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선호투표제, 송영길에게 기회 될까

민주당 당대표 선거 바꿀 ‘2순위 정치’의 시작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는 9일 8·17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와 관련해 선호투표제 도입 결정을 유지하기로 했다. 전준위 간사인 이연희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전준위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현재까지 전준위나 기획분과는 (선호투표제 도입을) 당헌·당규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앞서 전준위는 정청래 전 대표 측에서 당 대표 선거에 선호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은 당헌·당규 위반 여지가 있다고 주장하자 이를 재논의하기로 한 바 있다.

다만 이 의원은 “당헌·당규 해석 권한은 당무위에 있는 것"이라며 "현재까지 최고위원회의 논의가 계류 중인 상황이라 결론을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준위 의결 사항은 최고위, 당무위를 거친 뒤 최종 확정된다.

이번 당 대표 선거는 정청래·김민석·송영길·고민정 후보가 경쟁하는 4파전이다. 정치권에서는 김민석 후보와 정청래 후보를 양강으로, 송영길 후보를 추격하는 후보로 평가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여기에 고민정 후보까지 가세하면서 이번 전당대회는 단순한 지지율 경쟁을 넘어 ‘룰의 경쟁’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이제는 누가 더 많은 표를 얻느냐 못지않게 어떤 방식으로 승자를 결정하느냐가 더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선거는 단순다수제 또는 결선투표제를 적용해 왔다. 단순다수제는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이 당선되는 방식이고, 결선투표제는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2위가 다시 경쟁하는 방식이다. 민주당 당 대표 선거 역시 그동안 결선투표제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결선을 생략하고 선호투표제로 최종 승자를 결정하는 방안이 제시되면서 새로운 논쟁이 시작됐다.

선호투표제는 유권자가 후보 한 명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1순위, 2순위, 3순위 등 선호 순위를 함께 표시하는 제도다. 다만 선호투표제라고 해서 모두 같은 방식은 아니다. 크게 두 가지 방식이 널리 알려져 있다.

첫 번째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다. 먼저 1순위 표만 집계한 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최하위 후보를 탈락시키고, 그 후보를 선택했던 유권자의 다음 순위 표를 살아남은 후보에게 이전한다. 이후에도 과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같은 절차를 반복한다.

두 번째는 단계적 합산 방식이다. 먼저 1순위만 집계해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2순위 선호를 추가로 반영하고, 그래도 과반이 없으면 다시 3순위까지 합산하는 방식이다.

현재 민주당은 선호투표제 도입 방침은 밝혔지만 세부 집계 방식은 아직 최종 확정하지 않았다. 다만 지도부는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후보 탈락 후 차순위 표 이전 방식’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공식 확정안은 아직 나오지 않은 만큼 다양한 시나리오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사표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당선 가능성이 낮은 후보를 지지하면 자신의 표가 버려질 수 있다는 심리가 작용해 유력 후보에게 전략적으로 표를 몰아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선호투표에서는 그런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후보를 1순위로 선택하더라도 그 후보가 탈락하면 표는 2순위 후보에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유권자의 실제 선호를 끝까지 반영하자는 것이 선호투표제의 핵심 철학이다.

후보들의 선거 전략도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단순다수제에서는 자신의 핵심 지지층을 얼마나 결집시키느냐가 승부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선호투표에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당원들에게도 “차선이라면 나를 선택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열성 지지층만 많은 후보보다 폭넓은 호감과 신뢰를 얻는 후보가 유리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선호투표제를 ‘2순위 정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제도보다 절차였다. 아무리 취지가 좋은 제도라도 선거를 앞두고 경기 규칙을 바꾸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특히 당헌·당규에 결선투표 규정이 명시돼있는 상황에서 이를 선호투표제로 대체할 수 있는지를 둘러싸고 법적·정치적 논란이 이어졌다.

