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환송식에 없었던 정청래, 귀국길엔 설까

공항 정치가 보여주는 권력의 거리

정치에는 누가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보다 누가 어떤 자리에 없었는지가 더 큰 의미를 가질 때가 있다. 특히 대통령 해외순방 환송식과 귀국 환영식은 단순한 의전 행사가 아니다.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현재 권력지형을 보여주는 상징적 무대다.

그래서 정치권은 대통령의 연설보다 공항에 누가 섰는지, 누가 빠졌는지에 더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공항은 단순한 출발과 도착의 공간이 아니라 권력의 온도를 보여주는 정치 무대이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권을 뜨겁게 달군 사건도 바로 그런 장면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유럽 순방길에 오르던 지난 9일, 성남공항 환송 행사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참석하지 못했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 해외순방 환송식에 불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더구나 정 대표는 그동안 이 대통령의 주요 일정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동행해 온 대표적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였다.

대통령실은 즉각 설명에 나섰다. 중동 전쟁 장기화와 선관위 투표용지 논란 등 국내외 상황을 고려해 환송 행사 참석 인원을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역시 같은 취지의 설명을 내놨다. 이날 강준현 수석대변인은 “청와대 의사에 따라 정 대표가 참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설명만 놓고 보면 특별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사안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설명보다 장면이 더 큰 힘을 갖는다. 정 대표가 빠진 자리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었다. 통상적으로 총리는 귀국 행사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에는 직접 공항에 나와 대통령을 배웅했다. 문제는 김 총리가 현재 차기 당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는 8월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에서 정 대표는 빠지고 김 총리는 참석한 장면은 정치권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여권 내부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일부는 이 대통령이 사실상 김 총리에게 힘을 실어준 것 아니냐는 관측을 제기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 내부 경쟁 구도가 예상보다 빨리 시작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물론 과도한 해석이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자체보다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흥미로운 점은 정청래 대표의 이후 행보다. 환송식 논란이 커진 뒤 정 대표는 공개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지원하는 메시지를 내놨다. 그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월드클래스의 세계적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이 외국에 나갈 때는 불안했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외국에 나갈 때마다 기대가 된다”는 말까지 했다.

이는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대통령과의 거리 두기보다 협력을 선택한 모습이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 대표의 최근 발언을 전당대회 일정과 연결해 해석하기도 한다. 민주당은 오는 24일 전당대회준비위원회 구성을 앞두고 있으며,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위해 대표직에서 물러날 경우 그 시점이 사실상 정치적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 대표가 굳이 이재명 대통령과 미리 각을 세우며 갈등을 부각시킬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정 대표는 이탈리아와의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 격상과 외교 성과를 높이 평가하며 이 대통령의 외교 역량을 치켜세웠다. 만약 당청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라면 나오기 어려운 발언들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친명계와 친청(친 정청래)계의 전면전 해석은 다소 과장된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관심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귀국 행사 참석 여부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도부도 “대통령 귀국 때 참석 여부는 충분히 소통해 결정할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정해진 것이 없다”고 밝혔다.

환송식에 이어 귀국 행사까지 미정이라는 사실 자체가 새로운 정치적 해석을 낳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번 논란을 보며 2024년 가을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갈등 장면을 떠올렸다. 당시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환송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재보궐선거 지원 일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미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한 일정 문제가 아니라 권력 갈등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국민의힘 내부에는 대통령실과 당 대표라는 두 개의 권력 중심이 존재했다. 김건희 여사 문제와 인사 문제, 총선 패배 책임론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결국 갈등은 점점 커졌고 보수 진영 전체에 큰 상처를 남겼다.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 관리에 실패했다는 점이었다.

당시 한동훈 대표는 환송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귀국 행사에는 모습을 드러냈다. 공개적으로 윤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며 최소한 집권 세력의 분열 이미지는 줄이려 했다. 정치에서는 갈등이 없는 것보다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정청래 대표 논란 역시 비슷한 측면이 있다. 국민이 관심을 갖는 것은 공항 행사 자체가 아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정치적 거리다.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까운지,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를 공항이라는 무대에서 읽어내려는 것이다. 그래서 의전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정치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현재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미 차기 당권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정청래 대표의 연임 가능성, 김민석 총리의 당권 도전설, 그리고 다른 친명계 인사들의 움직임까지 겹치며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항 장면 하나가 확대 해석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이제 관심은 한 곳으로 모인다. 이 대통령이 유럽 순방을 마치고 귀국할 때 정 대표가 공항에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만약 정 대표가 참석해 대통령을 맞이한다면 환송식 논란은 상당 부분 해소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이번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정치권은 또다시 그 의미를 해석하려 할 것이다.

