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이 발로 그린 먹지도

K-브랜드 행동파 홍보팀장 떴다

[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전날 젠슨 황이 SK그룹 본사 빌딩에 온다고 전해 듣고 조금 일찍 회사에 왔죠. 로비에 기자들이 병풍처럼 서 있어서 카리나라도 오는가 싶을 정도였어요. 그러다 민머리 경호원이 로비 차 정차하는 데 딱 서고, 검은 차가 줄줄 왔어요. 그중 한 대 차 문이 열리면서 젠슨 황이 내렸어요. 평소에 자주 보던 SK 임원이랑은 다른 동네 아저씨 인상으로, 건물 안으로 휙 들어가 버렸어요.”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대한민국에 떴다. 입국 첫날인 지난 5일부터 마지막 날인 9일까지. 기자와 시민 가릴 것 없이 모두 황 CEO 동선을 따라 눈을 돌리고 입을 모았다. 앞선 인용구는, 한 SK그룹 계열사 임직원이 지난 8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SK 본사를 찾은 황 CEO를 직접 보기 위해 건물 로비 기둥에 숨어 있던 기억을 담은 것이다. 그는 한참을 대기하다 오전 8시25분쯤 그를 목격했다고 전했다.

AI 조율
삼소 회동

황 CEO를 향한 관심을 가진 이가 그뿐만은 아니었다. 아예 황 CEO의 행보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한 ‘젠슨 황의 발자취(junresearch.com/jensenHuangKRTracker)’라는 사이트까지 생겼으니 말 다 했다. 이달 12일 기준 87개국 사람들이 13만2275회 사이트 누적 방문 기록을 만들어냈다.

젠슨 황의 발자취는 같은 날 기준 4450만번 조사한 1382건 언론 보도를 수집 분석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황 CEO로부터 파생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가 국내에 머물면서 방문한 장소를 지도 위 핀으로 표시한다. 각 핀에 커서를 가져가면 해당 장소와 연관된 기업 주가 현황과 뉴스도 볼 수 있다.

이 사이트는 또 황 CEO 방한 동안 가장 긍정적 영향을 많이 받은 종목으로 추정되는 두산로보틱스를 비롯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SK텔레콤, 네이버 등 ‘젠슨 황 테마주’ 가격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해 보여준다.

웹페이지를 만든 이는 성균관대학교 4학년 학생으로 알려졌다. 여섯 시간 만에 AI 도구를 활용해 만들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가장 많이 다뤄진 주제는 AI였지만, 야구 시구와 삼겹살·치맥 같은 일정이 HBM·반도체보다 더 자주 등장했다”는 분석은 더 눈길을 끈다.

황 CEO의 발자취가 분석한 자료만 봐도, 이 시대 전 세계 최고 인기 경영자 젠슨 황 CEO가 움직일 때마다 자사와 타사 브랜드 홍보 효과가 실로 대단한 것을 알 수 있다. 젠슨 황 동선을 추적하며 사람들이 식당가로, 편의점으로, 주식시장으로 몰렸다.

황 CEO는 “우리 공급망을 긴밀하게 조율하기 위해서”라며 방한 목적을 설명했다. 그에 걸맞게 지난 5일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과 함께 모였다.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삼겹살집 ‘형님 저요’에서 삼겹살과 소주를 곁들인, 이른바 ‘삼소 회동’이다.

이날 참석자 중 가장 어린 구 회장(48)은 식사 내내 집게와 가위를 들고 삼겹살을 구우며 “집게는 막내가”라는 ‘국룰’을 보여주며 관심을 모았다. 그가 휴지와 물까지 챙기더라는 게 현장 후문. 그중 최 회장이 66세로 가장 형이고, 황 CEO는 63세, 이 의장은 59세다.

그 자리에서 구 회장이 비계와 살코기를 분리하며 가위질하는 모습도 함께 공개되며 ‘국룰 파괴’라는 반응도 나왔다. 비계와 살코기를 동시에 먹을 수 있도록 자르는 일반적인 방식과 달랐기 때문.

