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말보다 타이밍이다. 같은 행동이라도 언제 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그래서 정치인들의 일정표는 종종 말보다 많은 것을 설명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의 행보를 보며 필자는 한 가지 질문을 떠올렸다. 송영길은 왜 지금 미국에 갔을까?
겉으로 보면 송 의원의 미국 방문은 국회의장 특사 자격의 공식 외교 일정이다. 미국 민주당 지도부와 주요 인사들을 만나 한미 관계와 국제 현안을 논의하는 일정으로 알려졌다. 외교 경험이 풍부한 송 의원에게 어울리는 역할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정치는 표면만 보고 해석하기 어려운 세계다. 특히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둔 지금은 더욱 그렇다.
송 의원은 23일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 이재명 대통령과 한남동 관저에서 비공개 만찬을 가졌다. 대통령실과 송 의원 측은 모두 전당대회 관련 대화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누구를 언제 만났는가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이번 만남이 주목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오는 8월17일 열린다. 현재 당권 구도는 정청래 대표와 김민석 국무총리, 그리고 송 의원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세 사람 모두 공식 출마 선언을 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경쟁은 이미 시작된 상태다. 정치권 역시 세 사람을 중심으로 전당대회 판세를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관저 만찬과 미국 방문은 자연스럽게 정치적 해석을 낳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점은 송 의원 일정의 흐름이다. 관저 만찬이 있었고 곧바로 미국 방문이 이어졌다. 귀국 후 전당대회 출마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의 시간표로 보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순서다. 그래서 정치권은 이번 미국행을 단순한 외교 일정 이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송 의원의 외교부 장관 입각설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인천시장과 민주당 대표를 지냈고 국제 현안에도 밝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미국 방문 역시 외교부 장관 후보로서의 역량을 보여주는 무대로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송 의원의 미국행을 입각 수순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필자의 눈에는 외교부 장관의 길보다 당 대표의 길이 더 가까워 보인다. 그 이유는 최근 송 의원의 발언 속에 있다. 그는 장관보다 전당대회가 더 중요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치인이 자신의 관심을 정부보다 당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이 한마디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설명한다.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직책이지만 결국 행정의 영역에 속한다. 반면 집권여당 대표는 정치의 중심에 선다. 대통령과 국회를 연결하고 당과 정부를 조율하며 국민 여론을 국정에 반영하는 역할을 맡는다. 정치인에게는 장관보다 더 큰 정치적 무대일 수 있다.
여기서 필자는 불가근불가원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너무 가까워도 안 되고 너무 멀어도 안 된다는 뜻이다. 원래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설명할 때 사용되던 말이지만 오늘날 대통령과 집권여당 대표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정치의 본질 역시 결국 적절한 거리 유지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민주당 전당대회가 안고 있는 고민도 여기에 있다.
정청래 대표는 강한 개혁성과 독자성을 가진 정치인이다. 검찰개혁과 사법개혁 등 주요 현안에서 누구보다 선명한 입장을 보여왔다. 이는 당의 자율성과 개혁성을 상징하는 강점이지만 집권 초기 당정 관계에서는 부담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너무 멀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반면 김민석 총리는 가장 유력한 친명(친 이재명) 후보로 평가된다. 이재명 대통령과의 신뢰 관계가 깊고 의원들의 지지 기반도 넓다. 집권 초기 국정 안정과 당정 협력 측면에서는 매우 강력한 카드다. 그러나 대통령과 지나치게 가까운 대표가 될 경우 민주당이 대통령의 2중대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너무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자 약점인 셈이다.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하나다. 과연 누가 대통령과 당 사이에서 가장 적절한 불가근불가원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송 의원이 주목받는다. 그는 친명이지만 맹목적 친명은 아니고 반명(반 이재명)도 아니다. 이 대통령과 신뢰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독립적인 정치 공간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 의원은 최근 전당대회의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고 극단적 대립을 중화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자신의 정치적 위치를 보여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정청래와 김민석으로 상징되는 두 흐름 사이에서 당내 통합과 조정을 이끌겠다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는 전형적인 중재자 전략이며, 불가근불가원의 위치를 스스로 선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송 의원과 김 총리의 연대 가능성도 거론한다. 두 사람 모두 친명계로 분류되고 정청래 대표에 맞설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관측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다. 송 의원은 인천시장과 민주당 대표를 지낸 중량급 정치인이다. 오랜 정치 경력과 독자적 정치 기반을 가진 정치인이 다른 후보를 위해 스스로 물러서거나 누구를 일방적으로 밀어주는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연대설은 정치 현실보다 정치공학에 가깝다. 현재 3파전 구도에서 가장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정청래 대표의 상승세를 견제하고 경쟁구도를 흐트러뜨리기 위해 만들어진 해석일 가능성이 더 크다. 정치권에서 연대설은 종종 실제 연대를 설명하기보다 상대 후보를 흔들기 위한 전략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필자의 눈에는 이번 연대설 역시 그런 성격이 강해 보인다.
송 의원은 누구를 밀어주기 위한 정치인이라기보다 스스로 승부를 걸어온 정치인에 가깝다. 따라서 그의 선택지는 연대보다 독자 출마에 무게가 실린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 방문의 의미도 달라진다. 단순한 외교 일정이 아니라 정치적 준비 과정으로 읽힐 수 있다. 미국 민주당 지도부와 만나고 국제 현안을 논의하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국가 지도자의 이미지를 강화한다. 집권여당 대표를 꿈꾸는 정치인에게 외교 경험은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다.
외교와 당권이 별개의 길처럼 보이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종종 같은 길 위에 놓이기도 한다.
정치권은 일정표를 통해 메시지를 읽는다. 대통령과의 관저 만찬, 미국 방문, 그리고 귀국 후 출마 여부 결정이라는 일정은 우연치고는 너무 절묘하다. 공개된 사실만으로 모든 것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정치권이 이를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송 의원은 평소 정 대표의 출마 여부를 보고 자신의 출마를 결정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해왔다. 정치권에서는 정 대표의 당 대표 출마 선언 시점을 24일 전후로 예상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 시기에 송 의원은 미국에 있다. 겉으로 보면 24일부터 27일까지의 미국 일정은 자신의 거취를 고민하는 시간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정치인은 결심하기 전에 움직이지 않고 결심한 뒤에 움직인다. 특히 당권에 도전할 정도의 중량급 정치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미국 방문이 출마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시간이기보다는 이미 내린 결심을 어떻게 정치적 에너지로 연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결국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의 본질은 친명 경쟁이 아니다. 누가 이재명정부를 가장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면서도 민주당의 독립성과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의 경쟁이다. 대통령과 너무 가까워도 안 되고 너무 멀어도 안 된다. 집권여당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충성심보다 균형감각이고 선명성보다 조정 능력이다.
그래서 이번 전당대회는 사람을 뽑는 선거이면서 동시에 거리를 선택하는 선거이기도 하다. 대통령과 당, 권력과 견제, 협력과 독립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불가근불가원의 지혜가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송 의원의 미국행이 단순한 외교 일정이었는지, 아니면 당 대표를 향한 정치적 행보의 일부였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다만 지금 분명한 것은 하나다. 미국으로 떠난 사람은 송 의원이지만 정치권의 시선은 이미 그의 귀국 이후와 민주당 전당대회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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