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어깨 무거운 나홍진 감독

  • 조유담 기자 ydcho@ilyosisa.co.kr
  • 등록 2026.06.23 10:13:12
  • 호수 15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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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억 베팅하고 기대 반 걱정 반

[일요시사 취재1팀] 조유담 기자 =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가 투자·배급사 플러스엠의 모기업인 메가박스중앙의 회생절차 신청 속에 올해 여름 국내 영화계 최대 기대작으로 주목받고 있다.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해외 선판매만으로 제작비 상당 부분을 회수했지만,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추격자> <황해> <곡성>으로 한국 장르영화의 새 지평을 연 나 감독이 <호프>를 통해 극장가와 메가박스중앙에 반등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나홍진 감독은 지난 16일 자신의 SNS에 JTBC와 메가박스중앙의 회생 신청에 대한 뉴스를 공유해 화제를 모았다. 메가박스중앙은 나 감독의 7월 국내 개봉 예정작인 <호프(HOPE)>의 투자와 배급을 맡은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이하 플러스엠)의 모기업이다.

한국 영화
최대 규모

메가박스중앙은 현재 콘텐트리중앙에서 빌린 돈이 1690억원에 달하는 등 관계사로부터 꾸준히 자금 수혈을 받아야 할 만큼 수년째 자체 현금 창출력이 바닥을 친 상황으로, 하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거론돼 온 <호프>의 흥행이 매우 절실한 상황이다.

롯데시네마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대규모 외부 투자 유치를 추진해 왔으나 메가박스중앙이 회생 절차에 들어가면서 이 또한 사실상 종료됐다.

JTBC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선언 이후 쏟아지는 계열사들의 회생 절차 관련 뉴스와 함께 <호프>에 미칠 영향과 흥행 가능성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플러스엠 측은 당초 일정대로 개봉한다는 계획이지만, 회생 절차가 개시되면 흥행을 위한 예산을 유연하게 집행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순제작비만 역대 한국 영화 최대 규모인 500억원 이상 투입된 <호프>는 쇼케이스와 시사회, 각종 광고 등 개봉 전후로 관객을 모으기 위해 수십억원의 홍보·마케팅 비용을 투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 감독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메가박스중앙의 회생 신청 관련 뉴스를 직접 게재한 것 역시 이 같은 예산 집행 차질 및 홍보 위축 우려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호프>는 상업적 성과 면에서 이미 대기록을 세웠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 이후 한국 영화 사상 역대 최고액을 경신하며 전 세계 200여개 국가 및 권역에 선판매됐다.

플러스엠은 지난 29일 “<호프>가 해외 선판매만으로 순제작비의 절반 수준에 달하는 금액을 조기 회수했다”면서 “향후 해외 흥행 성과에 따른 추가 수익 창출이 이어질 것을 감안할 때 안정적인 수익 구조가 완성됐다”고 밝혔다.

해외 개봉 성과를 배분받는 형태로 계약이 이뤄져 앞으로 거둬들이는 수익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인 만큼, 플러스엠 측은 “국내 흥행 부가 판권 사업으로 인한 수익까지 더해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다음 달 15일 국내 개봉 예정인 <호프>는 SF, 액션, 스릴러 장르를 표방하며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과 함께 테일러 러셀, 카메론 브리튼, 알리시아 비칸데르, 마이클 패스벤더 등 할리우드 톱 배우들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아시아 영화엔 특유의 용감함과 대담함이 있다”며 “특히 나 감독은 기존의 틀을 깨고, 본인이 좋아하는 장르를 섞고 탐험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고 평했다. 이 작품은 <곡성> 이후 나 감독이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촬영 준비 기간만 2년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메가박스 회생 절차에 ‘우려’
기대작 <호프> 흥행 차질 없나

영화는 DMZ(비무장지대) 인근 마을에 위치한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이 동네 청년들로부터 호랑이가 출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온 마을에 비상이 걸리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지원 인력들은 산불을 끄기 위해 떠나 통신까지 끊긴 가운데, 노인들만 남은 마을은 예상치 못한 위기와 마주하며 서서히 극한 국면으로 밀려 들어간다.

