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세계 자본이 선택한 SK하이닉스

ADR 상장이 대한민국 경제에 던지는 새로운 의미

지난 10일(뉴욕 시각 9일) SK하이닉스의 미국 나스닥 ADR 공모가가 주당 149달러로 최종 확정됐다. 이를 통해 SK하이닉스는 약 265억달러(약 40조원)를 조달하게 됐다. 이는 외국 기업의 미국 증시 기업공개(IPO)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이며, 미국 기업까지 포함하면 스페이스X에 이어 두 번째 큰 기록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모집 물량의 7배가 넘는 청약이 몰렸고 총 투자 수요가 약 2000억달러(약 301조원)에 달했다는 사실이다. 국내 본주 가격보다 약 2.9% 높은 가격에도 세계 투자자들은 기꺼이 투자했다.

이 숫자는 단순히 한 기업의 성공적인 상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계의 연기금과 국부펀드, 글로벌 장기 투자 펀드와 기술 전문 투자자들이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선택했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한국 기업이 해외 자본을 찾아다니며 투자해 달라고 설명해야 했다면, 이제는 세계 자본이 먼저 한국 기업의 문을 두드리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이번 ADR 상장은 바로 그 변화를 상징하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최근 경제 뉴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SK하이닉스 ADR’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ADR이라는 용어는 아직도 낯설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기업이 왜 미국에서도 상장하느냐”거나 “미국 상장이 우리 경제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번 나스닥 상장은 단순히 주식을 하나 더 상장하는 사건이 아니다.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이 세계 최대 자본시장과 직접 연결되는 새로운 전환점이다.

먼저 ADR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ADR(American Depositary Receipt)은 미국주식예탁증서다. 미국 금융기관이 한국 기업의 주식을 예탁받아 이를 미국 증시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증권이다. 덕분에 미국 투자자는 해외 계좌를 만들거나 환전할 필요 없이 달러로 손쉽게 한국 기업에 투자할 수 있고, 기업은 세계 최대 자본시장과 직접 연결되는 효과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SK하이닉스는 왜 미국 나스닥을 선택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자본시장이 미국이기 때문이다. 세계 주요 연기금과 국부펀드, 글로벌 기술 펀드, 대형 자산운용사 대부분이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투자한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라도 세계 자본이 쉽게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하면 기업가치를 충분히 인정받기 어렵다.

나스닥 상장은 그 문을 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번 상장을 통해 조달한 약 40조원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청주 첨단 패키징 공장 확대, EUV 장비 도입, AI 메모리 생산능력 확충 등 미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다시 말해 세계 투자자들의 자금이 대한민국 첨단산업의 미래를 만드는 데 투자되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성장을 넘어 국가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투자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공모는 국내 주가보다 약 2.9% 높은 가격에 확정되는 ‘프리미엄 프라이싱’까지 달성했다. 대규모 공모에서는 투자자를 확보하기 위해 할인 발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SK하이닉스는 오히려 더 높은 가격을 인정받았다. 이는 투자자들이 현재의 실적보다 AI 시대를 이끌 성장 가능성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는 의미다.

수요 예측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모집 물량의 7배가 넘는 주문이 몰렸고 총 투자 수요는 약 301조원에 달했다. 글로벌 장기 투자 펀드와 국부펀드, 기술주 전문 펀드가 경쟁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은 매우 상징적이다. 이제 세계 자본은 단순히 한국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AI 시대를 이끌 핵심 기술과 미래산업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도 미국 증시에 ADR을 상장한 우리 기업은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포스코다. 포스코는 미국 증시에 진출하며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세계에 알렸고, 글로벌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어 세계적인 철강기업으로 성장했다. 당시에는 해외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의미가 컸지만, 이번 SK하이닉스의 ADR은 그와는 결이 다르다.

예전에는 “한국에도 이런 좋은 기업이 있으니 투자해 달라”는 의미가 강했다면, 지금은 세계 투자자들이 먼저 SK하이닉스를 찾고 있다. 모집 물량의 7배가 넘는 청약이 몰리고 공모가까지 프리미엄을 인정받은 것은 세계 자본이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높게 평가했다는 의미다.

