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를 이기는 여름 여행 ⑤서울대학교 남부연습림 관사·전남도립미술관·유당공원·와인동굴

북적이지 않아 더 시원한 도심 속 여름 여행

흔히 광양은 ‘철의 도시’라 부르며 뜨거운 제철소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지만, 한낮의 열기를 피해 머물 곳이 도심 곳곳에 있다. 일본식 목조 건물, 옛 광양역 자리에 들어선 미술관, 연못이 있는 공원까지 모두 걸어서 닿는 거리다. 기차가 다니던 옛 터널에 만든 시원한 와인동굴도 멀지 않다. 올여름, 무더위를 피할 광양 여행지를 소개한다.

일본식 건축은 인천, 군산, 목포처럼 개항했던 항구도시에 주로 남아 있다. 그런데 광양읍 한복판에도 100년의 세월을 품은 일본식 목조 건물이 자리한다. 남부연습림은 1919년 동경제국대학이 백운산 일대에 산림 연구와 실습을 위해 조성한 숲이다. 이를 관리하던 직원들의 관사를 광양읍에 지었다.

산채 명소

돌담 안으로 들어서면 각기 다른 멋을 지닌 두 동의 목조 건물이 앞뒤로 서 있다. 날개처럼 끝이 화려하게 올라간 팔작지붕 건물과 지붕 사면이 평평하고 단정하게 내려앉은 우진각지붕 건물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관사를 수리하며 발견된 상량문에는 1919년 3월에 지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광복 후에는 서울대학교가 연습림과 관사를 관리했고, 2015년까지 실제 숙소로 썼다. 한동안 비어 있던 건물은 새 단장을 마치고 2024년 시민에게 문을 열었다.

내부까지 개방된 적산가옥은 흔치 않으나, 1호 관사는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복도를 따라 양쪽에 방이 늘어서 있다. 문지방 위에 낸 환기창, 벽 바깥으로 돌출된 창틀 등 일본 주택의 특징이 잘 남아 있다. 빛을 은은하게 투과시키는 창호지와 벽면을 완전히 개방할 수 있는 미닫이식 구조는 실내 채광과 환기를 원활하게 해준다.

편백 욕조가 놓인 욕실 맞은편의 미닫이문을 열면 다다미방이 나온다. 방과 정원 사이에는 유리창을 두른 긴 툇마루가 있다. 방에 앉아 창문 너머 정원을 바라보며 쉬기 좋다. 관사 주변의 작은 정원도 그냥 지나치기 아쉽다. 남부지방에서 잘 자라는 나무들이 푸른 숲을 이루고 있어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데, 이 작은 숲길을 걷다 보면 여기가 읍내 한복판이라는 사실마저 잊게 된다.

전남도립미술관은 세계의 동시대 미술과 남도의 미술을 나란히 보여주는 곳이다. 개관 이래 지역 작가들을 조명하는 기획전을 꾸준히 열었고, 해외 작가의 작품도 선보인다. 허백련, 김환기, 천경자 등 남도가 길러낸 거장들의 작품이 관람객을 맞아 왔다. 미술관은 옛 광양역 터에 들어섰다. 1967년 문을 연 광양역은 2011년 경전선 복선 전철화로 자리를 옮겼다. 기차를 연상케 하는 긴 건물은 과거 기차역이었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준다.

건물 전면을 감싼 유리 외벽은 비스듬히 기울어, 거대한 지붕처럼 보인다. 건물 옆을 따라 정원을 걷다 보면 마치 기차를 기다리는 승강장에 서 있는 듯하다. 안으로 들어서면 층고가 높은 로비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유리 벽을 통과한 자연광이 시간대에 따라 실내의 표정을 바꾼다. 길게 이어진 미술관 복도를 걸으면 조용히 산책하는 느낌이다.

