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저는 저를 버렸습니다. 이제 저는 없습니다. 대한민국 축구밖에 없습니다.” 2024년 7월 홍명보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취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결과로 모든 논란을 잠재우겠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번 2026 북중미월드컵에서 그가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국민이 그를 저버렸다.
“저는 오늘 대표팀 감독이라는 자리를 내려놓습니다.” 월드컵 32강 진출에 실패한 홍명보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9일 멕시코 사포판 치바스 베르데 바예에서였다. 이어 “하지만 대한민국 축구를 향한 마음마저 내려놓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2014년 엿
2026년 개껌
그랬던 말이 무색하게 1분40여초 동안 낭독문을 읽기만 하고 그 어떤 질문도 받지 않았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유유히 기자회견장을 벗어났을 뿐이다.
곧바로 태도 논란이 일었다. 박종윤 스포츠 캐스터는 이날 유튜브 채널 ‘이스타TV’에서 홍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를 위해서 봉사했는데. ‘왜 이러지, 사람들이 나한테?’라고 생각하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축구 유튜버 감스트 역시 “대한민국 대표팀을 그렇게 망쳐놓고 그냥 나 몰라라 하면 기분이 나아지나”면서 “질문도 안 받고, 마지막에 주머니에 손 넣고 나가는 것 보라”고 비판했다.
다음 날인 30일 홍 감독은 별도 행사 없이 조용히 귀국했다.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앞 오전 4시. 홍 감독과 대표팀 예정 동선을 따라 200여명 경찰과 경호 인력이 투입됐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원정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공항 행사 없이 귀국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1무2패 부진을 기록했을 당시 홍 감독과 선수단이 비처럼 쏟아지는 엿을 맞던 수모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른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축구 팬과 유튜버 100여명이 밤을 새우며 두 시간 전부터 공항에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홍 감독을 피노키오로 합성한 사진과 대한축구협회(KFA, 이하 협회) 엠블럼을 영정 사진처럼 꾸며 들고 나온 이도 있었다. 홍 감독이 들어서자 “홍명보 나가” “홍명보는 나와서 사죄하라” 등 야유와 비난이 쏟아졌다. “홍명보! 돈 뱉고 나가” “멍청한 엔딩런” 등 문구를 담은 플래카드도 눈에 띄었다.
두 시간 후 정몽규 협회장이 모습을 드러내자 누군가 개껌을 던졌다. 현장은 다시 한번 아수라장이 됐다. 홍 감독에 앞서 정 회장 역시 이번 대회를 끝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던 바 있다.
만약 홍 감독이 올해 월드컵만 무난하게 이어갔어도 본래 계약 기간인 2027년 아시아 축구연맹(AFC) 아시안컵까지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역할을 해나갈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은 치명적이었다.
홍명보호는 이번 월드컵 조별리그 A조에서 멕시코, 체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경기했다. 첫 경기에서 만난 체코를 누르고 2:1로 역전승하며 기대를 모았다. 이후 개최국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연이어 0:1로 패하면서 1승2패, 조 3위 기록에 그쳤다.
이후 각 조 3위 12개팀 가운데 상위 8개팀에 주어지는 와일드카드 경쟁에서도 최종 10위에 그치며 32강 진출에 실패했다. 역대 최다 참가국인 48개국 중 최종 34위로 월드컵을 마쳐야만 했다.
‘황금 세대’ 축구 대표팀 탈탈 털어
주머니에 손 넣고 떠난 ‘한때’ 영웅
‘황금 세대’라고 불리는 대표팀 선수가 일제히 호명됐을 때는 누구도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 유럽에 진출해 뛰고 있는 선수들이 포함되지 않았던가. 스쿼드(squad, 선수 구성) 역시 최고 수준이라는 평이 나왔다.
홍 감독 지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대표팀 경기력은 기대에 못 미쳤다. 그는 최후방 수비에 중앙 수비수(센터백) 세 명을 두는 스리백(Three-back)을 기본 전술로 세웠다. 공격과 연계 플레이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측면 활용이 잘 안 되자 홍 감독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손흥민 선수가 경기장에서 조기 교체되는 장면, 남아공과 펼친 최종전에서 손 선수를 선발 명단에서 빼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다. 홍 감독은 후반 승부수를 노리기 위한 전술이라고 설명했다. 애석하게도 그 전술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수비 조직력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남아공전에서는 수비 간격과 역할 분담에서 혼선이 드러났다. 김민재 선수가 교체된 이후에는 특히 아쉬웠다. ‘한국은 골을 어렵게 넣으면서 쉽게 먹힌다’는 불평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홍 감독은 한국 축구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을 두 차례 지휘한 사령탑이다. 그는 화려한 명성에 걸맞지 않게 철저히 ‘실패한’ 감독이 됐다. 브라질월드컵과 북중미월드컵 등에서 모두 조별리그 벽을 넘지 못하면서 토너먼트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는 홍 감독이 명예를 회복할 단 한 번 남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는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의리 축구’ 논란을 일으키며 1무2패로 조별리그 탈락을 겪은 뒤, 12년 만에 다시 월드컵 무대에 지휘봉을 들고 섰다. 월드컵 16강 벽조차 너무 두꺼웠던 걸까? 홍 감독은 월드컵 본선을 6경기 1승1무4패 성적으로 마무리해야 했다. 한국이 32강에도 들지 못한 것은 1986년 월드컵 이후 40년 만에 처음이다.
