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1945년 중앙청에 성조기가 나부낀 이후부터 1950년의 6·25전쟁을 거쳐 1960년대까지 미국 정부는 사랑과 평화의 이름으로 계획적인 많은 원조를 했다.
하지만 진짜 원조는 맛뵈기였고 실제로는 빌려주는 돈이 훨씬 더 많았다(지금도 미국은 빚쟁이 행세를 하고 있다).
쾌락 식민지
그 가난한 시절에 미군들이 아이들에게 던져 준 초콜릿이나 껌은 과연 사랑과 애처로움의 표현이었을까?
운 좋은 강아지처럼 달콤한 캐러멜이나 사탕을 주워 먹은 아이들은 평생토록 아름다운 추억 혹은 고마움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 미군은 한국 파병 전의 교육에서 그런 ‘초콜릿 던지기’를 임무수칙으로 하달받았던 것이었다.
물론 진정한 인류애를 발휘해 고아들을 도운 미군도 없진 않았으나, 그런 선행 또한 미국 정부의 궁극적인 마스터플랜에 다 포함됐다.
미국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 미국. 아메리카. U.S.A…미국은 정녕 아름다운 나라인가?
아메리카를 미국이라고 불러 주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한국밖에 없다. 일본마저도 그냥 쌀을 많이 생산한다는 사실적 관점에서 미국(米國)이라 부를 뿐이다.
일설에 의하면 미국의 도움으로 대학 공부를 마치고 활동하다가 그들의 원호로 대통령이 된 이승만이 일본보다 더 친미적임을 강조키 위해 그런 명칭을 쓰도록 언론에 지시했다고도 한다.
아무튼 미국의 그런 장기적인 플랜에 입각해 몇십 년 동안 서서히 미국식으로 정치, 군사, 경제, 사회, 교육, 법률, 문화, 언론, 출판, 연예, 스포츠 등등 모든 면에서 아름답게 종속돼 버린 한국을 미국의 똘마니나 꼭두각시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국내의 반체제 인사뿐 아니라 프랑스, 영국, 일본, 심지어 미국 내의 정직한 지식인들마저 그렇게 생각했다. 오직 한국의 정치 지도자라는 사람들과 그들의 혀끝에 속은 일부 국민들만이 태평성대라며 놀아났다.
어쨌거나 이제 한국인들은 미국이 없으면 못살 정도로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세뇌돼 버렸다.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마침내 미국 정부가 기획했던 대로 새로운 방식의 쾌락 식민지가 시작된 것이었다.
주한미군의 존재는 꼭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지금이야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미군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에 주둔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엔 정부의 세뇌교육까지 곁들여져서 미국과 미군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자애로운 수호신으로 인식되었다.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국 대통령의 머릿속까지 지배할 수 있었다.
미군은 한반도의 신성한 평화 수호군이라고 선전되었다. 영화관의 ‘대한뉴스’에까지 나올 정도였다.
영화 앞부분에 꼭 한미동맹은 혈맹마냥 굳건하다느니, 반공 방첩을 국시로 하여 북한 괴뢰도당과 무장간첩을 쳐부숴야 한다는 둥 엄숙한 어조로 판결문을 읽어대곤 했다.
동족을 원수나 악마라고 욕한다면 우리 자신은 얼마나 고결한 천사일까? 아니, 미국은 정녕 우리의 수호신이고 천사일까? 옛날엔 그랬다 쳐도 지금까지 그래야 하는가?
아무튼, 혈기 왕성한 미군 청년들의 성욕은 편리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처리돼야만 했다. 미군 당국은 강력히 요청했으며 박정희 정부는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한미 양측은 기지촌의 양공주, 이른바 미군 위안부들이 미군 장병들의 사기를 높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데 공감했다.(한국인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흥분하면서도 미국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양공주니 양갈보니 하면서 은근히 미소 짓는 것을 보면 왠지 이상스런 생각이 든다. ‘미국 위안부’라는 말은 정부에서 사용한 공문서에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와 미국군 위안부의 차이점은 드러난 강제와 숨겨진 반강제에 있을 뿐 그 본질은 같다.-지은이 주)
그리하여 청와대 직속 기지촌 정화위원회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설치돼 국법으로 미군 위안부들을 한층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친미적인 응대교육을 시키기 시작했다.
