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코스피 7730의 자랑, 코스닥 951의 숙제

대한민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

최근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코스피에 집중돼있다. 코스피가 몇 포인트를 돌파했는지, 시가총액이 얼마나 늘었는지, 외국인 자금이 얼마나 들어왔는지가 연일 뉴스의 중심을 차지한다. 정부의 경제 성과도 대부분 코스피를 기준으로 평가된다.

마치 코스피가 대한민국 경제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이야기된다. 그러나 대한민국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코스피만 봐서는 부족하다.

코스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주식시장이다. 정식 명칭은 Korea Composite Stock Price Index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같은 대기업들이 상장돼있다. 그래서 코스피는 대한민국 경제의 현재 체력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한국 경제를 평가할 때 가장 먼저 코스피를 본다. 코스피가 오르면 한국 경제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코스닥은 Korea Securities Dealers Automated Quotations의 약자다. 미국의 나스닥을 모델로 만들어진 시장으로 기술기업과 벤처기업, 성장기업이 주로 상장돼 있다. 코스피가 대한민국 경제의 현재를 보여준다면 코스닥은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를 보여준다.

지금은 규모가 작지만 앞으로 산업을 이끌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이 모여 있는 시장이다. 그래서 코스닥은 미래 성장지수라는 의미를 갖는다.

많은 사람들은 코스피와 코스닥을 단순히 규모 차이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시장의 역할에 있다. 코스피는 이미 성장한 기업들의 무대이고 코스닥은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의 무대다. 코스피가 열매라면 코스닥은 씨앗이다. 열매도 중요하지만 씨앗이 없으면 미래의 열매도 존재할 수 없다.

경제를 숲에 비유하면 코스피는 거대한 나무다. 멀리서도 잘 보이고 숲의 중심을 이루는 존재다. 그러나 건강한 숲은 큰 나무 몇 그루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수많은 작은 나무와 새싹이 함께 자라야 숲 전체가 살아난다. 코스닥은 바로 그런 경제 생태계를 보여주는 시장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은 코스닥의 건강성과도 직결된다.

대한민국 기업의 99% 이상은 중소기업이다. 일자리의 대부분도 중소기업에서 나온다. 혁신적인 기술과 새로운 아이디어 역시 대부분 작은 기업에서 시작된다. 오늘의 삼성전자도 과거에는 중소기업이었고 네이버와 카카오도 벤처기업 시절이 있었다. 미래의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지금 코스닥 어디에선가 성장하고 있을 수도 있다.

특히 최근 코스피의 상승세는 매우 이례적이다. 올해 들어 AI 반도체 열풍과 외국인 자금 유입에 힘입어 코스피는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며 연일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코스피 3000 돌파가 화제였지만 이제는 코스피 1만 시대를 전망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증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상승장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도 나온다.

분명 반가운 일이며 한국 경제의 저력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같은 기간 코스닥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코스피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동안 코스닥은 상대적으로 완만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시장의 관심이다. 뉴스와 방송에서는 연일 코스피 최고치 경신을 보도하지만 코스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혁신기업들이 성장하고 있는지는 상대적으로 잘 다루지 않는다.

현재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관심이 미래 성장기업보다 대기업 중심 시장에 쏠려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은 최근 코스피 상승의 상당 부분이 소수 초대형 기업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들이 상승장을 이끌면서 지수 전체를 끌어올리고 있다. 다시 말해 코스피가 오른다고 해서 모든 산업과 모든 기업이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기업 중심의 상승과 경제 전체의 건강성은 반드시 같은 의미가 아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체력을 제대로 보려면 코스피뿐 아니라 코스닥도 함께 봐야 한다.

AI 시대가 되면서 산업의 중심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20년 전 세계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은 대부분 석유회사와 제조기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아마존 같은 기술기업이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모두 시장의 자금을 공급받으며 성장했다는 점이다.

결국 미래 산업 시대에는 현재의 대기업보다 미래의 성장기업을 얼마나 많이 키우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게 된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이런 변화를 준비해 왔다. 미국에는 전통적인 대기업 중심 시장인 뉴욕증권거래소가 있고 성장기업 중심 시장인 나스닥이 있다. 미국 경제의 현재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뉴욕증권거래소에 있다면 미래를 대표하는 기업들은 나스닥에서 성장해 왔다. 미국은 두 시장을 함께 육성하며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관리해 왔다. 이것이 미국 자본시장의 경쟁력이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와 아마존, 메타와 테슬라도 모두 성장기업 시절 나스닥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세계 시가총액 상위 기업이 됐지만 출발은 혁신기업이었다. 미국 언론은 다우지수와 S&P500뿐 아니라 나스닥지수도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미래 산업의 흐름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현재의 성과만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도 함께 본다.

