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이 띄운 광섬유 신기루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6.06.11 14:54:31
  • 호수 15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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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잠자던 강소기업을 깨우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AI 산업의 경쟁 축이 반도체 기술에서 신소재 기술로 확장되고 있다.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AI 데이터센터의 병목을 해결할 기술로 광(光)통신과 CPO(Co-Packaged Optics, 공동 광학 패키징)를 강조하면서다. 덩달아 광섬유, 광 모듈, 광 트랜시버 관련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CPO 기술은 전기 신호를 빛으로 변환하는 광 트랜시버를 하나로 통합하는 차세대 포장(패키징) 기술이다.

AI 반도체의 데이터 전송 속도는 빠르게 증가하고 데이터 병목 현상들이 발생하면서 CPO 기술 도입이 해결책으로 꼽히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광섬유만으로 AI 인프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분석도 나온다. 광섬유가 데이터를 전달한다면, 전력 공급과 접지, 방열, 전자파 차폐, 신호 연결을 담당할 소재는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친환경
고분자

이 지점에서 국내 소재 기업 에콜그린텍이 재조명받고 있다. 에콜그린텍은 과거 SK네트웍스 계열사로 편입됐던 친환경 고분자 소재 기업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에콜그린텍은 2004년 생분해 소재 개발에 착수했다. 2005년 에콜그린텍 법인 설립 이후 2009년까지 환경마크 획득, SK네트웍스 자회사 편입, PLA 사출원료 등 친환경 고분자 소재 개발을 진행해 왔다.

이후 부품소재 전문 기업 등록, 기업부설연구소 등록, 벤처기업 등록 등을 거치며 소재 기업으로 기반을 다졌다. 에콜그린텍이 최근 승부수로 내세우는 기술은 ‘폴리 시엔티(Poly CNT)’다. Poly CNT는 탄소나노튜브를 고분자 내부에 분산시켜 전기전도성, 열전도성, 내화학성, 내부식성, 전자파 차폐 기능을 동시에 구현하는 무금속·무코팅 전도성 고분자 복합소재다.

에콜그린텍 측은 “이 소재는 기존 구리선을 대체하는 전선이 아니라 전력선, 신호선, 방열 부품, EMI·EMP 차폐재, RF 안테나, 로봇 관절부 배선, 수전해 셀 스택 전극 촉매까지 확장 가능한 플랫폼”이라고 설명한다.

에콜그린텍의 출발점은 친환경 플라스틱이었다. 회사는 생분해성 PLA 소재, PLA 필름, PLA 스트로, PLA 쇼핑백, PLA 부직포 등 친환경 소재 분야에서 Poly CNT 기술로 발전했다. 이후 절연·비절연 열전도성 소재, 무금속 전기전도성 복합소재, 플라스틱 전선, 차세대 발열체, CNT 셀 스택 개발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기술력을 알아본 SK네트웍스는 2007년 에콜그린텍을 계열사로 추가했고, 당시 에콜그린텍은 합성수지 및 플라스틱 제조업체로 소개됐다. 지난 2006년 SK네트웍스는 에콜그린텍과 공동으로 생분해성 플라스틱 소재 ’에콜그린텍 PLA’를 개발해 상용화에 성공했다.

과거 친환경 플라스틱으로 시작해 AI 인프라 소재로 방향을 전환한 셈이다.

AI 인프라 뒤에 숨은 ‘소재 전쟁’
구리의 한계, CNT 넘을 수 있을까

회사의 기술 전환은 2017년 이후 본격화됐다. 에콜그린텍은 무금속 전기전도성 복합소재, 플라스틱 전선 등을 개발했다. 이후 플라스틱 자성체 CNT 복합 전극 촉매, 전기전도성 플라스틱 전극 촉매용 전선 커넥터, Al-CNT 고분자 복합소재 제조 방법 등을 담은 특허를 등록했다.

회사가 보유한 CNT 관련 특허는 크게 네 가지다. 고효율 전해수 순환이 가능한 물 전기분해용 전극촉매 셀 스택, 플라스틱 자성체 CNT 복합 전극촉매 및 전기분해장치, 전기전도성 플라스틱 전극촉매용 전선 커넥터 및 셀 스택, 알루미늄 산화 팽창을 이용한 저저항 Al-CNT 고분자 복합소재 및 물 전기분해용 전극 촉매 제조 방법이다.