작품은 “무지가 빚어낸 불행의 씨앗은 입장의 차이를 거쳐 온 우주의 비극이 되고야 만다”는 시놉시스 문장을 통해, 작은 마을의 사건이 어디까지 확장되는지를 예고한다. 한정된 공간과 외계 생명체라는 요소를 결합해 인간과 낯선 존재의 충돌을 그린다.

영화는 서로 다른 위치에서 움직이는 이들의 선택과 대응이 생존 문제를 넘어서는 공포와 비극으로 이어진다.

한국 영화로는 4년 만에 ‘제79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지난달 17일(현지시각) 공식 시사회를 가졌다. 나 감독은 칸 기자회견에서 “사람이 왜 범죄를 저지르고 폭력이 왜 발생하는지 고민하다가 그 생각이 우주까지 갔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시사회 이후 현지 평가는 극단적으로 나뉘었다.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매거진 <버라이어티(Variety)>는 “포복절도할 만큼 웃기고, 숨 막히게 우아하다”며 “가장 훌륭하고 재미있는 액션 영화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할리우드 리포터(The Hollyeood Reporter)>도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전개, 날카롭게 묘사된 캐릭터로 관객을 즉시 사로잡는다”며 “미친 듯이 즐거운 시간을 선사한다”고 액션과 속도감에 대해 극찬했다. 홍경표 촬영감독의 카메라 워크와 프로덕션 디자인 역시 여러 매체의 찬사를 받았다.

반면 미국 영화 전문 매체 <인디와이어(IndieWire)>는 낙제점인 ‘D+’를 주며 “끔찍한 각본과 최악의 컴퓨터 그래픽(CG)으로 처참하게 무너진다”고 평했다. 이어 “<호프>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이 영화가 위대한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희망(호프)을 줬기 때문”이라며 “이 영화가 당신을 버리기 전에 당신이 먼저 버려라”고 비판했다.

매체는 “겨우 50분 정도만 창의적인 추진력을 유지하는 진부하고 지루한 서사”라며 외계인이 아직 실체를 드러내기 전 이어지는 범석(황정민)의 긴장감 넘치는 추격 시퀀스 이후 전개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호평하는 매체들조차 공통으로 지적한 문제점은 CG였다. 실관람객들의 후기를 확인할 수 있는 글로벌 평점 사이트 레터박스(Letterboxd)에서도 “두 번째 관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좋았다”는 관객들의 호평과 함께 “어린이용 비디오게임 같다”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징글징글
집요하다

평점 또한 5점 만점에 3.3점을 기록해 기대에 비해 다소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현지 평론가와 관객들의 평이 극단적으로 갈리면서, 투자·배급사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가 기대하는 추가 수익 창출이 과연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압도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장르 연출자로 꼽힌다. <호프>를 제외하면 나 감독의 장편영화는 단 세 편이지만 ‘스릴러 장르의 세공사’라는 수식어와 함께 한국 스릴러 영화의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꾼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그의 출발은 일반적인 영화계 입문 코스와는 조금 달랐다.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공예학과를 졸업한 후 광고업계에서 일하다 20대 후반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한 뒤 단편영화 <5 Minutes> <완벽한 도미요리> <한(汗)> 등을 연출하며 이름을 알렸다. 특히 <완벽한 도미요리>는 2005년 미쟝센 단편영화제 최우수작으로 선정되며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나 감독을 설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칸 국제영화제다. 2008년 데뷔작 <추격자>는 칸 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다. 충무로 연출부 경험이 전혀 없었던 그에 대해 한 평론가는 “어딘가에서 자신을 끝없이 단련하고 있는 건강한 인재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감을 준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황해>는 2011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곡성>은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칸과의 인연을 이어왔다. 신작 <호프>까지 ‘경쟁 부문’에 진출하며 한국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장편 연출작 전편이 칸에 초청되는 기록을 세웠다.