결국 민주당이 다시 논의에 들어간 이유도 제도의 장단점보다 절차적 정당성을 먼저 따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은 정청래 후보 측이다. 정청래 후보는 당헌·당규에 결선투표 규정이 존재하는 만큼 충분한 개정 절차 없이 선호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모든 후보가 같은 규칙 아래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정청래계 의원들도 같은 취지의 의견을 내놓으며 당규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민정 후보 역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선거를 앞두고 룰을 바꾸는 것은 후보와 당원 모두에게 혼란을 줄 수 있으며 공정성 논란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결국 반대론자들의 공통된 주장은 하나다. 좋은 제도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공정한 절차’라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결과의 정당성은 절차의 정당성 위에서만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번 논란을 가장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후보로는 송영길 후보가 거론된다. 그는 선호투표제가 사표를 줄이고 당원들의 다양한 선택을 보다 충실하게 반영하는 제도라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표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살아 움직이는 방식인 만큼, 누구에게나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의 판세를 고려하면 이런 기대는 더욱 현실적인 정치 전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는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에게 표가 몰리는 이른바 전략적 투표가 많았다. 그러나 선호투표에서는 이같은 현상이 상당 부분 완화될 수 있다. 당원들은 부담 없이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후보를 1순위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변수는 2순위와 3순위 등 차선호 표다. 선호투표에서는 1순위 득표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다른 후보 지지층으로부터 폭넓은 2순위와 3순위 선택을 받으면 얼마든지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 다시 말해 가장 열성적인 팬덤보다 가장 넓은 호감도를 가진 후보가 마지막에 웃을 수도 있다. 이것이 단순다수제와 선호투표제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이자, 선호투표제가 2순위 정치라는 별칭을 얻는 이유다.

전준위가 최종 룰을 확정하는 사이 각 후보 캠프는 이미 머릿속 계산기를 바쁘게 두드리고 있을 것이다. 어떤 방식이 채택될 경우 자신에게 유리한지 다양한 시나리오를 돌려보고, AI에게까지 경우의 수를 묻고 있을지 모른다. 이제 선거는 표만 세는 경쟁이 아니라 데이터를 분석하고 확률을 계산하는 경쟁이기도 하다.

필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선호투표제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두 가지 방식으로 가정해 봤다. 어디까지나 제도 이해를 위한 예시일 뿐 실제 민주당이 어떤 방식을 채택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또 특정 후보의 당선을 예측하려는 의도도 아니다.

먼저 가장 널리 알려진 선호투표 방식을 가정해 봤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당원투표를 100표로 설정하고, 1차 개표 결과가 A 후보 33표, B 후보 30표, C 후보 25표, D 후보 12표라고 가정해 보자. 과반 득표자가 없기 때문에 최하위인 D 후보가 먼저 탈락한다.

그러나 D 후보를 선택했던 12표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들의 2순위 선택을 확인해 살아남은 후보에게 다시 배분한다. 예를 들어 이 가운데 8명이 C 후보를, 3명이 A 후보를, 1명이 B 후보를 2순위로 적었다면 결과는 A 후보 36표, C 후보 33표, B 후보 31표가 된다.

그래도 과반 득표자가 없으니 이번에는 B 후보가 탈락하고 그의 지지자들의 다음 순위가 다시 반영된다. 만약 이 과정에서 C 후보가 가장 많은 표를 넘겨받아 50표 이상를 확보하고 A 후보를 앞선다면, 1차에서 3위였던 C 후보가 최종 승자가 된다.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가정해 보자. 같은 조건에서 1차 개표 결과가 A 후보 33표, B 후보 30표, C 후보 25표, D 후보 12표라고 하자. 역시 과반 득표자가 없지만, 이번에는 후보를 탈락시키지 않고 모든 후보의 2순위 선호를 함께 반영한다.