필자는 정 대표가 귀국 환영식에는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 역시 불필요한 갈등 이미지를 원하지 않을 것이고 대통령실도 집권 2년 차 초반부터 계파 갈등 프레임이 형성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적으로도 정상적인 당정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하지만 참석 여부와 관계없이 이번 사건은 중요한 메시지를 남겼다. 환송식 패싱 논란은 민주당 내부에 존재하는 미묘한 긴장감을 국민에게 보여줬다. 동시에 정치에서 상징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도 다시 확인시켜 줬다. 정치인은 말보다 장면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공항은 단순한 교통시설이 아니다. 대통령이 출국하고 귀국하는 공간인 동시에 권력의 흐름이 드러나는 정치 무대다. 누가 대통령 곁에 서는지, 누가 악수를 나누는지, 누가 카메라에 잡히는지가 모두 정치적 메시지가 된다. 그래서 공항 정치는 때로 국회보다 더 솔직하게 권력의 거리를 보여준다.

정치는 결국 사람의 관계다. 아무리 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라도 당과의 협력이 필요하고, 당 대표 역시 대통령과의 신뢰 없이 영향력을 확대하기 어렵다. 국민이 바라는 것도 갈등이 아니라 협력이다. 환송식에는 없었던 정 대표가 과연 귀국길에는 설 것인가.

그 답은 곧 드러나겠지만 국민이 진짜 기억할 것은 공항 장면 자체가 아니라 그 장면이 남긴 정치적 메시지일 것이다. 공항에서의 몇 미터 거리는 짧지만, 정치에서는 그 몇 미터가 권력의 현재를 보여주고 미래를 예고하기도 한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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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기업 비자금’ 다단계에 털린 보험설계사들