관람객들은 곳곳에 놓인 의자에 앉아 유리창 너머 바깥을 감상한다. 수시로 변하는 하늘도, 지나가는 사람도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철의 도시를 시원하게 즐기는 법

1층 전시실에서는 2027년 2월까지 ‘굿모닝 미스터 백 & 정(GOOD MORNING MR. PAIK & JUNG)’이 열린다.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과 음악가 존 케이지, 미술가 요제프 보이스의 우정을 좇는 전시다. 19 58년 독일에서 시작된 이들의 인연은 서로영감을 주고받으며 20세기 예술의 흐름을 바꿨다. 미술관이 기증받은 ‘정기용 컬렉션’의 사진과 판화 30여점이 세 사람이 나눈 30여년의 교감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미술관 곳곳에도 작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지하로 내려가면 시기마다 다채로운 기획전이 바뀌어 걸린다. 이번 여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특별한 전시가 기다리고 있다. 2026년 7월14일부터는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데이터 사피엔스’가 열린다. 몸으로 지혜를 쌓아 온 인간과 데이터로 지능을 익힌 AI가 만나는 시대를, 여러 작가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짚는 전시다.

전시를 둘러본 뒤에는 1층 카페 ‘플랫폼 660’에서 숨을 고른다. 660이라는 숫자는 미술관 주소에서 따왔다. 카페는 아트 숍을 지나 안쪽에 자리한다. 광양을 상징하는 꽃, 매화 작품이 걸린 아늑한 공간이다. 통창 밖으로는 한여름의 볕이 쏟아지지만, 유리 안쪽은 고요하고 시원하다. 차가운 음료를 앞에 두고 방금 본 전시의 여운을 나누기 좋다.

미술관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닿는 곳에 오래된 정원이 있다. 버들 ‘유(柳)’, 연못 ‘당(塘)’. 이름 그대로 버드나무와 연못이 있는 공원이다. 유당공원의 역사는 조선 중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528년부터 1533년까지 광양현감을 지낸 박세후가, 읍성이 바다에서 보이지 않도록 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들은 훗날 무성해져 방풍림 역할을 해냈으며, 이곳은 지금도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원으로 남아 있다. 수백 년을 살아낸 나무들이 세월의 깊이만큼이나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유당공원에는 봄마다 흰 꽃을 피우는 이팝나무가 유명한데, 꽃 피는 시기에 방문하면 달큼한 향이 나무 아래 고인다. 공원 가운데에는 버들못이라 불리는 연못이 있다. 여름이면 다양한 수생식물이 수면을 채우고, 그 사이로 연꽃이 피어오른다. 푸조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왕버들 같은 고목도 지나온 세월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줄지어 선 푸조나무 아래에 서면, 아름드리 둥치에서 시간의 두께가 느껴진다.

공원 한편에는 광양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을 모은 비석군이 있다. 광양현감과 관찰사의 선정을 기리는 선정비가 이곳의 내력을 전한다. 그 곁에는 나라를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친 광양 출신의 군인과 경찰들의 넋을 기리는 참전유공자기념비와 충혼비가 서 있다.

이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연못 한가운데 섬에 세운 전각이 바로 ‘충혼각’이다. 짧은 다리를 건너야 닿는 충혼각은, 치열했던 역사적 아픔을 뒤로한 채 오늘날에는 여름날의 은은한 연꽃 향기가 번지는 평화로운 쉼터가 되어 방문객에게 고요한 위로를 건넨다.

광양와인동굴은 본래 화물열차가 다니던 터널이다. 경전선은 광양역을 지나 제철소 방향으로 갈라졌다. 철로 개량 공사로 쓰임을 다한 석정터널은 2017년 7월 와인동굴로 다시 태어났다. 주차장에서 언덕을 오르면 포도와 폭포를 그린 벽화 사이로 말굽 모양의 동굴 입구가 나온다. 한 발짝만 들어서도 바깥 열기가 금세 가신다. 연중 17도 안팎을 지키는 동굴 공기 덕에, 밖이 무더울수록 안이 반갑다.

동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와인 바가 여행객을 맞는다. 국내와 세계 여러 산지의 와인을 전시·판매하고, 잔으로도 맛볼 수 있게 했다. 입장권에 와인 한잔을 더한 묶음 상품을 고르면 서늘한 동굴 안에서 느긋하게 와인을 음미할 수 있다. 301m 터널을 걷는 동안 볼거리가 이어진다. 초입에서는 고대부터 근대까지 와인의 역사와 종류를 살펴볼 수 있다. 이어서 이집트 벽화를 연상케 하는 부조가 시선을 끈다. 곳곳에 놓인 오크 통은 와인 저장고에 들어선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굴 여행

붉은 하트 조형물 앞 벤치는 나란히 앉아 사진 찍기 좋고, 거울로 둘러싸인 방에서는 색색의 조명이 사방으로 번진다. 전구가 빼곡히 이어지는 빛의 길도 발길을 머물게 한다. 동굴 여행의 끝에는 향긋한 족욕장이 기다린다. 와인을 푼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면, 얼굴에는 서늘한 기운이, 발에는 기분 좋은 온기가 감돈다. 은은한 와인 향을 맡으며 잠시 쉬어가면 더위는 어느새 저만치 물러가 있다. 