사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과제는 현재의 대기업을 유지하는 것보다 미래의 대기업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 내느냐다. 이미 성장한 기업은 유지가 중요하지만 새로운 기업은 끊임없이 탄생해야 한다. 경제의 활력은 새로운 기업이 등장할 때 살아난다. 청년 창업과 벤처투자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중심 무대가 바로 코스닥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코스닥은 미국의 나스닥만큼 성장하지 못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시장 신뢰의 문제다. 일부 기업의 회계 부정과 주가조작 사건이 반복되면서 시장 전체의 신뢰가 약해졌다. 기업 가치보다 테마와 소문에 의해 움직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 결과 우량 기업들까지 저평가되는 일이 반복됐다.

또 다른 이유는 장기투자 문화가 약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연기금과 기관투자자들이 성장기업에 장기 투자하는 구조가 발달해 있다.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단기 수익 중심의 투자 문화가 강하다. 기업의 미래 가치보다 당장의 실적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성장기업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도약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결국 자본시장이 미래보다 현재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있는 셈이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코스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공장과 자본이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기술과 아이디어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 작은 기업 하나가 산업 전체를 바꿀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엔비디아도 처음에는 작은 반도체 회사였다. 지금의 글로벌 기업 대부분이 작은 혁신기업에서 출발했다.

대한민국도 AI와 바이오, 로봇과 우주산업, 양자기술과 에너지 산업의 미래 주역들이 대부분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성장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동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코스닥의 경쟁력은 대한민국 미래 산업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코스닥은 단순한 주식시장이 아니라 미래 산업의 인큐베이터다. 대한민국 경제의 내일이 자라는 공간인 셈이다.

코스닥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장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고 불공정 거래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투자자들이 믿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신뢰가 없는 시장에는 장기 자금도 들어오지 않는다. 건강한 시장은 신뢰 위에서 성장한다.

또한 국민연금과 기관투자자들이 우량 코스닥 기업에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기술기업의 미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적자라는 이유만으로 성장기업을 저평가해서는 안 된다. 미래 산업은 현재 실적보다 미래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 미국의 나스닥이 성장한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정부와 언론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경제를 이야기할 때 코스피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대기업이 잘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이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의 경제를 평가하는 것만큼 미래의 경제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제는 코스닥을 국가 경쟁력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미래 산업을 키우는 정책도 나올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과거에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육성을 강조해왔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시절에는 스타트업 지원과 혁신 생태계 조성에 적극적이었고 대선 과정에서도 벤처 성장 전략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이후 경제 성과를 이야기할 때는 코스피 상승과 시가총액 증가, 외국인 투자 확대가 주로 강조되고 있다. 미래 성장기업이 모여 있는 코스닥에 대한 관심과 메시지는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의 행보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삼성전자와 SK그룹 등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며 협력 확대와 사업 전략을 논의했다. 그러나 미래의 엔비디아가 될 수 있는 국내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미치지 못했다.

필자는 젠슨 황이 한국의 AI 생태계와 미래 혁신기업 육성에 대한 비전까지 함께 제시했다면 더 의미 있는 방문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코스피가 대한민국 경제의 현재라면 코스닥은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다. 코스피가 오늘의 성적표라면 코스닥은 내일의 가능성이다. 대기업이 잘되는 나라가 강한 나라일 수는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나라가 더 오래 강한 나라가 된다. 이제는 코스피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코스닥도 함께 바라봐야 할 때다.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는 코스피 지수에만 있지 않다. 아직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코스닥의 작은 기업들 속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오늘의 삼성전자를 자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일의 삼성전자와 엔비디아를 키우는 일은 더 중요하다. 현재의 성공에 박수를 보내는 나라보다 미래의 성공을 준비하는 나라가 더 오래 번영한다. 이제는 코스피의 시간을 넘어 코스닥의 미래를 이야기해야 할 때다.

최근 정부가 '코스닥 3000 시대'를 목표로 제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코스닥 3000이 단순한 증시 목표가 돼선 안 된다. 대한민국 경제가 오늘의 성공에 머물지 않고 미래 산업의 성장동력을 키워가겠다는 국가적 선언이 돼야 한다.

