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하러 갔더니 투표용지가 없다”는 말, 믿기 어렵지만 지난 3일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서울·부산·인천·경기·울산·광주 등 전국 여러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일부 유권자가 투표를 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사건이 단순한 행정 실수로 끝나지 않고 지금 여야의 정치적 폭탄으로 번지고 있는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이를 근거로 6개 이상 지역에 선거 소청을 제기하며 “전국 재선거가 목표”라는 강수를 뒀고, 더불어민주당은 “선거 불복”이라며 즉각 반발하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투표소별로 예상 투표 인원을 계산해 투표용지를 미리 준비한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일부 투표소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유권자가 몰리면서 용지가 동났고, 늦게 도착한 일부 유권자는 투표 자체를 못하게 됐다.
특히 서울·부산·인천 같은 대도시 일부 선거구에서 피해가 집중됐는데 이 지역들이 공교롭게도 여야가 치열하게 다툰 경합 지역이었기 때문에 논란이 더욱 커졌다.
국민의힘이 제기한 선거 소청(選擧 訴請)은 선거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될 때 법원에 선거 효력 자체를 심사해 달라고 신청하는 제도다. 선거 결과가 아직 공식 확정되기 전이나 직후에 제기할 수 있다.
소청이 받아들여지면 최악의 경우 재선거까지 갈 수 있다. 즉, 국민의힘의 전략은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 참정권이 침해됐고 그 침해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해당 지역 선거는 무효이고 재선거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15일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서울·부산·인천·경기·울산·전남광주 등 6~7개 지역에 대해 선거 소청을 제기하기로 결정했다. 장동혁 대표는 “소청은 시작에 불과하다, 목표는 전국 재선거”라는 강경한 메시지를 냈는데 당 안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정점식 원내대표 등 일부 의원들은 소청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했고, 무리한 선거 불복이 오히려 역풍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민주당은 이번 소청을 “주권자의 뜻을 부정하는 선거 불복 행위”라고 즉각 비판했다. 국정조사를 통해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원인을 규명하되, 선거 결과 자체를 뒤집으려는 시도에는 강하게 맞서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여야 합의된 것도 있다. 두 당이 완전히 대립만 하는 건 아니다. 여야는 지난 18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투표용지 부족 사태 국정조사 계획서를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실관계를 먼저 밝히자는 데는 뜻을 모은 셈이다.
재선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법조계 다수는 재선거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이유는 이렇다. 선거 소청이 받아들여지려면 단순히 투표용지가 부족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부족이 실제로 선거 결과를 바꿀 만큼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즉, “투표를 하지 못한 사람들이 전부 특정 후보에게 투표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수준의 증명이 필요한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표 차이가 적지 않은 지역이 많아, 법원이 소청을 인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 꽃이 피어나는 과정에서 투표용지가 모자란다는 건 정말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정쟁으로 흐르지 않고, 선관위 책임 규명과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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