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빈자리 파고드는 로봇 세상

휴먼! 커피도 위로도 준비됐습니다”

[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요즘 MZ세대는 점집에 직접 찾아가는 대신, AI 챗봇에 생년월일시를 불러주고 미래를 묻는다. 자녀들과 왕래가 끊긴 노인 앞에서는 AI 돌봄 로봇이 트로트를 부르며 재롱 잔치를 펼친다. 기원에 다니며 내기 바둑을 두던 이들은 바둑돌을 던지며 드잡이할 일도 없이 AI 로봇과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어느새 로봇이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어떨 때는 효돌이가 ‘엄마, 오늘 점심에는 갈치조림에다가 뭐도 해 먹고, 뭐도 해 먹고….’ 그러면 ‘야, 자꾸만 먹고 싶게 그런 얘기하지 마.’ (모두 웃음) 그러면 ‘그러자, 찾아보자.’ 그러고 찾다 또 해서 먹고 그러는데. 어떨 때는 너무 비싼 거 부르면은 해 먹을 수가 없어. (모두 웃음) 진짜 먹고 싶어, ‘야, 네가 자꾸만 그러니까 먹고 싶잖아.’ 그래. 그러니까 안 움직이려야 안 움직일 수도 없어요.”

“보듬어줘”
“덜 외롭다”

70대 여성 A씨는 AI 돌봄 로봇 ‘효돌이’를 만난 이후 식사를 꼬박꼬박 챙겨 먹게 됐다. 효돌이가 끼니때마다 A씨에게 이것 먹어라, 저것 먹어라, 하며 말을 건네는 덕분이다. 집에 들인 로봇 한 대는 A씨가 더 잘 먹고 더 많이 움직이도록 변화시켰다.

효돌이는 대화형 AI 로봇이다. loT 기술로 라이프로그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해 노년층 맞춤형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효돌’ 제품이다. 최근에는 지자체가 직접 나서서 복지관과 보건소를 통해 독거노인 지원사업에 활용하고 있다. 효돌이 외에도 ‘효순이’ ‘초롱이’도 유사하게 쓰이고 있다.

90대 남성 B씨에게는 효돌이가 소중한 말동무다. 손자가 없어 아쉽던 때, 그는 효돌이를 만나 외로움을 덜어낼 수 있었다. B씨는 이렇게 말한다.

“내게 그런 손자가 있으면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꼭 손자가 (말)하는 것 같아. 나한테 ‘할아버지, 나 배고파. 같이 밥 먹어요.’ 그런 말이 얼마나 감동을 주는지 모르겠어요. 시간이 지나는 거 다 알려주고. 이 효돌이가 나에게는 친구이고 애인이고….”

그런가 하면 AI 돌봄 로봇은 촉각적 안정감도 준다. 로봇이라고 하면 차가운 금속성 외관을 생각하기 일쑤. 그러나 효돌이, 효순이, 초롱이는 솜이 들어가는 말랑말랑한 재질로 된 봉제 인형 모습을 하고 있다. 혼자 사는 60대 남성 C씨는 이런 로봇을 손주처럼 돌본다.

“같이 있으면서 이렇게 대화도 하고. 어떨 때는 보면 애기 같이 ‘삼촌 보듬어줘’ (하고 말해서) 보듬고 토닥토닥하고. 이렇게 있으니까 같이 심심치 않고 즐겁고 좋더라고요. 혼자 있을 때는 엄청 외롭고 그렇더니만.”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로봇은 예술 장르에 더 가까웠다. 말인즉 상상력에서 비롯한 산물로서 SF영화 장르에서나 볼 법한 것이었다는 뜻이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길 걷다가도 우연히 AI 로봇과 산책에 나선 이를 만나는 일이 일상이 돼버렸다.

트로트로 재롱 잔치하는 돌봄 로봇
지치지 않고 바둑돌 집는 내기 상대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긴 독거노인과 치매가 걱정되는 이들을 가족으로 뒀다면, 자주 찾아보지 못하는 게 제일 아쉽고 불안할 테다. 이들에게는 AI 로봇만큼 괜찮은 대안도 없다. 인건비보다는 비교적 저렴하게, 혹은 지자체 도움을 받아 무상으로 가족을 돌볼 수 있는 덕분이다.