6월11일 종가 기준 코스피는 7730.82포인트, 코스닥은 951.63포인트를 기록했다. 단순 비교하면 코스피가 코스닥보다 약 8배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지수의 의미다. 코스피 지수는 1980년 1월4일을 기준값 100으로 설정해 산출한다. 다시 말해 현재 7730.82포인트라는 것은 코스피 상장기업들의 가치가 1980년보다 약 77배 커졌다는 의미다. 반면 코스닥 지수는 1996년 7월1일을 기준값 1000으로 설정해 계산한다. 현재 코스닥 951.63포인트는 상징적으로 보면 아직 출범 당시 기준선인 1000포인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코스닥이 항상 부진했던 것은 아니다. IT 벤처 붐이 절정에 달했던 2000년 3월 코스닥지수는 2834포인트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당시 코스닥은 ‘한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며 미래 산업과 벤처기업의 상징이 됐다. 수많은 투자자들이 새로운 기술기업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했고 대한민국도 벤처 강국의 꿈을 꿨다.

그러나 IT 버블 붕괴와 반복된 시장 신뢰 훼손, 성장기업 생태계의 한계로 인해 코스닥은 오랜 기간 부침을 겪어야 했다.

이 사실은 현재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코스피는 최고 수준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코스닥은 아직 과거의 영광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성과는 커졌지만 미래의 성장엔진은 기대만큼 강해지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대한민국 경제의 현재는 코스피가 보여주고 있지만 미래는 코스닥이 얼마나 성장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스피 7730은 대한민국의 자랑이고, 코스닥 951은 대한민국의 숙제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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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이재명 그늘’ 득실

