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의외의 선택 한성숙

  • 조유담 기자 ydcho@ilyosisa.co.kr
  • 등록 2026.06.15 13:25:22
  • 호수 15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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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주택’ 청문회 문턱 넘을까

[일요시사 취재1팀] 조유담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하며 약 20년 만의 여성 총리 탄생 가능성이 커졌다. 네이버 CEO 출신인 한 후보자는 AI·혁신 성장 분야의 실무형 리더로 평가받지만, 다주택 보유와 거액 자산 등은 인사청문회의 주요 검증 대상이 될 전망이다. 기업 경영과 장관 재직 경험을 바탕으로 성과 중심의 문제 해결 능력을 인정받으며 총리 후보로 낙점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 7일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인사청문회를 거쳐 총리직에 오르면 2006년 한명숙 전 총리 이후 약 20년 만의 여성 총리가 된다. 애초 국무총리 후보로는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과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됐다.

지명 이유는
실무형 리더

하지만 지명 가능성이 비교적 낮다는 관측이 많았던 한성숙 장관이 최종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되면서 정치권에서는 ‘의외의 선택’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유력 후보군이 아닌 한 장관이 지명된 것과 관련해, 한 여권 고위 관계자는 “정 장관은 본인이 고사했고, 강 실장의 경우 후임 비서실장이 마땅치 않은 게 문제였다”고 말했다.

강 비서실장은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해 왔으며 충남 아산을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3선을 지낸 중진 의원 출신 정치인이다. 대통령 전략 경제협력 특사로 활동하며 외교·경제 분야 경험을 쌓은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비서실장 취임 이후에는 차기 대선 주자로도 거론됐다.

5선 중진 의원인 정 장관은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로 40년 넘는 인연을 이어온 친명(친 이재명)계 핵심 인사로 평가받는다. 초대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에는 중대범죄 수사청과 공소청 신설 등을 포함한 검찰개혁 작업을 주도해 왔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한 후보자의 임기는 길어야 내년 3월 정도까지일 것”이며 “강 비서실장이 올해 말 비서실장직에서 물러나면 자연스럽게 총리를 이어받게 될 것”이라고 봤다. 정 장관은 오는 10월 예정된 공소청 출범과 검찰개혁 마무리를 자신의 손으로 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서 “(한 후보자는) 정보기술(IT) 기업 대표와 중기부 장관 경험을 바탕으로 시대적 과제인 AI(인공지능) 대전환을 차질 없이 완수하고 대한민국 모두의 성장을 이끌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이어 “장관으로서 속도와 성과, 현장을 강조하며 중소 벤처와 소상공인 등 모두의 성장을 위해 노력해 왔다”며 “그 결과 중소기업 수출 역대 최대치 달성, 창업 생태계 활성화 등 실질적 성과를 창출했다”고 전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지난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총리 지명과 관련해 “일할 사람으로, 그냥 일만 할 사람을 뽑았다”며 “우리 내각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있는 힘을 다해 전력 질주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기에는 한 장관이 적격이라는 판단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인선을 두고 집권 이 대통령이 2년 차 국정 운영의 무게중심을 민생 경제와 혁신 성장에 두겠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한 후보자가 지난 1년간 장관직을 수행하며 능력이 검증됐고, 꼼꼼한 일 처리와 안정감, 기획력을 높게 평가받았다고 설명했다.

첫 여성 기업인 출신 총리 후보자
디지털 경제·AI 전환 완수 적임자

민간 기업 대표이사(CEO) 출신이자 중기부 장관으로 실무 성과를 낸 경험이 있는 한성숙 후보자를 통해 이정부 2기 내각의 기조를 ‘실용’과 ‘성과’로 분명히 한 셈으로, 정치권에서는 무난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한다. 또 NHN 국내 담당 총괄 대표이사를 지낸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네이버 클라우드 AI 이노베이션 센터장을 지낸 하정우 전 AI 미래기획 수석비서관과 함께 정부의 ‘네이버 인사’로도 알려졌다.