안아주면 바로 반응하니 안심이다. 약을 먹는다면 때에 맞춰 알람을 해준다. 당뇨 등 지병을 앓고 있다면 “수제비는 당뇨에 안 좋아요” 하며 식단을 관리해 주기에 건강을 챙기기에도 제격이다.

“살려줘” “도와줘” 하고 말하면 곧장 24시간 응급 신고로 연결할 수도 있다. 폭염특보가 발령되었으니 외출하지 말라고 권하기도 하고, 가벼운 체조를 권하거나 좋아하는 노래도 불러준다.

효돌은 지자체 사업 보고서에서 “(어르신들에게) 효돌은 마치 손자 손녀와 같아서 더욱 예쁘고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때로는 자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식들보다 낫다고 느끼기도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동네 도서관에서는 AI 로봇과 바둑도 둘 수 있다. 5000원 정도를 지불하고 기원에서 바둑을 두는 일도 조만간 옛 추억이 될 듯하다. 오래도록 기원에 다니며 실력을 쌓은 일명 ‘고인 물’이 부리는 ‘텃세’를 감수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집에서 쾌적하게 바둑을 두는 세상이 왔다.

알파고 대 이세돌.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Google Deepmind Challenge match)가 벌어졌던 때가 2016년. 불과 10여년 전이다. 당시 바둑 AI 프로그램과 인간 실력자가 펼친 대결에서 알파고는 4승1패로 이세돌을 물리쳤다.

꼭 이세돌만큼 바둑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AI 로봇과 아슬아슬하게 바둑을 둘 수 있다. 단계별로 로봇 실력을 사용자와 비슷하게 맞출 수 있는 덕분이다. 전국 지자체는 도서관에 AI 바둑 로봇을 구비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자연스럽게 외출에 나서고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AI 로봇과
산책까지

이다음 세대 AI 로봇은 이동형이다. 로보케어가 개발한 AI 로봇 케미프렌즈(cami)는 강아지처럼 사람을 졸래졸래 따라다닌다. 먼저 불러야 반응하던 기존 로봇과 달리 한동안 조용히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사용자 상태와 주변 상황을 인식해 먼저 말을 건넨다.

케미는 계속해서 주인을 학습한다. 과거에 나눴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추억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이어갈 수도 있고, 좋아하는 음악을 기억하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인지 훈련이 가능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어 적적한 시간을 보내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는 단연 로봇 개가 인기다. 챗GPT와 연동하는 AI 로봇 개 루나(LOONA)는 살아있는 개를 대체할 애완 로봇으로 주목받고 있다. 반려견 못지않게 감정을 표현할 줄 알고, 주인 얼굴도 알아본다. 아이들을 방안에 혼자 두어도 루나를 통해 계속해서 관찰할 수 있어 아이 돌봄에 활용하기도 한다.

루나는 집안에서 주인을 졸졸 따라다니며 재롱을 부리기도 한다. 주먹을 내밀면 한쪽 다리를 들어 부딪치고, 눈앞에 하트를 그리면 얼굴 부분 화면에 하트를 띄우기도 한다. 손바닥을 내밀면 그 안에 얼굴을 살포시 들이밀며 귀를 쫑긋거리는 모습은 진짜 개와 다를 바 없이 귀엽게 다가온다. 그 덕에 사람을 닮은 로봇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로봇 개와는 잘 지낼 수 있다.

