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레임덕’ 군불 때는 세력들

집권 2년 만에 ‘뒤뚱뒤뚱?’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그 어떤 정부도 임기 막판에 닥치는 ‘레임덕(Lame duck)’은 피할 수 없다. 한때 국정 지지율 60%를 기록하던 이재명정부도 예외는 아닐 테다. 문제는 집권 2년 차에 벌써 레임덕 연기가 오른 점이다. 여권 인사들은 ‘낭설’이라지만 이를 현실로 만드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해 부정적 평가가 긍정적 평가를 넘은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지지율 내림세도 5주 연속 이어졌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데드크로스 현상으로, 6·3 지방선거 결과를 비롯한 당정 갈등, 선거관리위원회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이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다.

전당대회
폭풍전야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5~19일 조사한 이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율(긍정 평가)은 전주보다 4.8%p 하락한 46.7%로 집계됐다. 반면 부정 평가는 긍정 평가를 3.0%p 앞지른 49.7%로 취임 이후 처음으로 데드크로스가 발생했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0%p, 응답률은 4.2%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리얼미터는 지지율 하락 배경으로 ‘6·3 지방선거 관리 부실 사태’로 인한 책임론 확산과 여당 내 당권 갈등을 주요 요인으로 지목했다.

한 여권 관계자 역시 “이 대통령의 유럽 순방 성과와 코스피 9000선 돌파 등 긍정적 요인이 훨씬 더 많았지만 같은 시기에 발생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전 대표와의 갈등설이 더 크게 보도됐다. 이러한 점이 부정 평가로 이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민주당의 시선은 오는 8월 전당대회를 향해 있다. 이번 전당대회는 연임 승부수를 띄운 정 전 대표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을 등에 업은 김민석 국무총리 간의 대결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당권 경쟁이 과열될 조짐이 보이자 이 대통령이 “경쟁을 하는 게 아니라 전쟁을 해서 되겠느냐” “원수들이 싸우듯이 하지 말라”며 에둘러 자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 24일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이른바 친명(친 이재명)계와 친청(친 정청래)계 최고위원들이 면전에서 공개 설전을 벌이는 일이 있었다. 이날은 정 전 대표가 당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힌 날로, 당의 불출마 압박 속에 연임 도전에 나서면서 당내 갈등이 불거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친명(친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강득구 최고위원은 차기 최고위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집권·여당 지도부는 대통령과 경쟁하는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 함께 성공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은 이재명정부와 한 배를 타고 있다. 배에 선장이 둘일 수 없다”며 정 전 대표를 겨냥하는 듯한 발언도 이어갔다.

“내란 종식 및 이재명정부를 출범시키고 6·3 지방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정 전 대표께서 집권·여당 대표로서 오롯이 감당해야 했던 무게와 고통은 누구보다 컸을 것”이라는 강 최고위원은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 보궐선거 전략공천 과정에서 최고위에서 최소한의 논의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지적했다. 

지선 끝나고 ‘훅’ 꺾인 지지율
민주당 벌리고 국힘이 쪼갰다?

그는 “민주당은 앞으로 더 소통하는 정당, 더 토론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며 “당원 주권은 특정인의 권한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당원과 구성원의 목소리가 존중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강 최고위원은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대통령께서는 국민이 정권에 주는 경고라고 말씀하셨지만 (정 전) 대표께서는 승리라고 말씀하신다”며 “국민들께서 민주당에 보내주신 경고의 메시지까지 다르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직격하기도 했다.

반명 정 전 대표는 사퇴 메시지를 통해 자신이 이정부를 뒷받침할 적임자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정부의 성공을 위해 당정청 원 팀, 원 보이스로 뒷받침하려고 헌신의 노력을 다했다”며 “이러쿵저러쿵 누가 뭐래도 이재명 대통령을 끝까지 지킬 사람은 저 정청래”라고 강조했다.

친청계인 문정복 의원 역시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호의 선장이고, 민주당호의 선장은 정 대표”라며 힘을 실었다.

