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사단법인 한국판소리보존회가 정부보조금 1600만원을 부정수급한 뒤 원금 환수 조치까지는 이뤄졌지만, 제재부가금 부과는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자들과 법인은 벌금형까지 받았는데, 부과 여부조차 검토되지 않았다. 이에 보조금 부정수급에 대한 후속 제재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판소리보존회(이하 판소리보존회)가 받은 보조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의 문화예술기관 연수단원 지원사업에서 나온 돈이었다. 이 사업은 문화예술단체가 연수단원을 채용하면 일정 기간 인건비를 지원해 주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단체 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연수단원은 문화예술 현장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지원사업 악용
문제는 판소리보존회가 이 지원금을 받는 과정에서 실제로 일한 사람과 서류상 이름을 올린 사람이 달랐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판소리보존회는 2019년 한모씨를 연수단원으로 채용한 것처럼 근로계약을 맺고 예술위에 보조금을 신청했다.
서류만 보면 한씨가 판소리보존회에서 새로 일하는 연수단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사무실에서 일한 사람은 한씨가 아닌, 강모씨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강씨는 이미 2018년 3월부터 12월까지 같은 단체에서 연수단원으로 근무했던 인물이었다.
쉽게 말하면 2018년에 이미 연수단원으로 일했던 강씨를 2019년에도 계속 쓰면서, 겉으로는 한씨라는 다른 사람을 새로 채용한 것처럼 처리한 것이다.
이런 방식이 문제가 된 이유는 연수단원 지원사업의 성격 때문이다. 이 사업은 단체가 연수단원을 새로 채용하면 그 인건비를 지원해 주는 구조다. 이미 같은 단체에서 연수단원으로 일했던 사람을 다시 같은 방식으로 채용해 지원받기 어렵다면, 단체는 새 사람을 뽑거나 기존 인력을 자체 예산으로 고용해야 한다.
그런데 판소리보존회는 한씨 명의로 계약을 맺고 지원금을 신청한 뒤, 실제로는 기존에 일했던 강씨를 계속 근무하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원 요건을 맞춘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서류상 근무자와 실제 근무자를 다르게 처리한 셈이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예술위에서 지원된 보조금은 한씨 통장으로 들어갔고, 이후 한씨가 강씨 통장으로 다시 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겉으로는 한씨가 연수단원 급여를 받은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강씨가 일하고 급여를 넘겨받았다.
계약자는 한씨, 근무자는 강씨
연수단원 보조금 1600만원 적발
이 사실은 한 공익 제보자를 통해 밝혀졌다. 제보자 A씨는 예술위 감사실에 판소리보존회의 부정수급 문제를 신고했다. 예술위 감사실은 2024년 5월 한국판소리보존회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현장 면담을 진행했고, 대상자들의 진술이 엇갈리자 사안을 특정감사로 전환했다.
결과적으로 예술위는 판소리보존회의 문화예술기관 연수단원 지원사업에서 보조금 부정수급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예술위는 판소리보존회와 관련 인력 등을 보조금관리에관한법률상 거짓 신청, 형법상 사문서 위조, 사기 등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발 또는 수사 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후 사건은 경찰 수사로 넘어갔다. 강남경찰서는 2024년 10월23일 해당 사건을 보조금관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경찰 단계에서도 보조금 부정수급 혐의가 있다고 본 셈이다.
결국 당사자들에게는 벌금형이 내려졌다. 판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판소리보존회 관계자들과 법인에 대해 총 90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당시 한국판소리보존회 상임이사였던 조씨에게 벌금 300만원, 사무원 김씨에게 벌금 100만원, 부정수급 관련 당사자인 강씨에게 벌금 300만원이 내려졌고, 법인인 판소리보존회도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부정수급한 원금도 회수됐다. 예술위는 2026년 4월20일 한국판소리보존회의 부정수급 사실을 확인한 뒤 관련자 고발과 기 지급된 보조금 1600만원에 대한 환수 조치 등 행정·법적 조치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제재 부가금 방치 왜?
예술위 “문체부 권한”
하지만 제재부가금은 부과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제재부가금은 보조금을 부정하게 받은 경우 원금 반환과 별도로 부과하는 행정상 제재금이다. 잘못 받은 돈을 돌려받는 데 그치지 않고, 부정수급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재발을 막기 위해 마련된 장치다.
현행 보조금관리법은 반환명령 등이 이뤄진 경우 반환해야 할 보조금 총액의 5배 이내에서 제재부가금을 부과·징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판소리보존회의 부정수급액은 1600만원으로, 이에 따라 최대 8000만원의 제재부가금 부과가 가능하다.
물론 제재부가금이 항상 최대 금액으로 부과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형사 처벌이 이뤄진 경우나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감면 또는 면제될 수 있다.
그러나 감면이나 면제가 가능하다는 것과 별개로, 부과 여부를 검토하고 그 결과를 정리하는 절차는 필요하다. 하지만 판소리보존회는 원금 환수 이후 2년 가까이 지나도록 제재부가금 부과 여부조차 검토하지 않은 상태다.
예술위는 “제재부가금 부과는 보조금관리법 제33조의2에 따라 소관 중앙관서의 장인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권한 사항”이라며 “제재부가금은 문체부 부정수급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부과 여부 및 금액이 결정된다”고 답했다.
이에 A씨가 “에술위에서 제재부가금이 문체부 소관이라고 하더라”라고 묻자 문체부 담당 부서 관계자는 “문체부 소관이 아니”라며 “예술위에 다시 연락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유도 없고
제보자 A씨는 “제재부가금 부과 여부를 검토라도 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안 하고 서로 책임만 미루고 있는 상황”이라며 “보조금을 부정수급해도 적발되면 원금만 돌려주고 끝나는 식이라면 제재 제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판소리보존회 측은 “제재부가금 심사는 환수 이후 소관 부처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라며 “현재 소관 부처의 부정수급 제재 심사 개최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imsharp@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부정수급 근절 칼 뺐다
정부가 국고보조금 부정수급에 대한 제재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적발된 보조금 부정수급은 992건, 금액으로는 668억원에 달했다. 전년 493억원보다 약 1.4배 늘어난 규모다.
정부는 이에 따라 부정수급 적발 시 물리는 제재부가금을 기존 부정수급액의 최대 5배에서 8배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부정하게 받은 돈을 돌려받는 데 그치지 않고, 추가 제재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신고 포상금도 확대된다. 기존에는 환수된 보조금 일부를 기준으로 포상금을 지급했지만, 앞으로는 제재부가금까지 포함한 환수액을 기준으로 포상금을 산정하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현장 점검도 대폭 늘렸다. 지난 4월부터 민간·지방자치단체 보조사업 1만3240건을 대상으로 점검을 진행하고 있으며, 점검 이후 각 부처 부정수급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환수와 제재 등 후속조치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보조금 부정수급에 대한 제재 수위가 높아지는 만큼, 적발 이후 제재부가금 부과 절차가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