이제는 한국 기업이 세계 자본을 설득하는 시대가 아니라, 세계 자본이 먼저 한국 기업의 성장에 동참하려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의 해외 상장 방식도 비교해 볼 만하다. 삼성전자는 미국 나스닥이나 뉴욕증권거래소에 ADR을 상장하지 않았다. 대신 영국 런던증권거래소(LSE)에 GDR(Global Depositary Receipt·국제주식예탁증서)을 상장해 해외 투자자들의 거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GDR은 ADR과 원리는 같지만 미국이 아닌 여러 국가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국제 예탁증서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세계 AI 산업과 글로벌 기술 자본이 가장 집중된 미국 나스닥을 직접 선택했다. 이는 단순히 상장 시장의 차이가 아니라, AI 시대의 중심 무대에서 세계 최고 투자자들에게 기업가치를 직접 평가받겠다는 전략적 선택이다. 글로벌 자본이 모이는 곳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인정받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이번 공모를 공동 주관한 기관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시티그룹, 골드만삭스, JP모건체이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참여했다. 세계 주요 기관투자가와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금융회사들이 SK하이닉스의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공모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더 주목할 부분은 투자자의 구성이다. 단기 차익을 노리는 자금보다 글로벌 장기 투자 펀드와 국부펀드의 참여 비중이 높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기 투자자는 단기 실적보다 미래 성장성을 보고 투자한다. AI 시대에도 SK하이닉스가 핵심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이번 ADR 흥행의 배경에는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산업 변화가 있다. 생성형 AI의 확산으로 전 세계는 데이터센터 구축 경쟁에 뛰어들고 있으며, AI 서버에는 기존보다 훨씬 많은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하다. 그 중심에 있는 제품이 바로 HBM(고대역폭메모리)이다.

현재 SK하이닉스는 HBM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단순히 많이 생산하는 기업이 아니라 가장 높은 성능과 안정성을 요구하는 첨단 메모리를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AI 시장이 커질수록 SK하이닉스의 역할과 기업가치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엔비디아를 비롯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시장을 주도하면서 SK하이닉스의 위상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메모리 반도체를 많이 생산하는 기업이 경쟁력을 가졌다면, 이제는 가장 어려운 첨단 메모리를 가장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이 시장을 이끈다. 세계 투자자들이 SK하이닉스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도 바로 이 기술 경쟁력 때문이다.

이번 ADR 상장은 단순한 자금 조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세계 금융시장이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에 투자하겠다는 신뢰의 표시다. 과거에는 공장을 짓기 위해 은행 대출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세계 자본이 먼저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대한민국 산업의 성장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 장면을 보며 필자는 며칠 전 썼던 ‘제조 강국 다음은 금융 강국’이라는 칼럼을 다시 떠올렸다. 대한민국은 자동차와 조선, 철강,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경쟁력을 갖춘 나라로 성장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좋은 제품만 만드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세계 최고의 기술에 세계 최고의 자본이 결합할 때 비로소 진정한 경제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AI 시대에는 투자 규모 자체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다. 최첨단 반도체 공장 하나를 짓는 데만도 수십조원이 필요하고, 첨단 EUV 장비 한 대 가격도 수천억원에 이른다. 결국 기술력뿐 아니라 세계 자본을 얼마나 빠르게 끌어들이느냐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번 SK하이닉스의 ADR 상장은 바로 이 같은 시대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더 중요한 것은 조달한 자금의 사용처다. 약 40조원의 자금은 반도체 클러스터와 첨단 패키징 공장, EUV 장비, 차세대 AI 메모리 생산시설 구축 등에 집중 투자될 예정이다. 이는 단기 실적을 높이기 위한 투자가 아니라 앞으로 10년, 20년 뒤에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미래 투자다. 세계 투자자들 역시 현재보다 미래를 보고 투자한 것이다.

정부도 이런 흐름을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하고 투자받을 수 있도록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연구개발과 첨단산업 투자 환경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기술은 기업이 만들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 생태계는 정부와 기업이 함께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미 제조에서는 세계 정상급 경쟁력을 입증했다. 이제는 제조 경쟁력 위에 금융 경쟁력까지 더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기술이 세계 최고의 자본을 만나야 더 큰 혁신과 더 큰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SK하이닉스 ADR 상장은 바로 그 가능성을 현실로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세계 투자자들은 단지 현재의 실적만 보고 투자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와 AI 시대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했다. 모집 물량의 7배가 넘는 청약과 약 301조원의 투자 수요는 세계 금융시장이 내린 평가이자 신뢰의 표현이다. 국내 주가보다 높은 가격을 인정받은 프리미엄 공모 역시 SK하이닉스를 AI 시대 핵심 기업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필자는 이번 SK하이닉스 ADR 상장을 계기로 대한민국 기업들의 시야도 더욱 넓어지기를 기대한다. 국내 시장에서의 성공에 만족하기보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고, 세계 자본과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모델이자 미래 경쟁력의 원천이 될 것이다.