셀 스택(Cell Stack)은 연료전지나 이차전지 등에서 전기를 발생시키거나 저장하는 기본 단위인 ‘셀(단전지)’을 여러 장 층층이 쌓아 올린 구조체 또는 조립체를 의미한다.

Poly CNT의 핵심은 구리와 기존 광섬유의 한계를 보완한다는 점이다. 구리는 전도성이 뛰어나지만 무겁고, 부식에 취약하며, 가격 변동성이 크다. 고주파 영역에서는 손실과 표피 효과 문제도 있다. 반면 기존 광섬유는 장거리 고속 데이터 전송에 유리하지만, 전력 전달은 불가능하다.

에콜그린텍은 Poly CNT를 구리와 광섬유 사이의 틈새를 겨냥한 소재라고 설명했다. 최대명 에콜그린텍 부회장은 “구리 대비 약 8배 가볍고, 무금속·무코팅 구조로 녹 발생이 없으며, 저저항 설계를 통해 전력선·신호선 후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Poly CNT는 광섬유의 단점을 보완한 광통신 시대의 완벽한 보완재”라고 강조한다. 광섬유와 CPO가 데이터 전송 효율을 높이더라도 데이터센터 내부에는 전원 인입선, 접지, 방열판, 커넥터, 신호선, 차폐재 등 수많은 주변 소재는 부품이 필요하다.

구조체
조립체

그러나 Poly CNT는 구리·광·플라스틱 도파관과 경쟁하면서도 동시에 이들 시스템 주변의 전원·접지·차폐·열관리·커넥터 소재로 진입할 수 있는 보완형 대체재다. 회사가 제시한 기술 정의도 명확하다. Poly CNT는 CNT를 표면에 단순 코팅하는 방식이 아니라 고분자 내부에 CNT 네트워크를 형성해 전기, 열, 전자파 특성을 동시에 구현하는 복합소재다. 100% 방수되는 소재라 물 속에 던져놔도 작동한다.

이 때문에 회사는 “구리의 완전 대체”라는 단일 논리보다 경량, 내식, 유연, 방열, 차폐가 동시에 필요한 고부가 부품부터 시장에 진입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AI 서버 주변 부품, CPO 주변 전기·접지·차폐·열관리 부품, RF 안테나, 로봇 관절부 신호선, 방산용 EMI·EMP 차폐재, 수전해 셀 스택 등이 우선 적용 분야로 거론된다.

IT업계는 에콜그린텍 신소재에 관해 새롭게 해석했다. 신소재 투자업계 관계자는 통화에서 “에콜그린텍과 전도성 플라스틱 케이블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며 “실제 샘플도 확보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Poly CNT는 도파관 특성과 연결해 볼 수 있는 소재”라며 “도파관은 빛을 전달하는 통로인데, 해당 소재는 송수신과 신호 전달 측면에서 핵심 소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AI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전력으로 인한 발열, 신호, 전자파는 병목 현상을 낳고 있다. GPU와 서버의 전력 밀도가 높아질수록 방열과 차폐 문제가 커지고, CPO 같은 광통신 구조가 도입될수록 그 주변의 전기·접지·열관리 부품도 중요해진다.

에콜그린텍은 AI 데이터센터 케이블 시장, 로봇 관절부 배선, 방산·RF·위성, CPO·고집적 장비를 Poly CNT의 핵심 시장으로 제시한다.

최 부회장은 “구리는 전도성은 높지만 무겁고, 부식·시세 변동·고주파 손실·관절부 피로단선이 문제라고 기재돼 있다”며 “광섬유와 CPO는 데이터 전송 효율을 높이지만 전기 전달, 방열, EMI 차폐, 사출형 구조 부품 수요는 그대로 남는다”고 설명했다.

로봇 손가락
관절에 탁월

회사 측은 Poly CNT가 전기 전달과 신호 전달뿐 아니라 방열, EMI·EMP 차폐, 하우징 사출, 고분자 기판, 커넥터 부품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CNT가 가진 높은 비표면적과 전자파 흡수 특성은 RF 안테나, 레이더 교란 소재, 전자파 차폐용 허니컴, 국방·무기체계 부품, 드론·무인차·라이다 센서 부품으로 응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회사는 성능 측면에서도 여러 수치를 제시했다. Poly CNT는 구리 대비 약 1/8 수준의 경량화를 목표로 하며, 신호 전달 가능 범위인 10~100Ω 대비 0.5Ω 전후 저저항 구현이 가능하다는 시험 결과를 얻었다. 또 CNT 내부 중공 구조와 복합소재 설계를 통해 방열·열확산 기능을 확보하고, 인젝션 사출·압출 적용을 통해 부품 일체화와 양산 단가 절감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에콜그린텍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시장은 로봇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손가락, 손목, 팔꿈치, 발목 등 반복 굴곡과 회전이 발생하는 부위가 많다. 기존 구리 배선은 전도성은 높지만, 반복 피로에 따른 단선, 무게, 유연성, 수분으로 인한 부식 등이 단점으로 꼽힌다.