상대적으로 약체로 꼽혔던 남아공과 펼친 경기에서 보여준 무기력함은 국민을 분노케 했다. 경기 중에도 어떡해야 할지 모른다는 듯 가만 서 있거나, 감독으로서 적극 개입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1:0으로 뒤지는 상황에서도 공격수를 더 배치하지 않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많았다.
초라한 성적표가 나오자, 홍 감독 선임 과정에서부터 번졌던 공정성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비판의 화살이 협회 밀실 행정 의혹, 정 회장 개입 논란, 경찰 수사와 문화체육관광부 감사로 이어진 것. 결국 한국 축구 구조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며 개혁이 필요하다는 논의로까지 번졌다.
영웅에서
역적으로
이번 참사가 발생한 근본 원인은 축구협회 행정 실패에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비합리적 감독 선임 과정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2024년 7월, 협회는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독일) 경질 이후 5개월간 공백을 두고 보다가 갑자기 홍 감독을 선임했다. 당시 전력강화위원회 검증 시스템은 제 구실을 못했다. 전력강화위는 외국인 감독 후보에게는 까다로운 전술 발표와 심층 면접 과정을 거치게 했다. 반면 홍 감독에게는 뚜렷한 절차를 거치게 하지 않고 사실상 ‘프리 패스’로 자리를 넘겼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은 홍 감독과 어떠한 면접도 진행하지 않은 채 그를 감독 후보 1순위로 올렸다. 정식 선임을 위한 이사회 서면결의 과정에서도 결함이 드러났다. 몇몇 이사들이 정식으로 이사회에 회부하기를 요청했으나, 의결정족수 충족을 이유로 홍 감독 임명을 강행했다고 한다.
문체부도 특정 감사 결과에서 행정 실패를 인정하고 있다. 감독 추천 권한이 없는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최종 후보자 3인을 대면 면접하고 순위를 매겼다. 면접은 사전 질문지나 참관인 없이 이뤄졌다고. 더구나 이 이사가 늦은 밤 홍 감독 자택 근처에서 그와 단독으로 면접을 진행하며 감독직을 제안했다.
결국 ‘밀실 행정’이 이 모든 사태에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 감독 선임 과정은 클린스만 전 감독 선임 당시 과정을 그대로 답습한 듯한 모양새다. 협회는 전력강화위를 무력화했다. 이후 정 회장이 직접 최종 후보자 두 명을 두고 2차 면접을 진행했다. 이사회 선임 절차마저 빠뜨렸다.
이 같은 규정 우회로 막대한 경질 위약금과 행정력 낭비를 초래했음에도 협회는 또다시 내부 규정을 무시한 주먹구구식 의사결정을 반복했다.
협회 사후 대처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홍 감독 선임 과정에 하자가 있었다는 의혹을 받게 되자, 축구협회는 보도 설명 자료를 냈다. “기술총괄이사가 전력강화위 임시회의에서 참석 위원들에게 후속 절차 진행에 대한 동의를 받았다”며 해명하기 위해서였다.
문체부 감사 과정에서 이 자료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문체부가 이를 지적하자, 협회는 답변서를 통해 “임시회의는 권한 위임을 인정할 규정상 근거가 없다”며 태도를 바꿨다.
축구협회
행정 실패
서울행정법원은 협회가 문체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패소 판결을 내렸다. 문체부가 정 회장 중징계 요구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이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홍 감독 선임 과정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다. 협회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2024년 홍 감독을 선임하던 당시, 전력강화위가 홍 감독을 1순위 후보로 정하는 과정에 위법성이 있었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이들이 홍 감독을 낙점한 뒤 정해선 전 위원장이 정 회장과 소통하다가 사퇴했고, 이후 협회 수뇌부가 권한이 없는 이 전 이사에게 감독 추천권을 넘기는 과정에 위법이 있었다고 본 것이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홍 감독 선임 관련 정 회장의 업무방해 업무상 배임 등 혐의 고발 사건을 2024년 7월 배당받은 뒤 아직도 처분을 내리지 않았다. 법원과 문체부 감사 등을 통해 감독 선임 절차에서 있었던 문제점은 상당 부분 드러났다. 그럼에도 형사 책임을 따지려면 추가 조사와 법리 검토를 후속해야 한다는 게 경찰 입장이다.
