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류지선 진주교대 교수

‘작심 발언’ 5년 만에 입 열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교수가 70명 남짓한 지방 국립대에서 채용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채용 과정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교수가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이 교수가 맞닥뜨린 건 교육부의 방임, 교수 사회의 폐쇄성, 학생의 무관심,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안일한 판단 등 숱한 벽이었다. 모두가 소리를 낸 교수에게 말했다. “당신은 제3자”라고.

진주교대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일요시사> 1579호, 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5318)은 2020년 11월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시작됐다. 지금으로부터 약 6년 전 일로, 당시 채용 과정에서 면접 심사에 들어간 류지선 진주교대 교수가 처음 문제를 제기했다. 시발점은 지원자였던 A 교수의 전공이 지원 자격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전공 적부’ 문제였다.

시작부터
삐걱댔다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공고를 내면서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를 지원 요건으로 내걸었다. 미술교육과에서 채용하려던 교수 전공은 ‘도자’ 분야였는데, A 교수는 학사(초등교육), 석사(초등교육 미술), 박사(디자인) 등의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

A 교수는 2018년 폐교한 대학에서 도예를 배운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원 자격에는 미치지 못했다.

당시 채용에서 류 교수는 면접 심사위원 가운데 1명이었다. 진주교대는 전공 적부와 서류 심사를 거쳐 1차로 5명의 지원자를 선발한 후 면접에서 최종 1명을 뽑는 방식으로 채용을 진행했다. A 교수는 1차 심사에서 무난하게 5배수 안에 들었다. 류 교수는 1차 심사 과정은 알지 못한 채 면접 심사에 참여했고 이때 지원자 5명의 학사-석사-박사 전공을 확인했다.

류 교수는 “심사위원들에게 나눠준 자료를 보는데 A 교수의 전공이 지원 자격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당시 교무처장에게 (A 교수의) 전공 적부에 관해 물었고 점수를 줄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 류 교수가 심사에 참고했던 지원자 전공 관련 문서를 보면 A 교수의 전공 부분에 ‘?’ 표시를 해둔 흔적이 있다.

류 교수는 모든 심사 항목에서 A 교수에 1점을 줬다. 그는 “(1점을 준 걸로) 징계를 줄 거면 주라고 했다. 전공이 지원 요건에 맞지 않는, 애초에 면접에 올 수 없는 지원자에게 제대로 된 점수를 줄 수 없다고 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최저 기본 점수를 주는 대신 류 교수 나름의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류 교수는 “(당시) 교무처장 등이 일단 점수(최저 기본 점수라도)를 주라고 했는데, 그랬으면 아무 조치 없이 넘어갔을 듯하다. 그나마 내가 1점을 주면서 면접 심사를 더 진행할 수 없었기에 A 교수의 전공 적부에 대한 논의가 다시 이뤄졌다”며 “하지만 1차에서 심사를 맡은 심사위원이 그대로 재조사에 참여했다. 그럼 결과가 바뀌겠나?”라고 반문했다.

결국 A 교수는 최종 합격했고 현재까지 재직하고 있다. 류 교수는 “전공 적부나 서류 심사에서 점수가 매겨지면 면접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 전공 적부는 학과에서 선정된 2명의 교수가 심사한다. 그 2명이 (지원자의) 전공이 자격에 부합한다고 판단하면 기자님이라도 우리 학교 미술교육과에 교수로 들어올 수 있다”며 자조했다.

이후 류 교수는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에 관해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처음에는 전공 적부만 눈에 들어왔는데 논문이나 전시 경력 등에서도 하자가 있는 게 보였다. 특히 A 교수의 박사 논문은 학교의 교수 채용 공고가 나기 몇 달 전에 나왔다”고 주장했다.

채용 과정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석
전공 적부 문제 삼으며 ‘1점’ 줬다

논문 자료를 모아놓은 사이트 DBpia를 확인한 결과 A 교수가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논문의 발행 시기는 2020년 8월로 확인된다. 진주교대 미술교육과 채용 절차는 2020년 11월에 시작됐다.