거래처 제품 팔아주는 ‘상도덕’ 행보
가죽 재킷 입고 몸소 보여주는 ‘먹방’

온라인상에서는 “주방에서 분할상장 시그널이 나온 것 아니냐” “형님들이 막내 가르쳤어야지” “도의적으로 해명해야 한다” 등의 다양한 댓글이 이어졌다. 황 CEO가 연출하는 평범한 모습에서 동질성을 느끼고, 하나의 ‘밈’처럼 소비하는 문화가 그의 방한 첫날부터 확산했다.

“기자시구나.” 지난 9일 식당 주인은, 황 CEO가 나흘 전 방문한 식당이 맞는지 질문하는 기자에게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이같이 물었다. 그만큼 기자들 역시 삼겹살집에 많이 방문했다는 뜻일 터.

“손님? 늘었다. (황 CEO가 방문한 뒤) 그다음 주말로 따지면 한 1.5배 정도 될까?” 황 CEO 방문 이후 반응을 묻자, 식당 주인이 답했다. “손님이 확 늘었다가 서서히 평소로 되돌아오고 있는 중”이라고도 했다. 그런 것치고는 점심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난 식당 개점 시간인 오후 3시부터 사람들이 절반 이상 테이블을 차지하며 지글지글 고기를 굽고 있었다.

홍대입구 디저트 카페도 수혜를 입었다. 황 CEO 일행은 삼겹살집 바로 옆 디저트 카페 ‘페어베리바나나’에서 ‘누텔라 붕어빵’과 ‘크림치즈 붕어빵’ ‘미숫가루 세트’ 등을 단체 주문했다.

해당 디저트 카페는 “돌아다니면서 진짜 야무지게 나눠주심”이라는 자막과 함께 홍대 거리에서 붕어빵을 일반 시민에게 나눠주는 황 CEO 모습을 자사 인스타그램 채널에 게재해 이달 12일 기준 1만4000회 이상 조회 수를 기록했다.

지난 9일 카페 아르바이트생에게 “황 CEO 방문 이후 찾는 이들이 늘었는지”를 묻자, “평일 이 시간에만 일하니 다른 시간대에는 손님이 얼마나 몰리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많이 늘었다”고 답했다. 평일 낮임에도 카페 앞으로 방문객이 줄을 서는 모습이었다.

황 CEO 등 4인 일행은 삼겹살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뒤 BBQ 홍대입구점으로 향했다. ‘2차’는 그가 좋아한다고 자주 이야기하곤 하는 ‘치맥 회동’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황금올리브치킨’과 ‘BBQ 레몬보이’ 등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장에는 친필 사인도 남겼다.

BBQ는 확실한 특수 효과를 누렸다. 해당 매장은 그 주말 동안 전주보다 20% 오른 매출을 냈다. “황 CEO가 다녀간 홍대입구점 말고도 인근 BBQ 매장들은 요 며칠 꽤 장사가 잘된 것으로 안다”며 한 매장 직원이 귀띔하기도 했다.

지난 7일 BBQ는 황 CEO와 함께 언론에 한 번 더 노출되는 호재를 누렸다. 황 CEO는 그날 서울 잠실야구장 두산베어스 프로야구 홈경기 시구자로 나섰다. 마운드에 오르기 전부터 “치맥보다 좋은 게 없다”고 말하며 팬심을 자극했다.

‘황 픽’
고공 행진

엔비디아코리아는 잠실야구장 인근 BBQ 매장에서 ‘크런치 순살크래커’ 113박스를 단체 주문했다고 한다. 황 CEO와 엔비디아코리아 직원·가족이 경기 관람 중 함께 먹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BBQ는 물 들어올 때 열심히 노 저었다. 지난해 깐부치킨이 황 CEO가 다녀간 이후 ‘젠슨 황 세트’를 선보인 것과 마찬가지. BBQ 역시 그가 주문한 메뉴를 묶어 앱 전용 세트를 만들었다. BBQ 전용 앱에서 황 CEO가 맛봤다는 ‘AI 황올 세트’와 ‘AI 시구 세트’를 주문할 수 있다.