[단독] ‘기업 비자금’ 다단계에 털린 보험설계사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넷플릭스 드라마 <레이디 두아>에서 사라킴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눈을 가리는 건 거짓이 아니에요. 믿음이죠”라고. 피해자들은 2년여 동안 수십억원을 뜯기면서도 차용증은 물론 사업계획서 같은 문서 한 장 보지 못했다. 그나마 명함에도 이름과 전화번호뿐이었다. 그들의 눈을 가린 건 대체 뭐였을까? 그들은 무엇을 믿었을까? 서울의 한 보험사 소회의실. 처음에 3명이던 피해자가 2시간 뒤 1명 더해져 총 4명이 됐다. 몇 명은 과거 학습지 회사에서 동료로 일했고, 몇 명은 현재 보험사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이들의 접점은 최모씨라는 한 여자였다. 이들 모두 최씨를 만났고 한 명도 빠짐없이 돈을 뜯겼다. 4명에게서만 20억원 가까운 돈이 흘러나갔다. 클래식한 사기 수법 최씨의 사기 행각은 광범위하면서도 폐쇄적이었다.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헬스케어 제품 판매 직원 등 각각의 피해자 그룹이 있었지만 서로 알지 못했다. 이들은 ‘뭔가 이상하다’ 느낄 때쯤에서야 또 다른 피해자의 존재를 발견했다. 피해자 수가 70~80명, 피해액이 300억원에 이른다는 것도 대략적인 수치일 뿐, 그 이상일 가능성도 있다. 한 피해자는 “본인이 피해자인지도 모르는 피해자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최씨의 정체는 모호했다. 최씨가 일부 피해자에게 건넨 명함에는 ‘기업/개인 세금 처리 대행’이라는 문구와 함께 이름, 전화번호만 적혀 있다. 한 피해자는 “최씨는 기업의 비자금을 관리하면서 세무 업무를 대행한다고 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계속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상대에게 ‘사장님’ ‘회장님’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자신을 세무 관련 전문직으로, 배우자는 외교관이라고 소개했다. 서울 한남동의 고급 아파트, 명품 옷, 외제 차 등은 최씨를 ‘돈 많고 유능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일종의 장치로 작용했다. 실제 최씨를 만났던 몇몇 피해자들은 ‘(집에) 가정부가 있었다’ ‘가정부에게 LA 갈비 세트를 줬다’ ‘(최씨와 그 가족이) 블랙카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고급 카페에서 비싼 디저트를 자연스럽게 주문했다’ 등의 말을 하기도 했다. 최씨의 배경에 흔들리던 피해자를 완전히 넘어가게 만드는 데는 건 주변 동료, 지인의 부추김이 결정적이었다. 몇 년 동안 한 직장에서 근무한 동료,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지인의 말에 피해자들은 최씨를 ‘믿을 만한 사람’으로 판단했다. 한 피해자는 “처음에는 내켜 하지 않던 사람이 있었는데 (중간에서) 질릴 정도로 권했다. 집까지 찾아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피해자가 대부분 ‘여초 직장’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일요시사>가 파악한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학습지 회사에서 함께 일하다가 보험사로 같이 넘어왔다. 이 과정에서 몇몇이 최씨와 얽히면서 지인을 데려오는 방식으로 판이 커졌다. 전형적인 ‘피라미드’ ‘불법 다단계’ 방식이다. 한 변호사는 “굉장히 클래식한 방식의 사기”라고 표현했다. 최씨의 배경과 언행, 동료와 지인의 꼬드김에 넘어간 피해자들은 그때부터 홀린 듯이 돈을 보내기 시작했다. 사기 수법은 간단했다. ‘(돈을) 일주일 쓰는 대신 이자를 1% 주겠다.’ 예를 들어 1억원을 일주일 동안 빌려주면 이자로 100만원을 주겠다는 것이다. 정상적이라면 피해자는 일주일 뒤 원금과 이자를 합해 1억100만원을 받게 된다. 한 피해자에 따르면 처음에는 아예 선이자를 떼고 빌려 갔다고 한다. 다시 말해 1억원이면 9900만원만 빌려주는 식으로, 원금을 돌려받으면 100만원을 번 셈이 된다. 한남동 아파트 ‘상류층’ 행세 동료, 지인 부추김에 거액 투자 처음 한두번은 이자가 들어왔다. 하지만 원금이 들어와야 할 시기가 늦어지기 시작하더니 이후 이자까지 끊겼다. 원금과 이자를 달라는 요구에 최씨는 이자 비율을 높이면서 추가로 돈을 넣으라고 권했다. ‘돈을 더 넣으면 이자로 10%를 주겠다’는 식이다. 피해자마다 이자 비율은 달랐지만 대략 5~10% 정도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카드 대금을 대신 결제해 주면 월 수수료로 0.8%를 주겠다는 말도 했다. 최씨의 말대로라면 카드로 100만원을 긁었을 때 수수료로 8000원이 발생한다. 당연히 카드 결제액이 커질수록 수수료도 많아진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카드를 내준 것도 모자라 몇몇은 카드를 새로 발급까지 받아 최씨에게 건넸다고 한다. 결말은 같았다. 카드 대금은 쌓여가고 수수료는 들어오지 않았다. 한 피해자는 “카드 대금이 계속 연체되고 한도 때문에 사용이 막히니까 리볼빙을 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리볼빙은 카드 대금의 일부만 결제하고 나머지는 다음 달로 미루는 서비스다. 당장 변제 부담은 덜하지만 잔액에 연이자가 15~19%가량 붙는다. 눈 깜짝할 새에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는 상품이다. 이자나 수수료는커녕 원금도 못 받는 상황이 계속되자 피해자들은 결국 최씨와 ‘중간 다리’ 역할을 한 사람들을 사기 혐의로 고소하기에 이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보험설계사 등 피해자 7명은 지난해 12월 최씨를 포함한 5명에 대해 특정경제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사기) 등 혐의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7명 외에도 피해자가 3명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피고소인 5명은 주범 최씨, 모집책 차모씨, 이모씨, 박모씨, 그 외 김모씨 등이다. 