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는 누가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보다 누가 어떤 자리에 없었는지가 더 큰 의미를 가질 때가 있다. 특히 대통령 해외순방 환송식과 귀국 환영식은 단순한 의전 행사가 아니다.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현재 권력지형을 보여주는 상징적 무대다.
그래서 정치권은 대통령의 연설보다 공항에 누가 섰는지, 누가 빠졌는지에 더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공항은 단순한 출발과 도착의 공간이 아니라 권력의 온도를 보여주는 정치 무대이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권을 뜨겁게 달군 사건도 바로 그런 장면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유럽 순방길에 오르던 지난 9일, 성남공항 환송 행사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참석하지 못했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 해외순방 환송식에 불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더구나 정 대표는 그동안 이 대통령의 주요 일정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동행해 온 대표적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였다.
대통령실은 즉각 설명에 나섰다. 중동 전쟁 장기화와 선관위 투표용지 논란 등 국내외 상황을 고려해 환송 행사 참석 인원을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역시 같은 취지의 설명을 내놨다. 이날 강준현 수석대변인은 “청와대 의사에 따라 정 대표가 참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설명만 놓고 보면 특별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사안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설명보다 장면이 더 큰 힘을 갖는다. 정 대표가 빠진 자리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었다. 통상적으로 총리는 귀국 행사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에는 직접 공항에 나와 대통령을 배웅했다. 문제는 김 총리가 현재 차기 당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는 8월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에서 정 대표는 빠지고 김 총리는 참석한 장면은 정치권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여권 내부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일부는 이 대통령이 사실상 김 총리에게 힘을 실어준 것 아니냐는 관측을 제기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 내부 경쟁 구도가 예상보다 빨리 시작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물론 과도한 해석이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자체보다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흥미로운 점은 정청래 대표의 이후 행보다. 환송식 논란이 커진 뒤 정 대표는 공개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지원하는 메시지를 내놨다. 그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월드클래스의 세계적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이 외국에 나갈 때는 불안했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외국에 나갈 때마다 기대가 된다”는 말까지 했다.
이는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대통령과의 거리 두기보다 협력을 선택한 모습이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 대표의 최근 발언을 전당대회 일정과 연결해 해석하기도 한다. 민주당은 오는 24일 전당대회준비위원회 구성을 앞두고 있으며,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위해 대표직에서 물러날 경우 그 시점이 사실상 정치적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 대표가 굳이 이재명 대통령과 미리 각을 세우며 갈등을 부각시킬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정 대표는 이탈리아와의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 격상과 외교 성과를 높이 평가하며 이 대통령의 외교 역량을 치켜세웠다. 만약 당청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라면 나오기 어려운 발언들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친명계와 친청(친 정청래)계의 전면전 해석은 다소 과장된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관심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귀국 행사 참석 여부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도부도 “대통령 귀국 때 참석 여부는 충분히 소통해 결정할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정해진 것이 없다”고 밝혔다.
환송식에 이어 귀국 행사까지 미정이라는 사실 자체가 새로운 정치적 해석을 낳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번 논란을 보며 2024년 가을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갈등 장면을 떠올렸다. 당시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환송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재보궐선거 지원 일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미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한 일정 문제가 아니라 권력 갈등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국민의힘 내부에는 대통령실과 당 대표라는 두 개의 권력 중심이 존재했다. 김건희 여사 문제와 인사 문제, 총선 패배 책임론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결국 갈등은 점점 커졌고 보수 진영 전체에 큰 상처를 남겼다.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 관리에 실패했다는 점이었다.
당시 한동훈 대표는 환송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귀국 행사에는 모습을 드러냈다. 공개적으로 윤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며 최소한 집권 세력의 분열 이미지는 줄이려 했다. 정치에서는 갈등이 없는 것보다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정청래 대표 논란 역시 비슷한 측면이 있다. 국민이 관심을 갖는 것은 공항 행사 자체가 아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정치적 거리다.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까운지,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를 공항이라는 무대에서 읽어내려는 것이다. 그래서 의전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정치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현재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미 차기 당권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정청래 대표의 연임 가능성, 김민석 총리의 당권 도전설, 그리고 다른 친명계 인사들의 움직임까지 겹치며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항 장면 하나가 확대 해석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이제 관심은 한 곳으로 모인다. 이 대통령이 유럽 순방을 마치고 귀국할 때 정 대표가 공항에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만약 정 대표가 참석해 대통령을 맞이한다면 환송식 논란은 상당 부분 해소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이번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정치권은 또다시 그 의미를 해석하려 할 것이다.
필자는 정 대표가 귀국 환영식에는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 역시 불필요한 갈등 이미지를 원하지 않을 것이고 대통령실도 집권 2년 차 초반부터 계파 갈등 프레임이 형성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적으로도 정상적인 당정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하지만 참석 여부와 관계없이 이번 사건은 중요한 메시지를 남겼다. 환송식 패싱 논란은 민주당 내부에 존재하는 미묘한 긴장감을 국민에게 보여줬다. 동시에 정치에서 상징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도 다시 확인시켜 줬다. 정치인은 말보다 장면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공항은 단순한 교통시설이 아니다. 대통령이 출국하고 귀국하는 공간인 동시에 권력의 흐름이 드러나는 정치 무대다. 누가 대통령 곁에 서는지, 누가 악수를 나누는지, 누가 카메라에 잡히는지가 모두 정치적 메시지가 된다. 그래서 공항 정치는 때로 국회보다 더 솔직하게 권력의 거리를 보여준다.
정치는 결국 사람의 관계다. 아무리 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라도 당과의 협력이 필요하고, 당 대표 역시 대통령과의 신뢰 없이 영향력을 확대하기 어렵다. 국민이 바라는 것도 갈등이 아니라 협력이다. 환송식에는 없었던 정 대표가 과연 귀국길에는 설 것인가.
그 답은 곧 드러나겠지만 국민이 진짜 기억할 것은 공항 장면 자체가 아니라 그 장면이 남긴 정치적 메시지일 것이다. 공항에서의 몇 미터 거리는 짧지만, 정치에서는 그 몇 미터가 권력의 현재를 보여주고 미래를 예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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