칸의 경쟁 부문은 매년 전 세계 약 2500편의 출품작 중 오직 21편 내외만를 선정한다. 미드나잇 스크리닝에서 경쟁 부문까지 이어져 온 약 20년의 여정은 칸이 나 감독에 대해 갖는 신뢰를 입증한다. <버라이어티(Variety)>는 이번 경쟁 부문 라인 업에 대해 <호프>의 성과를 ‘드문 영예(rare distinction)’라며 집중 조명했다.

나 감독은 작품마다 철저한 완성도를 추구하는 연출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곡성>에 ‘무명’역으로 출연했던 배우 천우희는 나 감독에 대해 “징글징글했다”며 “감독님은 정말 타협이 없고 끝까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고 전했다.

외지인 역할을 맡아 함께 출연했던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은 “고라니를 뜯어 먹는 장면에서 더는 못하겠다고 했는데 나홍진 감독이 ‘두 번만 더 해보자’라고 말했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황정민은 “<곡성>을 찍으면서 나 감독이 인물을 집중도 있게 잘 찍어낼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며 “배우로서 저보다 더 집요한 사람을 만나면 끌리게 된다”고 말했다.

실화 바탕
폭력 논란

같은 장면을 수차례 찍어내 배우와 스태프 모두를 극한으로 몰아가는 자신의 스타일에 대해 나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는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이다 싶은 상황을 구상한다. 그런데 그걸 구현하려다 보면 난도가 높은 경우가 정말 많더라. 의도해서 일부러 어렵게 찍어내려고 한 건 아니다. 내가 쓴 시나리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화시키는 과정이 보통 힘든 게 아니”라고 털어놨다.

<호프>의 촬영 현장에 대해서도 “나홍진은 집요하다”라는 증언이 이어졌다. 호포항 어촌 마을의 청년 ‘성기’를 연기한 조인성은 나 감독에 대해 “그분은 영화를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한다. 배우 입장에서는 끝까지 해본 기분이기 때문에 좋고 안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추격자>에서 <황해> <곡성>으로 이어지는 세 편의 영화는 ‘악(惡)의 3부작’으로 불린다. 세 작품의 장르와 배경은 다르지만 인간 내면의 악과 사회 시스템의 어두운 이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나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추격자>(2008)는 형사 출신 보도방 사장 엄중호(김윤석)가 자신이 관리하던 여성들이 잇따라 사라지는 것을 수상하게 여기고 추적하던 도중 연쇄살인범 지영민(하정우)을 만나게 되는 범죄 스릴러다. 10개월간 2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알려진 것에 대해, 나 감독은 “시나리오를 구상하며 여러 살인범의 정보를 찾아 담았고, 그중 유영철 사건도 포함했다”고 밝혔다.

그는 “살인을 당하게끔 방치한 사회와 살인자들이 활개 칠 수 있게 만든 사회 시스템에 화가 났다”며 영화를 만든 계기를 설명했다. 나 감독이 초점을 맞춘 건 선악의 대결이 아닌 악인과 악인이 만났을 때 벌이는 심판이다. 단순히 연쇄살인범을 다룬 영화가 아니라, 피해자를 구하지 못하는 공권력과 사회 시스템의 실패를 그렸다.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과 부지런함으로 밤 장면과 비 장면이 대부분인 이 영화를 빈틈없이 완성했다”는 평을 받은 이 작품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임에도 5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한국 스릴러 영화의 흐름을 바꾼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황해>(2010)는 나홍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하정우와 김윤석이 주연을 맡아 <추격자> 이후 다시 호흡을 맞췄다. 나홍진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경찰 측 지인들과 식사하다가 50만원에도 청부살인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고, 이를 토대로 약 3년에 걸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에도…
“포복절도” VS “처참하다” 갈려

영화는 중국 연변에 사는 조선족 택시 기사 구남(하정우)이 아내를 찾고 빚을 갚기 위해 살인 청부를 수락하면서 시작된다. 한국에 밀입국한 그는 목표물을 죽이기도 전에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리고, 청부살인을 의뢰한 면가(김윤석)와 배후 세력들까지 얽히면서 쫓고 쫓기는 생존극이 펼쳐진다.