황 CEO를 직접 눈으로 보려는 인파가 몰려 인근 편의점도 특수 효과를 누렸다. GS25에 따르면 홍대 인근 GS25 점포 다섯 곳이 기록한 당일 매출은 전주 대비 62% 증가했다고 한다. 기능성 음료(77%), 주먹밥(43%)과 김밥(51%) 매출 역시 늘었다.

황 CEO가 꼽는 ‘최애 음료’인 ‘바나나맛 우유’도 특수를 탔다. 같은 날 전국 GS25에서 바나나맛 우유 매출은 전년 같은 날과 비교해 12% 증가했다고. 황 CEO가 취재진과 시민에게 선물하던 팔도 ‘비락식혜’ ‘오리온 초코파이’도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됐다.

SK하이닉스와 세븐일레븐이 협업한 ‘세븐셀렉트 허니바나나맛 HBM칩(이하 HBM칩)’을 찾는 이들도 급증했다. 황 CEO가 총수들에게 선물하는 꾸러미에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지며 지난 6∼7일 매출은 일주일 전 같은 날 대비 약 8배(704%) 증가했다.

SK하이닉스는 세븐일레븐과 협업해 AI용 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HBM, High Bandwidth Memory) 약자를 제품명에 사용하면서 허니 바나나(Honey, Banana) 맛(소리 나는 대로 영어로 적으면 Mat), 칩(Chips, 과자 형태와 반도체 칩을 동시에 의미)으로 출시해 자사 브랜드를 홍보 중이었다.

여기에 황 CEO가 파트너사 제품을 구매하는 ‘상도덕’이 더해진 효과를 얻은 것. SK하이닉스는 영리한 마케팅에 더해 이번 홍보 효과까지 톡톡히 누렸다.

세븐일레븐 역시 자사 SNS 채널에서 ‘HBM칩 풀매수 타이밍’ ‘오늘 밤 가장 핫한 그 과자’ 등 카피를 활용해 제품 홍보에 열을 올렸다.

황 CEO는 지난 6일 오후 7시10분쯤 아내 로리 황, 장녀인 매디슨 황 엔비디아 옴니버스·로보틱스 제품 마케팅 수석 이사 등 가족 7인과 서울 종로구 체부동에 있는 유명 삼계탕 전문점 ‘토속촌’을 방문했다. 과거 이재명 대통령이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 식사했다고 전해진다.

황 CEO 일행은 삼계탕과 통닭, 파전 등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애주가로도 잘 알려진 황 CEO는 인삼주를 별도 요청하기도 했다고. 황 CEO는 “너무 맛있다”며 거듭 얘기하며 식사했다는 후문이다.

철저하게
계산한 동선

한옥 스타일 식당 분위기에 감탄한 듯, 황 CEO는 “식당이 정말 아름답고 멋지다”는 말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그는 식사 후 직접 비용을 결제하고 직원들에게 팁까지 챙겨주며 “다음에 한국에 오면 또 방문하고 싶다”는 얘기도 했다.

황 CEO가 이번 방한 중 보여준 동선은 철저히 계산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재계 회장들과 회동하면서는 ‘깐부(친구)’를 내세웠고, 이번에는 ‘형님(삼겹살집)’을 선택함으로써 전략적 파트너 제휴보다 인맥과 친분을 강조했다.

입국 날 황 CEO는 첫 일정은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에 있는 T1 베이스캠프에서 ‘페이커’ 이상혁과 선수단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가 PC방에 간 일정도 상징적이다. 엔비디아가 AI 기업으로 변모하기 전 GPU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게임 산업이 자리하고 있다.

황 CEO가 지난해 방한해 “한국인들이 e스포츠를 만들었다”며, “PC 게임과 PC방, e스포츠가 없었다면 지금의 엔비디아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 것과 결을 같이한다. 우리와 과거를 공유한다는 메시지다.

식사 메뉴도 대부분 우리나라 서민 정서와 맞닿는 음식 위주로 정했다. 삼겹살과 치킨, 삼계탕과 붕어빵, 바나나우유와 식혜 등 평범한 음식은 전 세계 시가 총액 1위 기업 엔비디아를 이끄는 수장이라는 무거운 타이틀을 친근한 이미지로 감춰버렸다.

