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거 난리라던데?
6·3 지방선거에서 서울, 대구, 부산 등 전국 67곳의 투표소에서 사상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일어나며 선거관리위원회의 대국민 사과문과 위원장 사퇴에도 재선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관위의 이런 행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요.
2022년 대통령선거 당시 코로나 확진자의 투표용지가 소쿠리나 쓰레기봉투 등 정해진 투표함 없이 보관됐고 기표된 용지를 나눠주기도 하는 등 관리 부실로 당시 선관위 위원장도 사과와 사퇴를 했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걸까요?
그에 앞서 선관위가 하는 일과 그 배경을 알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요.
선거관리위원회.
그 역사는 1963년부터 기록돼있지만, 사실 선거기관이 첫 등장한 것은 1948년 5·10 총선거였습니다.
당시 임시로 국회선거위원회가 구성됐고, 정부수립 이후에는 내무부에 선거위원회가 설치됐습니다.
즉, 내무부의 산하기관으로 위원 구성도 대통령이 위촉했으며 선거 계획과 예산 역시 정부의 지도 하에 이뤄졌는데요.
그러다 보니 경찰과 공무원들이 특정 정당의 선거에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3·15 부정선거가 일어나게 됐고, 국민들에게 공정한 선거의 중요성과 민주주의를 되새기게 됐죠.
따라서 독립기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실현되기 직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며 선거위원회는 폐쇄되고 맙니다.
그러나 당시 군사정변에 대해 미국의 개입과 압박이 이어지자, 군부는 군복을 벗고 일반 민간 정부의 형태로 전환하고자 했습니다.
앞선 부정선거의 여파와 정권의 정당성을 보여주기 위해 대통령 선거 전에 헌법을 개정했습니다.
1963년 1월16일,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기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창설됩니다.
처음부터 철저한 권력 분립과 공정성을 지키고자 했는데요.
중앙선관위의 위원은 대통령이 3명, 국회가 3명, 대법원장이 3명을 각각 선출해 권력의 균형을 맞추고자 했습니다.
선관위 수장인 위원장은 중앙선관위 위원 9명이 서로 투표하는 호선 방식으로 정합니다.
제1대 위원장은 현직 대법관이 맡았습니다.
법을 잘 알고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아 중립적이란 인식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관례처럼 굳어지면서 현재까지 대법원장은 3명 중 1명을 현직 대법관으로 추천하고 대법관이 위원장이 되는 게 당연해졌는데요.
하지만 본업인 대법관 일과 위원장직을 동시에 수행하기 어려위지면서 선관위로 출근하지 않는 비상근 또한 관례로 굳어졌습니다.
수장이 나오지 않으니 다른 위원들 역시 나오지 않게 됐고, 결국 일상적인 행정과 실무에도 차질이 생기고 말아 1969년 법 개정을 통해 의원 중 1명을 항상 출근하는 상임위원 제도가 생겼습니다.
선관위는 선거 때만 일하는 거 아닌가요? 매일 나올 필요가 있나요?
초창기에는 대통령, 국회의원 등 큰 선거의 투표소만 관리하며 직원의 수도 적었습니다.
그러나 1991년 지방선거가 시작되면서 1만명이 넘는 후보자 검토, 벽보와 전국의 개표소 관리 등 선관위 상근직원 3~4명으로는 도저히 역부족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당시 후보자들이 금품을 제공하고 표를 얻는 불법이 자행하며 이를 감시하고 단속하는 과정에서 선거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정치인들의 자금과 장부를 감시하게 됐습니다.
부족한 만큼 지방 공무원들의 손을 빌리자니, 인사권을 쥔 구청장이나 지역 국회의원들을 전혀 단속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독립된 선관위 정식 직원의 필요성에 따라 증원되며 지역마다 청사까지 생겼습니다.
현재에는 약 3천명의 직원과 273개의 청사를 두고 있는데요.
규모가 커지고 다른 곳에서 위탁 선거 관리 요청이 들어오며 민간 선거까지 맡고 있습니다.
농협, 수협, 산림조합, 새마을 금고 등의 조합장 선거와 아파트 동대표나 재건축 찬반 투표를 위한 장비 대여, 온라인 투표 시스템 등 미래의 유권자들을 위한 학교나 단체에서 투표 장비 체험, 교육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선거를 위해 인구 변화에 맞춰 선거구를 나누고 투표 기술을 연구하기도 하는데요.
2015년부터 공정성과 투명함을 알리기 위해 정당 관계자 외에 일반 시민들도 개표과정을 참여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는데요.
처음 언급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 소쿠리 투표함 말고도 투표용지 외부 유출, 추가 용지 쇼핑백에 운반,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 878건이 넘는 채용 절차 위반 적발 등등….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문제들이 단순 사과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며 그냥 넘어갔다는 점인데요.
어째서일까요?
앞서 말했듯이 선관위는 대통령, 국회, 대법원의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대한민국 헌법 제 114조에 명시된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창설됐습니다.
그렇다 보니 고의적으로 범죄를 저질러 형법 위반으로 처벌받는 게 아니라면 선관위 내부에서 발생한 과실과 책임은 자체 규정에 따라 해임, 파면 등의 내부 징계로만 끝나게 됩니다.
여러번 언급되는 부실 관리의 경우 선거법에 위반하는 조항이 있지만, 형사 처벌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어 처벌을 내릴 수도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선관위는 “내부 비리 앞에서도 직무 감찰 대상이 아니”라며 감사원의 정기 감사를 거부했었습니다.
결국 2025년 헌법재판소 판결마저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의 직무 감찰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그 어떤 외부 기관도 감시하거나 건드릴 수 없는 대한민국 유일의 성역이 됐습니다.
이 때문에 선관위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그저 대표 사임과 대국민 사과문 발표로 상황을 넘겼는데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부여받은 독립성이 오히려 감시와 처벌을 피하는 방패가 된 것은 아닌지 되짚어봐야 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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