A 교수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한 광주대는 이후 류 교수의 문제 제기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교수의 연구 부정 여부를 판단하는 곳으로,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쳐 최종 판단을 내리는 기구다. 문제는 이 과정이 제보자(류 교수)와 피조사자(A 교수)의 문제 제기, 절차상 하자 등으로 무려 3년5개월가량 지속됐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그사이 결과도 여러 차례 뒤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문제는 법정으로 넘어갔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최종적으로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에 대해 ‘표절이 아니다’라고 판정했는데, 류 교수가 반발한 것이다.

류 교수는 법원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최종 판단을 무효로 해달라는 소를 제기했고 지난달 말, 1심 결과가 나왔다.

1심 재판부의 판결은 ‘각하’였다. 류 교수에게 소를 제기할 자격, 즉 절차적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니 소송 내용에 관해서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결정이다. 다시 말해 류 교수는 이 소송이 진행된다 해도 어떤 이익도 손해도 보지 않는 이른바 ‘제3자’일 뿐이라는 뜻이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작업실에서 류 교수를 만났다. 그는 1심 판결이 나온 후 1주일 정도 멍해 있었다고 말하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류 교수는 “재판부의 판단이 아쉽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 감정을 맡길 수 있게 해달라는 (원고 측) 요청을 받아줘서 적어도 결론은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 됐다”며 “피고 측에서 변론 내내 줄기차게 주장한 (나에게는) 원고 자격이 없다는 내용이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무도
안 나서

이어 “재판부에서 각하 판결을 내렸더라도 ‘논문 내용에는 하자가 있다’는 한 문장만 덧붙여 줬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재판부가 공공의 이익이나 공공 제보를 지나치게 좁게 판단한 듯해 아쉬운 마음이 든다”며 “그래도 저작권위원회의 판단이 있기에 계속 싸울 힘이 생겼다”고 의지를 다졌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과 그가 표절한 것으로 의심되는 12편의 다른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류 교수는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감정 결과를 근거로 항소심, 대법원까지 가보겠다고 했다. 그는 “원심과 항소심에서 각하된 사건이 대법원에서 법리 오인으로 뒤집힌 사례도 몇몇 있다. 형사 고소도 준비 중이다. 끝에, 끝까지 가도 안 되면 책을 써서라도 이 문제에 대해 ‘박제’해 두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이후 5년3개월 동안 류 교수는 수많은 벽에 마주해야 했다.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학교(진주교대)는 침묵했고 광주대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교육부는 방임에 가까운 태도로 일관했다. 교수들은 뒤에서는 ‘비분강개’한다면서도 앞에 나서질 못했다. 학생은 무관심에 가까웠다.

류 교수는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팩트가 명백하고 진실이 존재하니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대로 결과가 나오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연구와 교육이라는 대학의 본질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제도를 악용하는 카르텔이 얼마나 견고한지, 정책의 취지가 얼마나 오염돼있는지를 알게 됐다”고 토로했다.

류 교수는 말 그대로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한 상태였다. A 교수의 전공 적부 문제나 논문 표절 의혹을 교육부에도 알렸다. 대학을 담당하는 주무 부처로서 관리, 감독을 해달라는 요구였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복붙(복사-붙여넣기)’이었다. 조치가 아니라 민원의 전달자 역할만 했다는 게 류 교수의 주장이다.

저작권 위반
인정했지만…

류 교수는 “교육부에 민원을 넣으면 학교로 내려보내 답변하라고 지시한다. 그러고 학교가 답변하면 그걸 다시 민원인에게로 보낸다. 그러면서 ‘대학의 자율성’을 운운한다. 자율성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오염됐는지 아나? 대학은 자율성이라는 취지를 내부 부패를 감추는 무기로 쓰고, 교육부는 방임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이를 악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본질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교수 채용에 막강한 권한을 발휘하는 학과장 순서를 계산하고 심사에 들어갈 교수를 고르는 과정을 철두철미하게 계획하는 이들은 아무리 제도를 손질해도 막을 수 없다. 그러니 교육부나 수사기관, 사법부 등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확실하게 단죄해서 제도를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A 교수와 함께 채용에 참여했던 지원자에 대한 아쉬움도 표현했다. 류 교수는 “지원자 가운데 딱 1명만이라도 나서줬다면 이렇게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몇몇 지원자에게 문의한 적이 있는데 ‘다른 학교에도 계속 (교수직에) 지원해야 하기에 나서고 싶지 않다’는 답변을 동일하게 받았다”고 토로했다.