CEO에게서 느끼는 호감을 자연스럽게 기업으로 전이하는 후광 효과를 그는 알고 있는 듯하다.

이번 방한에서 보여준 파트너사 제품 등을 홍보하는 ‘상도덕’ 행보 역시 빛이 났다. 앞서 얘기한 SK하이닉스 HBM칩은 그나마 소소한 편. 황 CEO는 엔비디아 AI 생태계 핵심 파트너로 손꼽히는 두산그룹 홍보에도 열을 올렸다.

지난 7일에는 두산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시구했으며, 같은 유니폼을 입은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과 경기장에서 포옹하며 친분을 과시했다. 이후에는 홈구장에서 열린 경기를 관람하며 치맥 먹방을 보여줬다.

“치맥보다 좋은 것은 없다”
“앞으로 K-젠슨으로 불러줘”

지난 5일 삼겹살 회동 당시 이해진 네이버 의장은 자사 오프라인 단말기에 곧장 얼굴을 들이밀며 결제를 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켜보던 황 CEO가 놀란 표정으로 ‘와!’라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 의장은 “당신(엔비디아)의 GPU로 구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CEO가 이해진 의장을 가리키며 “그가 다 쏜다!”라고 외쳤고, 매장 안 사람들이 “네이버”를 연호했다고 한다. 그는 네이버페이 안면 인식 결제 서비스 ‘페이스사인(Facesign)’을 황 CEO의 인기에 힘입어 자연스럽게 홍보했다. 페이스사인은 엔비디아 GPU 기반 AI 학습과 얼굴 패턴 매칭 기술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가 엔비디아 CEO 앞에서 자사 AI 기반 결제 기술을 자연스럽게 시연한 셈이다.

황 CEO가 먹고 마실 때마다 해당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거대 기업을 이끌면서도 소탈한 취향을 보여주고, 그를 보기 위해 모인 시민에게 아낌없이 먹을 것을 선물한다.

지난 10일 방영된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시종일관 쉬운 영어를 구사하고, MC 유재석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 섬세한 배려심을 보여줬다. “오랜 시간 한국을 사랑해 왔다, 한국과는 25년 전부터 인연이 있었다”라는 첫인사부터 따듯했다.

“실패를 경험하고도 일어서는 회복 탄력성이 중요하다” “타인이 잘되는 것이 꿈”이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됐다. 그가 이번 방한에서 보여준, 파트너사를 향한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짐작해 봄 직하다.

한편 황 CEO는 방한 기간 국내 재계 인사들과 AI 전략 제휴 파트너십 등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그는 방한 첫날 “네 가지 선물을 가져왔다”며 “아주 큰 신규 사업들이고, 한국은 정말, 정말 바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네 가지 선물은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 ▲베라 중앙처리장치(CPU) ▲엔비디아의 첫 AI 노트북 라인업 ‘RTX 스파크’ ▲차세대 휴머노이드 로봇과 피지컬 AI를 위해 설계된 AI 에지 슈퍼컴퓨터 ‘젯슨 토르’ 등이다. 한국에 AI 연구개발 거점을 설립할 계획도 있다고 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증시에 ‘젠슨 황 효과’가 반영되기 시작한 지난 1일부터 9일까지, 6거래일간 네이버는 9.83%, 두산로보틱스는 9.48% 각각 상승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가 4.47% 하락했으니 이례적이라 할 만하다. 황 CEO가 국내 로봇·AI 생태계 확대 의지를 밝히면서 두산로보틱스와 네이버가 수혜주로 떠올랐다.

엔비디아
풀매수 고?

반면 LG전자, 현대차, 엔씨소프트 등은 코스피 하락률을 넘어서는 낙폭을 기록했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젠슨 황이 제시한 ‘네 가지 선물’ 등이 실제 사업 협력으로 이어지면 관련 기업들의 수혜가 본격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황 CEO는 떠났고, 그와 얼굴을 맞댔던 국내 AI 관련 기업 수장들이 바빠졌다. 그가 내놓은 숙제가 한참 쌓여 있기 때문이다. 이 숙제가 어떻게 풀리느냐가 향후 코스피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측된다.

