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자작극 파문 정이한

  • 조유담 기자 ydcho@ilyosisa.co.kr
  • 등록 2026.06.29 14:46:41
  • 호수 15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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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 무는 ‘아빠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조유담 기자 = 개혁신당 정이한 전 부산시장 후보가 선거 기간 ‘음료 컵 피습 사건’을 지인과 공모해 자작극을 벌였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경찰은 이 외에도 그가 부친이 회장으로 있는 온그룹의 계열사 직원을 선거운동에 불법 동원했다는 의혹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개혁신당 지도부는 사실관계에 따른 민·형사상 대응을 예고했으나, 부실 공천 책임과 부산시당 와해라는 후폭풍에 직면하게 됐다.

지난 4월27일 부산 금정구에서 유세 중이던 개혁신당 정이한 전 부산시장 후보에게 운전 중이던 한 30대 남성이 음료가 담긴 일회용 컵을 투척했다. 현장에 있던 수행원들이 급하게 차량을 막아 세우려 했으나 해당 차량은 포위를 뚫고 도주에 성공했다. 정 전 후보 선거대책위원회는 음료를 뿌린 해당 운전자가 정 전 후보에게 “어린 놈의 새끼가 무슨 시장 출마냐”라고 소리치며 음료를 뿌렸다고 했다. 또 정 전 후보가 음료 컵에 맞고 넘어져 뇌진탕과 근좌상을 진단받았다고 주장했다.

선거 직후
기습 탈당

이 남성은 범행 직후 현장을 벗어났다가 본인의 직장 인근에서 경찰에 긴급 체포됐으며,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정 전 후보는 목에 깁스를 한 채 경찰서를 찾아 남성을 직접 면회한 후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선처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 사건은 인지도 낮은 신인 정치인이었던 정 전 후보에 대한 언론 보도량이 폭증하며 그가 이름을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지난 21일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에 따르면 사건 발생 직후 사흘 동안 ‘정이한’이 제목에 들어간 기사는 총 90건으로 집계됐다. 지난 2월3일 정 전 후보의 출마 선언 당시(6건)보다 15배 많은 수치다.

출마 선언 이후 피습 전까지 약 3개월간 정 전 후보가 언론에 보도된 기사 건수(63건)의 1.5배에 달한다. 정 전 후보는 이번 6·3 부산시장 선거에서 2만7418표를 얻어 득표율 1.56%를 기록했다.

경찰은 두 사람이 사전에 공모해 자작극을 벌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선거 직후인 지난 4일 정 전 후보의 캠프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같은 날 정 전 후보는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기 전 탈당계를 제출했고, 선거 직후 자신의 SNS를 통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현재 그의 모든 SNS 계정은 삭제되거나 게시물이 전부 내려간 상태다.

경찰이 정 전 후보와 음료 컵을 투척한 남성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수사했고, ‘홧김에 저질렀다’는 진술과 달리 사건이 벌어지기 정 전 후보가 그와 통화했던 기록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음료 컵 투척자인 남성은 정 전 후보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헬스 트레이너로, 한 선거 캠프 관계자는 “사건이 불거진 이후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사이라는 말을 들어 봤다”고 전했다.

경찰은 두 사람 간의 금전거래 내역도 확인하며 사건의 전반적인 경위를 들여다보고 있다. 해당 남성은 공직선거법 위반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입건돼 조사 중이다.

부친 계열사 선거 동원
셀프 테러·여론 조사

정 전 후보가 뇌진탕 진단을 받은 병원 또한 본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병원이었다는 점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의식을 잃었던 것으로 알려진 그가 사건 직후 인근 응급실이 아닌 12km나 떨어진 아버지의 병원으로 이동해 치료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지난 5월 TV 토론회에서 배제된 것에 항의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을 벌이다 7일 만에 단식을 마쳤을 때도 온병원으로 이송된 바 있다. 경찰은 ‘허위 진단’ 의혹에 대해 온병원의 의료법 위반으로까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선거사범에 대한 공소시효가 6개월인 점을 고려해 최대한 신속하게 수사를 마무리할 방침으로 전해졌다.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자신의 SNS를 통해 “개혁신당 공관위원장으로서 기습 탈당, 연락 두절 등 극도로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정이한 전 후보의 논란과 행태에 대해 참담한 심정으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정 전 후보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당의 단죄와 엄책을 회피하기 위해 온라인 시스템을 이용해 기습적으로 탈당계를 제출했다”며 “정당법상 탈당은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는 점을 악용한 ‘꼼수 탈당’”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무관용 법적 대응, 영구 복당 금지 처분 등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또한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부산 시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며 “참담하고 무거운 심정을 금하기 어렵다. 개혁신당이 공천한 후보였기에 이 사안에 대해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수사기관이 공개하고 언론이 보도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중대한 선거 범죄”라며 “유권자의 신뢰를 악용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 제도 자체를 훼손하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혁신당은 한 치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수사기관의 모든 절차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며 “당 자체 진상 조사단을 가동해 드러나는 사실관계에 따라 정 전 후보에게 최고 강도의 민·형사상 책임을 엄정히 묻겠다”고 약속했다.

