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라파르그의 <게으를 권리>, 21세기 한국서 다시 읽히는 이유

“열심히 일할수록 더 가난해지는 걸까?”

최근 출판계에서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나타나고 있다. 칼 마르크스의 둘째 사위이자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의 이론가였던 폴 라파르그(Paul Lafargue)의 고전 <게으를 권리(The Right to Be Lazy)>가 르몽드코리아의 양장본 포켓북으로 조용히 출간된 뒤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 것.

1880년에 발표된 이 작은 팸플릿이 15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오늘날 한국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다. 더욱이 최근의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 이유는 더욱 흥미롭다. 장시간 노동, 번아웃, 저성장, 청년 세대의 ‘조용한 퇴사’, 워라밸 논쟁, 기본소득 논의,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불러온 노동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사회 전반을 뒤덮고 있는 시점에서, 라파르그의 급진적인 질문은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으로 들린다.

그는 묻는다.

“인간은 왜 그렇게까지 일해야 하는가?”

그리고 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노동할 권리가 아니라 게으를 권리를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노동자의 성경을 뒤집어 읽다

<게으를 권리>는 사실상 노동윤리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다. 19세기 후반 유럽 사회주의 운동은 대체로 ‘노동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었다. 실업 문제와 빈곤이 심각했던 시기였기에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보장하라는 요구는 자연스러운 정치적 구호였다.

그러나 라파르그는 정반대로 나아간다. 그는 노동자들이야말로 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노동자들이 충분히 일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자체를 지나치게 숭배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노동 숭배의 광기’라고 부른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라파르그가 노동을 단순히 경제적 착취의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에게 노동은 종교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새로운 종교다.

중세 기독교가 인간에게 고통을 견디라고 가르쳤다면, 산업자본주의는 노동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설교한다. 라파르그는 이를 ‘기독교 윤리를 흉내 낸 자본주의 윤리’라고 조롱한다.

“일할수록 더 가난해진다”

이 책의 핵심은 노동 자체가 아니라 과잉노동에 대한 비판이다. 라파르그는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이 하루 12시간, 14시간, 심지어 16시간까지 노동하게 된 현실을 통렬하게 고발한다. 그는 여성과 어린이들이 공장으로 내몰리고, 가정이 해체되고, 건강이 파괴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그의 비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더 흥미로운 것은 경제학적 분석이다. 라파르그는 노동자들이 더 많이 생산할수록 결국 시장에는 상품이 넘쳐나게 되고, 과잉생산 위기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실업과 임금 삭감으로 다시 노동자들에게 돌아온다. 그가 요약하는 자본주의의 논리는 단순하다.

“일하라. 더 가난해져라. 더 가난해질수록 더 많이 일할 이유가 생긴다.”

오늘날 플랫폼 노동과 프리랜서 경제, 끝없는 자기계발 경쟁을 바라보는 독자라면 이 문장이 결코 19세기의 문장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AI 시대에 더욱 급진적으로 읽히는 책

이 책이 지금 새롭게 읽히는 이유는 인공지능 때문이다. 라파르그가 살던 시대의 증기기관과 자동화 기계는 오늘날의 AI와 로봇에 해당한다. 그는 기계가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고 봤다. 문제는 기계가 아니라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주의 체제였다.

기계는 노동시간을 줄여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노동강도를 높이고 실업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예언을 인용한다.

만약 도구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면 더 이상 노예는 필요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라파르그는 말한다. 기계는 인간의 적이 아니라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존재라고.

AI를 둘러싼 오늘의 논쟁은 놀랍도록 이 문제를 다시 반복하고 있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인가? 아니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인간을 더 자유롭게 만들 것인가? 라파르그는 이미 140여 년 전에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셈이다. 마르크스주의 책인가, 문명 비판서인가.

흥미롭게도 <게으를 권리>는 전형적인 마르크스주의 입문서가 아니다. 잉여가치 이론도, 자본 축적 이론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은 문명 비판서에 가깝다.

라파르그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 성서의 구절까지 동원하며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묻는다. 그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크세노폰, 키케로를 인용하며 고대 사회가 노동보다 여가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의 논의는 때때로 과장되고 도발적이다.

노동 자체를 지나치게 악마화하기도 하고, 고대 사회에 대한 낭만적 이상화도 엿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과장과 도발이 이 책의 미덕이다.

라파르그는 독자에게 생각의 방향을 전환하도록 강요한다. 우리는 늘 ‘어떻게 더 열심히 일할 것인가’를 묻는다. 그는 정반대로 묻는다. “왜 그렇게까지 일해야 하는가?”