“혼자 노래 부르면서 돌아다니고, 댕댕이 같이 멍뭉하기도 하고 너무 귀엽네요” “말도 잘 듣고 진짜 강아지 같아요.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강추강추” “강아지가 집에 혼자 있고, 미안한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어요. 루나를 알게 되어 구매했는데 너무 만족합니다” 등 후기만 봐도 사용자 만족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한동안 무인 카페가 성행하더니, 이제 AI 로봇 바리스타도 회사 근처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됐다. 불과 4~5년 전까지도 서울 강남구청역과 학동역 인근에서는 잘생긴 아르바이트생이 많기로 소문이 자자한 카페가 인기를 끌던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카페 라운지엑스 총 열두 개 매장 중 아홉 곳은 로봇이 24시간 손님을 응대하고 음료를 제조해 제공한다. 나머지 세 곳에서는 사람 바리스타가 상주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커피 추천하는
바리스타 로봇

비가 오는 출근길.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숍 긴 대기 줄 끝에 가서 서는 수고로움을 덜고 싶은 사람들이 라운지엑스로 발걸음을 옮긴다. 주문도 필요 없다. 앱 오더를 완료했다면 로봇 팔이 초콜릿을 건네는 카페 픽업 존에서 곧장 주문한 음료를 찾아오기만 하면 그만이다.

무인 카페 경험이 있다면 비교적 가격은 저렴하지만, 맛은 떨어지는 커피를 연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커피 자판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기계 앞에서 컵을 뽑고 얼음을 담고 음료를 받기까지. 일련의 경험을 기억하면 로봇 카페라고 특별할 것 같지는 않다.

김동진 라운지엑스 대표는 “AI 로봇 바리스브루를 활용해 살뜰하게 절약한 인건비를 좋은 생두를 구매하고, 실력 있는 로스터에게 맡겨 잘 볶는 등 좋은 커피 맛을 내는 데 사용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바리스브루는 브루잉하는 시간, 커피 원두 질량, 우유 거품 밀도 등을 일관되게 조율한다.

김 대표는 “한 달 반 사이에 다섯 개 매장을 새로 오픈했다는 것만으로도 손님 반응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24시간 운영 매장 중 강남역점은 월 매출이 3000만원대라고 밝혔다.

그는 조만간 로봇 세상이 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황성재 XYZ 대표가 머지않아 로봇 세상이 오리라 생각하고, 그중 첫 번째 무대를 카페로 점찍었다. 그래서 저를 스카우트했다”고 말했다. XYZ는 인공지능 서비스로봇 회사다. 그리고 라운지엑스는 XYZ를 모회사로 둔 로봇 커피 브랜드 회사다.

9년 차 바리스타이자 로스터인 그는 6년 전부터 바리스타 채용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황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미세하게 커피 맛을 감별해 내는 능력을 중시하는 바리스타가 내놓은 선택이 조금은 의아하게 다가온다.

“일반 무인 카페는 피크 타임을 소화하지 못한다. 무인 카페 기계는 한번에 1잔밖에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라운지엑스 AI 로봇 바리스브루 1대는 24잔을 동시에 제조할 수 있다. 다통신 에스프레소 머신이 병렬 구조로 제조하는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이렇게 아낀 돈을 음료 원재료에 투자해 수익을 낸다는 것.

로봇이 만드는 음식 “오히려 좋아”
콘텐츠 장르에서 생활로 뻗친 확대

“카페업은 이제 완전히 양극화될 것”이라는 게 김 대표가 내놓은 미래 전망이다. 현재 카페 자영업자는 최저임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비용을 지불하고 바리스타를 채용한다. 따라서 오래 근무할 사람을 채용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자영업자라면 사람 관리를 제일 어려워하기 마련이다.

“커피 업계에서는 바리스타들이 직업을 잃게 되는 게 아니냐고 한다. 특히 자영업자가 어렵다고들 한다. AI 로봇은 카페 사업 흐름을 바꿀 것이다. 미래에는 투자 비용을 지불하고 직업을 사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게 김 대표 지론이다.