피해자 7명과 접점이 가장 적은 김씨를 제외하고 4명의 피고소인만 놓고 보면 역학 관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피해자들은 차씨와 이씨, 박씨 등이 최씨와 이전부터 아는 사이였다고 입을 모았다. 피해자 7명의 피해액은 26억8700만원에 달한다. 나머지 피해자 3명의 피해액까지 합치면 28억8000만원으로 불어난다. 이들은 계좌이체, 카드 결제 등의 방법으로 최씨 등에게 돈을 보냈다. 이 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까지 계산하면 피해액은 10억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 가운데서도 A씨의 피해액은 확인된 것만 약 17억원에 이른다. 피해자 7명의 전체 피해액(27억원) 중에 63%가 A씨의 몫인 셈이다. 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추가 이자 비용은 별도다. 이 돈까지 합치면 A씨의 피해액은 약 23억원까지 늘어난다. A씨는 차씨를 통해 최씨를 만났는데, 두 사람은 보험사에서 5년간 동료로 지냈다. 홀린 듯이 돈 보냈다 지난 7일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A씨는 늦게까지 야근하고 있었다. 그는 “죽도록 벌어야 빚을 갚을 수 있다”고 말하며 힘없이 웃었다. 2024년 초 ‘잠깐 바람이라도 쐬러 나오라’는 차씨의 부름에 나간 게 시작이었다. A씨는 인근의 카페에서 또 다른 피해자와 함께 최씨를 만났다. 또 다른 피해자는 차씨와 이전부터 알던 사이였다. A씨는 “처음 만난 최씨는 쉽게 믿기 어려웠지만 차씨는 5년 동안 같이 일하면서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 차씨가 나와 다른 피해자에게 ‘원금은 보장된다. 나도 2억을 벌었고 두 달 뒤에 추가로 1억을 번다’고 말하니 솔깃했다. 최씨의 신상에 대해서도 차씨가 신나서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차씨는 A씨에게 자신의 계좌를 보여주기도 했다. 카드 결제, 계좌 이체 등의 방식으로 최씨에게 돈이 흘러 들어가기 시작한 시점은 2024년 4월경부터다. A씨의 카드는 2024년 4월부터 8월, 지난해 2월에 집중적으로 사용됐다. 거래처는 정유사, 명품관 등이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자동차 기름값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큰돈이 주유 대금으로 결제됐다는 점이다. 2024년 4월, A씨의 카드가 처음 사용된 날짜에 ‘○○석유’라는 곳에서 1200만원이 결제됐다. 이후에도 1000만원 단위의 돈이 ‘○○상사’ ‘○○○ 에너지’ 등에서 사용됐다. 카드로 긁어놓고 이후에 현금으로 되돌려받는 ‘카드깡’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동시에 최씨는 명품관에서도 총 7700만원을 긁었다. 이렇게 결제된 카드 대금은 3억6000만원에 달한다. 카드 대금과 수수료를 주겠다는 최씨의 말은 ‘공수표’였다. A씨는 “카드를 빌려준 쪽에서 돈을 넣어달라고 오히려 빌어야 했다. 몇 번을 요구해야 한번 돈을 넣어줄까, 말까였다. 한도가 막히면 다른 카드를 달라고 요구하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1년여에 걸쳐 최씨로부터 입금된 돈은 2억원. 원금과 주기로 한 수수료를 계산하면 턱없는 돈이다. 결국 A씨는 카드 대금으로만 1억5000만원을 뜯겼다. ‘짧게 쓰고 줄게’라며 빌려 간 자금은 상상을 초월했다. 피해자들은 최씨가 이자 명목의 돈을 주지 못한 시기를 2024년경으로 기억했다. A씨 역시 2024년 4월에 처음 돈을 넣고 한 달 뒤부터 제대로 돈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최씨가 회사 세무조사 등을 이유로 돈이 묶였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사람도 죽었나 ‘돈만 들어오면 A씨부터 챙겨줄게’라는 말은 당시 상황에서 A씨가 매달린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손절’하기에는 이미 너무 큰돈을 넣은 상태였고 어떻게든 원금만이라도 돌려받아야겠다는 생각이 A씨를 지배했다. 그 대가는 가혹했다. ‘이번만 빌려주면’ ‘곧 돈이 들어온다’는 최씨의 말에 속아 A씨가 빌려준 돈은 15억5000만원에 이른다. 문제는 이 돈이 전부 A씨 돈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A씨는 “동생, 부모님, 지인, 심지어 고객에게까지 돈을 빌렸다”고 털어놨다. 이 중 3억원가량은 집을 담보로 제3금융권에서 빌린 돈으로 즉, 사채다. 급하게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제시한 높은 이자율은 A씨의 목을 옥죄고 있다. A씨는 지금도 그 이자를 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의 악랄한 수법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최씨는 A씨가 보험설계사인 점을 이용해 그의 고객으로 또 다른 피해자를 연결했다. 또 다른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대납해 주는 방식으로 돈을 갚겠다며 A씨를 이용한 것이다. A씨는 해당 고객이 최씨와 연결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에는 몰랐다고 주장했다. 월 400만원이 넘는 보험을 2개 가입한 고객은 10개월 정도 보험료를 낸 뒤 사라졌다. 보험설계사는 고객을 유치하면 전체 납입 기간에 대한 선수수료로 익월에 월급을 받는다. 예를 들어 월 100만원, 20년 납기 보험을 든다고 하면 총 보험료 2억4000만원에 대한 수수료가 보험설계사의 몫이다. 능력에 따라 보험설계사의 연봉이 천차만별로 차이 나는 이유다. 하지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단서 조항이 있다. 고객이 최소 25개월 이상 보험료를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험설계사가 받은 월급은 ‘환수’ 조처된다. 