<younm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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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이재명 그늘’ 득실

김민석 ‘이재명 그늘’ 득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김민석 전 국무총리의 출마 선언을 시작으로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막이 올랐다. 김 전 총리는 자신이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운영 동반자임을 거듭 강조하며 당심에 호소하고 있다. 김 전 총리에게 쥐어진 이재명이라는 칼날은 분명한 자산이다. 그러나 전당대회에서 독으로 작용할지, 득으로 작용할지 조금씩 해석이 엇갈리는 모양새다. 지난 6일 김민석 국무총리가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 정치적 스승인 김대중 대통령의 말씀을 되새긴다. 정치인은 외부를 향한 투쟁만큼 내부를 향한 투쟁에도 철저해야 한다”며 “이재명정부 국정 성공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을 위해 민주당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다”고 밝혔다. 더 끈끈한 당청 관계 이어 “이정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며 “절대 과제인 이정부의 성공을 위한 최우선 과제는 먼저 집권당인 민주당의 혁신을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김 전 총리는 정청래 지도부를 저격하는 듯한 발언도 이어갔다. 그는 “민주당은 지난 1년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국정 지지를 정당 지지와 선거 결과로 연결하지 못했다”며 “지난 1년, 자기 정치의 폐해가 당과 당정 협력을 혼선에 빠뜨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합당 추진, 검찰개혁 논의, 공천과 선거 전략에서 나타난 숙의 부족, 토론 부족, 절차 미비, 일관성 부족은 많은 문제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과 검찰개혁 엇박자, 6·3 지방선거 전략 등 정청래 전 대표의 과오를 꼬집은 것으로 해석된다. 김 전 총리는 “여당다운 여당을 만들어내겠다”고도 강조했다. 특히 “지난 지도부의 노력을 동지적 관점에서 치하한다”면서도 “결과 책임은 정치와 정당의 기본 윤리”라고 강조했다. 이어 “절박하고 엄격하지 않으면 우리는 총선 패배의 늪으로 빠져들 수 있다”며 “절박한 긴장감과 매서운 엄격함으로 당 대표 교체의 결단을 내려주실 것을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당의 지지율을 반등시키고 올바른 노선하에 당과 당원과 지지층을 통합하고 총선 승리로 달려가겠다”며 “1인1표 당원주권 행사에 모든 당원이 한 분도 빠짐없이 참여해 압도적 결의로 당의 리더십을 교체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 밖에도 김 전 총리는 자신이 이정부 초대 총리로서 이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온 점을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캠프 시절부터 지금까지 정부의 국정 운영과 실무를 뒷받침해 온 경력을 필살기로 ‘검증된 파트너십’ 전략을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여당의 역할’ 재정의 검증된 파트너십 호소 그는 최근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는 ‘3대 메가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제1국가 과제”라며 적극 힘을 실었다. 국회 복귀 첫 지역 일정으로 메가 프로젝트가 실행되는 주요 지역인 충북 청주를 선택하며 이 대통령과 합을 맞추기도 했다. 출마 선언 이후 김 전 총리는 연달아 정책 토론회를 열면서 전당대회를 겨냥한 의제 경쟁을 시작했다. 지난 1년 동안 검찰개혁이나 당원 주권 강화에 쏠려 있던 민주당의 흐름을 여당다움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김 전 총리는 지난 7일 ‘균형발전을 넘어 지방주도성장으로’ 토론회에 참석한 데 이어 이어 언론, 지역주도 성장, 금융 분야를 민주당이 추진해야 할 4가지의 개혁 과제로 꼽으며 연속 토론 기획에 나섰다. 국민 삶과 직결되는 주제를 전당대회에서 다루기 위한 ‘어젠다 세팅’이라는 게 김 전 총리의 설명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강성 당원에게 어필하기 위한 선명성 경쟁도 과열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정 전 대표가 여권 강성 지지층의 최우선 의제인 검찰개혁과 관련해 “보완수사권의 티끌마저 없애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 만큼 김 전 총리의 선명성이 상대적으로 흐려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대통령과 손발을 맞췄다’는 점 역시 ‘이정부의 대리인’ ‘하수인’ 등 수동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완수사권 폐지를 전당대회의 필살기로 점찍은 정 전 대표는 보완수사권 논의를 “제헌절 전에 끝내자”며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9일 자신의 SNS에 강성 개혁파로 분류되는 김용민 의원과 함께 찍은 사진과 ‘검찰개혁의 동지 김용민 의원과 함께 뜁니다’라는 게시글을 통해 “김용민이 정청래고, 정청래가 김용민”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정 전 대표는 “김 의원께서 검찰개혁이 더 절실하고 필요한 일이라며 전당대회 출마를 하지 않고 대신 제게 본인이 구상한 개혁 지도를 완수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며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 중대범죄수사청 출범의 혁혁한 공로자인 김 의원의 뜻을 잘 받들겠다”고 말했다. 