조용한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

<게으를 권리>가 지금 한국 독자들에게 읽히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이 책은 게으름을 예찬하는 자기계발서도 아니고, 노동을 거부하자는 선언문도 아니다. 오히려 노동 중심 사회가 당연하게 여겨 온 가치들을 근본에서 다시 묻는 철학적 도발이다.

성과와 생산성, 자기계발과 경쟁이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시대에 라파르그는 인간의 시간을 되찾으라고 말한다. 그가 주장한 하루 3시간 노동은 오늘날에도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그것은 구체적인 정책 제안이라기보다 하나의 질문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기계와 AI가 노동을 대신할 수 있는 시대에 인간의 자유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150년 전의 이 작은 책이 다시 팔리는 이유는 아마도 그 질문들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게으를 권리>는 과거의 마르크스주의 고전이 아니라, AI 시대의 노동과 인간의 미래를 묻는 가장 현대적인 책 가운데 하나로 읽힌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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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이재명 그늘’ 득실

김민석 ‘이재명 그늘’ 득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김민석 전 국무총리의 출마 선언을 시작으로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막이 올랐다. 김 전 총리는 자신이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운영 동반자임을 거듭 강조하며 당심에 호소하고 있다. 김 전 총리에게 쥐어진 이재명이라는 칼날은 분명한 자산이다. 그러나 전당대회에서 독으로 작용할지, 득으로 작용할지 조금씩 해석이 엇갈리는 모양새다. 지난 6일 김민석 국무총리가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 정치적 스승인 김대중 대통령의 말씀을 되새긴다. 정치인은 외부를 향한 투쟁만큼 내부를 향한 투쟁에도 철저해야 한다”며 “이재명정부 국정 성공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을 위해 민주당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다”고 밝혔다. 더 끈끈한 당청 관계 이어 “이정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며 “절대 과제인 이정부의 성공을 위한 최우선 과제는 먼저 집권당인 민주당의 혁신을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김 전 총리는 정청래 지도부를 저격하는 듯한 발언도 이어갔다. 그는 “민주당은 지난 1년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국정 지지를 정당 지지와 선거 결과로 연결하지 못했다”며 “지난 1년, 자기 정치의 폐해가 당과 당정 협력을 혼선에 빠뜨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합당 추진, 검찰개혁 논의, 공천과 선거 전략에서 나타난 숙의 부족, 토론 부족, 절차 미비, 일관성 부족은 많은 문제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과 검찰개혁 엇박자, 6·3 지방선거 전략 등 정청래 전 대표의 과오를 꼬집은 것으로 해석된다. 김 전 총리는 “여당다운 여당을 만들어내겠다”고도 강조했다. 특히 “지난 지도부의 노력을 동지적 관점에서 치하한다”면서도 “결과 책임은 정치와 정당의 기본 윤리”라고 강조했다. 이어 “절박하고 엄격하지 않으면 우리는 총선 패배의 늪으로 빠져들 수 있다”며 “절박한 긴장감과 매서운 엄격함으로 당 대표 교체의 결단을 내려주실 것을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당의 지지율을 반등시키고 올바른 노선하에 당과 당원과 지지층을 통합하고 총선 승리로 달려가겠다”며 “1인1표 당원주권 행사에 모든 당원이 한 분도 빠짐없이 참여해 압도적 결의로 당의 리더십을 교체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 밖에도 김 전 총리는 자신이 이정부 초대 총리로서 이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온 점을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캠프 시절부터 지금까지 정부의 국정 운영과 실무를 뒷받침해 온 경력을 필살기로 ‘검증된 파트너십’ 전략을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여당의 역할’ 재정의 검증된 파트너십 호소 그는 최근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는 ‘3대 메가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제1국가 과제”라며 적극 힘을 실었다. 국회 복귀 첫 지역 일정으로 메가 프로젝트가 실행되는 주요 지역인 충북 청주를 선택하며 이 대통령과 합을 맞추기도 했다. 출마 선언 이후 김 전 총리는 연달아 정책 토론회를 열면서 전당대회를 겨냥한 의제 경쟁을 시작했다. 지난 1년 동안 검찰개혁이나 당원 주권 강화에 쏠려 있던 민주당의 흐름을 여당다움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김 전 총리는 지난 7일 ‘균형발전을 넘어 지방주도성장으로’ 토론회에 참석한 데 이어 이어 언론, 지역주도 성장, 금융 분야를 민주당이 추진해야 할 4가지의 개혁 과제로 꼽으며 연속 토론 기획에 나섰다. 