이번 사례는 우리 사회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제조 강국이라는 과거의 성공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세계 자본이 먼저 찾아오는 투자 강국으로 도약할 것인가. 앞으로의 국가 경쟁력은 기술과 금융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SK하이닉스의 종목코드 ‘SKHY’가 미국 나스닥에서 거래를 시작하는 순간, 거래되는 것은 단순한 주식이 아니다. 대한민국 기술력에 대한 세계의 신뢰이며, AI 시대를 향한 세계 자본의 선택이다. 이번 상장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그것은 한 기업의 성과를 넘어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과 자본시장의 경쟁력을 세계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세계 최고의 기술은 세계 최고의 자본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자본은 다시 더 큰 기술 혁신을 만든다. 제조와 금융이 함께 성장하는 나라가 미래 경제를 주도한다. SK하이닉스의 이번 ADR 상장은 대한민국이 제조강국을 넘어 세계 자본이 먼저 찾는 투자강국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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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가득한 보완수사권 폐지 후폭풍

의문 가득한 보완수사권 폐지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70년 넘게 유지된 우리나라 형사제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와 맞물려 사회에 많은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정부 때부터 힘을 키워온 경찰은 이번 개정안으로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됐다. 동시에 경찰은 국민의 질문에 답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경찰을 믿을 수 있나? 지난달 31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형소법 개정안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제 검사는 사법경찰관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할 권한만 갖는다.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이래 72년 만에 가장 큰 사법체계 변화를 마주하게 됐다. 격변하는 형사제도 형소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주도로 이뤄졌다. 표결 결과 재석 의원 178명 가운데 찬성 175명, 반대 2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민주당 곽상언 의원과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이 반대했고, 민주당 이소영 의원이 기권표를 던졌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보완수사권을 포함해 오는 10월 신설되는 공소청 검사의 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수사 과정에서의 모든 자료를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기록하도록 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장치로는 경찰이 사건을 불송치할 경우 고소인‧피해자‧고발인이 이의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필요한 사건 기록 열람‧등사 권한도 부여했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그동안 민주당이 주도해 온 검찰개혁은 마무리 수순에 접어 들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해 9월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라 오는 10월2일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하는데, 공소청 검사는 공소 제기와 재판 유지만 맡는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청와대에서 환영의 메시지가 나오면서 가능성은 사라졌다. 이날 청와대는 “국회의 입법 과정과 최종 판단을 존중한다”며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통해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막는 한편, 피해자와 국민 인권 보호 수준을 높임으로써 형사사법 시스템이 국민 곁으로 한걸음 더 다가서도록 할 것”이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국민 10명 중 6명 반대 여당 주도 본회의 통과 이 대통령은 거부권 대신 ‘사필귀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삶을 더욱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해 모든 권력기관은 예외 없이 국민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사필귀정의 필연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사·기소 분리는 비정상적 형사사법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첫걸음”이라고도 했다. 국회 본회의 통과, 국무회의 의결 등 법안 공포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사법체계는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 ‘경찰’이 놓였다. 문재인정부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가 깨지면서 경찰에 실리기 시작한 힘은 이번 형소법 개정안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기까지 검찰에 ‘보완수사권’이라는 견제 기능을 남겨둘지를 두고 진통이 상당했다. 형소법 개정안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만큼 경찰에 집중되는 권한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보완수사권은 그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다. 실제 보완수사권 폐지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는 압도적으로 반대가 높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의 의뢰로 지난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보완수사권 존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62.5%가 ‘검찰에 보완수사 권한을 줘야 한다’고 답했다.