식칼, 도끼 등의 도구가 등장하며 물리적 잔혹성을 더해 폭력 묘사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세 번째 장편인 <곡성>(2016)은 전라남도 곡성의 한 시골 마을에서 발생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연쇄 사건을 그린다. 경찰은 집단 야생 버섯 중독으로 잠정적 결론을 내리지만, 모든 사건의 원인이 그 외지인 때문이라는 소문과 의심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간다.

경찰 종구(곽도원)가 이를 수사하던 중 정체불명의 일본인(쿠니무라 준), 무속인 일광(황정민), 그리고 의문의 여자 무명(천우희)와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스터리·호러 영화로, 개봉 당시 68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4주간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켰다.

나 감독은 <곡성>을 만든 이유에 대해 “피해자의 입장에서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추격자>와 <황해>를 만들며 가해자에 대해 많은 조사를 했던 나 감독은 오랜 시간 취재를 하고 전문가들의 연구 자료를 보며 “그들의 심리 상태와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요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은 왜 그런 불행을 겪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던 그는 “범죄자를 길에서 우연히 만난 게 이유일 수는 없지 않나. 그 원인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현실에 국한될 수 없었다”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원인을 찾기 위해 등장한 영화 속 여러 종교와 무속 신앙에 대한 배경을 전했다.

이동진 평론가는 <곡성>에 대해 최고 점수인 5점 평점을 남기며 “그 모든 의미에서 무시무시하다”고 평을 내렸다. 글로벌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 역시 99%의 신선도를 기록하며 <곡성>의 독창성을 높이 샀다.

반면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자극적이기만 하다”는 관람객들의 평도 이어져 극단적으로 갈리는 <호프>에 대한 평가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한 언론은 “영화계에서는 여름 성수기에 개봉하는 유일한 한국 대형 상업 영화인 데다, 칸 영화제 화제성으로 흥행 요인은 확실한 작품”이라며 “<호프>가 흥행에 어려움을 겪으면 올해 들어 다소 회복세를 보이는 국내 영화 제작 시장이 다시 경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 전반에 팽배해 있다”고 보도했다.

‘SF 무덤’
이번에도?

이용주 감독의 <서복>(2021),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2021),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2022), 김용화 감독의 <더 문>(2023)까지 SF 장르의 문을 두드리는 감독들의 도전이 이어진 바 있다. 그러나 잇따른 흥행 참패로 ‘SF 장르의 무덤’으라 불리게 된 충무로에서, SF는 전망이 밝지 않은 장르로 꼽힌다.

이번 여름 나홍진 감독의 <호프>가 그 오명을 끊고 흥행을 일으켜 국내 영화 시장과 메가박스중앙에 회복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ydch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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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태리 석유 재벌 행세’ 이상한 경찰 수사 내막

