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6월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은 최근 Z세대를 중심으로 한 ‘텍스트힙’ 열풍을 타고 해마다 전년의 오픈런과 매진의 기록을 경신하며 역대급 흥행을 이어 가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율은 38.5퍼센트로 역대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문화체육관광부 2025년 국민독서실태조사). 10명 중 6명 이상이 1년간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그 소수의 ‘읽기’마저 인간의 몫이 아니게 돼 가고 있다. 우리가 읽고 쓰고 생각하는 방식에 기술이 어떻게 관여하는지 30년이 넘도록 치밀하게 연구해온 언어학자 나오미 배런 박사는 어느새 우리 일상 깊숙이 침투한 읽는 AI, ‘읽기 봇(Reader Bot)’이 인간의 읽기를 대체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묻는다. “AI가 읽는 동안, 인간은 무엇을 하는가? 혹은 무엇을 하지 않는가?” 이 질문에서 출발한 책 <읽지 않는 사람들>에서 배런 박사는 먼저 읽기의 정체부터 파고든다.
“읽기 능력은 인간이 가진 특별하고도 진정한 광선검이다.” 배런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읽기 능력은 무지부터 지루함까지 모든 것을 퇴치하는 인간만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즐거움과 학습의 원천인 읽기는 텍스트를 통해 의미를 구성하고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며 스스로 판단에 이르는 능동적이고 총괄적인 인지 과정이다. 인간의 뇌 구조는 읽기를 통해 진화했으며, 인간은 그런 읽기를 도구 삼아 사회적 유대를 맺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지난 5000년간 유일한 ‘읽는 종’으로서 지적 문명을 구축해 온 인류 앞에 읽기 봇이라는 뜻밖의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추론과 결정에 들이는 노력을 최소화하는 데 AI만큼 적합한 동료가 있을까. 정보와 자극이 넘쳐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AI에게 읽기를 맡긴 다음 그만큼의 시간을 절약했다고 자축하며 더 열렬한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가 되기를 자처한다. 인지적 구두쇠란 정신적 노력을 최대한 아끼려는 인간의 본능을 가리킨다. 그런데 읽기 능력은 자전거 타는 능력과 달라서, 한번 익혔다고 영영 남는 것이 아니다.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능력이다.
문제는 AI가 이 오래된 본능을 전례 없는 강도로 부추긴다는 데 있다. 매번 깊이 읽고 따지는 대신 AI가 내미는 가장 빠른 지름길과 그럴듯한 요약에 기대다 보면, 스스로 의미를 구성하는 사고의 근육은 조용히 약해진다.
그렇게 우리는 표면의 정보를 더 많이 접하면서도 정작 그것을 맥락 속에서 읽고 해석하는 능력, 즉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빠졌는지를 가려내는 힘을 잃어간다. 인지 빈곤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지금 우리는 인류 최초로 인간 지능이 퇴보할 위기에 직면해 있다.
“AI 생성 텍스트가 인간의 글을 질식시키고, 사람들이 기계와 인간의 글을 구분조차 하지 않게 되면 ‘기술을 지배하는 소수가 정신을 지배하는 정보 불평등 사회’가 될 수 있다.”(역자 해제 중에서) 따라서 우리는 “우리 각자가 ‘어떤 독자가 되고 싶은지’를 스스로 정해야 한다.” 읽기 능력을 손에서 놓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묵직하게 일깨우는 이 책은 읽기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는 전환점이자 ‘그럼에도 직접 읽어야 하는 이유’에 관한 지적 선언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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