보험설계사의 능력은 신규 고객 유치가 아니라 유지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20년 가까이 단 한 건의 환수 조처도 없던 A씨의 경력은 최씨로 인해 무너졌다. A씨의 동료이면서 피해자인 이들 역시 최씨, 차씨 등이 연결해준 고객이 보험금을 납입하지 않으면서 발생한 환수 조처로 허덕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최씨에게 넘어간 1억5000만원은 결정타였다. 그전까지 약 10개월간 돈을 보내지 않고 빚 독촉만 했던 A씨는 최씨에게 “450억원이 들어왔다”는 말을 듣게 된다. A씨에 따르면 최씨는 수표 다발이 찍힌 사진을 카카오톡 메신저로 보냈다. 그러면서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는 과정에 1억5000만원의 수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다시 1억5000만원을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였다. 돈 못 빌려주면 카드라도 내놔 주범 최씨 다른 사건으로 재판 5000만원만 마련해 갔던 A씨는 그 자리에서 고객에게 1억원을 빌려 최씨에게 건넸다. A씨는 “무슨 영화를 찍는 줄 알았다. 사채업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나 ‘당신(A씨) 때문에 450억원을 출금 못하게 생겼다.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윽박질렀다. 최씨도 나서서 ‘빨리 어디에서라도 빌려봐’라고 계속 압박했다. 정말 내 책임이 될 것 같은 마음에…”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후 1억5000만원은 공중으로 사라졌다. ‘껍질까지 벗겨 먹었다’ ‘뼈까지 발라 먹었다’는 말이 나올 만큼 A씨는 최씨에게 말 그대로 ‘탈탈’ 털린 상태였다. A씨의 사정을 들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까지 속을 수 있냐고 의문을 표했다. 결국 A씨도 피해자들도 쉽게 돈을 벌고자 했던 욕심에 눈이 먼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실제 피고소인 가운데 1명인 김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나 역시 최씨에게 빌려준 돈이 상당하다. 그걸로 마음고생 많이 했는데 되짚어 보면 내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고소인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돈 욕심에 시작했다가 원하는 만큼 돈을 받지 못하니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황유준 법무법인 LKB평산 변호사는 “피해자들은 실제 존재하는 웅덩이에 발을 담근 게 아니다. 웅덩이 자체가 없었다고 말하는 게 맞다. 다시 말해 투자의 배경이 되는 회사나 사업체 같은 실체가 아예 없었다. 즉, 최씨는 처음부터 피해자들을 기망할 의도로 만났고 피해자들을 끌어들인 피고소인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씨는 A씨 등에게 받은 돈을 투자 목적이 아닌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자초지종을 듣기 위해 피고소인들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최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몇몇은 ‘(자신의)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따져 물을 뿐이었다. 유일하게 통화가 연결된 김씨는 “최씨는 고소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부자도 아니고 특출난 사람도 아니다. 걔도 사업 과정에서 돈 문제가 꼬여 지금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걔도 사기 피해자”라며 “가족하고도 사이가 틀어졌고 정말 죽지 못해 사는 것으로 안다. 나는 (최씨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다”고 울먹였다. 최씨 사건은 크게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이 있고 A씨 등의 고소 사건도 비슷한 유형이라 검찰 송치 가능성이 크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또 다른 보험사 지점, 헬스케어 제품 회사, 화장품 회사 등에도 피해자가 있다. 이들이 법적 대응에 나서면 최씨를 비롯한 중간 모집책들이 빠져나갈 구멍은 상당히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피해 금액이 크기에 이들은 형량이 높은 ‘특경법’에 걸리는 상황이다. 여기에 이 사건으로 2명이 자살했다는 흉흉한 소문도 나도는 상태다. 최씨와 피해자 사이에서 모집책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 여성과 큰돈을 투자했던 한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다. 피고소인들은 이 여성이 원래 우울증을 앓았고, 남성은 지병이 있었다고 반박했다. 추가 피해자 더 나올 듯 과거 사기 사건을 맡았던 한 변호사는 “피라미드, 다단계 사기 사건의 진짜 공포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는 점이다. 처음에 돈을 뜯겼던 피해자가 원금을 회복하기 위해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는 구조다. 사기 사건이 정말 사람을 죽이는 살인 사건에 비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피해자들은 이미 죽은 상태나 다름없다. 영혼이 다 빠져나갔을 것”이라며 “일전에 사기 사건 피해자들을 변호하면서 ‘소리 없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자리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고 생각한 적 있다. 반드시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