민주당의 당권 경쟁이 과열되는 사이 국민의힘은 이정부의 지지율 하락에 초점을 맞춰 화력을 끌어올렸다. 그들은 지방선거 결과를 비롯한 이정부의 실책을 낱낱이 나열하며 “레임덕이 시작됐다”고 입 모아 말했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집권 1년 만에 이정부의 레임덕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유 전 의원은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인 지난 4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이정부의 오만과 폭주를 지켜보던 민심이 준엄한 경고를 내린 선거였다”고 썼다.

그는 지방선거 기간 당시 정부·여당이 띄운 공소취소 특검법을 겨냥해 “국민이 위임한 권력으로 자신의 재판을 없애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헌법 파괴”라며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권력을 잡았다고 본인의 재판을 없앤다면 그게 나라냐”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을 향해서도 “허구한 날 SNS에 정제되지 않은 글을 마구 올리는 품격 없는 작태에도 국민들이 염증을 느꼈을 것”이라며 “투표용지를 50%밖에 준비하지 않은 선관위의 무능과 무책임은 당장 국정조사를 해서 뿌리부터 수술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장성민 전 의원도 의견을 같이 했다. 그는 “레임덕 발화점은 서울 민심이고, 핵심은 (대통령 형사재판) 공소 취소를 위한 특검과 부동산 정책”이라며 “전국 민심을 미리 읽는 풍향계인 서울 민심이 이재명이 ‘픽’한 정원오 (전 서울시장 후보)를, 정권 취임 1주년 시점에 심판했다”고 주장했다.

국힘발
기우제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이정부의 조기 레임덕, 정청래 연임이 가속화시킬 겁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정 전 대표는 정권교체의 선봉이자 이정부 조기 레임덕의 선봉장”이라고 지적했다.

안 의원은 최근 법원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이른바 ‘연어 술 파티’ 관련 국회 위증 혐의에 대해 징역 4개월을 선고한 것을 언급하며 “재판부가 국민배심원단의 판단을 수용한 지극히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민주당의 사법 파괴에 대한 국민의 심판은 이미 시작됐다”며 “이 대통령 취임 1년 만에 민주당의 오랜 지지층과 중도층이 이탈하면서 국정 지지율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서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한 것이 신호탄”이라고 밝혔다.

안 의원은 거듭 정 전 대표와 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연관 지었다. 그는 “정 전 대표는 계속해서 하던 대로 하라”며 “정권교체의 선봉이자 이정부 조기 레임덕의 선봉장인 정 전 대표의 재선을 응원한다”고 비꼬기도 했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도 “대통령의 지지율이 데드크로스가 나온 것도 선거와 재판의 공정성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라며 “주권자 국민이 선거로도, 재판으로도 정치인을 심판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독재 국가”라고 주장했다.

주 의원은 연어 술 파티 의혹 의혹 당사자로 지목된 박상용 검사의 징계 철회를 위한 탄원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히며 “박 검사의 징계가 취소되면 그 즉시 이재명정부의 레임덕 시작”이라고 말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역시 연어 술 파티 사건을 꼬집으며 “역사적으로 봤을 때 공소 취소의 끝은 하야”라고 직격했다.

이 대표는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사례를 언급하며 “당시 야당에 불법 도청을 지시했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자신을 수사하던 특별검사의 해임을 명령했다”며 “법무부 장관도, 차관도 ‘그 칼만은 들 수 없다’며 사표를 던졌고, 세 번째 사람에 이르러서야 해임됐다. 역사는 그 일을 ‘토요일 밤의 학살’이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정부가 벌인 연어 술 파티 조작 사건의 결말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공소 취소는 꿈도 꾸지 말라. 그 끝은 닉슨과 똑같은 하야뿐”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에서도 레임덕 발언이 나오면서 혼란이 가중 됐다는 평이다. 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정청래 지도부를 겨냥해 “당이 무너지면 레임덕으로 가는 것”이라며 국정 동력 상실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차기 당 대표 주자로 하마평에 오른 만큼 정 전 대표를 견제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지만 사실상 ‘정청래 연임=레임덕’이라는 공식을 세운 셈이다.

‘레임덕’
혼란 가중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과열된 민주당 당권 경쟁을 향해 “벌써 레임덕 이야기까지 나온다. 제발 싸우지 말자”고 당부했다.