회사 측은 Poly CNT가 로봇의 전원선과 신호선, 센서 네트워크, 손가락 신경계 신호 전달부에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최 부회장은 “로봇 손가락과 관절부는 굽힘, 마모, 회전이 반복되므로 기존 금속 배선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며 “모 로봇 기업과 함께 전도성 플라스틱형 케이블에 Poly CNT 사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콜그린텍이 내세우는 사업 모델은 단일 제품이 아닌 확장성을 강조한다. 회사는 “사출·압출·하이브리드 성형이 가능해, 케이블에서 군용 레이더 소재로 제품군을 넓힐 수 있다”고 설명한다.

Poly CNT 분산 기술도 핵심이다. CNT는 비표면적이 크고 겉보기 밀도가 낮아 고함량 컴파운딩 시 분산성 저하와 내구성 약화가 발생하기 쉽다. 에콜그린텍은 유기금속 반응 고분자, 계면보강, 크로스링크, 고분산 펠릿화를 통해 CNT 네트워크를 균일하게 형성하고 저저항과 내구성을 확보한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쌓인 데이터 병목 현상들 발생
CPO 기술 도입 해결책으로 꼽혀

에콜그린텍의 Poly CNT 설명 자료에는 전자파 차폐와 방열 특성도 포함돼있다. Poly CNT 플라스틱 와이어는 1.5㎓조건에서 ASTM D4935 테스트 기준 50~70dB의 전자파 차폐 결과를 제시했다. 또 다른 자료에서는 1.5㎓ 인가 시 65~70dB 수준의 차폐 성능을 기재했다.

방열 측면에서도 회사는 기존 금속 촉매전극과 Poly CNT 촉매전극을 비교했다. 자체 시험 결과에 따르면 금속 촉매전극은 비중 8~12, 방열지수 2 수준으로 표시된 반면, Poly CNT 촉매전극은 비중 1.0~1.1, 방열지수 9로 제시됐다. Poly CNT는 열용량이 적어 금속 촉매전극의 단점을 보완했다는 설명이다.

회사는 Poly CNT가 발열사, 면상발열체, 플라스틱 전선, 전자파 차폐재 등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적용 사례로는 전기자동차, 무인자동차, 안테나, 광케이블, 피뢰침, 발열·온열 장치, 감시카메라, 로봇 와이어 등이 제시됐다.

에콜그린텍과 같은 소재 기업의 성패는 결국 검증과 양산에서 갈린다. AI 데이터센터, 로봇, 방산 등은 진입장벽이 높은 시장이다. 성능 수치가 내부 자료로 제시됐더라도 고객사 납품을 위해서는 반복 굴곡 테스트, 고온·저온 신뢰성, 염수분무 시험, 내화학성, 난연성, 전자파 차폐 인증, RoHS·REACH 대응, UL 인증, RF 손실 측정, 장기 내구성 데이터가 필요하다.

결국 관건은 제품화로 전환하는 속도다. 에콜그린텍이 보유한 Poly CNT 원천 소재가 케이블, 방열 부품, RF 안테나, 로봇 신호선, 수전해 셀 스택으로 이어지려면 양산 설비, 인증, 고객사 PoC 등이 맞물려야 한다. 

젠슨 황이 광통신 시대를 열자, 에콜그린텍은 CNT 전도성 고분자 소재를 들고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 과거 SK네트웍스가 품었던 친환경 소재기업이 AI 데이터센터, 로봇, 방산, 수소경제를 잇는 첨단소재 기업으로 재평가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편,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세계 CPO 시장 규모는 2023년 2억달러(약 2900억원)에서 30년 93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엔비디아를 시작으로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빅테크들도 자체 AI GPU에 CPO를 적용할 예정이다.