<webmaster@ilyosisa.co.kr>

 

<여행 정보>

-광양 서울대학교 남부연습림 관사 주소: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시 광양읍 매천로 801, 운영 시간: 10:00~17:00 ※설·추석 연휴 당일 휴관, 문의: 061-79 7-3333, 061-797-2418

-전남도립미술관 주소: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시 광양읍 순광로 660, 운영 시간: 10:00~18:00(입장 마감 17:30)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추석 연휴 당일 휴관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21:00까지 연장 개관(입장 마감 20:30), 이용 요금: 대인 1000원, 어린이·청소년·대학생·군인·예술인 700원, 도민·전남사랑도민증 소지자 50% 할인, 문의: 061-760-3242

-유당공원 주소: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시 광양읍 백운로 24, 문의: 061-797-3333

-광양와인동굴 주소: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시 광양읍 강정길 33, 운영 시간: 09:30~18:00(매표 마감 17:20), 이용 요금: 어른 7000원, 지역 주민·경로·장애인·단체(20인 이상) 6000원, 청소년·어린이 5000원
※입장료+와인 1잔, 입장료+와인 족욕 1만1000원, 문의: 061-794-7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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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가득한 보완수사권 폐지 후폭풍

의문 가득한 보완수사권 폐지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70년 넘게 유지된 우리나라 형사제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와 맞물려 사회에 많은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정부 때부터 힘을 키워온 경찰은 이번 개정안으로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됐다. 동시에 경찰은 국민의 질문에 답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경찰을 믿을 수 있나? 지난달 31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형소법 개정안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제 검사는 사법경찰관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할 권한만 갖는다.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이래 72년 만에 가장 큰 사법체계 변화를 마주하게 됐다. 격변하는 형사제도 형소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주도로 이뤄졌다. 표결 결과 재석 의원 178명 가운데 찬성 175명, 반대 2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민주당 곽상언 의원과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이 반대했고, 민주당 이소영 의원이 기권표를 던졌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보완수사권을 포함해 오는 10월 신설되는 공소청 검사의 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수사 과정에서의 모든 자료를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기록하도록 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장치로는 경찰이 사건을 불송치할 경우 고소인‧피해자‧고발인이 이의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필요한 사건 기록 열람‧등사 권한도 부여했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그동안 민주당이 주도해 온 검찰개혁은 마무리 수순에 접어 들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해 9월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라 오는 10월2일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하는데, 공소청 검사는 공소 제기와 재판 유지만 맡는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청와대에서 환영의 메시지가 나오면서 가능성은 사라졌다. 이날 청와대는 “국회의 입법 과정과 최종 판단을 존중한다”며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통해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막는 한편, 피해자와 국민 인권 보호 수준을 높임으로써 형사사법 시스템이 국민 곁으로 한걸음 더 다가서도록 할 것”이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국민 10명 중 6명 반대 여당 주도 본회의 통과 이 대통령은 거부권 대신 ‘사필귀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삶을 더욱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해 모든 권력기관은 예외 없이 국민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사필귀정의 필연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사·기소 분리는 비정상적 형사사법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첫걸음”이라고도 했다. 국회 본회의 통과, 국무회의 의결 등 법안 공포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사법체계는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 ‘경찰’이 놓였다. 문재인정부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가 깨지면서 경찰에 실리기 시작한 힘은 이번 형소법 개정안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기까지 검찰에 ‘보완수사권’이라는 견제 기능을 남겨둘지를 두고 진통이 상당했다. 형소법 개정안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만큼 경찰에 집중되는 권한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보완수사권은 그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다. 실제 보완수사권 폐지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는 압도적으로 반대가 높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의 의뢰로 지난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보완수사권 존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62.5%가 ‘검찰에 보완수사 권한을 줘야 한다’고 답했다.