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한 여고생의 목숨을 앗아간 장윤기의 범행 자체도 문제지만, 사건 수사 과정의 문제와 쟁점들이 적지 않은 문제점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상 동기 범죄자들이 ‘묻지 마’식의 무작위 폭력을 어린이, 노인, 여성 등 상대적 약자들을 선별적으로 공격하고 있어서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이런 이상 동기 범죄는 ‘누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짓’을 할지 아무도 모르고 예측조차 할 수 없기에 그 예방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서 더욱 두려운 것이다. 연인 폭력이나 스토킹이나 가정폭력과 같은 친밀한 관계의 범죄처럼 약자를 향한 폭력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음에도 경찰을 비롯한 사법 당국의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만약 장윤기에 대한 경찰의 긴급 명령이나 조치가 더 적극적이고 선제적일 수 있었다면 무고한 여고생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 자체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거의 모든 전통적인 폭력의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 함께 있어야만 일어날 수 있는 범죄다. 따라서 그 예방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시간과 공간에 함께 있지 못하도록 예방하면 된다.
피해자에게 스마트 워치를 제공해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피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전자 발찌를 채워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할 수 있다면 어떤 폭력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중심으로, 피해자를 우선적으로 지향하는 사법제도로 사법 패러다임이 전환돼야 하는 이유다.
사건 자체만으로도 이미 커다란, 그리고 심각한 사회 문제임에 틀림이 없지만, 이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몇 가지 더 중요한 교훈을 남기고 있다. 첫째는 사건만 터지면 지적되곤 하는 초동수사의 미흡은 이번 사건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증거의 채집과 보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그래서 검찰의 보완수사에서 밝혀진 새로운 증거나 사실들도 적지 않았다.
두 번째는 비단 이번 사건만이 아니라 심심치 않게 들렸던 경찰과 피의자의 유착이다. 강남서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고, 이번 장윤기 사건에서도 동료 경찰인 범인의 아버지에게 수사 자료와 정보를 전달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곧 경찰 비위나 일탈에 대한 감시 감독의 문제다. 지금처럼 청문 감사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내부 감찰제도에 대한 문제의 제기다. 과연 이대로 좋은가, 아니면 외부 감찰의 제도화가 좋을지 논의가 필요함을 이번 사건이 보여주고 있다.
세 번째는 위 두 가지 쟁점과 관련된 것으로, 형법상 가족의 증거를 인멸하는 등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는 ‘친족 간 특례’가 이대로 존치될 것인가의 문제다. 물론 다른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규정은 있다고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촘촘하게 다듬어져야 한다.
장윤기 수사가 남긴 어쩌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사건의 진실이 왜곡되거나 묻히거나 무고한 피해자가 생길 때 구제 방법의 문제다. 만약 경찰 수사에서 사건의 시작과 끝이 모두 이뤄진다면, 이번 사건은 그냥 단순한 ‘이상 동기’ 묻지 마 범죄의 하나로 마무리됐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진실의 발견과 사법 정의의 실현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은 작동되고 있는 검찰의 보완수사로 묻히거나 왜곡되거나 변질될 뻔한 사건의 실체가 하나하나 새롭게 드러나게 됐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현재 정치권은 물론이고 학계나 시민단체에서도 논쟁의 핵심이 되고 있는 기소와 수사의 완전 분리의 문제와 직결된다. 경찰에게 모든 수사권이 주어지며 검찰은 기소 기능만 하게 되고 제2, 제3의 장윤기 사건이 일어난다면 그렇게 왜곡되거나 변질된 사건의 실체는 어떻게 구제돼야 하는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검찰 보완수사권 또는 보완수사 요구권의 논란이다. 검찰의 보완수사권이건 보완수사 요구권이건, 아니면 이에 버금가는 그래서 억울한 피해자도 없고 사건의 실체나 진실이 왜곡되고 변질되지 않고 사법 정의가 언제나 바로 세워질 수 있도록 하는 또 다른 구제 방법이 반드시 논의되고 만들어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