[단독]‘이태리 석유 재벌 행세’ 이상한 경찰 수사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광주에서 일어난 ‘장윤기 사건 증거인멸’ 논란으로 경찰 조직이 시험대에 올랐다. 피의자 가족이 나서서 증거를 없애고 이 과정에 주변 경찰이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이 사건으로 검찰청 해체 이후 수사 권력을 한 손에 쥘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 한 여고생이 일면식도 없던 남자에게 살해됐다. 여학생을 구하려던 남학생은 크게 다쳤다. 경찰이 범인을 검거했고 사건의 심각성에 따라 얼굴을 공개했다. 생떼 같은 10대 여고생의 황망한 죽음에 국민은 경악했다. 하지만 국민이 더 분노한 지점은 따로 있었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비위 의혹은 경찰 조직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조직 명운 달렸다 장윤기 사건에서 수사 기밀 유출, 증거인멸, 초동수사 부실 등의 의혹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장윤기의 혐의를 경찰이 나서서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경찰은 장윤기에게 강간·살인이 아닌 일반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이 과정에서 형량이 더 높은 강간·살인 혐의를 입증할 케이블 타이 등의 증거를 경찰이 없앴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검찰의 보완수사로 드러났다. 현재 정치권은 해체될 검찰에 보완수사권을 남겨둘지를 두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심지어 여권에서도 입장이 엇갈린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보완수사로 경찰의 부실 수사 문제가 확인되면서 권력을 한쪽에만 과도하게 몰아줘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부상하고 있다. 홍석기 국가수사본부장이 장윤기 사건에서 드러난 경찰 유착 의혹을 두고 “명운을 걸고 수사하겠다”고 말한 것은 조직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최대한 불식하겠다는 의도도 담겼다는 게 중론이다. 안 그래도 검찰청 해체로 수사 공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 이번 일로 그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찰 수사를 의심하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2023년 8월 공동대표였던 하모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한 R스타트업의 이모 대표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 대표는 하씨가 회사를 그만둔 이후 단독대표가 돼 R스타트업을 떠안았다(<일요시사> 1493호 ‘<단독>스타트업 대표 1000억대 역외탈세 의혹’). 앞서 두 사람이 공동대표일 무렵 R스타트업은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마스크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내에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있던 때였다. 하씨는 마스크 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했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필리핀의 법인을 이용해 수급하겠다고 했다. 미국의 한 회사와 판매 계약까지 체결하는 등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던 사업은 ‘마스크를 수급할 수 없게 됐다’는 하씨의 말에 흐지부지됐다. 이후 마스크 관련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고 하씨는 R스타트업을 떠났다. 2022년 3월경에는 서로 연락도 끊겼다. 하씨의 회사 이메일 계정도 이 시기에 정지 조처됐다. 회사와도, 사적으로도 이 대표와 하씨의 관계가 끝난 것이다. 상황은 2023년 6월 이 대표가 하씨의 이메일에서 석연찮은 점을 발견하며 반전됐다. 장윤기 사건으로 신뢰 바닥 새로운 자료 찾아도 시큰둥 이 대표는 하씨의 이메일을 통해 흐지부지된 줄 알았던 마스크 사업이 몰래 진행됐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하씨가 가족과 지인을 동원해 마스크를 수급하고 수출해 상당한 돈을 벌었다는 사실도 이 시기에 알게 됐다. 극심한 배신감을 느낀 이 대표는 하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인천 연수경찰서에 고소하기에 이른다. 연수경찰서는 하씨의 마스크 거래 규모를 1000억원대로 판단했고 수사를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계로 넘겼다. 이 대표에 따르면 당시 연수경찰서에서 추정한 하씨의 마스크 거래 규모는 1400억원에 달한다. 이 대표는 “하씨는 회사(R스타트업) 메일 계정을 이용해 마스크 거래를 진행했다. 그사이 회사에는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를 더욱 화나게 한 건 경찰의 태도였다. 처음 사건을 맡은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미진한 수사 태도로 이 대표의 불만을 샀다. 