김민석 ‘이재명 그늘’ 득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김민석 전 국무총리의 출마 선언을 시작으로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막이 올랐다. 김 전 총리는 자신이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운영 동반자임을 거듭 강조하며 당심에 호소하고 있다. 김 전 총리에게 쥐어진 이재명이라는 칼날은 분명한 자산이다. 그러나 전당대회에서 독으로 작용할지, 득으로 작용할지 조금씩 해석이 엇갈리는 모양새다. 지난 6일 김민석 국무총리가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 정치적 스승인 김대중 대통령의 말씀을 되새긴다. 정치인은 외부를 향한 투쟁만큼 내부를 향한 투쟁에도 철저해야 한다”며 “이재명정부 국정 성공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을 위해 민주당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다”고 밝혔다. 더 끈끈한 당청 관계 이어 “이정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며 “절대 과제인 이정부의 성공을 위한 최우선 과제는 먼저 집권당인 민주당의 혁신을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김 전 총리는 정청래 지도부를 저격하는 듯한 발언도 이어갔다. 그는 “민주당은 지난 1년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국정 지지를 정당 지지와 선거 결과로 연결하지 못했다”며 “지난 1년, 자기 정치의 폐해가 당과 당정 협력을 혼선에 빠뜨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합당 추진, 검찰개혁 논의, 공천과 선거 전략에서 나타난 숙의 부족, 토론 부족, 절차 미비, 일관성 부족은 많은 문제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과 검찰개혁 엇박자, 6·3 지방선거 전략 등 정청래 전 대표의 과오를 꼬집은 것으로 해석된다. 김 전 총리는 “여당다운 여당을 만들어내겠다”고도 강조했다. 특히 “지난 지도부의 노력을 동지적 관점에서 치하한다”면서도 “결과 책임은 정치와 정당의 기본 윤리”라고 강조했다. 이어 “절박하고 엄격하지 않으면 우리는 총선 패배의 늪으로 빠져들 수 있다”며 “절박한 긴장감과 매서운 엄격함으로 당 대표 교체의 결단을 내려주실 것을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당의 지지율을 반등시키고 올바른 노선하에 당과 당원과 지지층을 통합하고 총선 승리로 달려가겠다”며 “1인1표 당원주권 행사에 모든 당원이 한 분도 빠짐없이 참여해 압도적 결의로 당의 리더십을 교체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 밖에도 김 전 총리는 자신이 이정부 초대 총리로서 이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온 점을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캠프 시절부터 지금까지 정부의 국정 운영과 실무를 뒷받침해 온 경력을 필살기로 ‘검증된 파트너십’ 전략을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여당의 역할’ 재정의 검증된 파트너십 호소 그는 최근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는 ‘3대 메가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제1국가 과제”라며 적극 힘을 실었다. 국회 복귀 첫 지역 일정으로 메가 프로젝트가 실행되는 주요 지역인 충북 청주를 선택하며 이 대통령과 합을 맞추기도 했다. 출마 선언 이후 김 전 총리는 연달아 정책 토론회를 열면서 전당대회를 겨냥한 의제 경쟁을 시작했다. 지난 1년 동안 검찰개혁이나 당원 주권 강화에 쏠려 있던 민주당의 흐름을 여당다움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김 전 총리는 지난 7일 ‘균형발전을 넘어 지방주도성장으로’ 토론회에 참석한 데 이어 이어 언론, 지역주도 성장, 금융 분야를 민주당이 추진해야 할 4가지의 개혁 과제로 꼽으며 연속 토론 기획에 나섰다. 국민 삶과 직결되는 주제를 전당대회에서 다루기 위한 ‘어젠다 세팅’이라는 게 김 전 총리의 설명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강성 당원에게 어필하기 위한 선명성 경쟁도 과열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정 전 대표가 여권 강성 지지층의 최우선 의제인 검찰개혁과 관련해 “보완수사권의 티끌마저 없애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 만큼 김 전 총리의 선명성이 상대적으로 흐려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대통령과 손발을 맞췄다’는 점 역시 ‘이정부의 대리인’ ‘하수인’ 등 수동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완수사권 폐지를 전당대회의 필살기로 점찍은 정 전 대표는 보완수사권 논의를 “제헌절 전에 끝내자”며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9일 자신의 SNS에 강성 개혁파로 분류되는 김용민 의원과 함께 찍은 사진과 ‘검찰개혁의 동지 김용민 의원과 함께 뜁니다’라는 게시글을 통해 “김용민이 정청래고, 정청래가 김용민”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정 전 대표는 “김 의원께서 검찰개혁이 더 절실하고 필요한 일이라며 전당대회 출마를 하지 않고 대신 제게 본인이 구상한 개혁 지도를 완수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며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 중대범죄수사청 출범의 혁혁한 공로자인 김 의원의 뜻을 잘 받들겠다”고 말했다. 부족한 선명성? 그러면서 “김 의원의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비롯한 사회대개혁 지도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김용민과 정청래가 손잡고 함께 달리겠다. 김용민과 정청래의 의기투합! 응원해 주고 함께 뛰어달라”고 당부했다. 최근에는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 대원칙은 정해지지 않았나”라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에 대해선 더 이상 당에서 논란이 없었으면 좋겠다”고도 밝혔다. 정 전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토론회를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당내에서 보완수사권 폐지 관련 이견이 노출되면 민주당이 정한 수사 기소 분리의 대원칙 등에 대해 의심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누가 당원주권정당 1인1표에 앞장섰는가? 반대했는가? 누가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에 앞장섰는가? 반대했는가?”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이 대표 시절 주도했던 1인1표제와 검찰개혁을 필두로 선명성을 부각했다. 김 전 총리 역시 보완수사권 폐지에 의견을 같이 했다. 다만 보완수사권은 폐지하는 방향으로 잡되 혼란과 공백을 줄이기 위한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주된 입장이다.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대화와 토론에 중점을 맞춰 여러 이야기를 두루 듣겠다는 것이다. 