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추자거나 교도소의 과밀 수용에 따른 수형자 처우 문제가 뜨거운 논쟁거리다. ‘범죄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우리 사회의 인식과 그에 따른 대응 방안, 방법을 반영하는 형사 정책적 판단과 선택의 산물일 것이다. 논쟁이 있다는 사실은 아직 우리 사회는 여기에 의견을 하나로 모으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그리고 심지어는 학계에서도 서로 다른 주장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자는 교육, 훈련, 치료 등 처우를 통한 교화 개선과 준법 시민으로서 성공적인 사회 복귀의 대상인가, 아니면 죄에 상응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형벌의 대상인가라는 극단적인 주장이 서로 맞닿아 있다.
물론 모든 범죄자는 다 처우와 교화 개선의 대상도 아니며, 그렇다고 모든 범죄자가 엄중한 형벌의 대상이 돼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여기가 의견이 갈라지는 변곡점이다. 인간을 합리적 선택과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본다면 범죄라는 행위를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한 만큼 그에 상응한 책임과 처벌이 마땅한 것이다.
반면에 유전처럼 내 선택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대로 살고 있을 따름이며, 범행도 그중 하나인 만큼 무작정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면 처벌보다는 치료가 우선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최근의 촉법소년 논란과 수형자 처우 논란도 이런 연장선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처우와 치료가 개인과 사회를 위한 최선의 대안인 범죄자도 있기 마련이다. 미국의 삼진 아웃 대상자처럼 사회로부터의 격리라는 영구적 형벌 외엔 별다른 대안이 없는 범죄자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들을 가려낼 것인가다.
아직은 완벽한 건별의 기준이나 제도는 없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과 결정은 여타의 형사사법적 선택이나 결정과 마찬가지로 보수적인 선택과 결정이 될 개연성이 더 높다. 즉, 범죄자의 처우보다 처벌을 먼저 선택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바로 과밀수용이나 그로 인한 교도소의 각종 사건과 사고는 물론이고 희미하게나마 기대하던 수형자의 교화 개선에 심각한 어려움을 초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는 결국 출소 후 재범률을 높이는 것으로 귀결된다.
교화 개선되지 못한 채로 수형자가 출소하기 때문에 재범할 개연성이 입소 전과 그대로 또는 교도소에서의 범죄 학습으로 범죄성이나 범죄 유발 인성과 기질이 전보다 더 악화된 채로 출소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더 우려하는 것은 출소자에 대한 전과자라는 부정적 낙인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 같은 연유로 현대 범죄학에서는 재범률의 숨겨진 원인의 하나로 전과자라는 ‘부정적 낙인’을 꼽고 있다. 우리 사회가 출소자에게 문을 닫아버리면, 일부 출소자는 범죄행위로 되돌아가도록 등을 떠밀게 된다는 것이다. 낙인은 비단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전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교정의 궁극적인 목표를 사회와 출소자의 재통합에서 찾기도 한다. 재통합이란 범죄자도 교도소에서의 교화 개선을 통해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일부지만 범죄자를 범죄의 길로 내몰았던, 또는 범죄 유발, 조장적 환경을 개선하고 변화시켜서 사회와 출소자가 다시 통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촉법소년의 연령 하향 조정 문제도 그렇고 교도소 과밀 수용과 처우 문제도 이런 몇 가지 쟁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가부간의 선택만을 강요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대안 없는 처벌만의 강요도, 뚜렷한 대안이나 개선책도 없이 단순히 촉법소년의 연령 하향은 있을 수 없다는 맹목적인 주장도, 이유야 어떻거나 촉법소년들의 범행이 예전 같지 않다는 단순한 논리만으로 처벌만이 능사라 듯이 무조건적인 연령 하향 주장도 합리적인 주장이라고는 할 수 없다.
성인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냐 처우냐, 촉법소년에 대한 보호 처분이냐 형사 처벌이냐는 이분법적 선택이 아니라 선택의 다양화, 다변화 등 보다 합리적 선택지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