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결과가 확정되면서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를 이끌 새 대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전국 곳곳에서는 투표 없이 당선이 확정된 후보들이 속출했다. 이번 선거 무투표 당선자는 500명을 넘어서며 역대 두 번째 규모를 기록했다. 유권자가 후보의 자질과 자격을 판단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무투표로 당선된 인원은 총 504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직전 2022년 지방선거(490명)보다 늘어난 수치로, 1998년 제2회 지방선거 이후 가장 많은 규모다. 기초단체장 3명을 비롯해 광역의원 108명, 기초의원 305명, 비례대표 기초의원 88명이 유권자의 선택 절차 없이 당선을 확정했다.
역대 최다
0표 당선
무투표 당선은 특정 지역만의 현상도 아니었다. 전남·광주에서는 80명, 대구·경북에서는 70명의 무투표 당선자가 나왔고,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서도 223명이 투표 없이 배지를 달게 됐다.
특히 경기 시흥시장 선거에서는 국민의힘이 후보를 내지 못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임병택 후보가 경쟁 없이 당선을 확정해 눈길을 끌었다. 인구 50만명 이상 수도권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거는 유권자가 후보를 비교·평가하고 지역의 미래를 맡길 대표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무투표 선거구에서는 이 같은 절차 자체가 생략된다. 후보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고, 유권자는 공약과 자질을 검증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는 수백만 명의 유권자가 일부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눈에 띄는 점은 최근 두 차례 지방선거에서 무투표 당선 규모가 500명 안팎으로 고착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7회 지방선거가 치러진 2018년 무투표 당선자는 89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4년 뒤인 2022년 490명으로 급증했고, 이번 선거에서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불과 두 차례 선거 사이에 무투표 당선자가 다섯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1990년대 지방선거에서는 정당 공천 체계가 현재와 달랐고 지방자치제도 역시 정착 단계에 있었다.
반면 현재는 기초의원 정당 공천제가 시행된 지 20년이 지났고 지방의회 역시 제도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무투표 당선 규모가 다시 지방선거 초창기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이 역대급 규모로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거대 양당 중심의 정치 구조, 2인 선거구 중심의 지방의회 선거제도, 후보자 감소와 인구구조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무투표 당선은 오랫동안 특정 정당의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 현상으로 여겨졌다.
특정 정당의 우세가 뚜렷한 지역에서는 상대 정당이 후보를 내지 않거나 출마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오래전부터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특정 정당의 영향력이 강하게 유지돼왔다.
텃밭선 ‘독식’ 수도권은 ‘나눠먹기’
사라지는 후보군, 소멸하는 지방정치
실제로 광주·전남 지역의 무투표 당선자 80명 가운데 79명이 민주당 소속이었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광주 서구청장과 남구청장이 경쟁 후보 없이 당선을 확정했다. 전국 기초단체장 무투표 당선 3명 가운데 2명이 광주에서 나온 셈이다.
이 지역의 무투표 증가는 후보자 수 변화에서도 드러난다. 광주·전남에서는 2022년 지방선거 당시 823명의 후보가 431개 자리를 두고 경쟁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후보자가 771명으로 줄었다. 반면 선출 인원은 440명으로 늘었다.
뽑을 자리는 늘었지만 출마자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 결과 무투표 당선자는 63명에서 80명으로 증가했다.
민주당 강세 지역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충분히 나오지 못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광주·전남 지역 국민의힘 후보는 10명 안팎에 그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국혁신당과 진보당 등 다른 정당 후보가 일부 출마했지만, 모든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와 경쟁구도를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상당수 선거구에서는 민주당 후보만 등록하거나 선출 정수와 후보 수가 같아지면서 투표가 생략됐다.
제주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제주도의원 지역구 32곳 가운데 8곳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나왔다. 모두 민주당 소속이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20년간 누적 무투표 도의원이 6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 선거에서 한꺼번에 8명이 무투표로 당선된 것은 이례적인 결과다.
특히 제주에서는 무투표 당선자 중 정치 신인도 포함됐다. 과거에는 현역 의원의 인지도와 조직력이 경쟁 후보의 출마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거론됐지만, 이번에는 처음 출마한 후보도 경쟁 없이 당선됐다. 대구·경북 역시 70명이 경쟁 없이 당선을 확정했으며 상당수가 국민의힘 소속이었다.
“공천이
곧 당선”
결국 특정 정당 우세 지역에서는 “어차피 이기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출마 자체를 포기한 것이다. 상대 정당 후보 입장에서는 선거비용을 부담하고 출마하더라도 당선 가능성이 낮고, 일정 득표율을 얻지 못하면 선거비용 보전도 받기 어렵다. 이런 현실은 험지 출마를 더 어렵게 만들고, 후보 부재는 다시 무투표 당선으로 이어진다.
실제 후보자 등록 결과를 보면 선거 열기 자체도 과거보다 낮아진 모습이다. 이번 지방선거 평균 경쟁률은 1.84대 1 수준으로 집계됐다. 역대 지방선거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으로 평가됐던 직전 선거와 비슷한 수치다. 출마자 수는 줄어든 반면 선출 인원은 유지되면서 상당수 선거구에서 경쟁이 성립되지 못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정당의 지역 기반이 더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정 지역에서 후보를 내지 못하면 선거운동을 통한 조직 구축이나 유권자 접촉 기회도 사라진다.