예를 들어 2순위 집계 결과 A 후보 7표, B 후보 5표, C 후보 18표, D 후보 3표를 추가로 얻는다면 누적 득표는 A 후보 40표, B 후보 35표, C 후보 43표, D 후보 15표가 된다.

그래도 과반이 없으니 다시 3순위까지 합산한다. 이때 C 후보 가 가장 많은 3순위 선택을 받아 과반을 넘긴다면 역시 최종 승자가 된다. 이 방식은 후보를 탈락시키지 않고 2순위와 3순위 선호를 단계적으로 합산해 가장 폭넓은 지지를 받은 후보를 가리는 것이 특징이다.

결국 두 방식은 모두 ‘차선 표’를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개표 방식은 상당히 다르다. 하나는 탈락한 후보의 표를 살아 있는 후보에게 계속 이전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2순위와 3순위 선호를 단계적으로 합산하는 방식이다. 민주당이 최종적으로 어느 방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실제 개표 과정과 후보별 유불리도 달라질 수 있다.

현재까지 민주당은 선호투표제 도입 방향을 제시했지만 세부 집계 방식은 아직 최종 확정하지 않은 상태다.

선호투표 과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후보는 고민정 후보다. 현재 판세만 보면 선두권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선호투표제가 도입될 경우 그의 정치적 무게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후보 탈락 방식에서는 가장 먼저 탈락하는 후보의 지지층이 누구에게 이동하느냐가 승부를 좌우할 수 있고, 합산 방식에서는 고민정 지지자들의 2순위와 3순위 선택이 최종 결과를 바꿀 수도 있다.

결국 자신의 득표율보다 지지자들의 차선호가 더 큰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호투표에서는 ‘캐스팅보트’의 의미도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특정 후보가 단일화를 선언하거나 공개 지지를 표명하는 것이 변수였다면, 이제는 유권자가 투표용지에 직접 적어 놓은 2순위와 3순위가 승부를 좌우한다. 정치인의 협상보다 유권자의 선호가 마지막 결과를 결정하는 셈이다.

이것이 선호투표제가 단순한 개표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정치의 작동 방식을 바꾸는 제도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물론 현실 정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제도가 바뀐다고 정치 문화가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2순위 표를 얻기 위한 새로운 연대와 전략이 등장할 수도 있고, 또 다른 형태의 정치공학이 작동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선호투표제를 마치 만능 해법처럼 바라보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제도는 방향을 제시할 뿐, 결국 정치를 바꾸는 것은 사람이다.

민주당이 이번에 다시 논의에 들어간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치 않다. 제도의 취지에는 공감하더라도 절차가 흔들리면 결과의 정당성까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승패보다 승복이 더 중요하다. 승자가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패배한 쪽도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경기 규칙이 사전에 명확하게 정해져 있어야 한다.

또 이번 전당대회는 경선 운영 방식에서도 적지 않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권역별 순회 경선을 실시하면서도 지역별 결과를 곧바로 공개하지 않고 일정 기간 묶어 발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중간 결과 공개로 인한 밴드왜건 효과와 전략투표를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선거 결과보다 유권자의 독립적인 판단을 우선하겠다는 고민이 담겨있다.

예비경선 방식도 달라질 전망이다. 중앙위원과 권리당원이 온라인 투표에 참여하고, 국민 여론조사는 전체 반영 비율의 30%를 차지하는 안이 논의되고 있다. 여론조사는 민주당 지지층과 무당층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전화걸기(RDD) 방식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결국 이번 전당대회는 선호투표제 하나만이 아니라 경선 절차와 운영 방식까지 함께 실험하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필자는 이번 논란을 보며 흥미로운 변화 하나를 읽는다. 우리 정치는 오랫동안 ‘1등만 살아남는 정치’에 익숙했다. 상대를 이겨야 내가 사는 구조였고, 선거가 끝난 뒤에도 갈등은 쉽게 봉합되지 않았다. 그러나 선호투표제가 정착된다면 정치의 기준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 가장 강한 사람보다 가장 넓게 신뢰받는 사람이 경쟁력을 갖는 정치로 한 걸음 나아갈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결국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는 당 대표 한 사람을 뽑는 선거를 넘어, 한국 정당 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선호투표제가 최종 도입될지, 결선투표제가 유지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논쟁을 통해 우리 사회가 다양한 선거제도를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내 편의 박수만 많이 받으면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상대의 지지자에게도 최소한의 신뢰를 얻는 정치가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것이 선호투표제가 던지는 가장 큰 메시지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가 선택하려는 것은 어쩌면 한 명의 당대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 정치의 새로운 문법인지도 모른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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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가득한 보완수사권 폐지 후폭풍