A 교수의 논문과 비교, 감정한 논문 저자들에게 문의했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류 교수는 “한국저작권위원회 결과를 보고 (저작권 위반이라고 나온) 11편의 논문 저자 가운데 일부에게 연락했는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고 말했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그들(지원자, 논문 저자)도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동조자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류 교수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방법은 교대를 나오는 것뿐이니까, 학생들에게 대학은 일종의 (교사가 되기 위한) ‘학원’ 정도로 전락했다. 커리큘럼도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져 있고 학점을 이수하면 임용 자격이 주어진다. 그렇다 보니 애석하게도 학생이 학교에 애착이 없고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더더욱 관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학교·교육부·수사기관·사법부까지
민사 1심서 ‘자격 없다’ 각하 결정

하지만 류 교수를 가장 분노하게 한 주체는 역시 진주교대였다. 친소 관계에 따라 처분이 달라지는 학교의 태도가 상황을 여기까지 악화시켰다는 주장이다. 류 교수가 기자에게 “(진주교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 교수를 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자학하듯이 말한 것도 그 연장선처럼 보였다.

류 교수는 “한 교수가 학회에 논문을 투고했는데 그게 표절로 드러났다. 그 문제는 학회가 아니라 우리 학교에서 처리했고 해당 교수는 연구비를 토해냈다. 또 한 강사가 수업 과정에서 문제를 저지르자 직접 고발한 사례도 있다. 그런데 왜 이 문제에 있어서는 광주대의 처분만 기다리면서 침묵하나. 우리 학교에서만큼은 결국 친분이 처분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백번 양보해서 박사학위 논문의 표절 여부를 판단하는 게 광주대의 역할이라고 하자. 그럼 진주교대에서 학위를 받은 A 교수의 석사 논문 문제는 어떤가. 석사 논문을 판단해 달라고 요구하자 학교는 ‘표절 검증 시한이 지났다’면서 외면했다. 학내 규정도 A 교수가 석사학위를 받은 시기에서 딱 1년 뒤로 슬그머니 바꿨다. 검증 대상에 포함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였다”고 주장했다.

류 교수는 이 사건에 시간과 돈을 쏟아부었다. 변호사 비용 등 5년 동안 들인 돈만 해도 수천만원에 이른다. 이제 그만하라면서 말리는 주변 사람들도 끊어냈다. ‘외곬’이라는 말을 들어도, 외로운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아직은 멈출 생각이 없는 듯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 걸까.

류 교수는 “법원은 나를 제3자로 판단했지만 나는 채용 과정에서 심사위원이었고, 실력 있는 교수를 뽑아야 할 의무와 좋은 동료 교수와 지낼 권리가 있는 학교 관계자다. 정말 내가 제3자인지 잘 생각해 봐줬으면 한다”며 그리고 “차라리 모르면 몰랐을까,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부정을 묵인하는 동조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끝에 끝까지
책이라도 쓴다

이어 “주변 교수나 학생들이 나를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전혀 정의롭지 않으며 흠결이 많은 사람이다. 무엇보다 이 문제는 정의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다. 채용의 공정성이라는 너무나 기본 중의 기본 상식이 훼손된 사안이다. 최소한의 상식이 바로 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교수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자기가 잘나서가 아니라 학생들 덕분에 있는 자리라는 거다. 그렇기에 대학에서는 학생의 수업권이 무엇보다 우선시돼야 한다. 학생들은 도덕적이고 실력 좋은 교수에게 교육받아야 하고, 대학은 그런 교수를 뽑아 양질의 수업을 제공해야 한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학생의 수업권에 눈 감고 있는지, 나는 이 부분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이태리 석유 재벌 행세’ 이상한 경찰 수사 내막