이 대표는 “하씨가 한국에 있지도 않은데 출국금지를 걸지를 않나, 경제범죄를 수사하면서 CFO가 뭐냐고 묻질 않나, 이렇게 많은 양의 자료를 제출했는데 고소인 조사를 20분밖에 하질 않나, 수사 자체가 엉망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2024년 2월 말 하씨를 불송치 처분했다. 하지만 인천지방검찰청(이하 인천지검)의 판단은 달랐다. 인천지검은 필리핀과의 국제 공조 수사를 통해 하씨와 가족의 해외 계좌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경찰의 불송치에 대해 보완수사를 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때가 2024년 3월이다. 경찰 수사에 답답함을 느낀 이 대표는 하씨와 관련된 자료를 이 잡듯이 뒤졌다고 한다. 특히 하씨의 회사 계정으로 오간 이메일을 꼼꼼히 살폈다. 그 결과 하씨가 카카오뱅크를 통해 6개월 동안 거래한 내역을 찾아냈다. 이 대표는 거래 내역에서 가족으로 추정되는 인물과 돈이 여러 차례 오간 것을 발견했다. 이 대표는 “2024년 5월에 거래 내역을 발견해 바로 경찰에 전달했다. 경찰이 나를 조사에 부른 건 (그해) 8월경이었는데 그때까지 거래 내역에 대한 어떤 수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보다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수사 권한도 없는 일반인이 이 정도로 자료를 찾아 건넸으면 좀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일반 국민은 경찰보다 계좌 접근 권한이 제한돼있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고소 이후 3년 지나 하씨와 그 가족의 필리핀 계좌를 보기 위한 국제 공조에도 시간이 지체됐다고 토로했다. 검찰에서 보완수사를 요구한 때가 2024년 3월29일이었는데 그해 7월에서야 공조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처음 고소인 조사를 받을 때부터 필리핀 법인 이야기를 숱하게 했다. 필리핀 법인에 보낸 은행 송금증, 해당 필리핀 법인이 운영하는 SNS 내용, 현지 언론 기사까지 제출했을 때는 나 몰라라 하다가 보완수사가 떨어지고 나서야 공조를 진행하면 기다리는 고소인은 답답해서 죽는다”고 말했다. 하씨의 지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써준 사실확인서도 문제로 지적했다. 이 대표는 “해당 인물이 사실확인서를 써준 이후에 하씨와 함께 사업한 의혹이 있다. 이런 사람이 써준 사실확인서를 믿을 수 있나. 경찰 조사에서 이 부분을 상세하게 진술했는데 ‘고소인은 ○○○의 사실확인서를 믿을 수 없음’ 이렇게 한 줄만 적었더라. 근거를 가지고 말했는데 경찰은 나를 ‘우기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 대표가 경찰에 제출한 자료로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에서 하씨를 불송치 처분할 때 근거가 됐던 내용을 다시 들여다볼 여지가 생겼다는 점이다. 당시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불송치 이유로 ▲(하씨가) 거래대금을 몰래 착복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고 ▲실제 거래가 성사된 사실이 없다면서 배임 혐의를 부인한 점 등을 들었다. 이때 ▲미국 A사와의 거래 과정에서 필리핀 법인을 사용하기로 합의한 점 ▲미국 A사 측의 거래 취소 요청 이메일 ▲계약 관련자의 사실확인서 등을 ‘혐의없음’의 근거로 제시했다. 즉, 경찰은 하씨가 마스크 사업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마스크 사업으로 수익을 본 것도 없고 그러니 배임 혐의도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 이 대표는 “카카오뱅크 거래 내역은 마스크 사업 과정에서 돈이 오간 흔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고, 사실확인서 역시 동업 관계에서 나왔기에 그 배경을 더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 자료만 제대로 봤어도 수사가 달라졌을 것이라 확신한다. 경찰의 결론 자체를 뒤집는 자료 아닌가”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특히 지난해 1월 이 대표는 하씨의 카카오뱅크 거래 내역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의 정체를 밝혀내기에 이른다. 하씨가 마스크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수급을 담당한 업체가 있는데, 그곳의 대표와 이름이 같았던 것이다. “확인해 달라” 호소에도… 또 이메일을 확인하면서 하씨가 2억4000만원에 이르는 신용 미수 거래를 한 내역도 찾아냈다.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했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신용 미수 거래금이 2억원이 넘는다는 건 담보 제공 현금이 1억5000만원 이상 있다는 의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마스크 사장 이름을 알아낸 것도 그렇다. 대단한 기술을 쓴 것도 아니고 거래 내역에 있는 사람 이름과 다른 단어를 인터넷에서 조합해 검색했더니 내용이 나왔다. 