박 의원은 YTN 라디오 <장성철의 뉴스 명당>과의 인터뷰에서 전당대회 분위기와 관련해 “진보가 뭉쳐 단결해야 하는데 과연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렇게 싸워야 하는가에 대해 굉장히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진짜 전쟁 날 정도로 이런 상태는 안 된다. 지금 정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진짜 눈사람이 돼 굴러갈수록 커지게 된다”며 “이 대통령이 공개 발언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민주당 1호 당원이기 때문에 한말씀하셔야 한다”고 말했다.

최민희 의원은 ‘정청래 연임이 곧 레임덕’ 프레임을 두고 “마타도어”라고 선을 그었다. 최 의원은 강 최고위원의 “배의 선장은 둘일 수없다”는 발언을 겨냥한듯 “두 개의 태양 불가론, 배 선장 두 명 불가론은 그분 둘의 공상 권력 소설 속 마타도어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이어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 대통령, 국민이 뽑은 유일한 대통령”이라고 강조하면서 “이 대통령은 과거 경기도지사는 당선 초기에는 지지율이 높지 않았지만 일을 잘한 덕분에 임기 말에는 도지사 평가 1, 2위를 달렸다. 일을 잘하는 정치인은 갈수록 지지율이 높아진다. 그래서 이 대통령에게 레임덕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말 만에 하나 대통령이 어려워진다면 누가 대통령을 지킬까”라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민주당과 주변을 지켜온 우리들”이라고 역설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정부를 둘러싼 레임덕 사태에 대해 “지방선거 후폭풍 중 하나”라면서도 “여당이 말하든 야당이 말하든 레임덕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파급력이 있다. 주목을 받을수록 힘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평소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이재명 레임덕’이란 보도를 접하면 ‘어, 그런가?’라며 그쪽으로 신경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불변의 법칙?
“이참에 터놓고 새 출발” 8월 전대 분수령

이정부 레임덕에 빌미를 제공하는 건 결국 여당인 민주당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권 경쟁이 심해질수록 정부·여당의 지지율은 흔들리고, 국민의힘이 이를 부각하는 연쇄 작용이 일어나기 떄문이다. 오히려 민주당 인사들이 의도치 않게 이정부 조기 레임덕을 가속화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계파 갈등의 원인이 되는 인물이 정치권에 소환되면서 갈등이 쉽게 봉합되지 않는 분위기다. 민주 진영의 최대 스피커인 유튜버마저 갈라서면서 갈등이 극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김어준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이정부 지지율 하락 원인에 대해 “코어 지지층이 빠진 것”이라며 문재인·조국·이낙연 등 주요 민주당 인사를 동시에 언급했다.

김씨는 2018년 민주당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사면론’을 꺼내 들었다가 지지율이 떨어진 이낙연 당시 대표의 사례를 예시로 들며 “코어 지지층의 특징은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람을 바로 버린다. 가치연대이기 때문”이라며 “그렇게 친문(친 문재인)이던 이낙연을 반문(반 문재인)인 이재명이 이겨버렸다”고 평가했다.

이는 최근 중도 행보를 걷는 이 대통령을 저격하기 위해 이낙연 전 총리를 언급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울러 김씨는 “최근 1년 사이에 이상하게 이 진영을 향해서 친문이라고 불리던 대표주자들, 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친문을) 향해서 (여권 지지층에서) 막 공격했다”고도 해석했다.

이날 김씨는 방송 말미에 “‘친문은 이제 필요 없고 뉴이재명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엄청난 오산”이라고 설명했지만, 또다른 유튜버인 이동형 작가가 “흔들리면 코어층이 아니”라고 반박하면서 진영 간 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을 관측된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국민이 하는 것이다. 민주정권 대통령의 지지율이 빠지는 동시에 사방에서 레임덕 이야기가 나오는 건 오랫동안 민주당 내에 존재해 온 하나의 노선”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엔
다를까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지방선거 이후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빠르게 떨어졌다. 민주당도 (청와대와) 합이 맞지 않고, 여당의 입법률도 20%에 그쳤다”며 “민주당이 (윤석열 전 대통령 등) 외부 변수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현재 여당의 상황은 짧게 보면 당권 싸움, 길게 해석하면 민주당에 내재한 헤게모니 싸움”이라며 “커다란 외부 변수에 의해 민주당이 뭉쳐 있었으나 변수가 사라지면서 민주당이 숱하게 겪던 분열의 역사가 반복된 것”이라고 봤다.