[단독]‘이태리 석유 재벌 행세’ 이상한 경찰 수사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광주에서 일어난 ‘장윤기 사건 증거인멸’ 논란으로 경찰 조직이 시험대에 올랐다. 피의자 가족이 나서서 증거를 없애고 이 과정에 주변 경찰이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이 사건으로 검찰청 해체 이후 수사 권력을 한 손에 쥘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 한 여고생이 일면식도 없던 남자에게 살해됐다. 여학생을 구하려던 남학생은 크게 다쳤다. 경찰이 범인을 검거했고 사건의 심각성에 따라 얼굴을 공개했다. 생떼 같은 10대 여고생의 황망한 죽음에 국민은 경악했다. 하지만 국민이 더 분노한 지점은 따로 있었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비위 의혹은 경찰 조직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조직 명운 달렸다 장윤기 사건에서 수사 기밀 유출, 증거인멸, 초동수사 부실 등의 의혹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장윤기의 혐의를 경찰이 나서서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경찰은 장윤기에게 강간·살인이 아닌 일반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이 과정에서 형량이 더 높은 강간·살인 혐의를 입증할 케이블 타이 등의 증거를 경찰이 없앴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검찰의 보완수사로 드러났다. 현재 정치권은 해체될 검찰에 보완수사권을 남겨둘지를 두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심지어 여권에서도 입장이 엇갈린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보완수사로 경찰의 부실 수사 문제가 확인되면서 권력을 한쪽에만 과도하게 몰아줘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부상하고 있다. 홍석기 국가수사본부장이 장윤기 사건에서 드러난 경찰 유착 의혹을 두고 “명운을 걸고 수사하겠다”고 말한 것은 조직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최대한 불식하겠다는 의도도 담겼다는 게 중론이다. 안 그래도 검찰청 해체로 수사 공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 이번 일로 그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찰 수사를 의심하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2023년 8월 공동대표였던 하모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한 R스타트업의 이모 대표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 대표는 하씨가 회사를 그만둔 이후 단독대표가 돼 R스타트업을 떠안았다(<일요시사> 1493호 ‘<단독>스타트업 대표 1000억대 역외탈세 의혹’). 앞서 두 사람이 공동대표일 무렵 R스타트업은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마스크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내에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있던 때였다. 하씨는 마스크 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했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필리핀의 법인을 이용해 수급하겠다고 했다. 미국의 한 회사와 판매 계약까지 체결하는 등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던 사업은 ‘마스크를 수급할 수 없게 됐다’는 하씨의 말에 흐지부지됐다. 이후 마스크 관련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고 하씨는 R스타트업을 떠났다. 2022년 3월경에는 서로 연락도 끊겼다. 하씨의 회사 이메일 계정도 이 시기에 정지 조처됐다. 회사와도, 사적으로도 이 대표와 하씨의 관계가 끝난 것이다. 상황은 2023년 6월 이 대표가 하씨의 이메일에서 석연찮은 점을 발견하며 반전됐다. 장윤기 사건으로 신뢰 바닥 새로운 자료 찾아도 시큰둥 이 대표는 하씨의 이메일을 통해 흐지부지된 줄 알았던 마스크 사업이 몰래 진행됐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하씨가 가족과 지인을 동원해 마스크를 수급하고 수출해 상당한 돈을 벌었다는 사실도 이 시기에 알게 됐다. 극심한 배신감을 느낀 이 대표는 하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인천 연수경찰서에 고소하기에 이른다. 연수경찰서는 하씨의 마스크 거래 규모를 1000억원대로 판단했고 수사를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계로 넘겼다. 이 대표에 따르면 당시 연수경찰서에서 추정한 하씨의 마스크 거래 규모는 1400억원에 달한다. 이 대표는 “하씨는 회사(R스타트업) 메일 계정을 이용해 마스크 거래를 진행했다. 그사이 회사에는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를 더욱 화나게 한 건 경찰의 태도였다. 처음 사건을 맡은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미진한 수사 태도로 이 대표의 불만을 샀다. 