부족한 선명성? 그러면서 “김 의원의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비롯한 사회대개혁 지도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김용민과 정청래가 손잡고 함께 달리겠다. 김용민과 정청래의 의기투합! 응원해 주고 함께 뛰어달라”고 당부했다. 최근에는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 대원칙은 정해지지 않았나”라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에 대해선 더 이상 당에서 논란이 없었으면 좋겠다”고도 밝혔다. 정 전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토론회를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당내에서 보완수사권 폐지 관련 이견이 노출되면 민주당이 정한 수사 기소 분리의 대원칙 등에 대해 의심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누가 당원주권정당 1인1표에 앞장섰는가? 반대했는가? 누가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에 앞장섰는가? 반대했는가?”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이 대표 시절 주도했던 1인1표제와 검찰개혁을 필두로 선명성을 부각했다. 김 전 총리 역시 보완수사권 폐지에 의견을 같이 했다. 다만 보완수사권은 폐지하는 방향으로 잡되 혼란과 공백을 줄이기 위한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주된 입장이다.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대화와 토론에 중점을 맞춰 여러 이야기를 두루 듣겠다는 것이다. 정 전 대표의 일 처리 스타일과 선을 그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총리는 총리 역임 시절에 “보완수사권 폐지가 현시점에서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라며 “폐지안을 기본으로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 입장을 (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지침으로 여러 번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이 대통령이 여러 차례 ‘일부 존치’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을 거론하며 “대통령 뜻까지 포함해서 지금까지 논의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진짜 ‘여당’ 정 심판론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뒤에는 “보완수사권 폐지 원칙은 지키되, 경찰 수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외부적 통제와 엄밀한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장윤기 사건, 국민 여러분과 함께 분노한다”며 “개혁은 검찰과 경찰 등 권력기관이 국민 앞에 더 투명하게 서게 하는 것이다. 민주적 통제와 투명한 검증의 원칙은 검과 경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보완수사권 폐지가 살인범 편들기라는 <조선일보>식 프레임은 조잡하다”며 “자극적 언어에도 금도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이 같은 친정부 이미지가 오히려 김 전 총리의 강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핵심은 안정성이다. 집권 2년 차에 들어선 이정부인 만큼 이를 뒷받침할 ‘관리형 여당 대표’ 이미지가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김 전 총리가 총리직을 사임할 때도 이 대통령은 “우리 정부가 만들어낸 여러 성과가 있는데 김민석 국무총리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며 그를 치켜세웠다. 이어 “제일 높이 평가하고 싶은 건 자살자 감소”라며 “올 초 통계부터 보면 월간 수백명 단위로 자살자가 줄었다. 수백명의 목숨을 구한 건 매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의 “여당 다운 여당”과 “현재 당내에서 제가 총선, 대선, 지방선거를 다 직접 총괄 지휘해 보고 승리까지 이끌어 본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는 제가 갖고 있는 나름의 쓸모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것 역시 궤를 같이 한다. 2년 후 총선이라는 빅 이벤트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김 전 총리의 안정형 기조가 당원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이대로라면 총선 필패’ ‘여당으로서의 책임’ 등을 외치고 있다. 