국민 삶과 직결되는 주제를 전당대회에서 다루기 위한 ‘어젠다 세팅’이라는 게 김 전 총리의 설명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강성 당원에게 어필하기 위한 선명성 경쟁도 과열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정 전 대표가 여권 강성 지지층의 최우선 의제인 검찰개혁과 관련해 “보완수사권의 티끌마저 없애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 만큼 김 전 총리의 선명성이 상대적으로 흐려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대통령과 손발을 맞췄다’는 점 역시 ‘이정부의 대리인’ ‘하수인’ 등 수동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완수사권 폐지를 전당대회의 필살기로 점찍은 정 전 대표는 보완수사권 논의를 “제헌절 전에 끝내자”며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9일 자신의 SNS에 강성 개혁파로 분류되는 김용민 의원과 함께 찍은 사진과 ‘검찰개혁의 동지 김용민 의원과 함께 뜁니다’라는 게시글을 통해 “김용민이 정청래고, 정청래가 김용민”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정 전 대표는 “김 의원께서 검찰개혁이 더 절실하고 필요한 일이라며 전당대회 출마를 하지 않고 대신 제게 본인이 구상한 개혁 지도를 완수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며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 중대범죄수사청 출범의 혁혁한 공로자인 김 의원의 뜻을 잘 받들겠다”고 말했다. 부족한 선명성? 그러면서 “김 의원의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비롯한 사회대개혁 지도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김용민과 정청래가 손잡고 함께 달리겠다. 김용민과 정청래의 의기투합! 응원해 주고 함께 뛰어달라”고 당부했다. 최근에는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 대원칙은 정해지지 않았나”라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에 대해선 더 이상 당에서 논란이 없었으면 좋겠다”고도 밝혔다. 정 전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토론회를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당내에서 보완수사권 폐지 관련 이견이 노출되면 민주당이 정한 수사 기소 분리의 대원칙 등에 대해 의심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누가 당원주권정당 1인1표에 앞장섰는가? 반대했는가? 누가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에 앞장섰는가? 반대했는가?”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이 대표 시절 주도했던 1인1표제와 검찰개혁을 필두로 선명성을 부각했다. 김 전 총리 역시 보완수사권 폐지에 의견을 같이 했다. 다만 보완수사권은 폐지하는 방향으로 잡되 혼란과 공백을 줄이기 위한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주된 입장이다.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대화와 토론에 중점을 맞춰 여러 이야기를 두루 듣겠다는 것이다. 정 전 대표의 일 처리 스타일과 선을 그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총리는 총리 역임 시절에 “보완수사권 폐지가 현시점에서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라며 “폐지안을 기본으로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 입장을 (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지침으로 여러 번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이 대통령이 여러 차례 ‘일부 존치’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을 거론하며 “대통령 뜻까지 포함해서 지금까지 논의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진짜 ‘여당’ 정 심판론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뒤에는 “보완수사권 폐지 원칙은 지키되, 경찰 수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외부적 통제와 엄밀한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장윤기 사건, 국민 여러분과 함께 분노한다”며 “개혁은 검찰과 경찰 등 권력기관이 국민 앞에 더 투명하게 서게 하는 것이다. 민주적 통제와 투명한 검증의 원칙은 검과 경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보완수사권 폐지가 살인범 편들기라는 <조선일보>식 프레임은 조잡하다”며 “자극적 언어에도 금도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이 같은 친정부 이미지가 오히려 김 전 총리의 강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핵심은 안정성이다. 집권 2년 차에 들어선 이정부인 만큼 이를 뒷받침할 ‘관리형 여당 대표’ 이미지가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김 전 총리가 총리직을 사임할 때도 이 대통령은 “우리 정부가 만들어낸 여러 성과가 있는데 김민석 국무총리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며 그를 치켜세웠다. 이어 “제일 높이 평가하고 싶은 건 자살자 감소”라며 “올 초 통계부터 보면 월간 수백명 단위로 자살자가 줄었다. 