“늘 그렇듯 어물쩡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최 평론가는 “기존에 갖고 있던 정파, 내지는 노선에 대한 여러 갈등을 모조리 드러내고 정리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며 “그 시점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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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기업 비자금’ 다단계에 털린 보험설계사들

[단독] ‘기업 비자금’ 다단계에 털린 보험설계사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넷플릭스 드라마 <레이디 두아>에서 사라킴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눈을 가리는 건 거짓이 아니에요. 믿음이죠”라고. 피해자들은 2년여 동안 수십억원을 뜯기면서도 차용증은 물론 사업계획서 같은 문서 한 장 보지 못했다. 그나마 명함에도 이름과 전화번호뿐이었다. 그들의 눈을 가린 건 대체 뭐였을까? 그들은 무엇을 믿었을까? 서울의 한 보험사 소회의실. 처음에 3명이던 피해자가 2시간 뒤 1명 더해져 총 4명이 됐다. 몇 명은 과거 학습지 회사에서 동료로 일했고, 몇 명은 현재 보험사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이들의 접점은 최모씨라는 한 여자였다. 이들 모두 최씨를 만났고 한 명도 빠짐없이 돈을 뜯겼다. 4명에게서만 20억원 가까운 돈이 흘러나갔다. 클래식한 사기 수법 최씨의 사기 행각은 광범위하면서도 폐쇄적이었다.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헬스케어 제품 판매 직원 등 각각의 피해자 그룹이 있었지만 서로 알지 못했다. 이들은 ‘뭔가 이상하다’ 느낄 때쯤에서야 또 다른 피해자의 존재를 발견했다. 피해자 수가 70~80명, 피해액이 300억원에 이른다는 것도 대략적인 수치일 뿐, 그 이상일 가능성도 있다. 한 피해자는 “본인이 피해자인지도 모르는 피해자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최씨의 정체는 모호했다. 최씨가 일부 피해자에게 건넨 명함에는 ‘기업/개인 세금 처리 대행’이라는 문구와 함께 이름, 전화번호만 적혀 있다. 한 피해자는 “최씨는 기업의 비자금을 관리하면서 세무 업무를 대행한다고 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계속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상대에게 ‘사장님’ ‘회장님’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자신을 세무 관련 전문직으로, 배우자는 외교관이라고 소개했다. 서울 한남동의 고급 아파트, 명품 옷, 외제 차 등은 최씨를 ‘돈 많고 유능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일종의 장치로 작용했다. 실제 최씨를 만났던 몇몇 피해자들은 ‘(집에) 가정부가 있었다’ ‘가정부에게 LA 갈비 세트를 줬다’ ‘(최씨와 그 가족이) 블랙카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고급 카페에서 비싼 디저트를 자연스럽게 주문했다’ 등의 말을 하기도 했다. 최씨의 배경에 흔들리던 피해자를 완전히 넘어가게 만드는 데는 건 주변 동료, 지인의 부추김이 결정적이었다. 몇 년 동안 한 직장에서 근무한 동료,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지인의 말에 피해자들은 최씨를 ‘믿을 만한 사람’으로 판단했다. 한 피해자는 “처음에는 내켜 하지 않던 사람이 있었는데 (중간에서) 질릴 정도로 권했다. 집까지 찾아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피해자가 대부분 ‘여초 직장’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일요시사>가 파악한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학습지 회사에서 함께 일하다가 보험사로 같이 넘어왔다. 이 과정에서 몇몇이 최씨와 얽히면서 지인을 데려오는 방식으로 판이 커졌다. 전형적인 ‘피라미드’ ‘불법 다단계’ 방식이다. 한 변호사는 “굉장히 클래식한 방식의 사기”라고 표현했다. 최씨의 배경과 언행, 동료와 지인의 꼬드김에 넘어간 피해자들은 그때부터 홀린 듯이 돈을 보내기 시작했다. 사기 수법은 간단했다. ‘(돈을) 일주일 쓰는 대신 이자를 1% 주겠다.’ 예를 들어 1억원을 일주일 동안 빌려주면 이자로 100만원을 주겠다는 것이다. 정상적이라면 피해자는 일주일 뒤 원금과 이자를 합해 1억100만원을 받게 된다. 한 피해자에 따르면 처음에는 아예 선이자를 떼고 빌려 갔다고 한다. 다시 말해 1억원이면 9900만원만 빌려주는 식으로, 원금을 돌려받으면 100만원을 번 셈이 된다. 