경찰은 행정재판에서 확인된 절차 하자가 곧바로 형사 처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업무방해 혐의가 인정되려면 정 회장이 전력강화위나 협회 의사결정 기구 업무를 속임수나 위력으로 방해하려 했다는 고의가 입증돼야 한다.
정 회장이 처음부터 홍 감독 선임을 밀어붙였는지도 수사 쟁점이다. 정해성 전 위원장이 홍 감독을 적임자로 보고하자 정 회장이 외국인 후보자도 만나보라고 지시한 정황이 파악된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츠윤리센터도 2024년 조사에서 정 회장에게 고의적 잘못이 있었다기보다는 그가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는 등 직무태만에 가까웠다고 판단했다.
결론짓기가 미뤄지는 동안 의혹의 핵심에 선 홍 감독과 정 회장 등이 차례로 물러나게 됐다. 이 때문에 수사 결과가 뒤늦게 나오더라도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두 수장 자리가 공석으로 남은 점도 축구계의 걱정을 사고 있다.
“진심으로 죄송하다”면서도 오만불손
수장 없이 언제까지…남은 과제들은?
한때 ‘영원한 리베로’라 불리던 홍 감독은 K리그 1세대 주역이다. 수비수에 걸맞은 폭넓은 시야, 노련한 경기 운영, 날카로운 슈팅, 매끄러운 패스 실력으로 오래도록 인정받아 왔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부터 2002년 한일월드컵까지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월드컵 무대를 네 번 밟았다.
“1983년 슈퍼리그(K리그 전신) 출범 당시 동대문경기장에서 볼 보이 하면서 K리그에서 뛰겠다는 꿈을 키웠다. 그리고 그 꿈을 이뤘다.” 홍 감독은 2023년 5월2일 K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선수 2세대 부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이 같은 소감을 밝혔다. 그는 40년 역사상 단 네 명에게만 주어지는 자리를 차지했다.
홍 감독은 초등학생 때는 측면 공격수, 중학생 때부터는 미드필더였다. 작은 키가 그의 꿈을 발목 잡았으나,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문제 되지 않았다. 갑자기 키가 훌쩍 커버린 덕분이었다.

그가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는 아니다. 동북고등학교 시절 16세 이하 대표로 잠깐 활약한 것이 전부다. 그러다 고려대학교 진학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다 3학년 때 리베로로 바뀌었다. 그는 수비와 공격을 넘나드는 플레이로 대학 리그를 평정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은 홍 감독을 ‘국민 영웅’ 반열에 올려붙였다. 같은 포지션 선배들이 잇달아 부상을 겪는 ‘행운’도 따랐다. 21세인 홍 감독은 막내였지만 스위퍼라는 중요 임무를 무난하게 소화해 냈다. 조별리그 세 경기를 풀타임으로 뛰기도 했다. ‘김정남 이후 최고 수비수’ ‘국가대표 발탁 1년 만에 수비수 일인자 등극’ 등 찬사가 이어졌다.
K리그에 진출하던 시기. 홍 감독은 원하는 팀에서 뛸 수 없는 드래프트제에 반발해 황선홍 선수와 프로 진출을 포기했다. ‘적은 돈에 팔려 갈 수 없다’는 오기도 있었다고 한다. 포항제철 실업팀에 입단했다가 상무에 입대했다. 2대 독자인 덕에 6개월간 복무한 이후 1991년 말 K리그 드래프트에 참여해 포철 입단에 성공했다.
홍 감독은 1992년 첫 시즌 37경기에 출전해 오직 한 골을 기록했다. 결승 골이었다. 현대를 1:0으로 이긴 포철은 이날 경기 이후 4년 만에 K리그 정상에 올랐다.
홍 감독이 가장 돋보이던 시기는 단연 2002년 한일월드컵 주장으로 뛰던 때다. 특히 8강전 승부차기로 승리한 직후 주먹을 쥐고 여흥 세리머니 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이 신은 국가대표 경기 전 상영하는 애국가 영상에 담기기도 했다.
파락호 감독
“돈 뱉고 나가”
4:3 상황에서 홍 감독은 마지막이자 다섯 번째 키커로서 골을 넣고 4강 진출을 확정했다. 슛을 완성하고 한껏 웃으며 양팔을 쫙 펴고 달려가는 장면은 전 국민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줬다.
이번 사태 이후 축구 팬들은 해당 장면을 애국가 영상에서 삭제하자고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국가 영웅이 역적이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오랜 시간 그를 지켜본 축구 팬들은 씁쓸한 뒷맛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younme@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