자작극 의혹에 이어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부산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지난 23일 정 전 후보의 부친이 운영하는 ‘온그룹’의 계열사 직원들이 선거운동에 동원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선거운동 기간 전후로 정 전 후보 측이 온그룹 계열사 직원들에게 후보에 대한 지지 댓글을 작성하고, 일부 직원들에게는 개혁신당 당원으로 가입할 것까지 지시했다는 의혹을 전달받은 상태다.

한둘 아닌
위법 행위

홍보·기획을 담당하는 계열사에서는 ‘정이한이 부산시장이 돼야 한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만들고 ‘망해가는 부산 근황’ 등을 넣어 숏폼 영상을 제작하라는 지시 사항이 있었던 것으로 보도됐다. 이들은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후보를 비방하는 홍보용 영상도 만들어 배포했다. 사무실에는 정 전 후보 선거 현수막이, 칸막이에는 그의 기사와 공약들은 물론 선거대책본부의 조직도까지 붙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누구든지 직업적인 기관이나 단체 등의 조직 내에서 직무상 행위를 이용해 그 구성원에 대해 선거운동을 하거나 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있다. 계열화나 하도급 등 거래상 특수한 지위를 이용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기업 자금이나 조직을 활용해 특정 후보를 지원하는 것도 제3자 기부행위 제한 규정 위반이다. 경찰은 현재 정 전 후보 부친의 회사 자금이 선거 캠프로 유입됐는지 여부를 포함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수사 중이다.

의혹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 여론조사에서 정 전 후보는 지지도 2.6%를 얻으며 비슷한 시기 진행됐던 타 여론조사에 비해 평균 약 1.5배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 또한 온그룹의 계열사로 알려진 정 전 후보 부친 소유 여론 조사기관 ‘바로미터여론연구소’ 조사 결과로, 해당 여론조사 기관의 공정성을 수사해 달라는 고발장이 경찰에 접수됐다.

‘바로미터여론연구소’는 선거를 넉 달 앞두고 등록된 신생 업체로 확인됐다. 출마 선언 약 3달 전인 지난해 11월부터 선거 관련 조직을 운영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조사 문항 중 주를 이뤘던 ‘침례병원 정상화’에 대한 문항이 정 전 후보의 대표 공약과 일치했던 점도 의문을 남겼다.

정 전 후보 측이 자신에게 유리한 셀프 여론조사를 진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확대되고 있다.

1988년생인 정이한 전 부산시장 후보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 중퇴 후 중앙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현재는 부산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학사 졸업 후 그는 본인의 부친이 설립한 비영리 의료 봉사 단체 그린닥터스의 청년단장으로 활동했다.

국민의힘 백종헌 의원실의 선임비서관과 한덕수 국무총리 민정비서관실 사무관 직무를 수행하며 행정 경험을 쌓다가 지난해 9월, 개혁신당 대변인으로 임명됐다.

정 전 후보는 과거 학생부 허위 기재로 국내 고교 졸업 학적을 위해 편입했던 고등학교를 중퇴한 바 있다. 데이비드 H. 힉맨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그는 2006년 부산시 금정구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 3학년으로 편입했다. 당시 해당 학교는 정 전 후보의 부친이 이사장으로 재임 중이던 사학재단 산하 고등학교였다.

학생부
허위 기재

편입 후 미국 대학 의예과 진학을 준비하던 정 전 후보는 그해 7월 합격 통지를 받아 8월에 미국으로 출국했다. 정 전 후보가 미국에 체류 중이었음에도 그의 한국 고교 생활기록부에는 2학기 수업일수인 90일 전체를 출석한 것으로 기재됐다.

