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가 끝난 후 승자는 승리를 자축하고 패자는 패인을 분석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는 새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임기 준비에 들어갔고 정치권은 벌써 다음 선거와 차기 권력구도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논공행상이다.
며칠 전 필자는 한 지역 당선인 환영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행사장에는 선거 기간 동안 함께 뛰었던 지지자들과 선거 관계자들이 대거 모여 있었다. 모두가 당선인을 축하하는 자리였지만 곳곳에서는 벌써부터 누가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어떤 사람은 “이제 지역 발전을 위해 더 큰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고, 또 다른 사람은 특정 기관이나 위원회 이름을 거론하기도 했다.
문득 1년 전 대통령선거 당시 썼던 칼럼이 떠올랐다. 당시 필자는 “대선 일등공신은 새 정부가 탄생하면 스스로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대 그리스 왕족이나 귀족 가문에서 아이를 키우던 산파와 유모와 몽학선생 이야기를 꺼내며 아무리 중요한 역할을 했어도 자신의 역할이 끝나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는 점을 강조했다.
산파는 출산을 돕고 떠났고 유모는 아이가 자라면 떠났으며 몽학선생 역시 성인이 될 때까지만 보조 역할을 했다. 누구도 자신이 아이를 키웠다는 이유로 왕족 가문의 중심 권력을 차지하려 하지 않았다.
필자는 당시 칼럼에서 정부 역시 마찬가지라고 썼다. 선거를 도와 정권을 탄생시킨 1차 그룹, 새 정부 초기 안정을 돕는 2차 그룹, 그리고 국가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기반을 만드는 3차 그룹이 따로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늘 선거를 도왔던 사람들이 끝까지 권력을 움켜쥐려 한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선거 전문가와 조직 동원형 정치인이 국정 운영까지 장악하려 하다 보니 정권은 점점 캠프형 정부로 변해갔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1년이 지난 지금 필자는 그 칼럼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이번 지방선거 역시 단순한 지역 선거가 아니었다. 대선 이후 1년 만에 치러진 전국 단위 정치 시험대였다. 여당은 정권 안정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고 야당은 정권 견제의 발판을 만들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선거운동원과 조직 책임자들이 밤낮없이 뛰었다.
그런데 문제는 선거가 끝난 후 논공행상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누가 선거 때 얼마나 뛰었는지, 누가 조직을 움직였는지, 누가 얼마나 사람을 모았는지에 따라 자리 이야기가 나온다. 지방 공기업과 산하 기관, 협회와 위원회, 자문단과 비서 조직까지 온갖 자리가 거론된다.
선거 과정에서는 지역 발전과 민생을 이야기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어느 순간 누가 어디를 가느냐가 정치의 중심이 되어버린다.
사실 선거를 열심히 도운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당선자 입장에서도 어려운 시절 함께 뛰어준 사람에게 의리와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행정이 선거 보은으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선거에서 유능했던 사람이 반드시 행정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조직 동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정책 능력까지 갖춘 것도 아니다.
선거는 전쟁에 가깝고 행정은 시스템에 가깝다.
선거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경쟁이다. 그러나 행정은 예산과 조직, 법률과 제도를 운영하는 일이다. 선거에서는 연설을 잘하고 조직을 잘 움직이는 사람이 유능할 수 있지만, 행정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고 성과를 만드는 사람이 유능하다.
즉 선거 승리의 공로와 행정 능력은 전혀 다른 기준으로 평가돼야 한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일수록 선거 캠프와 행정 조직을 구분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위험한 것은 선거형 인물이 권력 핵심으로 들어올 때 나타나는 구조적 문제다. 선거를 통해 형성된 인간관계와 줄서기 문화가 그대로 행정 조직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책보다 충성 경쟁이 앞서고 실력보다 캠프 경력이 우선시된다.