한 후보자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취임 후에 중기부 정책 기조를 기존의 ‘보호 중심’에서 ‘성장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 주력했다. 대표 정책은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다. 국민 누구나 창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는 창업 인재 육성 프로젝트로 추진된 이 사업은 대대적 홍보와 국민적 관심으로 6만3000여명이 신청해 정부 공모 사업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또 행정 혁신을 통해 신청 서류를 50% 이상 감축하고 AI 기반 기술평가 체계를 도입했으며, 중소기업 통합 지원 플랫폼과 중소기업 성장 플랫폼 구축을 추진했다. 직급보다 실제 업무를 중시해 실무자와 직접 소통하고 사무관의 이메일에도 직접 답장하는 등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후보자는 국내 인터넷 산업의 성장과 함께한 IT 전문 경영인 출신이다. 1989년 숙명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IT 전문 매체인 <월간 PC 라인>의 기자로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이후 포털 사이트 엠파스의 창립 멤버로 합류해 검색사업본부장으로 사업을 총괄하며 경영 경험을 쌓았다.

엠파스는 타 사이트의 데이터를 함께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로, 2002년 포털 순위 4위와 접속량 9위를 기록하며 국내 포털 검색의 초석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엠파스 재직 당시, 포털이 제공하는 성인 콘텐츠가 음란물을 대량 유포하고 있음에 따른 대대적인 수사 결과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 유포 등)으로 벌금 1000만원과 몰수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당시 한 후보자는 검찰의 약식기소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지만, 1년 뒤 2006년 10월 정식 재판 청구를 취하하면서 벌금 1000만원을 확정받았다.

엠파스가 SK커뮤니케이션즈에 매각되며 네이트와 통합된 이후 한 후보자는 네이버의 전신인 NHN으로 자리를 옮긴 뒤 네이버의 서비스본부장과 총괄이사를 지냈다. 이후 2017년 대표이사(CEO)에 선임되며 2022년까지 5년간 매출 6조8000억원, 영업이익 1조3000억원을 달성하는 등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이끌었다.

검색 포털 중심 기업이었던 네이버를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시키고 간편결제 서비스인 네이버페이와 스마트 스토어를 통해 성장 기반을 마련해 모바일 중심 사업 구조 개편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서비스 폐지와 연예·스포츠 뉴스 댓글 서비스 폐지 등 포털의 사회적 책임 논란이 불거졌던 시기 플랫폼 신뢰도 회복에 나섰던 결단 또한 우수 경영 사례로 꼽힌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연속 경제지 <포천(Fortune)>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더 5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검증 대상
최고 부자

당시 한 후보자는 29억8400만원의 보수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2019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네이버는 급여 12억원 이외에 상여금 16억8000만원, 기타 근로소득 1억400만원 등을 총합해 그에게 보수를 지급한 것으로 공개됐다.

네이버는 한 후보자에게 상여금 16억8000만원을 지급한 것에 대해 “네이버 최고경영자(CEO)로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단계적 전환 등 회사의 주요 서비스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창작자 보상 강화를 통해 이용성 생산 콘텐츠(UGC)·동영상 서비스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으며, 글로벌 콘텐츠 및 커머스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한 후보자의 재산은 이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검증대에 오른 바 있다. 당시 약 440억원의 재산을 신고해 고액 자산 논란에 휩싸였다. 이 외에도 동생에 대한 편법 증여 의혹, 불법 증축에 따른 건축법 위반 의혹, 본인과 모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 등을 받았다.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가장 먼저 거론될 쟁점은 재산과 다주택 보유 문제가 될 것이 유력하다. 지난 3월 공직자 재산 신고 때에는 223억157만원의 재산을 신고해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며 내각 최고 부자로 알려졌다.

인사혁신처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토지 6억7418만원, 건물 97억4116만원, 예금 65억191만원, 증권 51억3617만원 등이다.

지난 8일 법원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한 후보자는 지난 5월6일 본인이 소유하고 있던 잠실 아시아선수촌아파트 185㎡(전용면적 151㎡) 한 채를 52억원에 매도했다. 해당 거래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세 유예 종료일이었던 지난달 9일을 사흘 앞두고 이뤄졌다. 그리고 같은 달 27일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쳤다.

2006년 10월25일 해당 아파트를 22억5000만원에 사들여 20년가량 보유하다가 지난 5월 52억원에 거래하며 29억5000만원의 차익을 남겼다. 아시아선수촌아파트의 전용면적 151㎡는 지난 3월 60억원, 지난 5월 56억원 등에 거래된 바 있어 한 후보자는 시세 대비 4억원 이상 낮은 가격에 매각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20억7463만원에 분양받았던 전용면적 54.66㎡, 강남구 역삼동 소재 오피스텔 또한 지난해 실거래가 대비 9억원 낮은 15억원으로 매각에 나섰다. ‘고가 매물’이 쟁점이 될 청문회를 대비해 손해를 감수하고 매각에 속도를 낸 것으로 해석된다.

