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엔비디아 본사 인근의 한 K-치킨 호프집에서 풍기던 고소한 기름 냄새는 불과 4개월 만인 지난 7일, 태평양을 건너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치킨 매장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두 장소를 관통하는 매개체는 지극히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한국식 치킨(K-Chicken)’이었지만, 그 테이블을 채웠던 주인공들의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굳건히 다져놓은 ‘고대역폭메모리(HBM) 혈맹’의 토대 위에서, 양가의 차세대 리더인 2세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국경과 격식을 허문 ‘소프트 외교’를 본격화하고 있다.
재계의 시선은 이날 성사된 최윤정(37) SK바이오팜 전략본부장과 메디슨 황(36) 엔비디아 수석이사의 두 번째 ‘치맥 회동’에 집중되고 있다.
이날 저녁, 서울 삼성동의 한 치킨 매장 앞은 젠슨 황 CEO의 방한 소식을 듣고 모여든 취재진과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젠슨 황 CEO가 특유의 가죽 재킷을 입고 취재진에게 직접 치킨을 나눠주는 이색적인 퍼포먼스가 끝난 오후 8시 무렵, 매장 안의 공기는 또 한 번 묘하게 변했다.
최고 경영진이 자리를 뜬 직후, 청바지와 편안한 캐주얼 차림의 최 본부장이 남편과 함께 매장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테이블 안쪽에는 젠슨 황 CEO의 딸이자 엔비디아의 핵심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메디슨 황 수석이사와 그의 약혼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2월 미국 실리콘밸리 현지에서 부녀 동반으로 첫 만남을 가졌던 두 사람은, 약 수 개월 만에 ‘진짜 한국 치킨 매장’에서 재회한 것이 못내 반가운 듯 환한 미소와 함께 가벼운 포옹을 나눴다.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테크 인사이더들의 미팅답게 의전이나 경호원의 삼엄한 통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은 치킨에 시원한 맥주잔을 부딪치며 약 1시간 동안 격의 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양가의 남편과 약혼자까지 동행한 이 자리는 단순한 비즈니스 미팅을 넘어, 양가가 세대를 가로질러 가족 패밀리 차원의 ‘대체 불가능한 신뢰 자산’을 쌓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재계가 이 30대 여성 리더들의 ‘치맥 미팅’을 단순한 가십이나 친목 도모로 치부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각 사에서 맡고 있는 실질적인 영향력과 커리어의 무게 때문이다.
메디슨 황 엔비디아 수석이사는 전 세계 테크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엔비디아의 ‘글로벌 제품 마케팅’을 총괄하는 핵심 인사다. 단순히 아버지가 세운 회사에서 자리를 지키는 2세가 아니라, 엔비디아의 AI 칩셋과 플랫폼이 전 세계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생태계에 어떻게 뿌리내릴지 전략을 짜는 실무 사령탑이다.
이번 젠슨 황 CEO의 방한길에도 동행해 글로벌 테크 기업들과의 주요 미팅 일정과 동선을 직접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최 본부장은 SK그룹의 대표적인 ‘바이오 야전 사령관’이다. 시카고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뇌과학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이 분야의 전형적인 전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현재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의 글로벌 영토 확장과 파트너십 체결 등 실질적인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지주회사인 SK㈜의 PM6담당(바이오 투자 총괄)을 겸직하며 그룹 내 미래 먹거리 전반으로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이 가지는 진짜 가치는 이들이 딛고 선 사업적 영토가 정확히 한 지점에서 교차한다는 데 있다. 바로 ‘AI와 바이오의 기술적 융합’이다.
최근 제약·바이오 업계의 가장 큰 패러다임 변화는 신약 개발 프로세스에 고도화된 인공지능을 이식하는 것이다. 통상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는 데는 10년 이상의 기간과 수조 원의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지만, AI 알고리즘을 활용하면 수억 개의 화합물 구조를 초단위로 시뮬레이션해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엔비디아는 이미 헬스케어 및 바이오 전용 생성형 AI 플랫폼인 ‘바이오네모(BioNeMo)’를 출시하며 이 시장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은 상태다. 신약 개발을 위한 AI 플랫폼 전략에 능한 메디슨 황과, 실제 임상 데이터와 글로벌 신약 개발 인프라를 보유한 최 본부장의 네트워킹은 양사의 전략적 니즈와 정확히 맞물린다.
결국 부친이 다져놓은 ‘HBM 동맹’이라는 비즈니스 고속도로 위에서, 딸들은 ‘AI-바이오’라는 새로운 미래 영토를 향해 함께 달릴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 한국 대기업들의 파트너십이 철저히 계약서와 비즈니스 이해관계에 의해 맺어지고 끊어졌다면, 2026년 현재 글로벌 빅테크 무대에서의 생존 방정식은 ‘정서적 유대감’과 ‘인적 네트워크의 연속성’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아버지 세대의 ‘AI 깐부’ 인연이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활약 중인 2세 리더들의 실무적 교류로 이어지는 모습은 매우 독보적이고 고무적인 현상”이라며, “이들이 치킨 테이블 위에서 다져놓은 두터운 인적 네트워크는 향후 두 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이 결합하는 강력한 비즈니스 가교이자 동맹의 안전장치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어스름한 강남 골목길 치킨집을 나서는 두 젊은 리더들의 손에는 국경을 넘어선 우정, 그리고 양사 그룹의 미래를 바꿀 강력한 ‘2세대 깐부’의 신뢰 자산이 단단히 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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