이 대표는 “하씨가 한국에 있지도 않은데 출국금지를 걸지를 않나, 경제범죄를 수사하면서 CFO가 뭐냐고 묻질 않나, 이렇게 많은 양의 자료를 제출했는데 고소인 조사를 20분밖에 하질 않나, 수사 자체가 엉망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2024년 2월 말 하씨를 불송치 처분했다. 하지만 인천지방검찰청(이하 인천지검)의 판단은 달랐다. 인천지검은 필리핀과의 국제 공조 수사를 통해 하씨와 가족의 해외 계좌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경찰의 불송치에 대해 보완수사를 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때가 2024년 3월이다. 경찰 수사에 답답함을 느낀 이 대표는 하씨와 관련된 자료를 이 잡듯이 뒤졌다고 한다. 특히 하씨의 회사 계정으로 오간 이메일을 꼼꼼히 살폈다. 그 결과 하씨가 카카오뱅크를 통해 6개월 동안 거래한 내역을 찾아냈다. 이 대표는 거래 내역에서 가족으로 추정되는 인물과 돈이 여러 차례 오간 것을 발견했다. 이 대표는 “2024년 5월에 거래 내역을 발견해 바로 경찰에 전달했다. 경찰이 나를 조사에 부른 건 (그해) 8월경이었는데 그때까지 거래 내역에 대한 어떤 수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보다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수사 권한도 없는 일반인이 이 정도로 자료를 찾아 건넸으면 좀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일반 국민은 경찰보다 계좌 접근 권한이 제한돼있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고소 이후 3년 지나 하씨와 그 가족의 필리핀 계좌를 보기 위한 국제 공조에도 시간이 지체됐다고 토로했다. 검찰에서 보완수사를 요구한 때가 2024년 3월29일이었는데 그해 7월에서야 공조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처음 고소인 조사를 받을 때부터 필리핀 법인 이야기를 숱하게 했다. 필리핀 법인에 보낸 은행 송금증, 해당 필리핀 법인이 운영하는 SNS 내용, 현지 언론 기사까지 제출했을 때는 나 몰라라 하다가 보완수사가 떨어지고 나서야 공조를 진행하면 기다리는 고소인은 답답해서 죽는다”고 말했다. 하씨의 지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써준 사실확인서도 문제로 지적했다. 이 대표는 “해당 인물이 사실확인서를 써준 이후에 하씨와 함께 사업한 의혹이 있다. 이런 사람이 써준 사실확인서를 믿을 수 있나. 경찰 조사에서 이 부분을 상세하게 진술했는데 ‘고소인은 ○○○의 사실확인서를 믿을 수 없음’ 이렇게 한 줄만 적었더라. 근거를 가지고 말했는데 경찰은 나를 ‘우기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 대표가 경찰에 제출한 자료로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에서 하씨를 불송치 처분할 때 근거가 됐던 내용을 다시 들여다볼 여지가 생겼다는 점이다. 당시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불송치 이유로 ▲(하씨가) 거래대금을 몰래 착복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고 ▲실제 거래가 성사된 사실이 없다면서 배임 혐의를 부인한 점 등을 들었다. 이때 ▲미국 A사와의 거래 과정에서 필리핀 법인을 사용하기로 합의한 점 ▲미국 A사 측의 거래 취소 요청 이메일 ▲계약 관련자의 사실확인서 등을 ‘혐의없음’의 근거로 제시했다. 즉, 경찰은 하씨가 마스크 사업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마스크 사업으로 수익을 본 것도 없고 그러니 배임 혐의도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 이 대표는 “카카오뱅크 거래 내역은 마스크 사업 과정에서 돈이 오간 흔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고, 사실확인서 역시 동업 관계에서 나왔기에 그 배경을 더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 자료만 제대로 봤어도 수사가 달라졌을 것이라 확신한다. 경찰의 결론 자체를 뒤집는 자료 아닌가”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특히 지난해 1월 이 대표는 하씨의 카카오뱅크 거래 내역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의 정체를 밝혀내기에 이른다. 하씨가 마스크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수급을 담당한 업체가 있는데, 그곳의 대표와 이름이 같았던 것이다. “확인해 달라” 호소에도… 또 이메일을 확인하면서 하씨가 2억4000만원에 이르는 신용 미수 거래를 한 내역도 찾아냈다.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했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신용 미수 거래금이 2억원이 넘는다는 건 담보 제공 현금이 1억5000만원 이상 있다는 의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마스크 사장 이름을 알아낸 것도 그렇다. 대단한 기술을 쓴 것도 아니고 거래 내역에 있는 사람 이름과 다른 단어를 인터넷에서 조합해 검색했더니 내용이 나왔다. 