한남동 아파트 ‘상류층’ 행세 동료, 지인 부추김에 거액 투자 처음 한두번은 이자가 들어왔다. 하지만 원금이 들어와야 할 시기가 늦어지기 시작하더니 이후 이자까지 끊겼다. 원금과 이자를 달라는 요구에 최씨는 이자 비율을 높이면서 추가로 돈을 넣으라고 권했다. ‘돈을 더 넣으면 이자로 10%를 주겠다’는 식이다. 피해자마다 이자 비율은 달랐지만 대략 5~10% 정도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카드 대금을 대신 결제해 주면 월 수수료로 0.8%를 주겠다는 말도 했다. 최씨의 말대로라면 카드로 100만원을 긁었을 때 수수료로 8000원이 발생한다. 당연히 카드 결제액이 커질수록 수수료도 많아진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카드를 내준 것도 모자라 몇몇은 카드를 새로 발급까지 받아 최씨에게 건넸다고 한다. 결말은 같았다. 카드 대금은 쌓여가고 수수료는 들어오지 않았다. 한 피해자는 “카드 대금이 계속 연체되고 한도 때문에 사용이 막히니까 리볼빙을 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리볼빙은 카드 대금의 일부만 결제하고 나머지는 다음 달로 미루는 서비스다. 당장 변제 부담은 덜하지만 잔액에 연이자가 15~19%가량 붙는다. 눈 깜짝할 새에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는 상품이다. 이자나 수수료는커녕 원금도 못 받는 상황이 계속되자 피해자들은 결국 최씨와 ‘중간 다리’ 역할을 한 사람들을 사기 혐의로 고소하기에 이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보험설계사 등 피해자 7명은 지난해 12월 최씨를 포함한 5명에 대해 특정경제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사기) 등 혐의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7명 외에도 피해자가 3명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피고소인 5명은 주범 최씨, 모집책 차모씨, 이모씨, 박모씨, 그 외 김모씨 등이다. 피해자 7명과 접점이 가장 적은 김씨를 제외하고 4명의 피고소인만 놓고 보면 역학 관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피해자들은 차씨와 이씨, 박씨 등이 최씨와 이전부터 아는 사이였다고 입을 모았다. 피해자 7명의 피해액은 26억8700만원에 달한다. 나머지 피해자 3명의 피해액까지 합치면 28억8000만원으로 불어난다. 이들은 계좌이체, 카드 결제 등의 방법으로 최씨 등에게 돈을 보냈다. 이 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까지 계산하면 피해액은 10억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 가운데서도 A씨의 피해액은 확인된 것만 약 17억원에 이른다. 피해자 7명의 전체 피해액(27억원) 중에 63%가 A씨의 몫인 셈이다. 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추가 이자 비용은 별도다. 이 돈까지 합치면 A씨의 피해액은 약 23억원까지 늘어난다. A씨는 차씨를 통해 최씨를 만났는데, 두 사람은 보험사에서 5년간 동료로 지냈다. 홀린 듯이 돈 보냈다 지난 7일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A씨는 늦게까지 야근하고 있었다. 그는 “죽도록 벌어야 빚을 갚을 수 있다”고 말하며 힘없이 웃었다. 2024년 초 ‘잠깐 바람이라도 쐬러 나오라’는 차씨의 부름에 나간 게 시작이었다. A씨는 인근의 카페에서 또 다른 피해자와 함께 최씨를 만났다. 또 다른 피해자는 차씨와 이전부터 알던 사이였다. A씨는 “처음 만난 최씨는 쉽게 믿기 어려웠지만 차씨는 5년 동안 같이 일하면서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 차씨가 나와 다른 피해자에게 ‘원금은 보장된다. 나도 2억을 벌었고 두 달 뒤에 추가로 1억을 번다’고 말하니 솔깃했다. 최씨의 신상에 대해서도 차씨가 신나서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차씨는 A씨에게 자신의 계좌를 보여주기도 했다. 카드 결제, 계좌 이체 등의 방식으로 최씨에게 돈이 흘러 들어가기 시작한 시점은 2024년 4월경부터다. A씨의 카드는 2024년 4월부터 8월, 지난해 2월에 집중적으로 사용됐다. 거래처는 정유사, 명품관 등이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자동차 기름값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큰돈이 주유 대금으로 결제됐다는 점이다. 2024년 4월, A씨의 카드가 처음 사용된 날짜에 ‘○○석유’라는 곳에서 1200만원이 결제됐다. 이후에도 1000만원 단위의 돈이 ‘○○상사’ ‘○○○ 에너지’ 등에서 사용됐다. 