의문 가득한 보완수사권 폐지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70년 넘게 유지된 우리나라 형사제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와 맞물려 사회에 많은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정부 때부터 힘을 키워온 경찰은 이번 개정안으로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됐다. 동시에 경찰은 국민의 질문에 답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경찰을 믿을 수 있나? 지난달 31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형소법 개정안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제 검사는 사법경찰관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할 권한만 갖는다.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이래 72년 만에 가장 큰 사법체계 변화를 마주하게 됐다. 격변하는 형사제도 형소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주도로 이뤄졌다. 표결 결과 재석 의원 178명 가운데 찬성 175명, 반대 2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민주당 곽상언 의원과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이 반대했고, 민주당 이소영 의원이 기권표를 던졌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보완수사권을 포함해 오는 10월 신설되는 공소청 검사의 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수사 과정에서의 모든 자료를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기록하도록 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장치로는 경찰이 사건을 불송치할 경우 고소인‧피해자‧고발인이 이의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필요한 사건 기록 열람‧등사 권한도 부여했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그동안 민주당이 주도해 온 검찰개혁은 마무리 수순에 접어 들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해 9월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라 오는 10월2일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하는데, 공소청 검사는 공소 제기와 재판 유지만 맡는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청와대에서 환영의 메시지가 나오면서 가능성은 사라졌다. 이날 청와대는 “국회의 입법 과정과 최종 판단을 존중한다”며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통해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막는 한편, 피해자와 국민 인권 보호 수준을 높임으로써 형사사법 시스템이 국민 곁으로 한걸음 더 다가서도록 할 것”이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국민 10명 중 6명 반대 여당 주도 본회의 통과 이 대통령은 거부권 대신 ‘사필귀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삶을 더욱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해 모든 권력기관은 예외 없이 국민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사필귀정의 필연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사·기소 분리는 비정상적 형사사법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첫걸음”이라고도 했다. 국회 본회의 통과, 국무회의 의결 등 법안 공포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사법체계는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 ‘경찰’이 놓였다. 문재인정부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가 깨지면서 경찰에 실리기 시작한 힘은 이번 형소법 개정안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기까지 검찰에 ‘보완수사권’이라는 견제 기능을 남겨둘지를 두고 진통이 상당했다. 형소법 개정안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만큼 경찰에 집중되는 권한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보완수사권은 그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다. 실제 보완수사권 폐지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는 압도적으로 반대가 높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의 의뢰로 지난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보완수사권 존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62.5%가 ‘검찰에 보완수사 권한을 줘야 한다’고 답했다.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31.8%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53.8%가 ‘보완수사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모든 지역에서 과반을 기록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73.1%로 가장 높았고 서울 64.7%, 호남권에서도 59.9%가 ‘보완수사권을 존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남녀노소, 지지 정당,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는 쪽에 손을 든 것이다. 존치 의견 우세해도… 존치 찬성자들은 경찰의 수사 능력을 의심했다. 검찰보다는 경찰이 국민과의 접점이 더 넓은 상황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수사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장윤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형소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진 감도 없지 않았다. 