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31.8%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53.8%가 ‘보완수사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모든 지역에서 과반을 기록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73.1%로 가장 높았고 서울 64.7%, 호남권에서도 59.9%가 ‘보완수사권을 존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남녀노소, 지지 정당,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는 쪽에 손을 든 것이다. 존치 의견 우세해도… 존치 찬성자들은 경찰의 수사 능력을 의심했다. 검찰보다는 경찰이 국민과의 접점이 더 넓은 상황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수사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장윤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형소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진 감도 없지 않았다. 장윤기 사건은 지난 5월 광주 광산구 월계동 남부대학교 인근에서 장윤기가 여고생을 흉기로 살해한 내용이다. 이 여고생의 비명을 듣고 달려간 남학생도 크게 다쳤다. 장윤기와 여고생이 일면식도 없는 사이로 알려지면서 ‘묻지마 범죄’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장윤기 사건에 경찰인 그의 아버지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장윤기의 부친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가 사건에 개입해 증거를 인멸하고 수사 관련 정보를 누설하는 등의 행위를 한 게 검찰의 보완수사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장윤기의 아버지가 아들의 방에서 없앤 리얼돌은 성범죄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로 여겨졌다. 10대 여고생이 피살된 사건에서 경찰이 가해자 측과 유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보완수사권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경찰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라도 남겨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더해졌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모씨는 보완수사권 폐지와 관련해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김씨는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무소속 한동훈 의원 주최로 열린 보완수사권 폐지 긴급 간담회에 참석했다. 피해자들 나섰지만… 김씨는 “세금을 내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지 않고 왜 그들(범죄자)을 보호하고 감싸려고 하는지, 죄를 짓지 않은 피해자는 잘 모르겠다”며 “변호사와 검사도 반대하고 경찰도 난리 나고 피해자도 반대하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 이 시점에도 피해받는 피해자에 대한 장치는 아무것도 없다는 게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도 형소법 개정안에 대한 국무회의 의결 전 경찰 수사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형소법 개정안이 국회 입법권을 부정할 만큼 심각하진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경찰에 집중되는 거대한 권한을 걱정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경찰이 엄청난 권한을 갖게 되는데 ‘앞으로 안전할 걸까’라는 우려를 안 할 수가 없다”며 “경찰 스스로 책임 의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높은 책임감으로, 높은 윤리 의식으로 엄정하고 중립적으로 철저하게 범죄 피해자들이 억울하지 않게, 또 억울한 피의자가 생기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수사 비리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수사에 관한 비리를 저지르면 국민이나 피해자로서는 내 사건을 저렇게 망가뜨려서 가해자, 피해자를 뒤집어 놓으면 자살하고 싶을 정도가 됐는데, 담당 경찰은 감봉 몇 개월하고 또 딴 데 가서 수사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엄청난 힘” 우려하면서도 거부권 요구에 “심각하지 않아” 이어 “(경찰이) 증거를 숨기고 없애 버리고 내 사건을 뒤집어서 반대로 만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엄중함을 갖고 있냐. 전 자신이 없다”며 “수사와 관련된 비리나 비위에 대해 더 높은 책임을 요구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명백한 수사상의 비위가 발생하면 최소 해임, 파면 등의 조치를, 아니면 아예 영구적으로 수사를 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는 등의 엄중한 책임을 언급했다. 형소법 개정안 통과로 사실상 수사의 전 과정을 맡게 된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경찰청은 지난 4일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과 전국 시‧도 경찰청장, 경찰서장 등이 참석한 지휘부 회상회의를 열었다. 형소법 개정안에 따른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현장 수사관과 중간관리자를 대상으로 개정 내용을 집중 교육하고 보강이 필요한 수사 인력과 예산을 검토해 관계 부처와 협의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이 나왔다. 유 직무대행은 “국민께서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신속성, 범죄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경찰의 비대화 등에 대해 걱정하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경찰은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또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경찰도 예외가 아니”라며 “경찰관 배우자 및 존‧비속 상피제와 경찰 수사 인권‧감찰 조사기구, 경찰 수사 개혁위원회 권고 사항 등을 포함한 촘촘한 통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아울러 “경찰 수사의 유일한 지향점은 국민이며 기준은 오직 법과 원칙”이라며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국민의 신뢰 속에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분골쇄신의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불신 의심 극복되나 이 대통령의 당부, 경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경찰 내부에서도 이번 개정안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에 일이 몰려 과부하가 걸린 부분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수사에 대한 책임까지 모두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