선관위 사태
쇄신 카드?

매각을 진행한 잠실 아시아선수촌아파트와 역삼동 오피스텔 외에도 한 후보자는 “경기도 양평의 단독주택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단독주택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 2월 보유 주택 4채 가운데 실거주 중인 삼청동 주택을 제외하고 처분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식으로는 테슬라 2166주, 팔란티어 580주, 애플 894주, 엔비디아 466주,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네이버 주식 8934주는 전량 매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시기 네이버가 이 대통령이 구단주였던 성남FC에 광고비로 39억원을 집행한 것을 두고 한 후보자가 관여했는지가 여부가 또다시 쟁점이 될 가능성도 있다. 한 후보자는 이에 대해 지난해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무소속 한동훈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이 이재명을 위한 성남FC 뇌물공여자인 네이버의 대표 출신을 국무총리로 임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8일 한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두고 “국민 우롱하는 내로남불 인사의 결정판”이라고 직격했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전대미문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국민의 참정권이 침해되고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진 와중에, 오직 당권 장악에만 몰두하며 자리를 비운 김민석 총리의 후임으로 지명된 인물이 이 대통령이 그토록 악마화하고 비난해 왔던 다주택자”라고 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 협의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를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며 ‘용지를 복사하는 직원조차도 다주택자여선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며 “그런데 정작 국정을 총괄하는 총리 후보자에게는 그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이 스스로 세운 기준에 따르면 한성숙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는 부동산 정책에 관여하기는커녕 용지 복사도 맡겨선 안 되는 자격 미달 후보”라고 강조했다.

양도세 유예 종료 전 30억 차익
국힘 “내로남불 다주택자 인사”

최보윤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지금이 총리 교체를 전면에 내세울 때인지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가 사태의 철저한 규명과 수습은 뒤로한 채 인적 쇄신 카드로 국면을 전환하려는 것은 민심의 요구와 완전히 동떨어진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 대국민 사과, 무너진 선거 행정 시스템 신뢰 복원”이라며 “신임 총리 지명과 별개로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진상을 명명백백 밝히고 책임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한 후보자는 지난 8일 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에 첫 출근을 하면서 “정부 출범 2년 차를 맞이하는 전환적인 시기에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받은 것에 대해 굉장히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지명 소감을 전했다.

국무총리로 임명되면 “먼저 당면한 민생경제 비상 상황을 타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AI로 가속화되는 산업 재편과 글로벌 복합 위기 상황에서 AI 대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혁신을 가속화 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향후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이미 정부 부처가 전체적으로 하는 것이 서류 줄이기 관련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며 장관 재직 당시 중요하게 추진했던 행정 혁신을 언급했다. “데이터를 잘 연결하면 굳이 국민이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어 속도감 있게 처리하면 국민에게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느껴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문제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는 “관련한 것은 청문회에서 성실히 답변드리겠다”며 대답을 아꼈다. 한 후보자는 자신이 정치인 출신이 아닌 점에 대해 “저는 모든 총리가 시대에 맞춰 다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저에게 요구된 것이 무엇인지 집중해 제가 풀 수 있는 문제를 푸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문재인정부 때 총리는 이낙연·정세균·김부겸 전 총리, 윤석열정부 때는 한덕수 전 총리로 모두 정치계 혹은 고위 관료 출신으로 주목받는 인사들이었으며, 이정부 첫 총리인 김민석 총리도 마찬가지였다. 한 후보자가 이전 총리들과 비교해 정치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한 후보자는 이런 우려에 대해 소설과 아이돌 그룹 노래를 한 대목씩 인용하며 총리직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달라진 시대
과감한 도전

지명 소감 막바지에 “제가 두 가지를 읽고 싶어서 적어 왔다”며 “하나는 제가 좋아하는 김애란 소설가의 <안녕이라 그랬어>로, ‘살면서 어떤 긴장은 이겨내야만 하고, 어떤 연기는 꼭 끝까지 무사히 마친 뒤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걸, 그건 세상의 인정이나 사랑과 상관없는, 가식이나 예의와도 무관한, 말 그대로 실존의 영역임을 알았다’는 문장이 기억났다”고 말했다.

