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험은 신뢰를 파는 상품이다. 고객은 오늘의 돈을 미래의 불안과 바꾼다. 특히 생명보험은 더욱 그렇다.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남겨진 유족의 생활을 보호하고자 생명보험이 존재한다. 약 25년간 보험료를 납부한 고객이 정작 보험금을 청구하는 순간 법률 전쟁을 벌여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윤일우씨는 지난 5년 동안 신한생명(현 신한라이프)와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부친 윤문헌씨는 2020년 사망했다. 유족은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신한라이프는 지급을 거절했다. 이후 금융감독원 분쟁조정, 손해사정, 의료자문, 1심 소송, 항소심, 대법원 상고까지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유족은 패소했다. 그러나 윤씨는 “보험금 액수보다 보험사가 고객을 대하는 태도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의사 소견은?
사건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문헌씨는 당시 심각한 뇌혈관 질환으로 쓰러졌다. 의료기록에 따르면 홍성의료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뒤 이대목동병원과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전원됐다. 진단명은 뇌교경색(Pontine Infarction), 기저동맥 혈전(Basilar Thrombosis), 기저동맥 협착(Basilar Artery Stenosis) 등이었다.
서울대병원은 장기간 치료와 함께 플라빅스, 아스피린, 엘리퀴스, 리피토 등 혈전과 심혈관계 질환 예방 약물을 지속적으로 처방했다. 환자는 퇴원 이후에도 외래진료를 계속 받았고 평생 약물 복용이 필요한 상태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서울대병원 기록은 단순한 과거 병력이 아니었다. 환자는 생존 자체가 혈전 관리에 달려 있는 상태였다. 실제 혈전용해제를 투여받아 생명을 유지한 환자였다. 유족 측은 “아버지는 사실상 혈전 질환 고위험군이었고, 지속적인 약물치료가 중단되면 언제든 치명적 결과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던 2020년 11월, 윤씨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현장조사를 실시했지만, 범죄 혐의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CCTV 확인 결과 외부 침입 흔적도 없었고 타살 정황도 없었다. 경찰 의견서에는 평소 복용하던 뇌졸중·심근경색 관련 약물이 다수 발견됐고, 기존 병력과 배우자 진술을 종합한 결과 “뇌졸중 등에 의한 내재적 원인 사망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기재됐다.
경찰은 사건을 변사사건으로 종결하면서 범죄 혐의 없이 유족에게 시신을 인도했다.
유족은 보험금을 청구했다. 해당 보험은 2006년 신한생명과 체결한 계약으로 ‘신2대질병진단특약’이 포함돼있었다. 약관상 급성심근경색증이나 뇌출혈 진단이 인정되면 보험금 2000만원이 지급되는 상품이었다.
하지만 신한라이프는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이유는 사망 직전 CT나 MRI 검사 결과가 존재하지 않고 부검도 실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급성심근경색이나 뇌출혈을 객관적으로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보험사는 이후 수차례 준비서면과 답변서를 통해 동일한 주장을 반복했다. “사망 원인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 보험사의 핵심 논리였다.
그러나 유족은 포기하지 않았다. 윤일우씨는 서울대병원과 홍성의료원, 금융감독원 등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울대병원 전문의로부터 여러 건의 진단서와 소견서를 확보했다.
평소 뇌졸중·심근경색 약물 복용
“직전 검사 결과 없다” 지급 거절
서울대병원은 2023년 3월 진단서에서 “급성 심근경색이나 뇌출혈(뇌경색 혹은 뇌혈전) 등이 발생해 사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이어 같은 해 4월에도 동일한 취지의 진단서를 발급했다. 특히 2023년 9월 발급된 진단서에서는 “경찰 조사에 따라 뇌 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명시했다.
유족 측이 특히 강조하는 부분은 서울대병원 전문의 이승훈 교수의 의견이다. 이 교수는 단순히 서류를 검토한 의료인이 아니라 고인을 직접 진료했던 주치의였다. 유족은 “환자를 직접 본 주치의가 뇌혈전과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음에도 보험사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분쟁은 결국 금융감독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금감원 단계에서도 결론은 나지 않았다. 유족은 의료 자료와 진단서를 제출했고 보험사는 약관상 진단 확정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맞섰다. 결국 사건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1심 재판부는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망인이 급성심근경색 또는 뇌졸중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다른 가능성을 상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서울대병원 전문의 의견과 의료기록 등을 종합해 보험금 지급 사유가 인정된다고 봤다. 이에 따라 신한라이프는 보험금 2000만원과 지연이자를 유족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신한라이프는 항소했다. 유족 입장에서는 가장 큰 충격이었다. 수십년 동안 보험료를 납부해 온 고객이 1심에서 승소했음에도 보험사는 즉시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후 항소심에서 보험사는 법무법인을 통해 대대적인 법률 대응에 나섰다.
항소심에서는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감정 결과가 등장했다. 순환기내과와 신경외과 전문의들은 “현재 자료만으로는 심근경색이나 뇌출혈을 진단할 수 없다” “다른 사망 원인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부검이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돌연사의 원인을 특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논란이 시작된다. 유족 측은 은평성모병원 감정 결과가 사망 원인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모르겠다”고 답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참고 서면에서도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과 사망 원인이 아니라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라고 반박했다. 또 “원인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입증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대병원 “연관 가능성 크다”
보험사는 끝내 인정하지 않아
그럼에도 항소심 재판부는 감정 결과를 받아들였다. 결국 1심 판결은 뒤집혔고 유족은 패소했다. 유족은 대법원 상고를 선택했다. 상고이유서에는 “서울대병원 주치의의 의학적 판단을 배척하고 기록만 검토한 감정의 의견만 채택했다” “보험사가 면책 사유를 입증해야 함에도 오히려 유족에게 사망 원인 입증 책임을 떠넘겼다”는 주장이 담겼다. 이어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감정 결과만으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것은 법리 오해”라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사건의 본안 판단까지 나아가지 않았다. 대법원 제2부는 이 사건이 소액사건심판법 적용 대상이라는 이유로 상고를 기각했다. 결과적으로 항소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이번 사건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한 보험금 2000만원의 문제가 아니다. 윤일우씨는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서 자신과 가족이 20년 넘게 납부한 보험료가 1억5300만원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고인의 내재적 질환 사망으로 판단했다. 서울대병원은 여러 차례 급성심근경색 등의 사망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했다. 1심 법원 역시 보험금 지급 판결을 내렸다. 그럼에도 보험사는 지급하지 않았고 항소했다. 그리고 대법원까지 다툼은 이어졌다.
법적으로는 신한라이프가 승소했지만, 소비자들이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른 차원일 수 있다. 보험은 법률상품이기 이전에 신뢰 상품이기 때문이다. 고객은 약관 문구 한 줄을 믿고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이 발생했을 때 보험사가 자신의 편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가입한다.
유족 측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상실감이 아니었다. 보험사가 끝까지 우리를 상대로 싸우겠다고 나선 순간이었다. 25년 동안 고객이라고 불렸지만 보험금을 청구하는 순간 우리는 상대방이 됐다”고 말했다.
뒤집힌 재판
이번 사건은 한 유족의 패소 사건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국내 보험 산업 전체에 묵직한 질문 하나를 남긴다. 보험사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수십년간 보험료를 납부한 고객이 사망보험금 2000만원을 받기 위해 금융감독원과 법원을 5년 동안 오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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