TSMC가 2029년까지 연평균 20%씩 성장한다는 목표를 세운 배경에도 초미세 공정과 CPO 기술이 주축을 이룬다. TSMC는 현재 엔비디아, 브로드컴 등 주요 고객사에 CPO 샘플을 제공한 상태다.

시장 규모
2억 달러

또 지난해 4월 COUPE(Compact Universal Photonic Engine)라 불리는 CPO 플랫폼을 공개하고, 지난해 9월 대만 내 30개 반도체 기업과 함께 실리콘 포토닉스 산업 협회를 설립했다. 삼성전자는 2027년 상용화를 목표로 CPO 기술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고, 10년 넘게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을 개발해 온 인텔 역시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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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태리 석유 재벌 행세’ 이상한 경찰 수사 내막

[단독]‘이태리 석유 재벌 행세’ 이상한 경찰 수사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광주에서 일어난 ‘장윤기 사건 증거인멸’ 논란으로 경찰 조직이 시험대에 올랐다. 피의자 가족이 나서서 증거를 없애고 이 과정에 주변 경찰이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이 사건으로 검찰청 해체 이후 수사 권력을 한 손에 쥘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 한 여고생이 일면식도 없던 남자에게 살해됐다. 여학생을 구하려던 남학생은 크게 다쳤다. 경찰이 범인을 검거했고 사건의 심각성에 따라 얼굴을 공개했다. 생떼 같은 10대 여고생의 황망한 죽음에 국민은 경악했다. 하지만 국민이 더 분노한 지점은 따로 있었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비위 의혹은 경찰 조직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조직 명운 달렸다 장윤기 사건에서 수사 기밀 유출, 증거인멸, 초동수사 부실 등의 의혹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장윤기의 혐의를 경찰이 나서서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경찰은 장윤기에게 강간·살인이 아닌 일반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이 과정에서 형량이 더 높은 강간·살인 혐의를 입증할 케이블 타이 등의 증거를 경찰이 없앴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검찰의 보완수사로 드러났다. 현재 정치권은 해체될 검찰에 보완수사권을 남겨둘지를 두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심지어 여권에서도 입장이 엇갈린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보완수사로 경찰의 부실 수사 문제가 확인되면서 권력을 한쪽에만 과도하게 몰아줘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부상하고 있다. 홍석기 국가수사본부장이 장윤기 사건에서 드러난 경찰 유착 의혹을 두고 “명운을 걸고 수사하겠다”고 말한 것은 조직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최대한 불식하겠다는 의도도 담겼다는 게 중론이다. 안 그래도 검찰청 해체로 수사 공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 이번 일로 그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찰 수사를 의심하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2023년 8월 공동대표였던 하모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한 R스타트업의 이모 대표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 대표는 하씨가 회사를 그만둔 이후 단독대표가 돼 R스타트업을 떠안았다(<일요시사> 1493호 ‘<단독>스타트업 대표 1000억대 역외탈세 의혹’). 앞서 두 사람이 공동대표일 무렵 R스타트업은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마스크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내에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있던 때였다. 하씨는 마스크 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했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필리핀의 법인을 이용해 수급하겠다고 했다. 미국의 한 회사와 판매 계약까지 체결하는 등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던 사업은 ‘마스크를 수급할 수 없게 됐다’는 하씨의 말에 흐지부지됐다. 이후 마스크 관련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고 하씨는 R스타트업을 떠났다. 2022년 3월경에는 서로 연락도 끊겼다. 하씨의 회사 이메일 계정도 이 시기에 정지 조처됐다. 회사와도, 사적으로도 이 대표와 하씨의 관계가 끝난 것이다. 상황은 2023년 6월 이 대표가 하씨의 이메일에서 석연찮은 점을 발견하며 반전됐다. 장윤기 사건으로 신뢰 바닥 새로운 자료 찾아도 시큰둥 이 대표는 하씨의 이메일을 통해 흐지부지된 줄 알았던 마스크 사업이 몰래 진행됐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하씨가 가족과 지인을 동원해 마스크를 수급하고 수출해 상당한 돈을 벌었다는 사실도 이 시기에 알게 됐다. 극심한 배신감을 느낀 이 대표는 하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인천 연수경찰서에 고소하기에 이른다. 