이건 내가 다 수사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적극적인 행보에도 경찰은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에서 2계로 수사팀을 한 차례 바꾼 것 빼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해 4월30일 ‘수사 중지’를 결정했다. 국제 공조 수사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게 근거였다. 이 대표는 하씨의 거주지 주소가 바뀐 것을 지적하면서 ‘이송’을 요청했지만 ‘보완수사 중에는 관할지 이송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후 수사는 1년 넘게 멈춘 상태다. 이 대표는 국세청에도 관련 내용을 제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국세청에 같은 자료를 냈는데 국세청은 조사를 진행한 뒤 하씨가 ‘탈세를 한 게 맞다’는 취지로 답했다. 하지만 경찰에 그 사실을 알리자 ‘국세청 관계자와 통화했는데 사건과 관련 없다고 말했다’고 하더라. 국세청에 확인했더니 ‘기밀이라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는 말이 돌아왔다. 왜 거짓말까지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그사이 하씨가 다른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9~10월경 가상자산 전문 매체 기사에서 하씨의 영어 이름을 발견했다. 하씨가 ‘키키캣 코인’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이게 사기라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하씨가 코인사업을 하면서 ‘이태리 석유 재벌의 아들’인 척했다는 글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불송치했다 보완수사 결정 “그건 1계에서 처분한 것” 이 대표의 주장대로라면 하씨는 업무상 배임 혐의로 수사를 받는 도중에 또 다른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뜻이 된다. 이 대표는 “(키키캣 코인의) 시가총액이 1억달러까지 올랐다가 현재 100만달러까지 떨어진 걸로 안다. 키키캣 코인을 구매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채팅방에 참여하고 있는데, 지금은 피해자 방이나 다름 없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중지된 수사를 재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하씨의 여동생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페이퍼컴퍼니를 운영한 사실도 발견했다. 그는 “하씨와 거래한 마스크 제조업체는 여러 곳인데 수출을 진행한 곳은 하씨 동생 명의의 페이퍼컴퍼니로 확인된다”며 “이 내용을 근거로 수사를 재개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경찰은) ‘규정 위반’이라고 윽박질렀다”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 규칙 제102조(수사 중지 사건 수사 재개)는 ‘경찰은 수사 중지된 사건의 피의자를 발견하는 등 수사 중지 사유가 해소된 때에는 …(중략)… 즉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여기서 경찰과 이 대표의 주장이 엇갈린다. 경찰은 수사 재개에 필요한 요건을 국제 공조 수사 결과라고 말했다. 반면 이 대표는 새로운 증거가 나왔는데 왜 수사를 재개하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필리핀과의 국제 공조 결과가 아직 회신되지 않았다는 건 하씨의 해외 (계좌) 자료가 필요한 일부 수사에 제약이 있다는 뜻일 뿐이다. 하씨의 마스크 사업 규모를 확인하는 정도에 필요한 자료”라며 “하씨의 여동생이 페이퍼컴퍼니를 갖고 있다는 의혹은 수사가 시작된 이후 3년여 동안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내용이다. 수사를 재개하고 관련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2계 담당자는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올 때까지 수사를 재개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하씨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언제쯤 올 것으로 예상되냐는 질문에도 “알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또 앞서 하씨를 불송치한 내용에 대해 거론했을 때는 “그 부분은 1계에서 처분한 것”이라며 “우리(2계)는 검찰의 보완수사 요청 이후 수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소인이 제출한 자료는 경찰 수사 규칙에 따라 사건 기록에 편철해 놨다”며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없어도 수사를 재개할 수 있는지 국수본(국가수사본부)에 질의해 둔 상태”라고 말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수사가 길어지는 사이 하씨가 또 다른 일을 벌이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범죄 혐의가 확인되지 않은 부분 아닌가. 피고소인이 현재 받는 업무상 배임 혐의 외의 별건 수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이 대표가 담당 수사관에게 언급한 하씨의 코인 사업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