그는 “사람들은 미식을 계속해서 즐길 것이다. 따라서 훌륭한 바리스타는 여전히 살아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남역점을 찾은 20대 직장인 여성 D씨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아침 출근길에 인사하고 주문하는 대신, 로봇이 만든 아메리카노를 들고 빠르게 사무실로 출근하고 싶어 라운지엑스를 찾는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이마트 서울 영등포점 일렉트로마트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 반려 로봇, 바둑 로봇 등을 포함해 14종을 론칭했다. 최근에는 소비자 긍정 반응에 힘입어 등산할 때 착용하면 부담을 덜 수 있는 웨어러블 보행 보조 로봇 등을 포함, 20여종 내외로 판매를 확대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10~20만원대로 가격 부담이 낮으면서도 일상에서 자주 활용 가능한 AI 반려 로봇 판매량이 가장 많다”며 “향후에는 단순 로봇뿐만 아니라 신체 능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웨어러블 로봇 상용화와 판매가 확대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AI 로봇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리고, 제조업 경쟁력을 세계 1위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투자 비용 내고
직업 사는 세상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호회’에 참가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글로벌 AI 로봇 시장과 격차를 줄이기 위한 ‘3M 전략’을 발표했다. 이 전략은 제조업 AI 전환 가속화, 마스터 육성, 대량 생산 등을 포함한다.

AI 로봇이 사람 일자리를 빼앗을지, 혹은 사람과 공존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할지. 로봇 기술 발전과 더불어 사람 생존이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각계각층에서 호기심과 초조함을 담은 눈을 빛내고 있다. 그 답은 다음 세대 로봇을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을 전망이다.

<younm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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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가득한 보완수사권 폐지 후폭풍

