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말로 자신의 철학을 보여준다. 그래서 정치인의 언어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국민과 맺는 약속이 된다. 특히 당 대표 출마 선언이나 대통령 출마 선언처럼 정치 인생의 방향을 밝히는 자리에서는 더욱 그렇다. 국민은 그 자리에서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듣고 싶어 한다.
정치인의 언어가 명확할수록 신뢰는 커지고, 모호할수록 의심은 깊어진다.
13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당 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당원 중심 정당, 당원 주권 강화, 이재명정부 성공, 개혁 완수 등을 강조하며 당권 도전을 선언했다. 당정청 원팀을 만들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도 말했다. 전체적으로는 강한 개혁 의지와 당 운영 구상을 담은 출마 선언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것은 다른 한 문장이었다.
바로 "당 대표직을 이용해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는 발언이다. 이어 그는 "대선 승리의 기획자가 되겠다"고 덧붙였다. 처음 들으면 정치적 욕심을 내려놓고 정권 재창출에 헌신하겠다는 뜻처럼 들린다. 그러나 조금만 곱씹어 보면 이 표현은 여러 해석을 낳는다. 국민은 선언보다 그 말의 숨은 뜻을 해석하게 된다.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이것이다. 정말 2030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당 대표라는 직위를 이용해서는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두 문장은 전혀 다르다. 앞의 문장은 대선 불출마 선언이지만, 뒤의 문장은 특정한 방식만 부정하는 표현이다.
만약 정말 대선 출마 의사가 전혀 없다면 표현은 훨씬 간단했을 것이다. "2030년 대통령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이 한 문장이면 논란은 끝난다. 그러나 '당 대표직을 이용해서는'이라는 단서가 붙는 순간 국민은 다른 가능성도 열어둔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우리 정치에는 "현재로서는" "생각이 없다" "검토한 바 없다"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 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얼핏 보면 분명한 입장처럼 들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국민은 정치인의 말을 믿기보다 그 문장 속 단서를 먼저 찾게 된다.
실제로 우리 정치에서는 대선 출마 의사가 없다고 했다가 출마를 선언한 정치인도 있었고, 선거에 나갈 계획이 없다고 했다가 정치 환경이 바뀌었다며 입장을 바꾼 사례도 적지 않았다. 정치 상황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오래 기억하는 것은 상황의 변화보다 처음 했던 말이다.
이번 정청래 전 대표의 발언도 그런 아쉬움을 남긴다. "당 대표직을 이용해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는 문장은 대선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당 대표직만 이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그렇다면 당 대표를 사퇴한 뒤 출마하는 것은 가능한 것인지, 다른 정치적 경로를 통한 출마도 열어 둔 것인지 국민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정치권에서도 비슷한 해석이 나왔다. 정치평론가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4일, CBS 라디오에서 "'2030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하면 될 일을 '당 대표직을 이용해 출마하지 않겠다'고 표현한 것은 대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 둔 것처럼 들린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 대표직을 내려놓은 뒤에는 얼마든지 출마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표현으로 읽힌다"며 "정치인의 언어는 국민이 오해하지 않도록 분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뒤이어 나온 "대선 승리의 기획자가 되겠다"는 말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국민은 이를 ‘본인은 출마하지 않고 선거를 이끌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정치에서는 대통령 후보가 자신의 선거를 직접 기획하고 전략을 세우는 일도 흔하다. 출마와 기획은 서로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이 표현 역시 대선 출마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는 말로 보기는 어렵다.
왜 정치인들은 이렇게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표현을 사용할까. 정치권에서는 미래의 선택지를 스스로 좁히지 않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논리도 있다. 실제로 정치는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인 만큼 미래를 단정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러나 국민의 시각은 다르다. 국민은 정치인의 미래 전략보다 현재의 진심을 알고 싶어 한다. 대통령에 도전할 생각이 있는지, 당 대표 임기를 끝까지 수행할 것인지, 정치인은 그 시점에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말할 책임이 있다.
더욱 아쉬운 점은 이번 발언이 당 대표 출마 선언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당 대표 출마 선언은 자신의 정치적 비전과 당 운영 방향을 설명하는 자리다. 그런데 가장 많이 회자된 것은 당 운영 철학이 아니라 대선 출마 가능성을 둘러싼 해석이었다. 그 자체로 메시지 전달은 성공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정청래 전 대표 정도의 정치적 경륜을 가진 인물이라면 이런 표현이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국민은 정치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을 선택하는 순간 국민은 그 진의를 추측하게 되고, 신뢰는 그만큼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치는 언어의 예술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예술은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누구나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명확한 문장에서 시작된다. 정치인은 변호사가 아니다. 훗날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문장의 빈틈을 만드는 사람도 아니다.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언어가 국민의 신뢰를 얻는다.
만약 정말 2030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생각이었다면 "2030년 대통령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면 됐다. 반대로 아직 결심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당 대표 역할에만 집중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더 솔직했을 것이다. 애매한 표현은 정치적 선택지는 넓혀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국민의 신뢰까지 넓혀 주지는 못한다.
정치는 말 한마디로 국민을 설득하는 일이다. 그래서 정치인의 언어는 명확해야 하고, 국민이 오해하지 않도록 책임 있게 선택돼야 한다. 국민은 정치인의 속마음을 추리하는 탐정이 아니다. 누구나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분명한 한 문장, 그것이 신뢰를 만드는 정치이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정치 언어의 출발점이다.
16일 현재까지 정청래 전 대표는 13일 출마 선언에서 한 "당 대표직을 이용해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와 "대선 승리의 기획자가 되겠다"는 두 발언의 의미에 대해 별도의 설명이나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