연수경찰서는 하씨의 마스크 거래 규모를 1000억원대로 판단했고 수사를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계로 넘겼다. 이 대표에 따르면 당시 연수경찰서에서 추정한 하씨의 마스크 거래 규모는 1400억원에 달한다. 이 대표는 “하씨는 회사(R스타트업) 메일 계정을 이용해 마스크 거래를 진행했다. 그사이 회사에는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를 더욱 화나게 한 건 경찰의 태도였다. 처음 사건을 맡은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미진한 수사 태도로 이 대표의 불만을 샀다. 이 대표는 “하씨가 한국에 있지도 않은데 출국금지를 걸지를 않나, 경제범죄를 수사하면서 CFO가 뭐냐고 묻질 않나, 이렇게 많은 양의 자료를 제출했는데 고소인 조사를 20분밖에 하질 않나, 수사 자체가 엉망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2024년 2월 말 하씨를 불송치 처분했다. 하지만 인천지방검찰청(이하 인천지검)의 판단은 달랐다. 인천지검은 필리핀과의 국제 공조 수사를 통해 하씨와 가족의 해외 계좌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경찰의 불송치에 대해 보완수사를 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때가 2024년 3월이다. 경찰 수사에 답답함을 느낀 이 대표는 하씨와 관련된 자료를 이 잡듯이 뒤졌다고 한다. 특히 하씨의 회사 계정으로 오간 이메일을 꼼꼼히 살폈다. 그 결과 하씨가 카카오뱅크를 통해 6개월 동안 거래한 내역을 찾아냈다. 이 대표는 거래 내역에서 가족으로 추정되는 인물과 돈이 여러 차례 오간 것을 발견했다. 이 대표는 “2024년 5월에 거래 내역을 발견해 바로 경찰에 전달했다. 경찰이 나를 조사에 부른 건 (그해) 8월경이었는데 그때까지 거래 내역에 대한 어떤 수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보다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수사 권한도 없는 일반인이 이 정도로 자료를 찾아 건넸으면 좀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일반 국민은 경찰보다 계좌 접근 권한이 제한돼있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고소 이후 3년 지나 하씨와 그 가족의 필리핀 계좌를 보기 위한 국제 공조에도 시간이 지체됐다고 토로했다. 검찰에서 보완수사를 요구한 때가 2024년 3월29일이었는데 그해 7월에서야 공조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처음 고소인 조사를 받을 때부터 필리핀 법인 이야기를 숱하게 했다. 필리핀 법인에 보낸 은행 송금증, 해당 필리핀 법인이 운영하는 SNS 내용, 현지 언론 기사까지 제출했을 때는 나 몰라라 하다가 보완수사가 떨어지고 나서야 공조를 진행하면 기다리는 고소인은 답답해서 죽는다”고 말했다. 하씨의 지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써준 사실확인서도 문제로 지적했다. 이 대표는 “해당 인물이 사실확인서를 써준 이후에 하씨와 함께 사업한 의혹이 있다. 이런 사람이 써준 사실확인서를 믿을 수 있나. 경찰 조사에서 이 부분을 상세하게 진술했는데 ‘고소인은 ○○○의 사실확인서를 믿을 수 없음’ 이렇게 한 줄만 적었더라. 근거를 가지고 말했는데 경찰은 나를 ‘우기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 대표가 경찰에 제출한 자료로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에서 하씨를 불송치 처분할 때 근거가 됐던 내용을 다시 들여다볼 여지가 생겼다는 점이다. 당시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불송치 이유로 ▲(하씨가) 거래대금을 몰래 착복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고 ▲실제 거래가 성사된 사실이 없다면서 배임 혐의를 부인한 점 등을 들었다. 이때 ▲미국 A사와의 거래 과정에서 필리핀 법인을 사용하기로 합의한 점 ▲미국 A사 측의 거래 취소 요청 이메일 ▲계약 관련자의 사실확인서 등을 ‘혐의없음’의 근거로 제시했다. 즉, 경찰은 하씨가 마스크 사업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마스크 사업으로 수익을 본 것도 없고 그러니 배임 혐의도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 이 대표는 “카카오뱅크 거래 내역은 마스크 사업 과정에서 돈이 오간 흔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고, 사실확인서 역시 동업 관계에서 나왔기에 그 배경을 더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 자료만 제대로 봤어도 수사가 달라졌을 것이라 확신한다. 경찰의 결론 자체를 뒤집는 자료 아닌가”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특히 지난해 1월 이 대표는 하씨의 카카오뱅크 거래 내역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의 정체를 밝혀내기에 이른다. 하씨가 마스크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수급을 담당한 업체가 있는데, 그곳의 대표와 이름이 같았던 것이다. “확인해 달라” 호소에도… 또 이메일을 확인하면서 하씨가 2억4000만원에 이르는 신용 미수 거래를 한 내역도 찾아냈다.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했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신용 미수 거래금이 2억원이 넘는다는 건 담보 제공 현금이 1억5000만원 이상 있다는 의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마스크 사장 이름을 알아낸 것도 그렇다. 