이어 “동생이 요즘 코르티스 팬이어서 노래를 듣고 있는데, ‘(‘REDRED’의 가사 중) 도가니 사리기 red, red, 신호등 바뀌었어 green, green, 넘어가 울타리 green, green’이라는 가사가 와닿았다”며 “몸 사리지 않고, 신호등이 바뀌고 시대가 바뀐 것에 맞춰서 과감하게 울타리 넘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ydch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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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태리 석유 재벌 행세’ 이상한 경찰 수사 내막

[단독]‘이태리 석유 재벌 행세’ 이상한 경찰 수사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광주에서 일어난 ‘장윤기 사건 증거인멸’ 논란으로 경찰 조직이 시험대에 올랐다. 피의자 가족이 나서서 증거를 없애고 이 과정에 주변 경찰이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이 사건으로 검찰청 해체 이후 수사 권력을 한 손에 쥘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 한 여고생이 일면식도 없던 남자에게 살해됐다. 여학생을 구하려던 남학생은 크게 다쳤다. 경찰이 범인을 검거했고 사건의 심각성에 따라 얼굴을 공개했다. 생떼 같은 10대 여고생의 황망한 죽음에 국민은 경악했다. 하지만 국민이 더 분노한 지점은 따로 있었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비위 의혹은 경찰 조직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조직 명운 달렸다 장윤기 사건에서 수사 기밀 유출, 증거인멸, 초동수사 부실 등의 의혹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장윤기의 혐의를 경찰이 나서서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경찰은 장윤기에게 강간·살인이 아닌 일반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이 과정에서 형량이 더 높은 강간·살인 혐의를 입증할 케이블 타이 등의 증거를 경찰이 없앴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검찰의 보완수사로 드러났다. 현재 정치권은 해체될 검찰에 보완수사권을 남겨둘지를 두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심지어 여권에서도 입장이 엇갈린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보완수사로 경찰의 부실 수사 문제가 확인되면서 권력을 한쪽에만 과도하게 몰아줘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부상하고 있다. 홍석기 국가수사본부장이 장윤기 사건에서 드러난 경찰 유착 의혹을 두고 “명운을 걸고 수사하겠다”고 말한 것은 조직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최대한 불식하겠다는 의도도 담겼다는 게 중론이다. 안 그래도 검찰청 해체로 수사 공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 이번 일로 그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찰 수사를 의심하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2023년 8월 공동대표였던 하모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한 R스타트업의 이모 대표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 대표는 하씨가 회사를 그만둔 이후 단독대표가 돼 R스타트업을 떠안았다(<일요시사> 1493호 ‘<단독>스타트업 대표 1000억대 역외탈세 의혹’). 앞서 두 사람이 공동대표일 무렵 R스타트업은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마스크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내에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있던 때였다. 하씨는 마스크 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했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필리핀의 법인을 이용해 수급하겠다고 했다. 미국의 한 회사와 판매 계약까지 체결하는 등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던 사업은 ‘마스크를 수급할 수 없게 됐다’는 하씨의 말에 흐지부지됐다. 이후 마스크 관련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고 하씨는 R스타트업을 떠났다. 2022년 3월경에는 서로 연락도 끊겼다. 하씨의 회사 이메일 계정도 이 시기에 정지 조처됐다. 회사와도, 사적으로도 이 대표와 하씨의 관계가 끝난 것이다. 상황은 2023년 6월 이 대표가 하씨의 이메일에서 석연찮은 점을 발견하며 반전됐다. 장윤기 사건으로 신뢰 바닥 새로운 자료 찾아도 시큰둥 이 대표는 하씨의 이메일을 통해 흐지부지된 줄 알았던 마스크 사업이 몰래 진행됐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하씨가 가족과 지인을 동원해 마스크를 수급하고 수출해 상당한 돈을 벌었다는 사실도 이 시기에 알게 됐다. 극심한 배신감을 느낀 이 대표는 하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인천 연수경찰서에 고소하기에 이른다. 연수경찰서는 하씨의 마스크 거래 규모를 1000억원대로 판단했고 수사를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계로 넘겼다. 