카드로 긁어놓고 이후에 현금으로 되돌려받는 ‘카드깡’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동시에 최씨는 명품관에서도 총 7700만원을 긁었다. 이렇게 결제된 카드 대금은 3억6000만원에 달한다. 카드 대금과 수수료를 주겠다는 최씨의 말은 ‘공수표’였다. A씨는 “카드를 빌려준 쪽에서 돈을 넣어달라고 오히려 빌어야 했다. 몇 번을 요구해야 한번 돈을 넣어줄까, 말까였다. 한도가 막히면 다른 카드를 달라고 요구하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1년여에 걸쳐 최씨로부터 입금된 돈은 2억원. 원금과 주기로 한 수수료를 계산하면 턱없는 돈이다. 결국 A씨는 카드 대금으로만 1억5000만원을 뜯겼다. ‘짧게 쓰고 줄게’라며 빌려 간 자금은 상상을 초월했다. 피해자들은 최씨가 이자 명목의 돈을 주지 못한 시기를 2024년경으로 기억했다. A씨 역시 2024년 4월에 처음 돈을 넣고 한 달 뒤부터 제대로 돈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최씨가 회사 세무조사 등을 이유로 돈이 묶였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사람도 죽었나 ‘돈만 들어오면 A씨부터 챙겨줄게’라는 말은 당시 상황에서 A씨가 매달린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손절’하기에는 이미 너무 큰돈을 넣은 상태였고 어떻게든 원금만이라도 돌려받아야겠다는 생각이 A씨를 지배했다. 그 대가는 가혹했다. ‘이번만 빌려주면’ ‘곧 돈이 들어온다’는 최씨의 말에 속아 A씨가 빌려준 돈은 15억5000만원에 이른다. 문제는 이 돈이 전부 A씨 돈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A씨는 “동생, 부모님, 지인, 심지어 고객에게까지 돈을 빌렸다”고 털어놨다. 이 중 3억원가량은 집을 담보로 제3금융권에서 빌린 돈으로 즉, 사채다. 급하게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제시한 높은 이자율은 A씨의 목을 옥죄고 있다. A씨는 지금도 그 이자를 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의 악랄한 수법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최씨는 A씨가 보험설계사인 점을 이용해 그의 고객으로 또 다른 피해자를 연결했다. 또 다른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대납해 주는 방식으로 돈을 갚겠다며 A씨를 이용한 것이다. A씨는 해당 고객이 최씨와 연결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에는 몰랐다고 주장했다. 월 400만원이 넘는 보험을 2개 가입한 고객은 10개월 정도 보험료를 낸 뒤 사라졌다. 보험설계사는 고객을 유치하면 전체 납입 기간에 대한 선수수료로 익월에 월급을 받는다. 예를 들어 월 100만원, 20년 납기 보험을 든다고 하면 총 보험료 2억4000만원에 대한 수수료가 보험설계사의 몫이다. 능력에 따라 보험설계사의 연봉이 천차만별로 차이 나는 이유다. 하지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단서 조항이 있다. 고객이 최소 25개월 이상 보험료를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험설계사가 받은 월급은 ‘환수’ 조처된다. 보험설계사의 능력은 신규 고객 유치가 아니라 유지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20년 가까이 단 한 건의 환수 조처도 없던 A씨의 경력은 최씨로 인해 무너졌다. A씨의 동료이면서 피해자인 이들 역시 최씨, 차씨 등이 연결해준 고객이 보험금을 납입하지 않으면서 발생한 환수 조처로 허덕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최씨에게 넘어간 1억5000만원은 결정타였다. 그전까지 약 10개월간 돈을 보내지 않고 빚 독촉만 했던 A씨는 최씨에게 “450억원이 들어왔다”는 말을 듣게 된다. A씨에 따르면 최씨는 수표 다발이 찍힌 사진을 카카오톡 메신저로 보냈다. 그러면서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는 과정에 1억5000만원의 수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다시 1억5000만원을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였다. 돈 못 빌려주면 카드라도 내놔 주범 최씨 다른 사건으로 재판 5000만원만 마련해 갔던 A씨는 그 자리에서 고객에게 1억원을 빌려 최씨에게 건넸다. A씨는 “무슨 영화를 찍는 줄 알았다. 사채업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나 ‘당신(A씨) 때문에 450억원을 출금 못하게 생겼다.