당시 부산시교육청 감사에서 정 전 후보가 미국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귀국자 전형으로 편입하면서 학군 배정 절차를 지키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이 외에도 특별활동에는 정 전 후보가 독서 반 소속으로 자치활동 16시간을 포함해 총 59시간을 활동했으며, 해외 선진문화 체험 활동까지 참여했다는 내용이 허위로 작성되어 있었다.

조사 결과 담임교사는 2006년 12월 초 학교 진학 지도실에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접속해 이 같은 허위 내용을 직접 입력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부산지법은 2008년 공전자기록 등 위작 및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담임교사 강씨에게 징역 6개월에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가 학생부 허위 기재 사실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씨는 이후 재단 산하 학교에서 교감직을 맡았다. 판결 전인 2007년 중학교 교감으로 발령된 데 이어 이듬해에는 정 전 후보가 편입했던 고등학교 교감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 전 후보의 모든 의혹 및 과거 이력과 함께 언급되는 정 전 후보의 부친은 정근 온병원그룹 회장으로, 부산에서 손꼽히는 재력가로 알려져 있다. 안과 의사 출신인 그는 지난 30여년간 부산 서면에서 안과 병원을 운영했다. 지난 2005년 개성공단 남북협력병원의 건설 과정 전반에도 직접 참여한 바 있다. 그는 입지 선정부터 용지 매입, 설계 디자인, 시공, 준공에 이르기까지 건축 과정에 직접 참여해 왔다고 밝혔다.

이후 정 전 후보가 뇌진탕 진단을 받았던 온병원을 포함해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을 설립했으며, 2022년 중견 건설사인 세정건설을 인수했다. 세정건설은 지난 2019년 기준 매출액 2000억원에 달하는 등 연간 평균 1000억원대 이상의 매출을 꾸준히 유지해 온 부산의 대표적인 중견 기업이다.

정근 회장은 제19대, 제21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각각 24.71%와 5.52%의 득표율로 낙선했다. 2018년엔 더불어민주당 오거돈 부산시장 후보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는 등 정계 진출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 2025년 부산시 교육감 재선거 당시 온종합병원의 직원 업무용 채팅방에 특정 후보를 홍보하는 글이 올라와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새로운 인물’ 강조하더니…
“검증에 현실적 한계 있어”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그의 부친이 운영하는 온병원과 관련된 인물들이 선거 과정 곳곳에서 확인됐다는 점도 관심을 끌고 있다. 6·3 지방선거에서 개혁신당 부산시당은 비례대표 1번에 정선애 온병원 간호과장을 배치했다. 이번 공천을 계기로 현장 전문가 중심의 정책 정당 이미지를 굳히고, ‘보건 전문가’를 앞세워 부산의 보건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당력을 집중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선거 캠프 관계자가 선거 이후 온병원에 취업한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 지방선거 기간 정 전 후보의 핵심 대변인직을 수행했던 서진석 전 선임대변인은 지난 17일부터 온병원에 출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 대변인 측은 “자작극 논란과는 무관하다”며 “선거 전부터 생계를 위해 병원 측과 맺었던 계약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개혁신당은 이번 지방선거에 후보자 190명을 배출했으나 기초의원 1석을 차지하는 데 그치며 부진한 결과를 냈다. 여기에 정이한 전 후보의 공천에 대한 의혹과 수사까지 더해져 개혁신당은 겹악재를 맞은 상황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내용만으로 개혁신당 지도부가 이런 관계를 사전에 인지했는지 여부를 확단할 수는 없다.

다만 정 전 후보를 둘러싼 각종 논란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당이 얼마나 면밀하게 후보를 검증했는지, 또 후보의 배경과 그 영향력을 인지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 전 후보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당 지도부가 직접 나서 “부산 정치권에서 가장 신선하고 새로운 인물”이라고 평가하며 전면에 내세운 청년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음료 투척 사건을 둘러싼 자작극 의혹을 시작으로 과거 학적 논란, 선거법 위반 의혹, 가족 기업 연루 의혹 등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개혁신당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끝없는 의혹과 관련해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2일 국회에서 “정 전 후보는 우리 당 합류 전 야당 의원실 비서관과 국무총리실 근무 경력이 있었다”며 검증 책임에 대한 해명에 나섰다. 이 대표는 “국무총리실 역시 인사 검증 절차를 거쳤을 텐데 걸러내지 못한 사안인 만큼 검증에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 전 후보가 중간에 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실적으로 과거 이력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측면도 있다”고 재차 해명했지만, 충분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이준석
입장은?