이 대표에 따르면 당시 연수경찰서에서 추정한 하씨의 마스크 거래 규모는 1400억원에 달한다. 이 대표는 “하씨는 회사(R스타트업) 메일 계정을 이용해 마스크 거래를 진행했다. 그사이 회사에는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를 더욱 화나게 한 건 경찰의 태도였다. 처음 사건을 맡은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미진한 수사 태도로 이 대표의 불만을 샀다. 이 대표는 “하씨가 한국에 있지도 않은데 출국금지를 걸지를 않나, 경제범죄를 수사하면서 CFO가 뭐냐고 묻질 않나, 이렇게 많은 양의 자료를 제출했는데 고소인 조사를 20분밖에 하질 않나, 수사 자체가 엉망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2024년 2월 말 하씨를 불송치 처분했다. 하지만 인천지방검찰청(이하 인천지검)의 판단은 달랐다. 인천지검은 필리핀과의 국제 공조 수사를 통해 하씨와 가족의 해외 계좌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경찰의 불송치에 대해 보완수사를 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때가 2024년 3월이다. 경찰 수사에 답답함을 느낀 이 대표는 하씨와 관련된 자료를 이 잡듯이 뒤졌다고 한다. 특히 하씨의 회사 계정으로 오간 이메일을 꼼꼼히 살폈다. 그 결과 하씨가 카카오뱅크를 통해 6개월 동안 거래한 내역을 찾아냈다. 이 대표는 거래 내역에서 가족으로 추정되는 인물과 돈이 여러 차례 오간 것을 발견했다. 이 대표는 “2024년 5월에 거래 내역을 발견해 바로 경찰에 전달했다. 경찰이 나를 조사에 부른 건 (그해) 8월경이었는데 그때까지 거래 내역에 대한 어떤 수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보다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수사 권한도 없는 일반인이 이 정도로 자료를 찾아 건넸으면 좀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일반 국민은 경찰보다 계좌 접근 권한이 제한돼있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고소 이후 3년 지나 하씨와 그 가족의 필리핀 계좌를 보기 위한 국제 공조에도 시간이 지체됐다고 토로했다. 검찰에서 보완수사를 요구한 때가 2024년 3월29일이었는데 그해 7월에서야 공조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처음 고소인 조사를 받을 때부터 필리핀 법인 이야기를 숱하게 했다. 필리핀 법인에 보낸 은행 송금증, 해당 필리핀 법인이 운영하는 SNS 내용, 현지 언론 기사까지 제출했을 때는 나 몰라라 하다가 보완수사가 떨어지고 나서야 공조를 진행하면 기다리는 고소인은 답답해서 죽는다”고 말했다. 하씨의 지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써준 사실확인서도 문제로 지적했다. 이 대표는 “해당 인물이 사실확인서를 써준 이후에 하씨와 함께 사업한 의혹이 있다. 이런 사람이 써준 사실확인서를 믿을 수 있나. 경찰 조사에서 이 부분을 상세하게 진술했는데 ‘고소인은 ○○○의 사실확인서를 믿을 수 없음’ 이렇게 한 줄만 적었더라. 근거를 가지고 말했는데 경찰은 나를 ‘우기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 대표가 경찰에 제출한 자료로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에서 하씨를 불송치 처분할 때 근거가 됐던 내용을 다시 들여다볼 여지가 생겼다는 점이다. 당시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불송치 이유로 ▲(하씨가) 거래대금을 몰래 착복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고 ▲실제 거래가 성사된 사실이 없다면서 배임 혐의를 부인한 점 등을 들었다. 이때 ▲미국 A사와의 거래 과정에서 필리핀 법인을 사용하기로 합의한 점 ▲미국 A사 측의 거래 취소 요청 이메일 ▲계약 관련자의 사실확인서 등을 ‘혐의없음’의 근거로 제시했다. 즉, 경찰은 하씨가 마스크 사업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마스크 사업으로 수익을 본 것도 없고 그러니 배임 혐의도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 이 대표는 “카카오뱅크 거래 내역은 마스크 사업 과정에서 돈이 오간 흔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고, 사실확인서 역시 동업 관계에서 나왔기에 그 배경을 더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 자료만 제대로 봤어도 수사가 달라졌을 것이라 확신한다. 경찰의 결론 자체를 뒤집는 자료 아닌가”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특히 지난해 1월 이 대표는 하씨의 카카오뱅크 거래 내역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의 정체를 밝혀내기에 이른다. 하씨가 마스크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수급을 담당한 업체가 있는데, 그곳의 대표와 이름이 같았던 것이다. “확인해 달라” 호소에도… 또 이메일을 확인하면서 하씨가 2억4000만원에 이르는 신용 미수 거래를 한 내역도 찾아냈다.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했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신용 미수 거래금이 2억원이 넘는다는 건 담보 제공 현금이 1억5000만원 이상 있다는 의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마스크 사장 이름을 알아낸 것도 그렇다. 대단한 기술을 쓴 것도 아니고 거래 내역에 있는 사람 이름과 다른 단어를 인터넷에서 조합해 검색했더니 내용이 나왔다. 