정 전 대표의 일 처리 스타일과 선을 그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총리는 총리 역임 시절에 “보완수사권 폐지가 현시점에서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라며 “폐지안을 기본으로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 입장을 (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지침으로 여러 번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이 대통령이 여러 차례 ‘일부 존치’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을 거론하며 “대통령 뜻까지 포함해서 지금까지 논의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진짜 ‘여당’ 정 심판론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뒤에는 “보완수사권 폐지 원칙은 지키되, 경찰 수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외부적 통제와 엄밀한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장윤기 사건, 국민 여러분과 함께 분노한다”며 “개혁은 검찰과 경찰 등 권력기관이 국민 앞에 더 투명하게 서게 하는 것이다. 민주적 통제와 투명한 검증의 원칙은 검과 경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보완수사권 폐지가 살인범 편들기라는 <조선일보>식 프레임은 조잡하다”며 “자극적 언어에도 금도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이 같은 친정부 이미지가 오히려 김 전 총리의 강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핵심은 안정성이다. 집권 2년 차에 들어선 이정부인 만큼 이를 뒷받침할 ‘관리형 여당 대표’ 이미지가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김 전 총리가 총리직을 사임할 때도 이 대통령은 “우리 정부가 만들어낸 여러 성과가 있는데 김민석 국무총리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며 그를 치켜세웠다. 이어 “제일 높이 평가하고 싶은 건 자살자 감소”라며 “올 초 통계부터 보면 월간 수백명 단위로 자살자가 줄었다. 수백명의 목숨을 구한 건 매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의 “여당 다운 여당”과 “현재 당내에서 제가 총선, 대선, 지방선거를 다 직접 총괄 지휘해 보고 승리까지 이끌어 본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는 제가 갖고 있는 나름의 쓸모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것 역시 궤를 같이 한다. 2년 후 총선이라는 빅 이벤트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김 전 총리의 안정형 기조가 당원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이대로라면 총선 필패’ ‘여당으로서의 책임’ 등을 외치고 있다. 지난 1년 민주당의 키를 쥔 선장에 대한 일종의 심판론”이라며 “2028년 총선을 제대로 치르기 위해서는 집권여당의 승리가 최우선이어야 하고, 그런 점에서 정 전 대표의 ‘자기 정치’라는 꼬리표는 뼈아플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28년 총선 이대로 괜찮을까? 김 “폭탄 선언식으로 안 돼” 모든 선거의 승패는 결국 중도층을 얼마나 확보하는지에 달려 있다. 현재 민주당의 강경한 기조는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외연 확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이 나오는 만큼 김 전 총리는 민주당의 차기 지도부 과제로 ‘실용 통합’과 ‘외연 확장’을 제시했다. 김 전 총리는 유튜브 방송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며 민주 진영의 통합과 연대, 중도로의 외연 확장 기조를 밝혔다. 그는 “민주당은 일시적인 갈라짐이 있을 경우 통합했고, 지금 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과는 연대하지 않나. 그리고 국민회의로 집권한 뒤 새천년민주당을 만들어 중도·보수 인사를 대폭 영입했는데 이게 확장”이라며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다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혁신당이 통합 대상이냐’는 질문에는 “그건 혁신당이 결정해야 한다”며 “거대 책임 정당인 민주당으로 성격이 같은 세력들이 결합할 때는 다 흡수 합당한다”고 했다. 정 전 대표가 시도한 혁신당과의 합당 추진 방식에 대해서는 “폭탄 선언식으로 해서 일을 그르쳤다”며 “과욕이었다. (그래서) 일이 꼬였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언주 의원 역시 “여당다운 책임을 다할 지도부가 필요하다”며 “안 그러면 다음 총선에서 어림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이) 집권여당이 된 지 벌써 1년이다. 아직도 야당인 줄 알면 되겠나”라며 “이번 전대(전당대회)에서 선출될 신임 지도부는 국민에게도, 대통령과 정부에도, 국회 야당에도, 정말 여당다운 책임을 다할 지도부가 필요하다. 그래야 다음 총선을 해볼 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영길 의원도 당 대표 출마 선언 당시 “국민께서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옐로카드를 보내셨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 다음 총선은 레드카드”라고 경고했다. 송 의원은 “다음 총선에서 지면 정권 재창출은 없다. 정권 재창출이 없으면 이정부의 성공도 장담할 수 없다”며 “(전당대회는) 누가 이정부와 협력해 대체 불가 대한민국을 만들 대표인가를 선택하는 선거”라고 말했다. 김 전 총리가 “선명성만으로는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며 현실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개혁을 꿈꿔온 당원들의 숙원을 빠르게 해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근 친청(친 정청래)계를 중심으로 “민주주의의 체제를 더 굳건히 하는 중단 없는 개혁이 시대정신”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지지층 결집에 나선 것 역시 이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장담 못해” 안갯속 당심 결국 ‘국정 안정 파트너’와 ‘당원 주권·개혁 선명성’ 중 어느 프레임이 당원 표심을 더 움직이는지가 이번 전당대회 승패를 가를 것으로 관측된다. 당내 뿌리 깊게 박힌 ‘정통성’과 ‘개혁 선명성’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는 것이 김 전 총리의 남은 과제로 여겨지는 이유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겸공’ 찾은 김민석, 김어준도 우군으로? 김민석 전 국무총리가 유튜버 김어준씨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해명했다. 김씨는 정청래 전 당 대표와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던 만큼 그의 라이벌인 김 전 총리에게 해명의 명분을 줬다는 점에서 당의 이목이 쏠린다. 지난 6일 김 전 총리는 방송을 통해 자신이 계엄 해제 표결에 불참한 것에 대해선 “1초 늦었다”고 말했다. 김씨도 “감기약 먹고 일부러 안 온 것 아니냐는 말도 있다”면서도 “소모적으로 계속할 일은 아니기에 이것부터 털고 가자.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영상이 있다”며 계엄 당일 김 전 총리가 국회 담을 넘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과 당시 현장에 있던 시민 인터뷰를 공개했다. 앞서 친청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김 전 총리를 향해 ‘감기약 성분 의혹’을 제기한 것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이 같은 김씨의 태도를 두고 여권 일각에서는 그가 정 전 대표와 결별 수순을 밟고 있거나, 한쪽으로 쏠린 기조에 부담감을 느꼈다는 등 다양한 해석을 제기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