논란 이후 개혁신당 부산시당은 사실상 지도부 공백 상태에 빠져 현재 개점 휴업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당위원장 자리는 지난 3월18일 이재웅 전 위원장의 탈당에 이어 위원장 권한대행을 맡았던 정 전 후보가 논란과 함께 탈당 및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공석이 됐다.

이 전 위원장은 전재수 부산시장 당선인 인수위원회에 합류한 상태다. 당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누가 시당을 맡겠다고 하겠느냐”고 토로했다.

정 전 후보를 둘러싼 각종 의혹의 사실 여부는 향후 수사를 통해 가려질 전망이다. 다만 이번 사태는 신선함과 화제성에 기대 인재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철저한 검증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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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태리 석유 재벌 행세’ 이상한 경찰 수사 내막

[단독]‘이태리 석유 재벌 행세’ 이상한 경찰 수사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광주에서 일어난 ‘장윤기 사건 증거인멸’ 논란으로 경찰 조직이 시험대에 올랐다. 피의자 가족이 나서서 증거를 없애고 이 과정에 주변 경찰이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이 사건으로 검찰청 해체 이후 수사 권력을 한 손에 쥘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 한 여고생이 일면식도 없던 남자에게 살해됐다. 여학생을 구하려던 남학생은 크게 다쳤다. 경찰이 범인을 검거했고 사건의 심각성에 따라 얼굴을 공개했다. 생떼 같은 10대 여고생의 황망한 죽음에 국민은 경악했다. 하지만 국민이 더 분노한 지점은 따로 있었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비위 의혹은 경찰 조직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조직 명운 달렸다 장윤기 사건에서 수사 기밀 유출, 증거인멸, 초동수사 부실 등의 의혹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장윤기의 혐의를 경찰이 나서서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경찰은 장윤기에게 강간·살인이 아닌 일반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이 과정에서 형량이 더 높은 강간·살인 혐의를 입증할 케이블 타이 등의 증거를 경찰이 없앴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검찰의 보완수사로 드러났다. 현재 정치권은 해체될 검찰에 보완수사권을 남겨둘지를 두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심지어 여권에서도 입장이 엇갈린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보완수사로 경찰의 부실 수사 문제가 확인되면서 권력을 한쪽에만 과도하게 몰아줘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부상하고 있다. 홍석기 국가수사본부장이 장윤기 사건에서 드러난 경찰 유착 의혹을 두고 “명운을 걸고 수사하겠다”고 말한 것은 조직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최대한 불식하겠다는 의도도 담겼다는 게 중론이다. 안 그래도 검찰청 해체로 수사 공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 이번 일로 그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찰 수사를 의심하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2023년 8월 공동대표였던 하모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한 R스타트업의 이모 대표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 대표는 하씨가 회사를 그만둔 이후 단독대표가 돼 R스타트업을 떠안았다(<일요시사> 1493호 ‘<단독>스타트업 대표 1000억대 역외탈세 의혹’). 앞서 두 사람이 공동대표일 무렵 R스타트업은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마스크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내에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있던 때였다. 하씨는 마스크 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했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필리핀의 법인을 이용해 수급하겠다고 했다. 미국의 한 회사와 판매 계약까지 체결하는 등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던 사업은 ‘마스크를 수급할 수 없게 됐다’는 하씨의 말에 흐지부지됐다. 이후 마스크 관련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고 하씨는 R스타트업을 떠났다. 2022년 3월경에는 서로 연락도 끊겼다. 하씨의 회사 이메일 계정도 이 시기에 정지 조처됐다. 회사와도, 사적으로도 이 대표와 하씨의 관계가 끝난 것이다. 상황은 2023년 6월 이 대표가 하씨의 이메일에서 석연찮은 점을 발견하며 반전됐다. 장윤기 사건으로 신뢰 바닥 새로운 자료 찾아도 시큰둥 이 대표는 하씨의 이메일을 통해 흐지부지된 줄 알았던 마스크 사업이 몰래 진행됐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하씨가 가족과 지인을 동원해 마스크를 수급하고 수출해 상당한 돈을 벌었다는 사실도 이 시기에 알게 됐다. 