이건 내가 다 수사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적극적인 행보에도 경찰은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에서 2계로 수사팀을 한 차례 바꾼 것 빼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해 4월30일 ‘수사 중지’를 결정했다. 국제 공조 수사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게 근거였다. 이 대표는 하씨의 거주지 주소가 바뀐 것을 지적하면서 ‘이송’을 요청했지만 ‘보완수사 중에는 관할지 이송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후 수사는 1년 넘게 멈춘 상태다. 이 대표는 국세청에도 관련 내용을 제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국세청에 같은 자료를 냈는데 국세청은 조사를 진행한 뒤 하씨가 ‘탈세를 한 게 맞다’는 취지로 답했다. 하지만 경찰에 그 사실을 알리자 ‘국세청 관계자와 통화했는데 사건과 관련 없다고 말했다’고 하더라. 국세청에 확인했더니 ‘기밀이라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는 말이 돌아왔다. 왜 거짓말까지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그사이 하씨가 다른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9~10월경 가상자산 전문 매체 기사에서 하씨의 영어 이름을 발견했다. 하씨가 ‘키키캣 코인’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이게 사기라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하씨가 코인사업을 하면서 ‘이태리 석유 재벌의 아들’인 척했다는 글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불송치했다 보완수사 결정 “그건 1계에서 처분한 것” 이 대표의 주장대로라면 하씨는 업무상 배임 혐의로 수사를 받는 도중에 또 다른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뜻이 된다. 이 대표는 “(키키캣 코인의) 시가총액이 1억달러까지 올랐다가 현재 100만달러까지 떨어진 걸로 안다. 키키캣 코인을 구매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채팅방에 참여하고 있는데, 지금은 피해자 방이나 다름 없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중지된 수사를 재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하씨의 여동생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페이퍼컴퍼니를 운영한 사실도 발견했다. 그는 “하씨와 거래한 마스크 제조업체는 여러 곳인데 수출을 진행한 곳은 하씨 동생 명의의 페이퍼컴퍼니로 확인된다”며 “이 내용을 근거로 수사를 재개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경찰은) ‘규정 위반’이라고 윽박질렀다”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 규칙 제102조(수사 중지 사건 수사 재개)는 ‘경찰은 수사 중지된 사건의 피의자를 발견하는 등 수사 중지 사유가 해소된 때에는 …(중략)… 즉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여기서 경찰과 이 대표의 주장이 엇갈린다. 경찰은 수사 재개에 필요한 요건을 국제 공조 수사 결과라고 말했다. 반면 이 대표는 새로운 증거가 나왔는데 왜 수사를 재개하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필리핀과의 국제 공조 결과가 아직 회신되지 않았다는 건 하씨의 해외 (계좌) 자료가 필요한 일부 수사에 제약이 있다는 뜻일 뿐이다. 하씨의 마스크 사업 규모를 확인하는 정도에 필요한 자료”라며 “하씨의 여동생이 페이퍼컴퍼니를 갖고 있다는 의혹은 수사가 시작된 이후 3년여 동안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내용이다. 수사를 재개하고 관련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2계 담당자는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올 때까지 수사를 재개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하씨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언제쯤 올 것으로 예상되냐는 질문에도 “알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또 앞서 하씨를 불송치한 내용에 대해 거론했을 때는 “그 부분은 1계에서 처분한 것”이라며 “우리(2계)는 검찰의 보완수사 요청 이후 수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소인이 제출한 자료는 경찰 수사 규칙에 따라 사건 기록에 편철해 놨다”며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없어도 수사를 재개할 수 있는지 국수본(국가수사본부)에 질의해 둔 상태”라고 말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수사가 길어지는 사이 하씨가 또 다른 일을 벌이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범죄 혐의가 확인되지 않은 부분 아닌가. 피고소인이 현재 받는 업무상 배임 혐의 외의 별건 수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이 대표가 담당 수사관에게 언급한 하씨의 코인 사업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