의문 가득한 보완수사권 폐지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70년 넘게 유지된 우리나라 형사제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와 맞물려 사회에 많은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정부 때부터 힘을 키워온 경찰은 이번 개정안으로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됐다. 동시에 경찰은 국민의 질문에 답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경찰을 믿을 수 있나? 지난달 31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형소법 개정안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제 검사는 사법경찰관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할 권한만 갖는다.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이래 72년 만에 가장 큰 사법체계 변화를 마주하게 됐다. 격변하는 형사제도 형소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주도로 이뤄졌다. 표결 결과 재석 의원 178명 가운데 찬성 175명, 반대 2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민주당 곽상언 의원과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이 반대했고, 민주당 이소영 의원이 기권표를 던졌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보완수사권을 포함해 오는 10월 신설되는 공소청 검사의 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수사 과정에서의 모든 자료를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기록하도록 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장치로는 경찰이 사건을 불송치할 경우 고소인‧피해자‧고발인이 이의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필요한 사건 기록 열람‧등사 권한도 부여했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그동안 민주당이 주도해 온 검찰개혁은 마무리 수순에 접어 들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해 9월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라 오는 10월2일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하는데, 공소청 검사는 공소 제기와 재판 유지만 맡는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청와대에서 환영의 메시지가 나오면서 가능성은 사라졌다. 이날 청와대는 “국회의 입법 과정과 최종 판단을 존중한다”며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통해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막는 한편, 피해자와 국민 인권 보호 수준을 높임으로써 형사사법 시스템이 국민 곁으로 한걸음 더 다가서도록 할 것”이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국민 10명 중 6명 반대 여당 주도 본회의 통과 이 대통령은 거부권 대신 ‘사필귀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삶을 더욱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해 모든 권력기관은 예외 없이 국민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사필귀정의 필연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사·기소 분리는 비정상적 형사사법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첫걸음”이라고도 했다. 국회 본회의 통과, 국무회의 의결 등 법안 공포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사법체계는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 ‘경찰’이 놓였다. 문재인정부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가 깨지면서 경찰에 실리기 시작한 힘은 이번 형소법 개정안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기까지 검찰에 ‘보완수사권’이라는 견제 기능을 남겨둘지를 두고 진통이 상당했다. 형소법 개정안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만큼 경찰에 집중되는 권한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보완수사권은 그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다. 실제 보완수사권 폐지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는 압도적으로 반대가 높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의 의뢰로 지난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보완수사권 존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62.5%가 ‘검찰에 보완수사 권한을 줘야 한다’고 답했다.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31.8%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53.8%가 ‘보완수사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모든 지역에서 과반을 기록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73.1%로 가장 높았고 서울 64.7%, 호남권에서도 59.9%가 ‘보완수사권을 존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남녀노소, 지지 정당,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는 쪽에 손을 든 것이다. 존치 의견 우세해도… 존치 찬성자들은 경찰의 수사 능력을 의심했다. 검찰보다는 경찰이 국민과의 접점이 더 넓은 상황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수사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장윤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형소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진 감도 없지 않았다. 장윤기 사건은 지난 5월 광주 광산구 월계동 남부대학교 인근에서 장윤기가 여고생을 흉기로 살해한 내용이다. 이 여고생의 비명을 듣고 달려간 남학생도 크게 다쳤다. 장윤기와 여고생이 일면식도 없는 사이로 알려지면서 ‘묻지마 범죄’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장윤기 사건에 경찰인 그의 아버지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장윤기의 부친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가 사건에 개입해 증거를 인멸하고 수사 관련 정보를 누설하는 등의 행위를 한 게 검찰의 보완수사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장윤기의 아버지가 아들의 방에서 없앤 리얼돌은 성범죄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로 여겨졌다. 10대 여고생이 피살된 사건에서 경찰이 가해자 측과 유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보완수사권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경찰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라도 남겨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더해졌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모씨는 보완수사권 폐지와 관련해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김씨는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무소속 한동훈 의원 주최로 열린 보완수사권 폐지 긴급 간담회에 참석했다. 피해자들 나섰지만… 김씨는 “세금을 내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지 않고 왜 그들(범죄자)을 보호하고 감싸려고 하는지, 죄를 짓지 않은 피해자는 잘 모르겠다”며 “변호사와 검사도 반대하고 경찰도 난리 나고 피해자도 반대하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 이 시점에도 피해받는 피해자에 대한 장치는 아무것도 없다는 게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도 형소법 개정안에 대한 국무회의 의결 전 경찰 수사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형소법 개정안이 국회 입법권을 부정할 만큼 심각하진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경찰에 집중되는 거대한 권한을 걱정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경찰이 엄청난 권한을 갖게 되는데 ‘앞으로 안전할 걸까’라는 우려를 안 할 수가 없다”며 “경찰 스스로 책임 의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높은 책임감으로, 높은 윤리 의식으로 엄정하고 중립적으로 철저하게 범죄 피해자들이 억울하지 않게, 또 억울한 피의자가 생기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수사 비리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수사에 관한 비리를 저지르면 국민이나 피해자로서는 내 사건을 저렇게 망가뜨려서 가해자, 피해자를 뒤집어 놓으면 자살하고 싶을 정도가 됐는데, 담당 경찰은 감봉 몇 개월하고 또 딴 데 가서 수사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엄청난 힘” 우려하면서도 거부권 요구에 “심각하지 않아” 이어 “(경찰이) 증거를 숨기고 없애 버리고 내 사건을 뒤집어서 반대로 만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엄중함을 갖고 있냐. 전 자신이 없다”며 “수사와 관련된 비리나 비위에 대해 더 높은 책임을 요구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명백한 수사상의 비위가 발생하면 최소 해임, 파면 등의 조치를, 아니면 아예 영구적으로 수사를 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는 등의 엄중한 책임을 언급했다. 형소법 개정안 통과로 사실상 수사의 전 과정을 맡게 된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경찰청은 지난 4일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과 전국 시‧도 경찰청장, 경찰서장 등이 참석한 지휘부 회상회의를 열었다. 형소법 개정안에 따른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현장 수사관과 중간관리자를 대상으로 개정 내용을 집중 교육하고 보강이 필요한 수사 인력과 예산을 검토해 관계 부처와 협의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이 나왔다. 유 직무대행은 “국민께서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신속성, 범죄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경찰의 비대화 등에 대해 걱정하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경찰은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또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경찰도 예외가 아니”라며 “경찰관 배우자 및 존‧비속 상피제와 경찰 수사 인권‧감찰 조사기구, 경찰 수사 개혁위원회 권고 사항 등을 포함한 촘촘한 통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아울러 “경찰 수사의 유일한 지향점은 국민이며 기준은 오직 법과 원칙”이라며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국민의 신뢰 속에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분골쇄신의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불신 의심 극복되나 이 대통령의 당부, 경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경찰 내부에서도 이번 개정안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에 일이 몰려 과부하가 걸린 부분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수사에 대한 책임까지 모두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