극심한 배신감을 느낀 이 대표는 하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인천 연수경찰서에 고소하기에 이른다. 연수경찰서는 하씨의 마스크 거래 규모를 1000억원대로 판단했고 수사를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계로 넘겼다. 이 대표에 따르면 당시 연수경찰서에서 추정한 하씨의 마스크 거래 규모는 1400억원에 달한다. 이 대표는 “하씨는 회사(R스타트업) 메일 계정을 이용해 마스크 거래를 진행했다. 그사이 회사에는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를 더욱 화나게 한 건 경찰의 태도였다. 처음 사건을 맡은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미진한 수사 태도로 이 대표의 불만을 샀다. 이 대표는 “하씨가 한국에 있지도 않은데 출국금지를 걸지를 않나, 경제범죄를 수사하면서 CFO가 뭐냐고 묻질 않나, 이렇게 많은 양의 자료를 제출했는데 고소인 조사를 20분밖에 하질 않나, 수사 자체가 엉망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2024년 2월 말 하씨를 불송치 처분했다. 하지만 인천지방검찰청(이하 인천지검)의 판단은 달랐다. 인천지검은 필리핀과의 국제 공조 수사를 통해 하씨와 가족의 해외 계좌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경찰의 불송치에 대해 보완수사를 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때가 2024년 3월이다. 경찰 수사에 답답함을 느낀 이 대표는 하씨와 관련된 자료를 이 잡듯이 뒤졌다고 한다. 특히 하씨의 회사 계정으로 오간 이메일을 꼼꼼히 살폈다. 그 결과 하씨가 카카오뱅크를 통해 6개월 동안 거래한 내역을 찾아냈다. 이 대표는 거래 내역에서 가족으로 추정되는 인물과 돈이 여러 차례 오간 것을 발견했다. 이 대표는 “2024년 5월에 거래 내역을 발견해 바로 경찰에 전달했다. 경찰이 나를 조사에 부른 건 (그해) 8월경이었는데 그때까지 거래 내역에 대한 어떤 수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보다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수사 권한도 없는 일반인이 이 정도로 자료를 찾아 건넸으면 좀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일반 국민은 경찰보다 계좌 접근 권한이 제한돼있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고소 이후 3년 지나 하씨와 그 가족의 필리핀 계좌를 보기 위한 국제 공조에도 시간이 지체됐다고 토로했다. 검찰에서 보완수사를 요구한 때가 2024년 3월29일이었는데 그해 7월에서야 공조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처음 고소인 조사를 받을 때부터 필리핀 법인 이야기를 숱하게 했다. 필리핀 법인에 보낸 은행 송금증, 해당 필리핀 법인이 운영하는 SNS 내용, 현지 언론 기사까지 제출했을 때는 나 몰라라 하다가 보완수사가 떨어지고 나서야 공조를 진행하면 기다리는 고소인은 답답해서 죽는다”고 말했다. 하씨의 지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써준 사실확인서도 문제로 지적했다. 이 대표는 “해당 인물이 사실확인서를 써준 이후에 하씨와 함께 사업한 의혹이 있다. 이런 사람이 써준 사실확인서를 믿을 수 있나. 경찰 조사에서 이 부분을 상세하게 진술했는데 ‘고소인은 ○○○의 사실확인서를 믿을 수 없음’ 이렇게 한 줄만 적었더라. 근거를 가지고 말했는데 경찰은 나를 ‘우기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 대표가 경찰에 제출한 자료로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에서 하씨를 불송치 처분할 때 근거가 됐던 내용을 다시 들여다볼 여지가 생겼다는 점이다. 당시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불송치 이유로 ▲(하씨가) 거래대금을 몰래 착복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고 ▲실제 거래가 성사된 사실이 없다면서 배임 혐의를 부인한 점 등을 들었다. 이때 ▲미국 A사와의 거래 과정에서 필리핀 법인을 사용하기로 합의한 점 ▲미국 A사 측의 거래 취소 요청 이메일 ▲계약 관련자의 사실확인서 등을 ‘혐의없음’의 근거로 제시했다. 즉, 경찰은 하씨가 마스크 사업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마스크 사업으로 수익을 본 것도 없고 그러니 배임 혐의도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 이 대표는 “카카오뱅크 거래 내역은 마스크 사업 과정에서 돈이 오간 흔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고, 사실확인서 역시 동업 관계에서 나왔기에 그 배경을 더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 자료만 제대로 봤어도 수사가 달라졌을 것이라 확신한다. 경찰의 결론 자체를 뒤집는 자료 아닌가”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특히 지난해 1월 이 대표는 하씨의 카카오뱅크 거래 내역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의 정체를 밝혀내기에 이른다. 하씨가 마스크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수급을 담당한 업체가 있는데, 그곳의 대표와 이름이 같았던 것이다. “확인해 달라” 호소에도… 또 이메일을 확인하면서 하씨가 2억4000만원에 이르는 신용 미수 거래를 한 내역도 찾아냈다.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했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신용 미수 거래금이 2억원이 넘는다는 건 담보 제공 현금이 1억5000만원 이상 있다는 의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마스크 사장 이름을 알아낸 것도 그렇다. 