지난 1년 민주당의 키를 쥔 선장에 대한 일종의 심판론”이라며 “2028년 총선을 제대로 치르기 위해서는 집권여당의 승리가 최우선이어야 하고, 그런 점에서 정 전 대표의 ‘자기 정치’라는 꼬리표는 뼈아플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28년 총선 이대로 괜찮을까? 김 “폭탄 선언식으로 안 돼” 모든 선거의 승패는 결국 중도층을 얼마나 확보하는지에 달려 있다. 현재 민주당의 강경한 기조는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외연 확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이 나오는 만큼 김 전 총리는 민주당의 차기 지도부 과제로 ‘실용 통합’과 ‘외연 확장’을 제시했다. 김 전 총리는 유튜브 방송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며 민주 진영의 통합과 연대, 중도로의 외연 확장 기조를 밝혔다. 그는 “민주당은 일시적인 갈라짐이 있을 경우 통합했고, 지금 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과는 연대하지 않나. 그리고 국민회의로 집권한 뒤 새천년민주당을 만들어 중도·보수 인사를 대폭 영입했는데 이게 확장”이라며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다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혁신당이 통합 대상이냐’는 질문에는 “그건 혁신당이 결정해야 한다”며 “거대 책임 정당인 민주당으로 성격이 같은 세력들이 결합할 때는 다 흡수 합당한다”고 했다. 정 전 대표가 시도한 혁신당과의 합당 추진 방식에 대해서는 “폭탄 선언식으로 해서 일을 그르쳤다”며 “과욕이었다. (그래서) 일이 꼬였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언주 의원 역시 “여당다운 책임을 다할 지도부가 필요하다”며 “안 그러면 다음 총선에서 어림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이) 집권여당이 된 지 벌써 1년이다. 아직도 야당인 줄 알면 되겠나”라며 “이번 전대(전당대회)에서 선출될 신임 지도부는 국민에게도, 대통령과 정부에도, 국회 야당에도, 정말 여당다운 책임을 다할 지도부가 필요하다. 그래야 다음 총선을 해볼 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영길 의원도 당 대표 출마 선언 당시 “국민께서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옐로카드를 보내셨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 다음 총선은 레드카드”라고 경고했다. 송 의원은 “다음 총선에서 지면 정권 재창출은 없다. 정권 재창출이 없으면 이정부의 성공도 장담할 수 없다”며 “(전당대회는) 누가 이정부와 협력해 대체 불가 대한민국을 만들 대표인가를 선택하는 선거”라고 말했다. 김 전 총리가 “선명성만으로는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며 현실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개혁을 꿈꿔온 당원들의 숙원을 빠르게 해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근 친청(친 정청래)계를 중심으로 “민주주의의 체제를 더 굳건히 하는 중단 없는 개혁이 시대정신”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지지층 결집에 나선 것 역시 이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장담 못해” 안갯속 당심 결국 ‘국정 안정 파트너’와 ‘당원 주권·개혁 선명성’ 중 어느 프레임이 당원 표심을 더 움직이는지가 이번 전당대회 승패를 가를 것으로 관측된다. 당내 뿌리 깊게 박힌 ‘정통성’과 ‘개혁 선명성’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는 것이 김 전 총리의 남은 과제로 여겨지는 이유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겸공’ 찾은 김민석, 김어준도 우군으로? 김민석 전 국무총리가 유튜버 김어준씨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해명했다. 김씨는 정청래 전 당 대표와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던 만큼 그의 라이벌인 김 전 총리에게 해명의 명분을 줬다는 점에서 당의 이목이 쏠린다. 지난 6일 김 전 총리는 방송을 통해 자신이 계엄 해제 표결에 불참한 것에 대해선 “1초 늦었다”고 말했다. 김씨도 “감기약 먹고 일부러 안 온 것 아니냐는 말도 있다”면서도 “소모적으로 계속할 일은 아니기에 이것부터 털고 가자.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영상이 있다”며 계엄 당일 김 전 총리가 국회 담을 넘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과 당시 현장에 있던 시민 인터뷰를 공개했다. 앞서 친청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김 전 총리를 향해 ‘감기약 성분 의혹’을 제기한 것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이 같은 김씨의 태도를 두고 여권 일각에서는 그가 정 전 대표와 결별 수순을 밟고 있거나, 한쪽으로 쏠린 기조에 부담감을 느꼈다는 등 다양한 해석을 제기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