결국 행정은 국민 중심이 아니라 선거 공신 중심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우리 정치가 반복적으로 겪어온 폐해 상당수가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
특히 지방선거는 더 위험하다. 중앙정부와 달리 지방은 사람 관계가 훨씬 촘촘하기 때문이다. 지역에서는 선거 때 함께 뛰었던 사람들이 인허가와 예산, 사업과 산하 기관, 각종 위원회와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작은 도시일수록 더 그렇다.
선거 캠프 인맥이 곧 지역 권력이 되고 지역 권력이 다시 각종 사업과 연결되면서 보이지 않는 지역 카르텔이 형성된다. 시민들은 선거가 끝났는데도 지역이 계속 선거캠프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래서 진짜 훌륭한 선거운동원은 선거가 끝난 뒤 조용히 떠날 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이 도왔던 후보가 당선됐더라도 스스로 거리를 둘 줄 알아야 한다. 후보 역시 마찬가지다. 정말 국가와 지역을 생각한다면 선거 때 도와준 사람보다 실제 능력 있는 사람을 기용해야 한다.
능력이 검증된 사람이라면 선거 참여 여부와 상관없이 쓰면 된다. 그러나 단지 선거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자리를 주기 시작하면 결국 지방행정은 선거조직화된다.
역대 정부를 돌아보면 선거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음에도 정권 출범 이후 스스로 한발 물러나 본업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자리를 얻지 못해서 떠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떠났다. 그런 모습은 오히려 국민들에게 더 큰 신뢰를 줬다.
정치에서 가장 아름다운 퇴장은 권력을 더 얻기 위해 남는 것이 아니라 역할이 끝났을 때 조용히 물러나는 것이다.
필자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 과거 학교 동기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 누구보다 열심히 도왔다. 그러나 당선 이후에는 임기 동안 단 한 번도 개인적인 부탁을 하지 않았다. 전화조차 거의 하지 않았다. 친구는 친구대로 필요한 전문가와 행정 경험자를 만나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했던 훌륭한 정치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신제품 개발에 성공했다고 해서 연구원을 곧바로 영업본부장으로 임명하지는 않는다. 뛰어난 영업사원을 공장장으로 발령내지도 않는다. 각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낸 사람이라도 다른 영역에서는 전혀 다른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직은 가장 적합한 사람을 가장 적합한 자리에 배치할 때 성과를 낸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예외일 수 없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많은 지역에서 새로운 권력이 출범하게 됐다. 대통령과 국회, 지방정부의 관계 역시 새롭게 정립되는 시기를 맞고 있다. 권력이 한 방향으로 모일수록 인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일각에서는 권력 집중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필요한 것은 논공행상이 아니라 능력 중심의 인사 원칙이다.
선거는 끝났다. 이제 선거운동원은 선거운동원으로서의 역할을 마쳐야 하고 당선인은 당선인으로서의 책임을 시작해야 한다. 선거 과정에서의 공로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것이 곧 공직의 자격이 될 수는 없다. 국가 운영이나 지방 행정은 충성심이 아니라 능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보은 인사가 아니라 성과를 만드는 인사다.
고대 그리스의 산파와 유모와 몽학선생이 존경받았던 이유는 왕족이나 귀족의 아이를 키우는 일을 맡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자신의 역할이 끝났을 때 미련 없이 떠났기 때문이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선거를 도운 사람이 권력 주변을 떠나고 당선인이 능력 있는 사람을 등용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건강해진다.
이번 지방선거 이후 국민이 보고 싶은 모습도 바로 그것이다. 선거 승리의 공을 앞세워 자리를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용히 본업으로 돌아가는 선거운동원의 뒷모습이다. 그리고 선거 공신이 아니라 가장 유능한 사람을 선택하는 당선인의 결단이다. 선거는 캠프가 이기는 과정이라면 행정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과정이다.
진정한 승자는 선거에서 이긴 사람이 아니라 선거가 끝난 뒤 국민의 삶을 바꾸는 사람이다.
<skkim5961@naver.com>


















