 보호하고 감싸려고 하는지, 죄를 짓지 않은 피해자는 잘 모르겠다”며 “변호사와 검사도 반대하고 경찰도 난리 나고 피해자도 반대하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 이 시점에도 피해받는 피해자에 대한 장치는 아무것도 없다는 게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도 형소법 개정안에 대한 국무회의 의결 전 경찰 수사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형소법 개정안이 국회 입법권을 부정할 만큼 심각하진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경찰에 집중되는 거대한 권한을 걱정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경찰이 엄청난 권한을 갖게 되는데 ‘앞으로 안전할 걸까’라는 우려를 안 할 수가 없다”며 “경찰 스스로 책임 의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높은 책임감으로, 높은 윤리 의식으로 엄정하고 중립적으로 철저하게 범죄 피해자들이 억울하지 않게, 또 억울한 피의자가 생기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수사 비리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수사에 관한 비리를 저지르면 국민이나 피해자로서는 내 사건을 저렇게 망가뜨려서 가해자, 피해자를 뒤집어 놓으면 자살하고 싶을 정도가 됐는데, 담당 경찰은 감봉 몇 개월하고 또 딴 데 가서 수사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엄청난 힘” 우려하면서도 거부권 요구에 “심각하지 않아” 이어 “(경찰이) 증거를 숨기고 없애 버리고 내 사건을 뒤집어서 반대로 만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엄중함을 갖고 있냐. 전 자신이 없다”며 “수사와 관련된 비리나 비위에 대해 더 높은 책임을 요구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명백한 수사상의 비위가 발생하면 최소 해임, 파면 등의 조치를, 아니면 아예 영구적으로 수사를 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는 등의 엄중한 책임을 언급했다. 형소법 개정안 통과로 사실상 수사의 전 과정을 맡게 된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경찰청은 지난 4일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과 전국 시‧도 경찰청장, 경찰서장 등이 참석한 지휘부 회상회의를 열었다. 형소법 개정안에 따른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현장 수사관과 중간관리자를 대상으로 개정 내용을 집중 교육하고 보강이 필요한 수사 인력과 예산을 검토해 관계 부처와 협의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이 나왔다. 유 직무대행은 “국민께서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신속성, 범죄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경찰의 비대화 등에 대해 걱정하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경찰은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또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경찰도 예외가 아니”라며 “경찰관 배우자 및 존‧비속 상피제와 경찰 수사 인권‧감찰 조사기구, 경찰 수사 개혁위원회 권고 사항 등을 포함한 촘촘한 통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아울러 “경찰 수사의 유일한 지향점은 국민이며 기준은 오직 법과 원칙”이라며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국민의 신뢰 속에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분골쇄신의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불신 의심 극복되나 이 대통령의 당부, 경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경찰 내부에서도 이번 개정안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에 일이 몰려 과부하가 걸린 부분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수사에 대한 책임까지 모두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