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조유담 기자 = AI 스마트 글래스가 시험 부정행위와 사생활 침해 등 새로운 사회적 문제를 예고하고 있지만, 국내는 여전히 규제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 해외에서는 법원 반입 금지와 운전 중 사용 제한 등 규제를 강화하는 반면, 국내는 시험장 관리와 개인정보보호에 있어 임시적 대응에 의존하고 있다. AI 웨어러블 시대를 앞두고 공정성과 사생활 보호를 아우르는 명확한 제도 정비가 요구된다.
최근 한 유튜버가 중국의 AI 브랜드 로키드의 7만원대 스마트 글래스를 착용한 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학 영역 문제를 푸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단 18분 만에 모든 문항을 풀어내 96점을 획득하며 수능 1등급에 달하는 성적을 거뒀다.
해당 유튜버는 “만약 콘텐츠 촬영 목적이 아닌 실제 시험장이었다면 타인의 눈에 띄지 않게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기기가 악용될 가능성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해당 영상의 댓글 창에는 “이미 지난 수능이나 국가 공인 자격증 시험에서 부정행위에 사용한 수험생이 존재할 것 같다”는 불안 섞인 반응이 잇따랐다.
18분 만 뚝딱
지난 5월 국내 토익 시험장에서는 스마트 글래스를 활용한 첨단 부정행위 시도가 두 차례나 적발됐다. 그러나 지난 6월 같은 시험에 응시했던 수험생 A씨는 “시험장에서 안경을 따로 검사하거나 살피는 절차는 전혀 없었다”며 “가방과 전자기기를 교단 쪽에 제출하는 것 외에는 이전 시험과 비교해 달라진 점이 없었고, 스마트폰 외의 전자기기는 제출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교육청 역시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비상이 걸렸지만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교육청에서 각 학교에 전달한 공문은 ‘안경다리가 지나치게 두껍거나, 학생이 시험 중 안경다리를 자주 만지는 등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보이면 시험 종료 직후 확인하라’라는 내용으로, 임기응변식 지침에 그쳤다.
학부모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일반 안경을 쓰는 아이들이 괜히 의심을 받지 않도록 행동을 주의시켜야 할 판” “안경을 착용한 학생이 한둘이 아닌데 어떻게 일일이 구별하느냐”라며 우려를 드러내는 글들이 게시됐다.
수요가 늘어나면서 중국에서는 스마트 안경 대여 사업까지 성행하고 있다. 한 대여업자는 최근 4개월간 1000명 이상의 수험생에게 기기를 대여했다고 밝혔다. 안경테에 숨겨진 초소형 카메라가 시험지를 스캔하면, 이 데이터가 연동된 스마트폰의 AI로 전송된다. AI가 문항을 해석해 정답과 풀이 과정을 안경 렌즈나 골전도 이어폰으로 실시간 송출하는 방식이다.
일본에서도 한 중국인 유학생이 도쿄의 한 토익 시험장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조사 결과 그는 시험 문제와 답안을 외부로 유출하기 위해 통신 및 촬영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 글래스를 반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그가 답을 전달하려 했던 수험생은 무려 43명에 달했다는 사실도 함께 밝혀졌다.
부정행위, 사생활 침해…
새로운 사회적 문제 예고
현지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25년 2월에도 일본의 와세다대학 입시에서 한 수험생이 스마트 안경을 이용해 시험 문제를 외부로 유출하다 적발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되는 등 스마트 글래스를 악용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연이은 출시로 스마트 글래스는 AI 기반 기기의 차세대 격전지가 됐다. 메타의 스마트 글래스는 700만대 이상이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올해 하반기 삼성전자, 젠틀몬스터와 협업한 신제품 출시를 예고했다.
애플 역시 내년 시장 진입을 목표로 개발 가속도를 밟고 있으며,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르면 내년 안에 카메라를 내장한 무선 이어폰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스마트 글래스 열풍은 시험장을 포함한 일상 공간에서의 개인정보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메타가 레이벤‧오클리와 협업해 출시한 스마트 글래스는 핸드폰이 없어도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내장 메모리에 저장할 수 있다.
촬영 시 작은 소리가 발생하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들리지 않을 정도에 불과하다. 동영상 촬영 시 발생하는 불빛은 이미 유튜브, 레딧 등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스마트 글라스의 LED 표시등 제거 방법 영상이 버젓이 사용 팁으로 공유되고 있는 상황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최근 미국의 일부 스마트 글래스 이용자들은 드릴 등의 공구를 이용해 안경 전면부의 LED 표시등을 물리적으로 파괴·제거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촬영 시 불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드웨어를 훼손해 ‘몰래카메라’로 개조하는 것이다.
표시등 위에 특수 암막 스티커를 붙이는 꼼수가 동원됐던 것에서 진화하며 더욱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안경을 쓴 타인이 내 쪽을 바라볼 때, 그것이 단순한 시선인지 나를 촬영하는 것인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스마트 글래스 사용자는 약관에 동의하고 앱 권한을 설정하지만, 카메라가 비칠 수 있는 불특정 다수에게는 촬영 여부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개인용도는 여전히 권고사항
‘업무용’ 아니면 규정 없어
스마트 글래스는 타인의 얼굴과 목소리, 걸음걸이를 실시간으로 통신망과 AI 클라우드에 저장할 수 있다. BBC에 따르면, 메타 스마트 글래스의 내장 카메라를 이용해 낯선 사람을 몰래 촬영하거나 괴롭히는 콘텐츠를 제작해 수익을 올리는 사례가 인터넷에서 하나의 콘텐츠 장르를 형성할 정도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법원은 증인과 배심원에 대한 불법 촬영 및 보복 협박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법원 건물 전체에 스마트 글래스 반입을 전면 금지했다. 조 시레시 펜실베이니아주 하원의원은 주 내에서 제조·판매·사용되는 웨어러블 녹화 기기에 촬영·녹음 중임을 알리는 시각적 표시장치(LED 등) 탑재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해당 표시장치가 영구적 또는 일시적으로 비활성화된 상태에서는 타인에 대한 녹음·녹화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일리노이주 의회는 운전자 주의 분산과 교통사고 위험을 이유로 운전 중 스마트 글래스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현재 주지사 서명을 앞두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업무’를 목적으로 이동형 영상정보 처리 기기를 운영하는 경우 불빛, 소리, 안내판 등을 통해 촬영 사실을 표시하고 알려야 한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관계자는 “현재 스마트 글래스에 대한 검토가 이뤄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동형 영상정보 처리 기기는 사용 주체에 따라 해석이 달라져 기본적으로는 단체나 기업을 대상으로 규율하고 있다”며 “개인에 대해서는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장소가 아니라면 규율이 안 되는 측면이 있어 명예훼손 등 다른 규정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별도 규정에 대해서는 확정된 바가 없어 향후 필요하다면 논의를 통해 이뤄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해외 직구로 들어오는 제품에 대해서도, 개보법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사용하는 주체를 규율하므로 판매 또는 구매하는 것에 대한 규정은 없다”고 부연했다.
불법 개조
보호를 위한 명확한 규제 없이 출시된 스마트 글래스는 시험의 공정성과 사생활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를 수 있다. 더욱 작고 정교해질 것으로 보이는 웨어러블 기기의 확산 속도에 비해 제도적 정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개인의 기기 오남용이나 해외 직구로 유통되는 제품을 규율하기 어렵다.
기술 혁신과 산업 육성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역시 정책의 중요한 역할이다. 일상 속 보편적인 기기로 자리 잡기 전에, 표시등 훼손 방지 의무화 또는 통관 규정 신설 등의 명확한 제도적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
<ydcho@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