수백명의 목숨을 구한 건 매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의 “여당 다운 여당”과 “현재 당내에서 제가 총선, 대선, 지방선거를 다 직접 총괄 지휘해 보고 승리까지 이끌어 본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는 제가 갖고 있는 나름의 쓸모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것 역시 궤를 같이 한다. 2년 후 총선이라는 빅 이벤트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김 전 총리의 안정형 기조가 당원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이대로라면 총선 필패’ ‘여당으로서의 책임’ 등을 외치고 있다. 지난 1년 민주당의 키를 쥔 선장에 대한 일종의 심판론”이라며 “2028년 총선을 제대로 치르기 위해서는 집권여당의 승리가 최우선이어야 하고, 그런 점에서 정 전 대표의 ‘자기 정치’라는 꼬리표는 뼈아플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28년 총선 이대로 괜찮을까? 김 “폭탄 선언식으로 안 돼” 모든 선거의 승패는 결국 중도층을 얼마나 확보하는지에 달려 있다. 현재 민주당의 강경한 기조는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외연 확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이 나오는 만큼 김 전 총리는 민주당의 차기 지도부 과제로 ‘실용 통합’과 ‘외연 확장’을 제시했다. 김 전 총리는 유튜브 방송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며 민주 진영의 통합과 연대, 중도로의 외연 확장 기조를 밝혔다. 그는 “민주당은 일시적인 갈라짐이 있을 경우 통합했고, 지금 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과는 연대하지 않나. 그리고 국민회의로 집권한 뒤 새천년민주당을 만들어 중도·보수 인사를 대폭 영입했는데 이게 확장”이라며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다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혁신당이 통합 대상이냐’는 질문에는 “그건 혁신당이 결정해야 한다”며 “거대 책임 정당인 민주당으로 성격이 같은 세력들이 결합할 때는 다 흡수 합당한다”고 했다. 정 전 대표가 시도한 혁신당과의 합당 추진 방식에 대해서는 “폭탄 선언식으로 해서 일을 그르쳤다”며 “과욕이었다. (그래서) 일이 꼬였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언주 의원 역시 “여당다운 책임을 다할 지도부가 필요하다”며 “안 그러면 다음 총선에서 어림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이) 집권여당이 된 지 벌써 1년이다. 아직도 야당인 줄 알면 되겠나”라며 “이번 전대(전당대회)에서 선출될 신임 지도부는 국민에게도, 대통령과 정부에도, 국회 야당에도, 정말 여당다운 책임을 다할 지도부가 필요하다. 그래야 다음 총선을 해볼 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영길 의원도 당 대표 출마 선언 당시 “국민께서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옐로카드를 보내셨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 다음 총선은 레드카드”라고 경고했다. 송 의원은 “다음 총선에서 지면 정권 재창출은 없다. 정권 재창출이 없으면 이정부의 성공도 장담할 수 없다”며 “(전당대회는) 누가 이정부와 협력해 대체 불가 대한민국을 만들 대표인가를 선택하는 선거”라고 말했다. 김 전 총리가 “선명성만으로는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며 현실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개혁을 꿈꿔온 당원들의 숙원을 빠르게 해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근 친청(친 정청래)계를 중심으로 “민주주의의 체제를 더 굳건히 하는 중단 없는 개혁이 시대정신”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지지층 결집에 나선 것 역시 이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장담 못해” 안갯속 당심 결국 ‘국정 안정 파트너’와 ‘당원 주권·개혁 선명성’ 중 어느 프레임이 당원 표심을 더 움직이는지가 이번 전당대회 승패를 가를 것으로 관측된다. 당내 뿌리 깊게 박힌 ‘정통성’과 ‘개혁 선명성’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는 것이 김 전 총리의 남은 과제로 여겨지는 이유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겸공’ 찾은 김민석, 김어준도 우군으로? 김민석 전 국무총리가 유튜버 김어준씨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해명했다. 김씨는 정청래 전 당 대표와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던 만큼 그의 라이벌인 김 전 총리에게 해명의 명분을 줬다는 점에서 당의 이목이 쏠린다. 지난 6일 김 전 총리는 방송을 통해 자신이 계엄 해제 표결에 불참한 것에 대해선 “1초 늦었다”고 말했다. 김씨도 “감기약 먹고 일부러 안 온 것 아니냐는 말도 있다”면서도 “소모적으로 계속할 일은 아니기에 이것부터 털고 가자.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영상이 있다”며 계엄 당일 김 전 총리가 국회 담을 넘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과 당시 현장에 있던 시민 인터뷰를 공개했다. 앞서 친청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김 전 총리를 향해 ‘감기약 성분 의혹’을 제기한 것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이 같은 김씨의 태도를 두고 여권 일각에서는 그가 정 전 대표와 결별 수순을 밟고 있거나, 한쪽으로 쏠린 기조에 부담감을 느꼈다는 등 다양한 해석을 제기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