장윤기 사건은 지난 5월 광주 광산구 월계동 남부대학교 인근에서 장윤기가 여고생을 흉기로 살해한 내용이다. 이 여고생의 비명을 듣고 달려간 남학생도 크게 다쳤다. 장윤기와 여고생이 일면식도 없는 사이로 알려지면서 ‘묻지마 범죄’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장윤기 사건에 경찰인 그의 아버지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장윤기의 부친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가 사건에 개입해 증거를 인멸하고 수사 관련 정보를 누설하는 등의 행위를 한 게 검찰의 보완수사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장윤기의 아버지가 아들의 방에서 없앤 리얼돌은 성범죄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로 여겨졌다. 10대 여고생이 피살된 사건에서 경찰이 가해자 측과 유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보완수사권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경찰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라도 남겨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더해졌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모씨는 보완수사권 폐지와 관련해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김씨는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무소속 한동훈 의원 주최로 열린 보완수사권 폐지 긴급 간담회에 참석했다. 피해자들 나섰지만… 김씨는 “세금을 내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지 않고 왜 그들(범죄자)을 보호하고 감싸려고 하는지, 죄를 짓지 않은 피해자는 잘 모르겠다”며 “변호사와 검사도 반대하고 경찰도 난리 나고 피해자도 반대하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 이 시점에도 피해받는 피해자에 대한 장치는 아무것도 없다는 게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도 형소법 개정안에 대한 국무회의 의결 전 경찰 수사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형소법 개정안이 국회 입법권을 부정할 만큼 심각하진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경찰에 집중되는 거대한 권한을 걱정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경찰이 엄청난 권한을 갖게 되는데 ‘앞으로 안전할 걸까’라는 우려를 안 할 수가 없다”며 “경찰 스스로 책임 의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높은 책임감으로, 높은 윤리 의식으로 엄정하고 중립적으로 철저하게 범죄 피해자들이 억울하지 않게, 또 억울한 피의자가 생기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수사 비리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수사에 관한 비리를 저지르면 국민이나 피해자로서는 내 사건을 저렇게 망가뜨려서 가해자, 피해자를 뒤집어 놓으면 자살하고 싶을 정도가 됐는데, 담당 경찰은 감봉 몇 개월하고 또 딴 데 가서 수사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엄청난 힘” 우려하면서도 거부권 요구에 “심각하지 않아” 이어 “(경찰이) 증거를 숨기고 없애 버리고 내 사건을 뒤집어서 반대로 만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엄중함을 갖고 있냐. 전 자신이 없다”며 “수사와 관련된 비리나 비위에 대해 더 높은 책임을 요구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명백한 수사상의 비위가 발생하면 최소 해임, 파면 등의 조치를, 아니면 아예 영구적으로 수사를 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는 등의 엄중한 책임을 언급했다. 형소법 개정안 통과로 사실상 수사의 전 과정을 맡게 된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경찰청은 지난 4일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과 전국 시‧도 경찰청장, 경찰서장 등이 참석한 지휘부 회상회의를 열었다. 형소법 개정안에 따른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현장 수사관과 중간관리자를 대상으로 개정 내용을 집중 교육하고 보강이 필요한 수사 인력과 예산을 검토해 관계 부처와 협의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이 나왔다. 유 직무대행은 “국민께서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신속성, 범죄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경찰의 비대화 등에 대해 걱정하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경찰은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또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경찰도 예외가 아니”라며 “경찰관 배우자 및 존‧비속 상피제와 경찰 수사 인권‧감찰 조사기구, 경찰 수사 개혁위원회 권고 사항 등을 포함한 촘촘한 통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아울러 “경찰 수사의 유일한 지향점은 국민이며 기준은 오직 법과 원칙”이라며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국민의 신뢰 속에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분골쇄신의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불신 의심 극복되나 이 대통령의 당부, 경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경찰 내부에서도 이번 개정안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에 일이 몰려 과부하가 걸린 부분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수사에 대한 책임까지 모두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