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윽박질렀다. 최씨도 나서서 ‘빨리 어디에서라도 빌려봐’라고 계속 압박했다. 정말 내 책임이 될 것 같은 마음에…”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후 1억5000만원은 공중으로 사라졌다. ‘껍질까지 벗겨 먹었다’ ‘뼈까지 발라 먹었다’는 말이 나올 만큼 A씨는 최씨에게 말 그대로 ‘탈탈’ 털린 상태였다. A씨의 사정을 들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까지 속을 수 있냐고 의문을 표했다. 결국 A씨도 피해자들도 쉽게 돈을 벌고자 했던 욕심에 눈이 먼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실제 피고소인 가운데 1명인 김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나 역시 최씨에게 빌려준 돈이 상당하다. 그걸로 마음고생 많이 했는데 되짚어 보면 내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고소인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돈 욕심에 시작했다가 원하는 만큼 돈을 받지 못하니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황유준 법무법인 LKB평산 변호사는 “피해자들은 실제 존재하는 웅덩이에 발을 담근 게 아니다. 웅덩이 자체가 없었다고 말하는 게 맞다. 다시 말해 투자의 배경이 되는 회사나 사업체 같은 실체가 아예 없었다. 즉, 최씨는 처음부터 피해자들을 기망할 의도로 만났고 피해자들을 끌어들인 피고소인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씨는 A씨 등에게 받은 돈을 투자 목적이 아닌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자초지종을 듣기 위해 피고소인들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최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몇몇은 ‘(자신의)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따져 물을 뿐이었다. 유일하게 통화가 연결된 김씨는 “최씨는 고소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부자도 아니고 특출난 사람도 아니다. 걔도 사업 과정에서 돈 문제가 꼬여 지금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걔도 사기 피해자”라며 “가족하고도 사이가 틀어졌고 정말 죽지 못해 사는 것으로 안다. 나는 (최씨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다”고 울먹였다. 최씨 사건은 크게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이 있고 A씨 등의 고소 사건도 비슷한 유형이라 검찰 송치 가능성이 크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또 다른 보험사 지점, 헬스케어 제품 회사, 화장품 회사 등에도 피해자가 있다. 이들이 법적 대응에 나서면 최씨를 비롯한 중간 모집책들이 빠져나갈 구멍은 상당히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피해 금액이 크기에 이들은 형량이 높은 ‘특경법’에 걸리는 상황이다. 여기에 이 사건으로 2명이 자살했다는 흉흉한 소문도 나도는 상태다. 최씨와 피해자 사이에서 모집책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 여성과 큰돈을 투자했던 한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다. 피고소인들은 이 여성이 원래 우울증을 앓았고, 남성은 지병이 있었다고 반박했다. 추가 피해자 더 나올 듯 과거 사기 사건을 맡았던 한 변호사는 “피라미드, 다단계 사기 사건의 진짜 공포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는 점이다. 처음에 돈을 뜯겼던 피해자가 원금을 회복하기 위해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는 구조다. 사기 사건이 정말 사람을 죽이는 살인 사건에 비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피해자들은 이미 죽은 상태나 다름없다. 영혼이 다 빠져나갔을 것”이라며 “일전에 사기 사건 피해자들을 변호하면서 ‘소리 없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자리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고 생각한 적 있다. 반드시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