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31.8%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53.8%가 ‘보완수사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모든 지역에서 과반을 기록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73.1%로 가장 높았고 서울 64.7%, 호남권에서도 59.9%가 ‘보완수사권을 존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남녀노소, 지지 정당,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는 쪽에 손을 든 것이다. 존치 의견 우세해도… 존치 찬성자들은 경찰의 수사 능력을 의심했다. 검찰보다는 경찰이 국민과의 접점이 더 넓은 상황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수사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장윤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형소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진 감도 없지 않았다. 장윤기 사건은 지난 5월 광주 광산구 월계동 남부대학교 인근에서 장윤기가 여고생을 흉기로 살해한 내용이다. 이 여고생의 비명을 듣고 달려간 남학생도 크게 다쳤다. 장윤기와 여고생이 일면식도 없는 사이로 알려지면서 ‘묻지마 범죄’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장윤기 사건에 경찰인 그의 아버지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장윤기의 부친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가 사건에 개입해 증거를 인멸하고 수사 관련 정보를 누설하는 등의 행위를 한 게 검찰의 보완수사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장윤기의 아버지가 아들의 방에서 없앤 리얼돌은 성범죄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로 여겨졌다. 10대 여고생이 피살된 사건에서 경찰이 가해자 측과 유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보완수사권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경찰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라도 남겨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더해졌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모씨는 보완수사권 폐지와 관련해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김씨는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무소속 한동훈 의원 주최로 열린 보완수사권 폐지 긴급 간담회에 참석했다. 피해자들 나섰지만… 김씨는 “세금을 내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지 않고 왜 그들(범죄자)을 보호하고 감싸려고 하는지, 죄를 짓지 않은 피해자는 잘 모르겠다”며 “변호사와 검사도 반대하고 경찰도 난리 나고 피해자도 반대하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 이 시점에도 피해받는 피해자에 대한 장치는 아무것도 없다는 게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도 형소법 개정안에 대한 국무회의 의결 전 경찰 수사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형소법 개정안이 국회 입법권을 부정할 만큼 심각하진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경찰에 집중되는 거대한 권한을 걱정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경찰이 엄청난 권한을 갖게 되는데 ‘앞으로 안전할 걸까’라는 우려를 안 할 수가 없다”며 “경찰 스스로 책임 의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높은 책임감으로, 높은 윤리 의식으로 엄정하고 중립적으로 철저하게 범죄 피해자들이 억울하지 않게, 또 억울한 피의자가 생기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수사 비리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수사에 관한 비리를 저지르면 국민이나 피해자로서는 내 사건을 저렇게 망가뜨려서 가해자, 피해자를 뒤집어 놓으면 자살하고 싶을 정도가 됐는데, 담당 경찰은 감봉 몇 개월하고 또 딴 데 가서 수사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엄청난 힘” 우려하면서도 거부권 요구에 “심각하지 않아” 이어 “(경찰이) 증거를 숨기고 없애 버리고 내 사건을 뒤집어서 반대로 만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엄중함을 갖고 있냐. 전 자신이 없다”며 “수사와 관련된 비리나 비위에 대해 더 높은 책임을 요구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명백한 수사상의 비위가 발생하면 최소 해임, 파면 등의 조치를, 아니면 아예 영구적으로 수사를 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는 등의 엄중한 책임을 언급했다. 형소법 개정안 통과로 사실상 수사의 전 과정을 맡게 된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경찰청은 지난 4일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과 전국 시‧도 경찰청장, 경찰서장 등이 참석한 지휘부 회상회의를 열었다. 형소법 개정안에 따른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현장 수사관과 중간관리자를 대상으로 개정 내용을 집중 교육하고 보강이 필요한 수사 인력과 예산을 검토해 관계 부처와 협의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이 나왔다. 유 직무대행은 “국민께서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신속성, 범죄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경찰의 비대화 등에 대해 걱정하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경찰은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또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경찰도 예외가 아니”라며 “경찰관 배우자 및 존‧비속 상피제와 경찰 수사 인권‧감찰 조사기구, 경찰 수사 개혁위원회 권고 사항 등을 포함한 촘촘한 통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아울러 “경찰 수사의 유일한 지향점은 국민이며 기준은 오직 법과 원칙”이라며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국민의 신뢰 속에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분골쇄신의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불신 의심 극복되나 이 대통령의 당부, 경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경찰 내부에서도 이번 개정안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에 일이 몰려 과부하가 걸린 부분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수사에 대한 책임까지 모두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