혈기 왕성한 미군의 청년들
편하고 안전하게 성욕 처리
한미친선협회와 같은 관변 단체의 요청을 받고 나온 강사는 공회관에 가득 들어차 있는 양공주들을 향해 거들먹거리며 강연을 하곤 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내 활동하는 진정한 애국 아가씨 여러분! 여러분들이 존재하기에 대한민국의 대낮은 더욱 밝은 것입니다. 무지한 인간들이 위선적인 순결을 주장할 때 여러분은 과감히 자유와 사랑과 희망을 속마음으로 외치며 애국전선에 나섰습니다. 일석이조란 고사성어가 있지마는, 여러분은 일석삼조를 넘어 한 몸으로 열 마리의 파랑새를 우리 조국에 선사하고 있는 애국 여성입니다! 즉 일석 십조의 보배로운 존재라는 말이죠. 여러분은 머나먼 이역만리 길을 떠나와 이 땅의 평화를 수호하는 미군 장병들의 향수병을 포근한 가슴으로 품어 달래 줄 뿐만 아니라 억눌린 청춘의 욕구를 풀어 주는 천사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한미 관계를 한 차원 높게 우애롭게 하며, 나아가 외화를 획득해 경제 발전을 이끌고, 또한 미군 장병들의 거친 욕망을 해소시켜 처녀와 소녀에 대한 성범죄를 미연에 방지함으로써 우리 사회와 가정을 평온케 유지시키는 숭고한 선행을 마다않고 있는 셈입니다. 여러분, 만약 미군 장병이 없다면 북한 괴뢰군은 더 많은 무장공비를 남파시켜 살인과 강간을 일삼다가 마침내 6.25전쟁 때처럼 밀고 내려올 것입니다. 우리 조국을 지켜 주는 미군 장병들을 연인처럼 사랑해 주는 그대 천사들이 있기에 한국 사람들은 오늘도 즐겁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여러분의 성스러운 노고와 아름다운 희생 정신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확신해도 좋을 터입니다. 여러분의 노후는 정부에서 모두 책임질 테니 지금은 오직 애국 행위에만 전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 특별법에 의거해 전국 각지에 산재한 미군 기지촌 1백여곳이 특별 매춘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서울 이태원과 경기도 동두천, 의정부, 파주를 비롯해 제주도까지 전국토의 요소요소마다 붉은 암종 같은 기지촌 미군 위안부 공창이 불야성을 이루었다.
그 당시 종로 3가나 청량리 588 등 내국인 대상 사창가는 엄격히 단속하면서도 기지촌 공창엔 특혜를 주었다는 사실은 곧 국가가 나서서 미군 위안부를 만들어 관리 감독했다는 것을 뜻한다.
주무부서에서 위안부 명부를 작성해 소정의 향응 교육을 받아야만 클럽에 드나들 수 있었으며, 지역 경찰과 보건소에 막강한 권한을 주어 위안부를 관할케 했고, 만연하는 성병 문제를 해결한다는 구실로 마침내 몽키하우스를 설립해 성병 보균 여성을 강제 수용했던 것이었다.
수많은 농촌 처녀들과 도시 빈민 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기지촌에 들어가 양색시가 되었다.
그 중엔 소개소의 감언이설에 속아선 온 여자도 있었고, 서울역 등지에서 폭력 조직에 납치돼 처녀성을 잃은 후 강제로 팔려 간 경우도 많았다.
일단 한번 그 굴 속에 들어가면 마치 덫에 걸린 짐승처럼 쉽사리 빠져나오기가 어려웠다. 청운은 언젠가 신문이나 선데이 서울 같은 주간지에서 그런 광고를 본 기억이 있었다.
<미군홀·장교클럽 여급 모집>
▲초보환영 학력불문 19~27세
▲선불 가능 침식제공
▲월수 50만원 보장
▲조용히 자립하실 분
▲홀복 줌
▲주인 직접/ 당일 면접 채용
▲텍사스홀
기지촌 특혜
여자들은 서울에 대한 꿈을 안고 상경하지만, 이런 저런 점조직 루트를 통해 인계돼 결국 도착한 곳이 황량스런 시골 속의 야릇한 요지경임을 알곤 놀라게 된다.
그녀들은 서울이나 고향으로 되돌아가고 싶어도 이제 올가미에 걸린 토끼보다 더 가망이 없다.
포주는 건달을 시켜 아가씨의 영육을 유린케 해 희망을 끊어 놓는다.
또한 아가씨의 몸을 어느 인계자에게 큰돈을 들여 산 듯이 속이며, 떠나려면 당장 갚으라고 윽박지르는 한편 달콤한 말로 회유해 끝내 그 구렁창에 주저앉게 만드는 것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