다음 선거에서도 후보를 찾기 어려워지고, 결과적으로 한 정당의 독점 구조는 더 굳어진다. 무투표 당선이 단순히 이번 선거의 결과가 아니라 다음 선거의 경쟁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더 큰 심각성은 이전에는 무투표 당선이 비수도권 지역에만 집중됐다면, 최근에는 서울과 수도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이번 지방선거 무투표 당선자 가운데 서울·경기·인천 지역 당선자는 223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무투표 당선자의 40%를 웃도는 규모다.
특히 서울에서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가 각각 1명씩 출마해 선출 정원과 후보 수가 일치하면서 투표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선거구가 적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민주당 61명, 국민의힘 47명이 무투표로 당선됐고, 경기에서도 민주당 51명, 국민의힘 34명이 투표 없이 당선됐다.
이렇게 무투표 당선자가 대거 나온 배경에는 지방의회 선거 구조가 있다. 기초의원 선거는 한 선거구에서 2명 이상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2명을 선출하는 선거구가 적지 않다.
“어차피
못 이겨”
이 경우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1명씩만 후보를 내면 후보자 수와 선출 정수가 같아진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수가 선출 정수를 넘지 않으면 투표를 실시하지 않기 때문에, 유권자는 투표장에 가지 않아도 결국 두 후보는 경쟁 없이 모두 당선된다.
이는 영·호남의 특정 정당 독점형 무투표와는 결이 다르다. 광주·전남이나 대구·경북에서는 한 정당의 우세가 워낙 강해 상대 정당이 후보를 내지 못하거나 출마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무투표가 발생한다.
반면 수도권과 일부 대도시에서는 양당이 모두 후보를 냈는데도 선출 정수와 후보 수가 같아 투표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한쪽이 독식하는 구조가 아니라 양당이 의석을 나눠 갖는 방식을 취해 경쟁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무투표 당선 증가를 단순히 특정 지역의 정치 성향 문제로만 볼 수 없다. 특정 정당의 텃밭에서는 ‘독점’이, 수도권과 대도시에서는 ‘배분’이 무투표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선거구 획정 과정과도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3~4명을 뽑는 선거구가 늘어나면 소수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가 진입할 가능성이 커지고, 자연스럽게 경쟁도 확대될 수 있다. 반대로 선거구가 2인 중심으로 쪼개질수록 거대 양당 후보 1명씩이 의석을 가져가는 구도가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지방의회 선거 때마다 3~5인 중대선거구 확대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선거구가 다시 2인 중심으로 조정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제도 개선 논의는 충분히 진전되지 못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무투표 당선 증가는 후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의회 선거제도 자체가 경쟁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무투표 당선 증가를 설명하는 또 다른 배경으로는 지방의 인구구조 변화가 꼽힌다. 최근에는 지역사회 자체의 인적 기반이 약화되면서 출마자를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방선거는 지역 주민 가운데 공직에 도전할 후보가 있어야 경쟁이 성립된다.
하지만 상당수 지방 중소도시와 농어촌 지역에서는 청년층 유출과 고령화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정치 신인을 발굴하기 어려운 환경이 형성되고 있다.
“당선인 누군지도 몰라”
검증 없이 배지 ‘날름’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인구 감소가 선거구 획정과 지방의원 정수 문제뿐 아니라 지방정치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일수록 후보군 자체가 축소되고, 지역 정당 활동이나 정치인 양성 기반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인구 감소 지역 상당수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상태다. 청년층의 수도권 이동이 지속되면서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정치인을 발굴하거나 장기간 육성하는 구조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정치의 특성상 지역 현안을 잘 알고 주민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어온 인물이 후보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역 인구가 감소하고 경제 규모가 축소될수록 정치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도 함께 줄어든다. 지방의회 의원직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도 출마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무투표 당선이 늘어나는 현상을 두고 가장 많이 제기되는 문제는 유권자의 선택권 축소다. 무투표가 확정되면 후보자는 당선인 신분을 얻게 되며 선거운동도 중단된다. 현수막과 벽보는 철거되고 선거 공보 역시 유권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무투표 선거구 주민들은 후보자의 정책과 공약, 경력 등을 확인할 기회를 충분히 갖기 어렵다. 특히 지방의원 선거의 경우 지역 예산 심의와 조례 제정, 집행부 감시 등 주민 생활과 밀접한 권한을 행사한다.
그럼에도 후보자가 어떤 정책을 추진할 것인지, 지역 현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과정 없이 임기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선거에서는 후보자들이 거리 유세와 토론, 공보물 등을 통해 자신을 알리지만 무투표 선거구에서는 이런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 일부 지역에서는 당선인이 누구인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선거가 끝나는 경우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증도 못 해
투표도 못 해
물론 무투표 당선 제도 자체는 선거 비용 절감과 행정 절차 간소화라는 목적을 갖고 있다. 경쟁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별도의 투표를 진행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논리도 존재한다.
실제 헌법재판소 역시 행정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제도의 정당성을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처럼 무투표 당선 규모가 수백명 단위로 늘어나면서 제도 도입 당시와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과거에는 예외적 사례로 여겨졌던 무투표 당선이 이제는 지방선거의 주요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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