대단한 기술을 쓴 것도 아니고 거래 내역에 있는 사람 이름과 다른 단어를 인터넷에서 조합해 검색했더니 내용이 나왔다. 이건 내가 다 수사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적극적인 행보에도 경찰은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에서 2계로 수사팀을 한 차례 바꾼 것 빼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해 4월30일 ‘수사 중지’를 결정했다. 국제 공조 수사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게 근거였다. 이 대표는 하씨의 거주지 주소가 바뀐 것을 지적하면서 ‘이송’을 요청했지만 ‘보완수사 중에는 관할지 이송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후 수사는 1년 넘게 멈춘 상태다. 이 대표는 국세청에도 관련 내용을 제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국세청에 같은 자료를 냈는데 국세청은 조사를 진행한 뒤 하씨가 ‘탈세를 한 게 맞다’는 취지로 답했다. 하지만 경찰에 그 사실을 알리자 ‘국세청 관계자와 통화했는데 사건과 관련 없다고 말했다’고 하더라. 국세청에 확인했더니 ‘기밀이라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는 말이 돌아왔다. 왜 거짓말까지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그사이 하씨가 다른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9~10월경 가상자산 전문 매체 기사에서 하씨의 영어 이름을 발견했다. 하씨가 ‘키키캣 코인’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이게 사기라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하씨가 코인사업을 하면서 ‘이태리 석유 재벌의 아들’인 척했다는 글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불송치했다 보완수사 결정 “그건 1계에서 처분한 것” 이 대표의 주장대로라면 하씨는 업무상 배임 혐의로 수사를 받는 도중에 또 다른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뜻이 된다. 이 대표는 “(키키캣 코인의) 시가총액이 1억달러까지 올랐다가 현재 100만달러까지 떨어진 걸로 안다. 키키캣 코인을 구매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채팅방에 참여하고 있는데, 지금은 피해자 방이나 다름 없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중지된 수사를 재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하씨의 여동생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페이퍼컴퍼니를 운영한 사실도 발견했다. 그는 “하씨와 거래한 마스크 제조업체는 여러 곳인데 수출을 진행한 곳은 하씨 동생 명의의 페이퍼컴퍼니로 확인된다”며 “이 내용을 근거로 수사를 재개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경찰은) ‘규정 위반’이라고 윽박질렀다”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 규칙 제102조(수사 중지 사건 수사 재개)는 ‘경찰은 수사 중지된 사건의 피의자를 발견하는 등 수사 중지 사유가 해소된 때에는 …(중략)… 즉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여기서 경찰과 이 대표의 주장이 엇갈린다. 경찰은 수사 재개에 필요한 요건을 국제 공조 수사 결과라고 말했다. 반면 이 대표는 새로운 증거가 나왔는데 왜 수사를 재개하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필리핀과의 국제 공조 결과가 아직 회신되지 않았다는 건 하씨의 해외 (계좌) 자료가 필요한 일부 수사에 제약이 있다는 뜻일 뿐이다. 하씨의 마스크 사업 규모를 확인하는 정도에 필요한 자료”라며 “하씨의 여동생이 페이퍼컴퍼니를 갖고 있다는 의혹은 수사가 시작된 이후 3년여 동안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내용이다. 수사를 재개하고 관련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2계 담당자는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올 때까지 수사를 재개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하씨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언제쯤 올 것으로 예상되냐는 질문에도 “알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또 앞서 하씨를 불송치한 내용에 대해 거론했을 때는 “그 부분은 1계에서 처분한 것”이라며 “우리(2계)는 검찰의 보완수사 요청 이후 수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소인이 제출한 자료는 경찰 수사 규칙에 따라 사건 기록에 편철해 놨다”며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없어도 수사를 재개할 수 있는지 국수본(국가수사본부)에 질의해 둔 상태”라고 말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수사가 길어지는 사이 하씨가 또 다른 일을 벌이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범죄 혐의가 확인되지 않은 부분 아닌가. 피고소인이 현재 받는 업무상 배임 혐의 외의 별건 수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이 대표가 담당 수사관에게 언급한 하씨의 코인 사업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