이건 내가 다 수사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적극적인 행보에도 경찰은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에서 2계로 수사팀을 한 차례 바꾼 것 빼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해 4월30일 ‘수사 중지’를 결정했다. 국제 공조 수사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게 근거였다. 이 대표는 하씨의 거주지 주소가 바뀐 것을 지적하면서 ‘이송’을 요청했지만 ‘보완수사 중에는 관할지 이송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후 수사는 1년 넘게 멈춘 상태다. 이 대표는 국세청에도 관련 내용을 제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국세청에 같은 자료를 냈는데 국세청은 조사를 진행한 뒤 하씨가 ‘탈세를 한 게 맞다’는 취지로 답했다. 하지만 경찰에 그 사실을 알리자 ‘국세청 관계자와 통화했는데 사건과 관련 없다고 말했다’고 하더라. 국세청에 확인했더니 ‘기밀이라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는 말이 돌아왔다. 왜 거짓말까지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그사이 하씨가 다른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9~10월경 가상자산 전문 매체 기사에서 하씨의 영어 이름을 발견했다. 하씨가 ‘키키캣 코인’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이게 사기라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하씨가 코인사업을 하면서 ‘이태리 석유 재벌의 아들’인 척했다는 글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불송치했다 보완수사 결정 “그건 1계에서 처분한 것” 이 대표의 주장대로라면 하씨는 업무상 배임 혐의로 수사를 받는 도중에 또 다른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뜻이 된다. 이 대표는 “(키키캣 코인의) 시가총액이 1억달러까지 올랐다가 현재 100만달러까지 떨어진 걸로 안다. 키키캣 코인을 구매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채팅방에 참여하고 있는데, 지금은 피해자 방이나 다름 없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중지된 수사를 재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하씨의 여동생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페이퍼컴퍼니를 운영한 사실도 발견했다. 그는 “하씨와 거래한 마스크 제조업체는 여러 곳인데 수출을 진행한 곳은 하씨 동생 명의의 페이퍼컴퍼니로 확인된다”며 “이 내용을 근거로 수사를 재개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경찰은) ‘규정 위반’이라고 윽박질렀다”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 규칙 제102조(수사 중지 사건 수사 재개)는 ‘경찰은 수사 중지된 사건의 피의자를 발견하는 등 수사 중지 사유가 해소된 때에는 …(중략)… 즉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여기서 경찰과 이 대표의 주장이 엇갈린다. 경찰은 수사 재개에 필요한 요건을 국제 공조 수사 결과라고 말했다. 반면 이 대표는 새로운 증거가 나왔는데 왜 수사를 재개하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필리핀과의 국제 공조 결과가 아직 회신되지 않았다는 건 하씨의 해외 (계좌) 자료가 필요한 일부 수사에 제약이 있다는 뜻일 뿐이다. 하씨의 마스크 사업 규모를 확인하는 정도에 필요한 자료”라며 “하씨의 여동생이 페이퍼컴퍼니를 갖고 있다는 의혹은 수사가 시작된 이후 3년여 동안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내용이다. 수사를 재개하고 관련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2계 담당자는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올 때까지 수사를 재개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하씨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언제쯤 올 것으로 예상되냐는 질문에도 “알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또 앞서 하씨를 불송치한 내용에 대해 거론했을 때는 “그 부분은 1계에서 처분한 것”이라며 “우리(2계)는 검찰의 보완수사 요청 이후 수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소인이 제출한 자료는 경찰 수사 규칙에 따라 사건 기록에 편철해 놨다”며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없어도 수사를 재개할 수 있는지 국수본(국가수사본부)에 질의해 둔 상태”라고 말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수사가 길어지는 사이 하씨가 또 다른 일을 벌이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범죄 혐의가 확인되지 않은 부분 아닌가. 피고소인이 현재 받는 업무상 배임 혐의 외의 별건 수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이 대표가 담당 수사관에게 언급한 하씨의 코인 사업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