대단한 기술을 쓴 것도 아니고 거래 내역에 있는 사람 이름과 다른 단어를 인터넷에서 조합해 검색했더니 내용이 나왔다. 이건 내가 다 수사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적극적인 행보에도 경찰은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에서 2계로 수사팀을 한 차례 바꾼 것 빼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해 4월30일 ‘수사 중지’를 결정했다. 국제 공조 수사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게 근거였다. 이 대표는 하씨의 거주지 주소가 바뀐 것을 지적하면서 ‘이송’을 요청했지만 ‘보완수사 중에는 관할지 이송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후 수사는 1년 넘게 멈춘 상태다. 이 대표는 국세청에도 관련 내용을 제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국세청에 같은 자료를 냈는데 국세청은 조사를 진행한 뒤 하씨가 ‘탈세를 한 게 맞다’는 취지로 답했다. 하지만 경찰에 그 사실을 알리자 ‘국세청 관계자와 통화했는데 사건과 관련 없다고 말했다’고 하더라. 국세청에 확인했더니 ‘기밀이라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는 말이 돌아왔다. 왜 거짓말까지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그사이 하씨가 다른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9~10월경 가상자산 전문 매체 기사에서 하씨의 영어 이름을 발견했다. 하씨가 ‘키키캣 코인’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이게 사기라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하씨가 코인사업을 하면서 ‘이태리 석유 재벌의 아들’인 척했다는 글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불송치했다 보완수사 결정 “그건 1계에서 처분한 것” 이 대표의 주장대로라면 하씨는 업무상 배임 혐의로 수사를 받는 도중에 또 다른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뜻이 된다. 이 대표는 “(키키캣 코인의) 시가총액이 1억달러까지 올랐다가 현재 100만달러까지 떨어진 걸로 안다. 키키캣 코인을 구매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채팅방에 참여하고 있는데, 지금은 피해자 방이나 다름 없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중지된 수사를 재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하씨의 여동생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페이퍼컴퍼니를 운영한 사실도 발견했다. 그는 “하씨와 거래한 마스크 제조업체는 여러 곳인데 수출을 진행한 곳은 하씨 동생 명의의 페이퍼컴퍼니로 확인된다”며 “이 내용을 근거로 수사를 재개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경찰은) ‘규정 위반’이라고 윽박질렀다”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 규칙 제102조(수사 중지 사건 수사 재개)는 ‘경찰은 수사 중지된 사건의 피의자를 발견하는 등 수사 중지 사유가 해소된 때에는 …(중략)… 즉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여기서 경찰과 이 대표의 주장이 엇갈린다. 경찰은 수사 재개에 필요한 요건을 국제 공조 수사 결과라고 말했다. 반면 이 대표는 새로운 증거가 나왔는데 왜 수사를 재개하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필리핀과의 국제 공조 결과가 아직 회신되지 않았다는 건 하씨의 해외 (계좌) 자료가 필요한 일부 수사에 제약이 있다는 뜻일 뿐이다. 하씨의 마스크 사업 규모를 확인하는 정도에 필요한 자료”라며 “하씨의 여동생이 페이퍼컴퍼니를 갖고 있다는 의혹은 수사가 시작된 이후 3년여 동안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내용이다. 수사를 재개하고 관련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2계 담당자는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올 때까지 수사를 재개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하씨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언제쯤 올 것으로 예상되냐는 질문에도 “알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또 앞서 하씨를 불송치한 내용에 대해 거론했을 때는 “그 부분은 1계에서 처분한 것”이라며 “우리(2계)는 검찰의 보완수사 요청 이후 수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소인이 제출한 자료는 경찰 수사 규칙에 따라 사건 기록에 편철해 놨다”며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없어도 수사를 재개할 수 있는지 국수본(국가수사본부)에 질의해 둔 상태”라고 말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수사가 길어지는 사이 하씨가 또 다른 일을 벌이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범죄 혐의가 확인되지 않은 부분 아닌가. 피고소인이 현재 받는 업무상 배임 혐의 외의 별건 수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이 대표가 담당 수사관에게 언급한 하씨의 코인 사업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